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딸기를 보고 느낀 것
임병식 rbs1144@hanmail.net
산책을 하다가 걸음을 멈춰섰다. 밭 어귀를 지나는데 빨갛게 익은 무엇이 보여서였다. 그것은 자세히 보니 뱀딸기였다. ‘ 탐스럽게 생겼구나’ 생각이 들 정도로 그것은 때깔이 고왔다. 그렇지만 나의 손은 내밀어 지지 않았다. 보는 순간에 머리에서 '그것은 먹을 수 없는 거야‘ 하고 경고를 보내서였다.
보기에 그것은 식용 딸기와 구분이 안 정도로 영락없이 같은 모양이다. 혼란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아니, 나는 전에 실제로 그것을 따서 베어 물어본 적이 있다. 어렸을 적인데 먹을 수 있는 빨기인 줄 알고 입으로 가져갔다가 실망을 하고 말았다. 아무런 맛이 무미했던 것이다. 바로 '퉤뛔' 하고서 내밽고 말았다. 그런 씁쓸한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지라 나는 그것을 보면서 옛 생각을 떠올리며 실소를 흘렸다.
나는 이것의 이름에 왜 '뱀'자가 들어 있는지 알지 못한다. 짐작 컨대는 먹지 못하는 것이라는 경계의 뜻으로 여겨는데 정확한 이유는 모른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식용이 아니라는 것과 먹어서 비록 독은 없을 지라도 맛이 없는 사실이다.
아무튼 무미하다는 생각때문에 나는 가던 길을 잠시 멈춰 서서 바라보기만 했다. 그러다가 생각이 바뀌어 이참에 제대로 파악을 해보자는 요량으로 요모 저모를 살펴보았다. 그런데 볼수록 식용 딸기와 너무나 흡사하여 전에 실수한 것을 잊고서 다시 손을 내밀뻔 했다.
그런 의미에서 이것은 눈속임의 극치가 아닌가 한다. 나는 평소 속임수에 대하여 일종의 혐오증같은 걸 가지고 있다. 다른 이유가 있는 건 아니고 그냥 남을 속이는 자체를 싫어한다. 그 대표적인 것으로서 투우 경기와 낚시질이 있다.
나는 투우의 나라 스페인에 가본 적은 없고, 그래서 그런 투우경기에 시비거는 건 좀 그렇기는 하지만 아무튼 좋게 보이질 않는다. 얼핏 보아서는 대단히 신사적이고 정정당당한 경기처럼 보이지만 실은 매우 불공정한 경기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싸우는 소는 그야말로 아무것도 없는 맨몸인 채로 무장해제를 시켜놓은 반면에 투우사에게는 치명상을 입힐 수 있는 창을 쥐어주고 공격을 시키니 어디 그것을 정당한 게임이라고 할수 있는가.
그런데 그렇게 일방적인 경기를 붙여놓고서 재미있어 하는 것이 못마땅 한 것이다. 다분히 편파적이고 불공정한 싸움이 아닌가. 그래서 도무지 정정당당해 보이지 않아 투우경기에 동의하지 못한다.
투우에게 흉기가 주어지지 않는다면 마땅히 투우사에게도 창을 들려주지 않는 게 옳다. 그래야 공정한 겨루기가 될 것이 아닌가.
낚시질 또한 그렇다. 흔히 조사들이 낚시의 도를 얘기하면서 어린 고기는 놓아 준다고 무슨 아량을 베푼 듯 말을 하지만, 이것 역시 얼마나 철저한 속임수인가. 바늘에 미끼를 끼워 유인책을 쓰다가 걸려들면 인정사정없이 나꿔 채서 주둥이가 째지거나 아가미를 결단 난 것이, 손맛운운 하도록 잘 한 건지 이해하기 어렵다.
이것을 두고 고기가 말을 못해서 그렇지 표현을 한다면 아마 '세상에 믿을 놈이 없구나.' 할 것이다. 거기다 미끼로 쓰기위해 살아있는 지렁이를 댕강댕강 잘라서 그 꿈틀거리는 상태로 아무렇지도 않게 바늘에 꿰는 행위도 그렇고, 다른 고기를 산채로 미끼로 삼은 행위도 보기에 썩 좋아보이지 않는다.
세상을 살아가면서는 남에게 낚시를 드리워서 이익을 취하는 무리들을 보고 곧잘 욕을 하면서도 미물인 이놈들에게만큼은 예외로 치니 난센스도 그런 난센스가 없는 것이다.
올무를 놓아 산짐승을 잡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렇게 낚시로 물고기를 낚는 것이 무엇이 다른가 말이다. 그런데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니 이율배반이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듯 술수가 횡횡하니 물고기들 중에서도 우둔한 놈은 죄다 잡혀죽고 종내는 약은 놈만 살아남아 '아나 고기'하고 놀리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최근 범죄 발생현황을 보면 교통사고로 인한 범죄 말고 사기나 횡령등 지능 범죄가 거의 90%를 차지한다고 한다. 이 또한 술수를 즐기고 묵인한 사회 풍토가 빚어낸 폐단이아니겠는가.아무렇지 않게 웃어넘길 일이 아니다. 지금은 술수가 판을 쳐서 사람들 사이에도 믿음을 담보하기 어려운 세상이다. 그러다보니 '이래도 나를 못 믿겠느냐'고 하는 말이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씁쓰레한 풍경이다.
최근의 잇따른 보도를 보면 한심스러운 기사가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수입산 사료용 대구머리를 식용으로 팔지를 않나. 고춧가루에 공업용 색소를 넣지를 않나, 냉면가락에 구두약을 넣지를 않나, 막돼먹은 눈속임이 판을 친다. 그래서 그랬을까. 아침에 산책을 하면서 함초롬히 맺혀있는 뱀 딸기를 보자니 관상용으로 심어놓고 보아도 손색이 없겠다는 생각이 드는 한편에, 이건 '아니지 '라는 생각에 고개가 가로 저어졌다.
그것을 보면서 생각하길, 거기다가 굳이 이름에 뱀자를 넣은 것은 이름이라도 기억하여 혼란을 일으키지 말라는 뜻이 담긴 게 아닐까 싶었다. 그나저나 나는 뱀을 싫어해서인지 이름에 뱀자가 들어간 것은 싫다. (2005)
첫댓글 뱀딸기는 뱀이라는 혐오스런 동물 이름이 붙어서 그렇지 항암효과가 있는 열매라고 하네요. 사실 뱀 자체도 인간의 몸에 이로운 것처럼 뱀딸기도 맛은 없더라도 식용으로 먹어도 괜찮을듯 합니다.
아주 맛은 심심하고 무미합니다. 그것이 항암효과가 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