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의 섬 제주 비양 도를 가다
조 성 국
2015년 4월15일 아침 7시 20분, 김포공항 1층 만남의 광장에서 한국문협 서울시 역대 지부장 10명이 김정오 서울시역대지부장협의회 회장의 인솔로 제주, 비양도로 역사탐방 및 시 낭송을 하기 위해 아침 8시 45분 jin air L,J 0307호 항공편으로 문학기행을 갔었다.
한 20여년 만에 찾아가는 제주도, 강산이 두 번이나 바뀐 세월을 안고 찾아 가니 사뭇 들 뜬 기분이라. 새로운 문명의 바람으로 제주도가 많이 바뀌었다는 소문을 새기며 우렁찬 굉음을 뒤로하고 하늘을 오르는 비행기는 꽃구름 밭을 골 지우며 천리 길을 단숨에 날아갔다.
수평선이 맞닿은 곳을 지나니 이내 제주공항이었다. 안내 방송을 따라 내리니 보고파 그리던 제주 공항은 어디가고 마치 성형수술을 받은 듯 모두가 첨단기기로 일신해져 새로운 모습이었다.
반겨주는 이 없는 공항을 빠져 나와 랜드 카 사무실들이 군집해 있는 활등같이 휜 사무실 군을 지나니 서울시 중구문협 김화인 명예지부장이 랜드 카를 몰고 나와 어서 오르란다.
우리는 해안도로를 돌아 애월 항을 지나 곽지리 까지 또 하귀리에서 한림항 까지 해안도로를 따라 돌아 나왔다. 어서 오라 반기는 물길 넘어 돛단배와 갈매기가 바다를 들고 나는 숨바꼭질을 하고 있다. 있는 것이 없는 것이 존재와 부재를 가늠할 수 없는 물길 넘어 우리네 한 목숨을 저 물길에 맡겨보는 날이었다.
비양도로 11시 30분에 출발 한다는 배를 기다리기 30분 넘어 여객터미널의 안내 방송에 따라 배에 오른다. 짙푸른 물결이 넘실대는 쪽빛 바다. 산 그리매가 가는 길을 안내하고 갈매기 꾸르륵 대는 청정 십리 길을 안전수칙 강의를 들으며 15분 만에 가고파 그려 찾던 비양도 선착장에 닿으니 우리를 기다리던 마포구 고 지부장이 가슴으로 우리를 맞는다?
그리 반가울 수가 없다, 한 십년은 떨어진 형제를 만나는 기분이었다. 모두는 허그 로 인사를 나누고 그를 따라가니 두 바다를 건너 이곳에 오셨으니 이곳 특식 보말 죽으로 점심을 대접하겠단다.
이곳에서 가장 유명한 보말 죽을 한번 드시면 절대 후회 없을 것이라고 해 모두는 보말 죽을 들기로 하였다.
보말 죽은 듣던 말 그대로 천하 진미였다. 육지의 녹두죽 비슷한데 죽 안에 옹심이 같은 보말이 들어있지 아니한가? 꼬들꼬들 한 것이 고소하고 감칠맛이 일품이다. 모두는 좋아요 좋아 하며 만면에 웃음을 머금은 채 점심을 마쳤다.
마포 명예지부장이 자기 집으로 우리를 안내하여 따라 들어가니 현대문명을 외면한 갯바람 냄새가 풍기는 포구 곁 기와집이다. 따듯한 방을 안내하며 편히 쉬어 보란다. 모두는 가지고 온 짐을 풀고 이내 비양 도를 한 바퀴 돌아보려고 나섰다.
고 마포명예지부장이 비양도의 역사를 들려준다. 비양 도는 천여 년 전 고려 목종5년에 제주 북서쪽 바다 가운데서 불끈 섬이 솟아올라 생긴 것이 바로 비양 섬이라고 일러준다. 산의 높이는 120미터 솟아오를 당시 허연 물안개가 둘러싸고 있었다고 일러주며 산에는 큰 구멍이 네 개가 있다고 일러주었다
섬 둘레는 3.5km, 널찍한 펄랑 호수가 하나 지방문화재로 등재된 돌무더기 한 곳과 (아기 업은 바위) 한 점. 몇 천 년 전 마그마가 터져 생겨난 섬이다. 흙을 태운 곳은 흙이 벌겋게 엉겨 돌이 되고 벌건 불길이 터져 나온 곳은 바위가 되어 꺼먼 바위에 구멍이 숭숭 나 있지 아니한가?
이렇듯 없는 것을 있게 만드시는 절대자 앞에서 있던 것도 없게 하시는 절대자가 새삼 두렵기만 했다. 生死存滅의 모든 것은 절대자의 섭리 안에 있는 것을... 오늘 하루 붙여 주심도 절대자의 은혜 안에 있는 것임을 또 내가 내 것 아닌 것임을 깨
닫는 날이었다.
저 멀리 점 하나가 움직인다 해녀의 숨비소리가 들린다. 태왁 가득 넘쳐나는 호오이 숨비소리. 물길 만리 누벼대는 숨찬 해녀의 시름 젖은 메들리 넘어 가뭇한 점이 살아서 손 저으며 호오이 호오이 날씬힌 비양해녀가 살아 있음에 내 지르는 歎聲(탄성)이다.
잊을 수 없는 것은 순환도로가에 기형으로 생긴 경석과 정원 석은 정말 일품이라, 그곳에 가야만 볼 수 있는 진귀한 돌들이었다. 정자가 있는 펄랑 호수 가에서 E,T 木(목)을 하나 주워가지고 오며 비양도만 자생한다는 비양나무와 섬오갈피 노랑무궁화를 보며 집으로 돌아와 편안 한 밤을 엮는 별들을 헤어보려 포구로 나갔다.
하늘에 총총한 별을 바라보다 바다 건너 제주 한라를 바라보니 어미 한라가 은하수를 끌어내려 치마폭에 두르고 앉아 있지 아니한가? 치마 끝마다 꼬리 불을 달고 밤새 무엇에 미쳐 곱사춤을 추고 있다.
갯바람을 목에 걸고 비양산 오름을 올라 보니 아득한 은하수를 끌어내려 두룬 제주도, 저문 날 샨데리야 꽃바람의 환희와 비탄의 젖은 웃음소리가 너울 속에 들여 나고 있었다.
정말 문명의 꽃바람을 두룬 제주도였다.
저녁식사를 마친 다음 종로 홍 지부장은 비양초교 전학생을 불러 놓고 동화구연을 했다 참석한 모두는 고맙고 감사하다며 학부형과 학생 모두가 허리 굽혀 인사하지 않는가? 바라보는 우리의 마음도 든든하고 흐뭇했다.
이튿날 아침 6시 기상과 함께 모두는 비양산봉을 오르기 시작했다 늦잠을 자던 나는 좀 늦게 일어나 뒤 따라 가느라 무척 힘이 들었다. 아무도 없이 홀로 가야 하는 비양산 오름 숫 길을 찾아가느라 애를 먹었다..
얼마를 오르다 보니 정상 500m. 표지가 걸린 계단 길을 홀로 기어오르다 첫 고개를 맞는다. 산정을 바라보니 동료들이 건너 山頂(산정)에 서 있지 아니한가? 그들을 보고 야호 소리를 질러댔다. 어서 오라고 손짓을 해준다. 산 메아리가 나를 오르게 하는데 영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허위단심 오르니 김 지부장과 종로 홍지부장 광진 박지부장이 함께 내려와 등을 밀어주어 산 頂上(정상) 등대까지 오를 수 있었다. 비양도 오름길 300 넘는 목 계단은 아직 그대 청춘인가 시험하는 檢證段 억새밭 낮 꿩 소리가 거친 숨결을 다스려주고 있었다.
천년의 비원을 터트린 화구가 넷, 안으로만 삭이고 삭이다가 끝내 벌건 핏덩이를 토하구야 말았구나. 굳어난 돌덩이 마다 눈을 뜬 채 한을 물고 있다.
물길 만리 탁 트인 제주를 바라보며 큰 한숨을 내 쉰다. 한라산이 눈 끝에, 한림 항, 수월 산이 발아래 엎디어 있지 아니한가? 모두들 시낭송을 한수씩 하였다고 해 좁은 가슴 활짝 펴고 큰 한숨을 내쉬고야 내려오는 길 목 쉼터에서 <백목련 앞에서>란 시 한수를 낭송하고 내려 올수 있었다.
아침을 제주명산 옥돔으로 마친 다음 부랴부랴 짐을 꾸려 부두로 나와 배를 타고 한림 항으로 와 세워두었던 차를 타고 고산 수월 봉을 찾아 나섰다. 한참을 달려 찾아간 곳은 고산 기상대, 기상대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차귀도 와 당산봉은 갯바람을 두루고 의젓하게 버텨서 있고, 짙푸른 남해 바다 멀리 잔물결 일렁이는 수평선은 그저 어머니 넓은 품이었다.
찾아온 손들이 남기고 싶은 글 한마디씩 적어두는 게시판에다 자기의 느낌을 한마디씩 써 놓고 이내 우리는 수월 봉을 찾았다.
수월봉은 화산이 터질 당시 얼마나 화산활동이 심했는지를 가늠해 볼 수 있는 곳이었다. 화산재가 굳어 지층을 띠 두룬 곳으로 알려진 곳이기도 하다. 화산암괴와 탄닝구조물이 정연하게 돌아가 무늬를 그려 놓은 곳을 그냥 서서 바라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한 가닥 뚝 잘라 시집갈 딸아이 옷 한 벌 선 듯 지어주고 싶었다.
특히 이곳은 어머니의 병을 고치기 위해 화산암괴 사이 피어난 약초를 캐려다가 떨어져 죽은 수월 누나를 바라보던 동생 녹고 가 흘린 눈물이 샘이 되어 흘러 내려 그 물 이름을 녹고의 눈물샘 이라고 알려져 효심이 뜨겁게 담겨있는 곳으로 탐방객들이 줄을 잇는 곳이기도 하였다.
다음 찾아간 곳은 성 박물관이었다.
인간의 性(성)을 어떤 눈으로 바라보았는가? 찾아보기 위해 들어갔다. 돌로 나무로 하늘을 뚫는 형상을 나타낸 고추, 유구한 역사를 이어가는 명물이었다. 문구멍으로 바라보는 情事(정사) 장면은 적나라한 모습이었다. 다만 성을 로맨스와 에로스로 즐기기 보다는 인류의 생존의 맥을 잇게 하는 것이라고는 간략하게 나타냈을 뿐 힘으로 세상을 지배하는 원리를 밝혀놓지 못한 것을 흠으로 들 수 있었다.
다음으로 찾은 곳은 산방산. 가는 길목에 노랗게 활짝 핀 유채꽃 밭에서 모든 회원이 내려 사진 한 컷을 찍고 이내 우리는 산방산으로 향해 달려갔다.
오르고 내리막길을 변했어도 천년 두고 변하지 않는 것은 산이었다. 한라산 백록담에 담긴 전설 한 토막, 백록담이 생기기 전 정상에서 山頂(산정)을 뽑아 던진 것이 산방산이라며 산방산을 다시 갔다 꽂아 놓으면 백록담 자리를 꼭 맞게 채울 것이라고 해 다시 한 번 산을 바라보니 그럴듯해 보였다.
이곳을 찾은 관광객의 95프로는 중국인으로 어찌 보면 중국을 간 기분이 들었다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천지연 폭포였다
남해바다 문섬, 새섬, 범섬,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전망대가 명품이었다. 활을 세워놓은 듯한 h형 다리는 어떤 기법인지 몰라도 기상천외의 발상을 표현해 놓은 다리였다 외국인이나 국내인 이나 모두 이곳을 찾아 바다 위 뜬 섬을 조망 하고 돌아간다.
다음 찾은 곳은 정방폭포, 언제 보아도 시원하고 거침없이 내리 쏘는 물줄기는 끊임이 없었다. 아흔 아홉 발 흰 비단이 저 하늘 은하수 같이 걸려 있는 곳. 예다 저 하늘 은하수를 기우려 꽂은 것만 같았고 쉼 없이 찌어대는 물 공이는 쉴 틈이 없었다.
그 밑을 한번 들어가 보라, 시원하다 못해 얼어 죽다 미쳐 죽어도 한이 없을 곳이었다. 해거름 다음으로 찾은 곳은 성산 일출봉, 지는 해 노을을 댕겨 잡고 성산 일출봉 바로 밑에 모두는 다가선다. 오를 시간을 재 본다. 돌아갈 시간이 없다. 아쉬움을 뒤로 밀어둔 채 성산일출봉이란 표석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이내 우리는 제주공항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차창에 기대어 시 한수를 지어본다
濟州의 비양도
조국남단 지킴이로 명을 받은 한라였어.
초병으로 비양 도를 발치 끝 세워두고
아득한 물길 만리를
네게 맡겨 버렸구나.
해녀의 숨비소리 태왁 가득 넘쳐나고
시름 젖은 메들리를 이고 낚는 푸른 꿈
손 젓는 가뭇한 점하나
별도 따고 달도 따는
한 시간을 달린 끝에 제주 공항에 도착 밤 10시 10분 서울 행 비행기에 피곤한 몸을 누일 수 있었다
첫댓글 조성국 선생님은 시와 수필로 정식 등단하신 분이다. 젊은이 못지 않는 필력이 대단하시다. 우리와 함께 여행하면서 인생의 선배님 답게 많은 가르침도 주셨다. 만약 조성국 선생님이 문단에 안나오셨다면 한국 문단에 큰 손실을 가져 올뻔 했다. 함께 여행했던 곳이라 글을 읽는 데 공감이 가서 너무 좋았다는 사실을 말씀드린다.
지난 28일(화) 김정오교수님의 소개로 뵈온 정태광입니다. 한국문단의 거목이신 선생님을 만남은 저에게 큰 영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