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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태영(泰永). 함경남도 함주 출생. 중국 베이징[北京]대학 농학원을 졸업한 후 함남 ·경기 도청 등에 근무하다가 나병의 재발로 사직하고 고향에서 치료하다가 1948년에 월남, 1949년 제1시집 《한하운 시초(詩抄)》를 간행하여 나병시인으로서 화제를 낳았다. 이어 제2시집 《보리피리》를 간행하고, 1956년 《한하운시전집》을 출간하였다. 1958년 자서전 《나의 슬픈 반생기》, 1960년 자작시 해설집 《황토(黃土) 길》을 냈다. 자신의 천형(天刑)의 병고를 구슬프게 읊은 그의 시는 애조 띤 가락으로 하여 많은 사람의 심금을 울렸다. |
이건 http://munsu.new21.org/munin/한하운.htm 에서 퍼온 내용.
한하운(韓何雲1919.3.20∼1975.3.2)
시인. 본명 태영(泰英). 함남 함주 출생. 중국 1943년 베이징[北京]대학 농학원을 졸업한 후 함남·경기 도청 등에 근무하다가 나병의 재발로 사직하고 고향에서 치료하다가 1948년에 월남, 49년 [신천지]에 <전라도> 등 12편의 시를 발표하고, 이어 제1시집 <한하운 시초(詩抄)>를 간행하여 나병시인으로서 화제를 낳았다. 53년에는 그의 대표시로 일컬어지는 <보리피리>를 [서울 신문]에 발표하고, 이어 제2시집 <보리피리55>를 간행하고, 56년 <한하운시전집>을 출간하였다. 57년 자서전 <나의 슬픈 반생기>, 60년 자작시 해설집 <황토(黃土) 길>을 냈다.
자신의 천형(天刑)의 병고를 구슬프게 읊은 그의 시는 애조 띤 가락으로 하여 많은 사람의 심금을 울렸다.
ㆍ대표시 : <보리피리53>
ㆍ시집 : <한하운 시초49> <보리피리55> <한하운 시전집56> <가도가도 황톳길89>
<한하운 연보>
▲1919 : 함남 함주군(咸州郡) 동촌면(東村面) 쌍봉리(雙峰里)에서 한종규(韓鍾奎)의 2남 3녀 중 장남으로 출생. 가계(家系)는 3대를 과거에 급제한 선비 집안으로 지방 지주였음.
▲1925 : 함흥으로 이사
▲1926 : 함흥 제일공립보통학교 입학. 내내 우등생, 음악과 미술에 뛰어났음.
▲1931 : 봄에 몸이 무겁고 붓기 시작함(나병 발병의 시초)
▲1932 : 보통학교 졸업. 이리 농림학교(裡里農林學校) 입학, 수의축산과(獸醫畜産科) 전공.
▲1934 : 시와 소설을 습작. 순정의 여인(당시 여학생) R을 사귐.
▲1936 : 봄, 경성대부속병원(京城大附屬病-현, 서울대 부속병원)서 나병 확정 진단.
▲1937 : 이리 농림학교 졸업. 일본 동경 성혜(成蹊)고등학교 입학.
▲1939 : 동경 성혜고등학교 2년 수료, 나병이 악화되어 귀국 요양. 10월, 중국 북경으로 감.
▲1941 : 중국 북경대학 농학원 축목학계(畜牧學系) 입학.
▲1943 : 동 농학원 졸업, 귀국.
▲1944 : 함경 남도 도청 축산과 근무. 5월, 도내 장진군으로 의원(依願) 전근. 가을에 경기도 용인군으로 전근.
▲1945 : ㆍ봄, 나병 악화. 관직을 사직, 함흥 중앙동으로 귀가, R의 도움을 받아가며 치료. 이 때부터 본명인 '태영(泰永)'을 버리고 '하운(何雲)'을 씀. 문학 공부에 전념. ㆍ8ㆍ15 광복 후 재산을 몰수당하고, 노점 책장수ㆍ[건국서사](建國書肆) 운영.
▲1946 : 3월 13일, 함흥 학생데모사건에 혐의를 받고 체포되었다 풀려남. 모친 사망.
▲1949 : ㆍ[신천지] 4월호에 <나시인 한하운 시초>(癩詩人 韓何雲詩抄)라 하여 시 <전라도 길 -소록도로 가는 길에>외 12편이 실리게 됨. ㆍ첫시집 <한하운 시초>(정음사) 간행(시 26편 수록) ㆍ8월, 경기도 수원시 세류동 정착촌인 하천 부락(河川部落)에 입주.
▲1950 : 3월, 경기도 부평 소재 나환자 정착촌인「성계원」으로 이주, 자치회장에 선임됨.
▲1952 : 5월, 부평에 [신명보육원](新明保育院) 창설, 원장이 됨.
▲1953 : ㆍ경기도 용인에 [동진원](東震園) 창설. ㆍ6월, 재판 <한하운 시초>에 5편 추가 간행. 8월 이후 4개월간 신문과 국회에서 한하운의 시집과 관련, 그의 정체에 대해 논란이 벌어짐.ㆍ시 <보리피리>를 [서울 신문] 10월 15일자에 발표.
▲1954 : [대한한센총연맹] 결성, 위원장이 됨.
▲1955 : ㆍ3월 제2시집 <보리피리>(인간사) 간행.ㆍ시 <비창(悲愴)>을 [평화 신문] 4월 5일자에 발표.ㆍ자서전 <나의 슬픈 반생기>를 [희망] 5월∼57년 1월호에 걸쳐 연재.
▲1956 : ㆍ6월, <한하운시전집>(인간사) 간행 - 시 48편 수록. 수필 <나의 시작 수업(詩作修業)>을 [현대문학] 12월∼다음해 1월호에 걸쳐 발표.ㆍ시 <은진미륵불> 발표 - [자유문학] 12월호
▲1957 : 10월 자서전 <나의 슬픈 반생기> 간행(인간사)
▲1958 : ㆍ3월 [청운보육원] 설립, 원장. ㆍ수필 <큰 코 다친다>(신문예 7월호), <인간에 대한 반항정신으로>(신문예 9월호), <어느날의 단상(斷想)>(신문예 12월호), <사진에 대한 불연속적 관견(觀見)>(사진 문화 12호) 발표. ㆍ시 <인간 추방>(사진문화 12호) 발표.
▲1959 : ㆍ4월, <한하운 자작 시 해설집>(인간사) 간행. ㆍ시 <어느 velt는 살고 있다>(서울대 수의대학보 2집)ㆍ<벽화에 붙이는 글>(이리농림학교 새싹 6호) 발표. 수필 <영원한 민족의 서정시-소월의 시를 말한다>(신문예 8원호) 발표. ㆍ나병이 음성으로 진단받아 사회 복귀, [한미제역회사] 설립, 회장 취임.
▲1960 : ㆍ7월 서울 명동에 출판사 [무화문화사](無何文化社) 설립. ㆍ8월 자작시 해설집 <황토길>(신흥출판사) 간행. ㆍ수필 <첫사랑의 요오델가(歌)>(여원 3월호)ㆍ<방랑과 향수>(새벽 10월호) 발표.
▲1963 : 시 <세월이여>ㆍ<오마도>(이상 새빛), 수필 <애염전(愛染箋)>(야상) 발표.
▲1964 : 시 <포인세치아 꽃>ㆍ<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 수필 <분뇨소> 발표
▲1965 : 수필 <물전쟁>(재무120호) 발표
▲1966 : 시 <회심(回心)>(인천신문)ㆍ<금유월(今六月)>(일요신문) 발표
▲1968 : 시 <올봄에도 꽃은 피는데>(새길 151호)ㆍ<장승>(사상계 5월호), 수필 <나의 소하(銷夏)>(새교실) 발표. 4월 간경화증 발병.
▲1969 : 시 <귀향>(새길 159호) 발표.
▲1970 : 시 <춘일지지>ㆍ<낙엽>ㆍ<춘와>ㆍ<파고다공원>ㆍ<포인세치아 꽃>(이상 시인), 시 <귀로>(교정 129호)ㆍ<어떤 인생>(새길 168호)ㆍ<자유당>(한국문학전집) 발표.
▲1973 : 전남 고흥군 도양면 소록도에 시비(詩碑) 건립.
▲1975 : 3월 2일 인천시 십정동산 39번지에서 간경화증으로 사망.
유택은 김포시 풍무동 김포 공원묘지 183호
▲1977 : 유고시 <백목란 꽃>외 19편 [한국문학] 6월호에 발표됨.
▲1989 : 시집 <가도가도 황톳길>을「지문사」에서 간행
첫댓글 한하운 시인께서 '사는데 있어 詩란게 밥도 죽도 되지 않는 물보다도 도움이 못되지만 정서적인 면에서는 제2의 생명이다.' 라고 하시며 시로 살아가는 길이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는 한줄기 빛과 같다고 하셨다 합니다.
김포시문인협회 모든 선생님들 뿐 아니라 문학을 하는 모든 이들에게 환한 빛이 깃들기를 기원합니다~~^^
연보 잘 읽었습니다. 그 분의 문학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됩니다.
이렇게 한하운 시인의 연보 정리해 오려주셔 감사합니다. 오늘에서야 보게 되어 더 감동을 느낍니다. 후대 사람들 한하운 사랑하는 사람들 , 존경하는 사람들 많은 도움 줄 것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