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 만에 쓰는 하노이 기행문
1996년 12월 25일(수) 넷째 날
오늘 하롱베이 투어 떠나는 날이다. 6시에 알람을 해놓았다. 자명종 소리에 깨어 준비를 다 하고 아래층 식당으로 내려갔으나 아무도 일어나지 않았다. 알고 보니 알람을 한국 시간으로 해놓아 실제로 4시에 기상하였다. 베트남은 우리 나라보다 2시간 늦다. 이후에도 이런 실수를 몇 번이나 하게 된다.
06:45 집 앞까지 여행사 미니 버스가 픽업하러 왔다.
07:10 모든 승객을 태우고 출발한다. 여행객 22명, 기사 1명, 조수 2명 모두 25명이 탔다. 버스 통로까지 꽉 채운다.
오늘 크리스마스인데도 꼬마들이 일찍 학교에 등교한다. 아마 휴일이 아닌 모양이다. 외국인 학교는 크리스마스와 연초 3주 방학이다. 중국처럼 아침을 사먹는 사람들이 보이고 노인들은 운동을 한다. 크리스마스 장식이 있는 대성당엔 미사를 보고 있다. 미리 알았더라면 오늘 하롱베이 투어를 떠나는 대신 미사 참여를 했을 터. 카톨릭 신자가 아니라도 크리스마스엔 성당에 가고 싶다.
하노이를 벗어나 농촌 지역을 지나면서 오리가 떼를 찌어 거리를 횡단한다. 아침 일찍 시장이 열리며 활기를 띤다. 끝없는 넓은 평원이 펼쳐진다. 알파벳화 한 베트남 문자를 보면 특이한 경관을 느낀다. 많은 충혼탑이 보인다. 아마도 미국의 북폭으로 인한 사망자들의 영혼을 달래기 위한 것이리라. 다리 개통식을 한다. 철교 위로 버스가 다니는 모습도 보인다.
아이들이 지나가는 차를 보고 손을 흔들고 논에서 일하는 농부들은 허리를 굽힌다. 어디서나 농촌이 평화롭기는 마찬가지다.
두 시간쯤 지나 화장실이 있는 휴게소에 도착하였다. 바나나 한 다발에 6,000 동이다. 하노이보다 호객이 심하지 않다. 서울에서 하노이로 오는 비행기 옆자리에 앉았던 데이비드(David)를 이곳에서 만난다. 부산에 있는 미국학교 교사로 2주 휴가로 베트남에 왔다고 한다. 이스라엘에서 온 청년들도 우리 차에 함께 탔다. 벨기에에서 의과 대학에 다니는 팜은 호치민에서 이곳까지 어머니와 함께 여행하고 있다. 팜은 베트남 통일 후 보트피플로 탈출했다가 다시 고국을 찾은 베트남인이다. 호치민에서 신혼 여행을 온 베트남 부부도 있다.
우리가 배치된 호텔(Huong Ha Hotel) 객실은 너무 허름하다. 문도 잠기지 않을뿐더러 밖에서 훤히 보인다. 야전 침대는 금방이라도 내려앉을 것 같다. 시골 여인숙보다 못한 방이다. 신혼 부부와 베트남 출신 벨기에인 팜 모자 모두 방을 바꾼다. 우리도 3 달러 추가 요금을 내고 방을 바꾸었다. 손을 씻으니 땟물이 꼬질 꼬질하게 나온다. 콧구멍도 새까맣다.
점심은 고기볶음과 생선과 야채가 나왔다.
오후 두 시쯤 배를 타고 섬 구경에 나섰다. 우리가 여행을 떠나기 전, 영화 인도차이나와 연인을 보았다. 인도차이나를 보면서 하롱베이를 가고 싶었고, 연인을 보면서 호치민에 꼭 가고 싶었다. 지금 하롱베이의 많은 섬들을 유람하고 있다.
너무도 아름답다. 우리 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카르스트 지형이기에 신비로운 것이다. 신비의 섬이라는 울릉도에 처음 갔을 때 받았던 감동과 비슷했다. 열흘 동안 울릉도를 걸어서 샅샅이 다녔던 그해 여름 참으로 행복했다.
석회암 동굴에도 들어간다. 동굴 답사 갔다가 수직 절벽에 떨어져 죽을 뻔한 선배 생각이 났다.
작은 배를 타고 다가온 장사꾼에게 산호를 11,000 동에 샀다. 1 달러라고 했으니 10,000 동을 주어도 되는데 비싸게 산 편이다. 요즘은 이런 산호를 사지 않는다. 산호를 사는 관광객이 있어 산호초는 점점 파괴되기 때문이다. 비나타바 담배도 10,000 동으로 하노이보다 비싸다.
작은 배로 갈아타고 다른 동굴을 구경하려면 15,000 동을 따로 내라고 해서 그냥 큰 배에 남아 있었다. 일본 여대생 세 명도 함께 여행 다닌다. 한국 사람 대신에 그래도 일본 여대생을 만나니 반갑다. 스꼬짱 생각이 난다. 도쿄에서 유학 왔던 야스꼬를 우리는 스꼬짱이라 불렀다.
저녁 7시쯤 숙소로 들어왔다. 저녁 메뉴로 새우, 고기, 양배추, 수프가 나왔다. 오스트리아에서 온 교사인 48세 남자가 맥주를 산다. 팜은 따로 생수를 사먹는다.
녹차는 무료이지만 그 외는 따로 사먹어야 한다. 우리 나라 식당처럼 반찬을 함께 먹는 게 아니라 각자 먹어야 한다. 이스라엘 청년들은 머리를 박박 밀고 귀와 코에 피어싱을 하고 있다. 88 서울 올림픽 때 한국은 금메달을 15개나 땄는데, 이스라엘은 은메달 1개밖에 따지 못했다고 한다.
머리가 아파 잠깐 밤거리를 산책하다. 아마 낮에 강렬한 햇볕을 너무 많이 쬔 탓일 것이다. 오렌지 5개 4,000 동인데, 카메라에 들어갈 3 볼트 건전지 하나에 50,000 동이나 한다. 공산품 가격은 무척 비싸다. 9시쯤 숙소에 들어갔다. 변기와 세면대는 Cotto 상표다. 흑백 14인치 텔레비전은 대우 제품. 온수는 나오지만 욕조는 없다.
* 여행 기간 : 1996년 12월 22일(일)-12월 29(일) 7박 8일
* 여행 장소 : 베트남 하노이-하롱베이
* 누구랑 : 연오랑 세오녀 부부
* 연오랑의 다른 여행기는 앙코르사람들과의 만남 http://cafe.daum.net/meetangkor 에서 볼 수 있습니다.
첫댓글 하롱베이에서 산 그 산호는 아직도 동생네 거실 장식장에 전시 되어 있습니다.
난 그 산호가 어디 갔나 궁금했었네.
담에 그 산호도 사진 찍어 올려야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