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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가요 <쌍화점>과는 그 내용이 전혀 다르지만, 당시나 지금이나 금기시된 내용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는 일맥상통하는 바가 있다고 하겠다. 영화 <쌍화점>으로 인해 역시나 제목 말고는 잘 알려지지 않던 고려가요 <쌍화점>에 대해 많은 이들이 궁금해하고 있는 듯하다. 여기저기서 ‘쌍화점’이 무슨 뜻이냐고 묻는 질문들이 많다. <쌍화점>은 내용상 당대의 음란하고 저속한 성을 다루고 있어, 중고등학교의 <국어>나 <문학> 교과서에도 그 원문은 실리고 있지 않다. 대부분 <쌍화점>이란 고려가요가 있었고, ‘퇴폐적’이며 ‘문란한 성’ 등을 다루고 있을 뿐이라고 배우는 정도다.
그래서인지 학계에서도 <쌍화점>에 대한 연구는 미진한 편이다. 몇몇 고전 문학 전공자나 어학 전공자들의 초기 연구 외에는 별다른 최근 연구가 없는 편이다. 이러한 초기 ‘저명한’ 학자들의 학설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 <쌍화점>에 대한 질문 중 “‘쌍화점’이 무슨 뜻이냐”에 대해 대다수가 ‘만두 가게’로 답하고, ‘아! 그렇구나!’하고 끝나버린다. 정말 ‘쌍화점’이 ‘만두 가게’일까?
고려가요 <쌍화점> 읽어 보셨어요? 먼저, 고려가요 <쌍화점> 전문을 읽어 본 사람들이 많지 않을 것 같아서, 여기에 그 전문과 현대어 해석을 올려본다. 천천히 감상 한 번 해보자.
삼장사(三藏寺)에 블 혀라 가고신댄
드레우므레 므를 길라 가고신댄 위 위 다로러거디러 다로러
술팔지븨 수를 사라 가고신댄
현대어 번역
만두집에 만두 사러 갔더니만
삼장사에 불을 켜러 갔더니만 위 위 다로러거디러 다로러
두레 우물에 물을 길러 갔더니만 위 위 다로러거디러 다로러
술 파는 집에 술을 사러 갔더니만
내용을 대충봐도 교과서에 넣기에는 좀 그런 점이 있다. 대부분의 현대어 번역에서 ‘쌍화점’을 ‘만두 가게’로 번역하고 있다. 일단 그 해석을 인정하고 보면, 1연에서 만두가게에 만두 사러 갔더니 그 주인(회회아비)이 손목을 덮석 잡아 끌고 음밀한 데러 갔다는 내용이다. 그 일이 소문이 나서 저마다 ‘만두가게’에 몰려 갔다나? 2연에서는 ‘만두 가게’가 ‘삼장사’란 절로, 3연에서는 ‘우물’가로, 4연에서는 ‘술 파는 집’으로 장소가 바뀐다. 특이하게 3연에서는 ‘회회아비’ 대신 ‘용’이 등장하지만 전체 내용은 각 연이 모두 동일하다.
‘쌍화점’은 정말 ‘만두 가게’일까?
이 고려가요 <쌍화점>에서 해석에 문제가 되는 것은 1연이다. 1연에서 ‘쌍화점’(‘쌍화’)과 ‘회회아비’가 그것인데, 대개 ‘쌍화’를 ’雙花(쌍화), 霜花(상화)’로 보아 상화, 곧 만두를 의미한다고 보는 것이 지배적이다. 우리가 호(胡)떡으로 알고 있는 것의 일종으로 당시 ‘상화병(霜花餠)’, 곧 ‘만두떡’이라는 것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쌍화점’을 ‘만두 가게’로 해석하고 ‘회회아비’를 ‘만두 가게’ 주인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런데 ‘삿기 광대’ 곧 ‘새끼 광대’의 등장이 의문이다. 최철은 이 점을 주목하여 ‘회회 아비’를 ‘큰 광대, 어른 광대’ 쯤으로 보고 ‘쌍화’를 광대들이 파는 물건, ‘쌍화점’을 광대들이 물건을 파는 가게로 해석하고 있다. 최철의 해석은 다소 자의적이고 막연하여 학계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고, 여전히 ‘만두 가게’로 해석하였다.
문제는 ‘쌍화’를 ‘만두’로, ‘쌍화점’을 ‘만두 가게’로 해석했을 때 다소 이해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옛 문헌에 대한 해석은 당시의 시대적, 사회적, 문화적 배경을 전반적으로 참조해야 하는 동시에, 글 전체의 맥락이나 논리 상과도 맞아야 할 것이다. 글 맥락으로 보아 ‘화자’는 불가피하게 몸을 주(파)는(성관계를 맺게 되는) 구조로 되어 있다. 2연에서는 ‘절 지주’, 3연에서는 ‘용’, 4연에서는 ‘술집 주인’에 의해 반강제적으로 성관계를 맺게 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당시의 시대 상황을 고려해볼 때, 고려시대 절은 막강한 부와 권력을 지녔다. 고려시대 뿐만 아니라, 소설 『사하촌』에서도 보이듯이, 한 지역의 절과 그 절의 주지는 무시하기 힘든 부와 권력의 소유자였다. 이 점에서 화자가 절 지주에게 몸을 팔게 된 것은 어쩔 수 없음을 이해할 만 하다. 이것이 소문이 나서 저마다 절에 들락날락 했다고 하는 것은 몸을 팔게된 대가가 어느 정도 이상이 있었음을 추측하는 것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3연에서는 특이하게도 ‘용’이 등장한다. 이것은 다분히 허구적이지만 글 전체의 맥락상 화자가 몸을 허락하게 된 것이 권력관계 부와 지배의 관계, 물리적 힘의 관계에서 낮은 위치에 있기 때문이라고 보면 해석에 큰 무리가 없다. 4연도 마찬가지다. ‘술집’ 주인에게 이 화자는 무언가 빚이 있을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남편에 의한 것이든, 부모에 의한 것이든, 이런 정도의 추측의 가능하다)
그런데, ‘만두’를 사기 위해 몸을 팔았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당시의 궁핍상 등을 짐작할 수는 있겠지만, 단순히 ‘만두’ 때문에, 일반적인 여인들이 그것을 얻기 위해 몸을 팔러 몰려들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그리고 이 ‘만두 가게’의 주인이 ‘회회아비’라는 사실도 다소 자연스럽지가 못하다.
‘회회아비’는 이전에 ‘몽고인’이나 색목인(色目人) 또는 서역인으로 해석하였다. 그러나 회회교(回回敎)가 이슬람교를 지칭하는 것으로 볼 때, 이 ‘회회아비’는 이슬람인, 아라비아 상인으로 해석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하겠다. 그런데, 이 아라비아 상인이 멀리 고려까지 와서, ‘만두’를 팔았을까? 다소 이상하다고 할 수 있다. ‘만두’ 때문에 몸을 팔았다, 아라비아 상인이 고려에서 ‘만두’를 팔았다, 이해하기 힘든 해석이다. 이 점에서 그간의 ‘쌍화, 쌍화점’에 대한 해석을 달리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쌍화점’은 ‘유리, 보석 가게’
인하대학교 국어교육과는 박덕유 교수는 이 점을 천착하여 엄밀한 문헌 연구와 사료를 통해 ‘쌍화’가 ‘만두’가 아님을 증명한다.(박덕유, ‘<쌍화점>의 운율 및 통사구조 연구’, <어문연구>(통권 110호 2001년 제29권 2호) 박덕유 교수는 중한사전(1989)에서 ‘霜花[솽화, shuanghua]’에 대해 "① 성에, ② 서리 모양의 細工(세공)"으로 풀이하고 있음을 지적하며, 고려가요 <쌍화점>에서의 ‘쌍화’는 만두가 아니라 ‘세공품’이고, 따라서 ‘쌍화점’은 ‘세공품 가게’임을 밝혀냈다. 자연스럽게 아라비아인인 ‘회회아비’는 세공품 가게 주인이 된다는 것이다.
‘쌍화’를 세공품으로, ‘쌍화점’을 세공품 가게로, ‘회회아비’를 세공품을 파는 아라비아인으로 해석해 보면, 보다 고려가요 <쌍화점>에 대해 해석이 자연스러워 진다. 박덕유 교수는 "회회인들이 광대를 두고 만두를 팔았다기 보다는 당시 부녀자들을 상대로 악세서리의 일종인 물건을 팔았다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고 주장한다. ‘쌍화’가 세공품이란 증거는 다양하다. 『삼국사기』를 보면 신라시대에 회회인과 교역을 시작했음을 알 수 있고, 이때의 교역 상품은 로마형 유리기구였음을 알 수 있다. 신라고분에서도 "서역계 상인들에 의해 전래"된 각종 유리기구들이 출토되었으며, "중국에서는 사치품 중의 하나로 여자들의 빗장식으로 사용"되는 등 다양하게 세공품들이 이용되었음을 여러 사료에서 찾아볼 수 있다. 고려시대 <태종실록>에는 "회회인이 수정으로 다는 구슬을 만들어 드리니 왕이 기뻐하였다."는 기록도 보인다. 이 당시 "무슬림들은 이러한 뛰어난 보석 세공 기술을 바탕으로 왕과 왕실에 가공된 각종 보석을 진상하고 상당한 수준의 사회, 경제적 입지를 마련"했다고 한다. 이렇게 볼 때, "광대를 두고 서역인들의 세공품을 판매한 ‘쌍화점’은 분명 고려 여인들의 관심이 많았음에 틀림" 없을 것이다.
학계, 새로운 연구 결과에 대한 수정 반영 필요
박덕유 교수의 이러한 주장은 명확한 근거와 당대의 역사, 문화, 사회, 경제적 배경과도 어울리며, 글 자체의 맥락과 논리에도 자연스럽게 어울린다. 이 주장이 2001년에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학계에서는 기존의 <쌍화점> 해석에 대해 수정하고 있는 것 같지 않다. 우리 학계의 이런 게으르고 나태한 점은 명확히 비판받아야 할 점이고, 모처럼 일반 대중의 관심이 모여졌을 때 그들에게 보다 정확하고 확실한 설명을 제공할 수 있도록 학계의 반성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이러한 여러 점들을 고려할 때, ‘쌍화’는 ‘만두’가 아니고, ‘쌍화점’은 ‘만두 가게’가 아니며, ‘회회아비’는 ‘만두 가게’ 주인이 아님을 알 수 있다. ‘회회아비’는 아라비아인이 분명하며, 이들은 각종 유리, 보석 등을 가공하여 판매하는 상인으로 고려에 들어와 ‘쌍화’, 곧 세공품을 파는 세공품 가게를 열었던 것이다. 따라서 ‘쌍화점’은 세공품 가게, 혹은 ‘유리, 보석 가게’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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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 합니다.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