이정표 외2
한 치 앞을 모르고 출발한 길
불 연기로 보이지 않는 이정표
잿빛으로 가득한 하늘과 황량한 들판뿐
빛을 잃은 태양은 형체만 보인다
검은 연기에 휩싸여 방향을 잃고
목적지가 나오지 않는다
두려움은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불 연기처럼 피어오르고
어둠에 둘러싸여 길을 알 수 없다
마침내 도착한 산 너머에
굽이굽이 능선 따라 마주한
고즈넉한 호수와 단풍
변곡점 지나는 동안
삶의 가을 산이 다양한 빛으로 물 들었다.
겨울밤
바람이 머물다 간 창가에
달빛이 여물어 가는 겨울밤
깊은 어둠을 뚫고 달리는 한 줄기 빛
끝을 알 수 없는 터널 속으로
간간이 비추던 달빛의 속삭임
한낮의 강렬한 태양 빛이 아니어도
겨울밤을 어루만지는 은은한 달빛
달빛에 실버들 목욕하는 밤
칠흑 같은 어둠의 기다림 끝에
여명을 맞는 겨울밤.
구름처럼
그는 집을 짓고 한곳에 정착하지 않는다
무엇을 더 소유하거나 채우려 하지 않는다
자기 몸이 산산조각이 나도
높은 산을 너끈히 넘어간다
그는 자기 영역을 주장하지 않는다
허공에 건축한 집에 마음 두지 않는다
그가 자리를 펴는 곳이 처소다
그는 비를 내려놓고 떠나는 나그네
바람 향기, 하늘 향기 따라
허공을 자유롭게 산책하는 자유인
하늘 여백에 스케치하는 화가
그는 이 땅에 집을 지을 공간 없어
애초에 하늘을 자기 거처 삼았다.
[박영실 프로필]
『텍사스크리스천신문(TCN)』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수상: 2014년 재미 시인협회 신인상 당선(시)/ 미주아동문학 신인상 당선(동화)/ 2016년 『미주중앙일보 중앙신인문학상 대상(수필)/ 2017년 『한국문학예술 신인상 당선(수필)/ 2023년(제25회) 재외동포문학상 우수상(수필).
수필집: 『열지않은 선물상자』(2024, 곰곰나루) 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