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 이름 찾아 떠나는 맛기행 <19>
육개장 · 따로국밥
삼복에 보양음식을 먹고 시원한 물가를 찾아가 더위를 이기는 일을 ‘복달임’이라 합니다. 복달임이란 말의 어원은 복날에 개를 매달아 잡아먹었던 일에서 유래된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에서 말하는 보양음식은 바로 ‘개장국’이며, 개장[狗醬]은 바로 개고깃국입니다. 경상도 사람들은 유달리 개장을 좋아했습니다. 개고기를 먹지 못하는 경상도 사람들을 위해 소고기로 개장 끓이듯 조리한 것이 육개장(육개탕)입니다. 육개장은 개장에 고기 육(肉 · 소고기)자가 붙어 생긴 말입니다. 개고기 대신 닭을 사용한 것은 닭개장이라 불렀습니다.
옛날 궁중에서도 복날이 되면 고춧가루를 참기름에 개어 색깔을 빨갛게 한 매운 육개장을 먹었습니다. 1933년 미국에서 발간된 ‘Orintal Culinary Art(동양요리법)’에는 육개장이 ‘Summer Soup(여름 수프)’라고 소개돼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기록으로 볼 때 육개장은 19세기 후반에 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육개장에 대한 기록은 1896년에 쓰여진 ‘규곤요람’에 처음 나옵니다. “고기를 썰어서 장을 풀어 물을 많이 붓고 끓이되 썰어 넣은 고깃점이 푹 익어 풀리도록 끓인다. 잎을 썰지 않은 파를 그대로 넣고 기름 치고 후춧가루를 넣는다.”
알맞게 뜯은 삶은 쇠고기에 파 · 고춧가루를 넣고 갖은 양념을 하여 얼큰하게 끓인 육개장을 ‘대구탕(代拘湯)’이라고도 불렀습니다. ‘개를 대신한 소고깃국’이란 뜻입니다. 또 ‘대구탕(大邱湯)’이라고도 했습니다. 대구에서 특히 즐겨 먹었던 탕반(湯飯)이라는 뜻입니다. 육개장이 대구에서부터 시작되었다는 근거는 여럿입니다. ‘대구탕반은 본명이 육개장이다. 남도에서 즐겨 먹던 개장과 개고기를 먹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쇠고기로 개장처럼 만든 것인데, 시방은 큰 발전을 하여 본토인 대구에서 서울까지 진출하였다.’(1929년 12월 1일자 잡지 ‘별건곤’ 기사 ‘대구의 자랑 대구탕반’)
‘대구식 육개장이 서울로 올라와 대구탕이 되었다. 대구탕은 서울식 육개장처럼 고기를 잘게 찢지 않고 고기 덩어리를 그대로 푹 삶아 끓인다.’(음식사학자 이성우 · ‘한국요리문화사’)고 한 것처럼 대구 육개장의 특징은 고기를 절대 찢지 않고 네모나게 칼로 썰어 넣는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붉고 걸쭉한 고추기름을 넣어 맵게 하며, 엄청나게 많은 양의 대파를 넣어 달큰한 감칠맛을 낸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구한말에만 해도 대구 육개장은 지금처럼 붉지 않았습니다. 고춧가루가 거의 없는 우거지 해장국 스타일이었습니다.
대구의 육개장집은 조선시대 경상감영 정문격인 영남제일관(옛 대남한의원 네거리) 앞에 하나둘 들어서면서 시작되었다고 하는데, 1960년대 이전만 해도 고춧가루가 거의 없는 우거지 해장국 스타일이었습니다. 일제 강점기에 고급 도정기가 도입되기 전에는 고춧가루를 디딜방아나 돌확에 빻았기 때문에 지금보다 입자가 굵었고, 제대로 된 고추기름도 못 뺐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옛날의 해장국집들 메뉴는 장국밥, 설렁탕과 같은 탕반 위주였고, 모두 구수하고 뽀얗고 순한 국물이 바탕이었습니다. 알싸하고 매운 맛이 혀끝에 찰싹 달라붙는 오늘날의 육개장은 1960년대 이후의 일입니다.
대구 육개장은 ‘육개장’ ‘따로국밥’ ‘선지해장국’ 등 크게 세 갈래로 발전했습니다. 6.25전쟁 후 타 지역 사람들이 유입되면서 새로운 육개장이 만들어집니다. 양지·사태 등 소고기 대신 소뼈 그러니까 사골 육수에 대파와 무, 마늘, 고춧가루, 양념장, 선지가 들어갑니다, 다른 지역의 장터국밥(사골·선지)과 대구 육개장(대파·무)이 섞인 스타일로, 현재 따로국밥이라 불리는 것들입니다. 보통 사골과 등뼈를 넣고 푹 고아낸 국물에 토란 줄기와 시래기, 그리고 무와 파를 넣고 끓인 해장국을 따로국밥이라고 합니다. ‘따로국밥’은 국에다 미리 밥을 말아서 내오는 보통 국밥과 달리 ‘밥 따로, 국 따로’ 나온다고 해서 생긴 이름입니다.
그런데 따로국밥이라는 이름까지 생겨난 것을 보면 밥 따로 국 따로 먹는 것이 상당히 독특했기 때문인 것 같은데, 따로국밥은 우리나라 양반 문화와 식사 습관, 그리고 식사 예절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음식입니다. 양반들은 국에다 밥을 통째로 말아서 후루룩거리며 먹는 장국밥을 ‘짐승이나 먹는 음식’이라며, 상스럽다고 여겼습니다. 장터에서도 밥과 국이 따로따로 나오는 따로국밥이 등장한 것은 한국전쟁 때 대구에서였다고 전해집니다. 당시 대구는 전국에서 피난 온 사람들이 모두 모여들어 북적대던 도시였습니다. 피난민들 중에 교양 있는 양반집 출신과 여자들은 국에다 밥을 말아 함께 퍼먹는 것을 상스럽다고 여겨 국 따로, 밥 따로 담아달라고 주문해서 먹은 것이 따로국밥의 유래가 되었다 합니다.(참고자료: 이춘호 ‘대구 육개장’ 윤덕노 ‘음식으로 읽는 한국 생활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