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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소나무는 바위틈에서 싹 튼 태생적인 한계와 세찬 비바람과 덩굴풀의 방해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생존을 선택했다. 얼핏 보면 위태로워 보이지만 소나무는 계속 살아 남을 것이다. 결코 죽지 않을 것이다. 포기해야 될 이유가 수백가지가 된다해도 살아야한다는 내면의 목소리가 더 강하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조선 초기의 작품 중에서 남송(南宋)의 마하파(馬夏派)화풍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마하파(馬夏派)화풍’은 남송의 화원이었던 마원(馬遠)과 하규(夏珪)에 의해 형성된 화파로 그들의 이름 첫 글자를 따서 ‘마하파’라 부른다. 북송의 산수화는 화북지역의 스산하고 거대한 자연을 대상으로 한 대관산수(大觀山水)가 중심이었다. 이성(李成)과 곽희(郭熙)가 중심이 된 ‘이곽파화풍’이 그것이다. 조선 초기 안견이 그린 불후의 명작 <몽유도원도>는 이곽파화풍이 바탕이 되었다.
반면 강남으로 수도를 옮긴 남송의 산수화는 경물이 한쪽으로 치우치는 변각구도에 인물을 부각시켜서 강조하는 근경중심의 산수화가 발달되었다. 이것이 마하파화풍이다. 강이 많다보니 안개가 자주 출몰하게 되고 안개속에서는 먼 산보다 가까이 있는 경물만이 보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환경의 영향을 받는 것처럼 그림도 자연의 영향을 벗어나지 못한다.
이렇게 조선초기에는 이곽파화풍, 마하파화풍, 절파화풍 등 중국의 다양한 화풍들이 전래되어 조선적인 화풍 형성의 바탕에 도움이 되었다. 중국에서는 다양한 화풍들이 시간차를 두고 형성되었던 반면 조선에 수입될 때는 동시다발적으로 상륙했다. 그 중에서 이상좌가 선택한 화풍이 마하파화풍이다. 여러 화풍 중에서 이상좌가 굳이 마하파화풍을 선택한 것은 그의 감성과 맞았기 때문일 것이다.
<송하보월도>는 손상이 심한 작품이지만 오른쪽 하단을 보면, 시동을 데리고 온 선비가 절벽 위에 위태롭게 뻗어있는 소나무를 감상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런 모티브는 동양화에서, 중심이 되는 경물을 강조하기 위해 흔히 써 먹는 기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좌의 그림에서 선비가 유독 눈에 띄는 것은 그가 살아 온 생애가 간단치 않기 때문이다. 이상좌가 선비를 그릴 때 누구를 생각하며 그렸을까? 그의 재능을 알아 본 주인일까. 아니면 소나무의 나이테처럼 굴곡이 심한 자신의 모습일까.
그는 1545년 중종이 승하한 후 임금의 초상인 ‘어용(御容)’을 그렸다. 1546년에는 공신들의 초상화를 그린 공훈으로 원종공신에 참예하게 된다. 원종공신이란 국가나 왕실에 공훈이 있는 공신과 그 수종자에게 주는 칭호인데 그들 대부분이 뼈대있는 가문의 정공신(正功臣)이나 그 집안 사람들이었던 것을 생각할 때 이상좌에게 취해진 조치는 매우 이례적이고 파격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의 전칭작이 산수화임에도 불구하고 그에 관한 기록은 그가 인물화의 대가였음을 말해준다. 1543년 예조에서 중국 한대(漢代)의 『열녀전』을 국역할 때 이상좌가 그림을 모방하여 그렸다는 기록이나, 거문고를 잘 타는 기생 상림춘이 자신을 사랑한 참판 신종호의 시를 그림으로 부탁했다는 기록 등이 그것이다. 신종호의 시의 내용 또한 ‘수양버들 휘늘어지는 늦은 봄에 옥 같은 사람’이 주인공이다. 현재 남아 있는 그림으로 당시 그가 활약했던 시대의 상황을 유추해보는 것은 한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오로지 그림 재주 하나로 이름 없는 종에서 훈장을 받는 화원이 된 이상좌의 영광은 그의 아들과 손자로 이어진다. 두 아들 이흥효와 이숭효도 그림을 잘 그렸고, 손자 이정은 다섯 살 때에 스스로 그림을 그릴 줄 알았고 열 살 때는 벌써 그림으로 ‘대성’하였다고 전해질 정도였다. 이로써 이상좌 집안은 그림으로 대를 잇는 화원집안이 되었다.
노비출신으로 성공한 사람 중 세종시대에 장영실이라는 과학자가 있었다면, 중종시대에는 이상좌라는 화가가 있다. 지금은 두 사람 모두 저세상 사람이 되었지만 한 사람은 해시계를 통해, 다른 한 사람은 그림을 통해 우리에게 얘기한다.
지금 힘든가. 그래도 힘을 내게. 포기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웃으면서 옛날 얘기할 때가 올걸세. 그래도 그대는 말 한 필 값보다는 비싸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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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흥효, 설경산수, 16세기후반 |
이정, 한강조주도, 16세기 후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