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이 소속 교회 목사와 무릎을 맞대고 앉아 십일조를 약속하면서 하나님의 축복을 구했습니다.
첫번째 달의 그의 수입은 백만 원이었고, 그래서 십일조 금액은 십만 원이었습니다.
세월이 지나면서 그가 하는 사업은 점점 번창했고 십일조는 월 오백만 원 정도에 이르렀습니다.
점점 불어가는 액수에 놀란 그는 목사를 찾아가 이 문제를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고 물었습니다. “처음에 약속을 할 때는 십만 원만 바치면 되었는데, 이제는 오백만 원입니다. 그렇게 많은 돈을 바칠 여유는 없습니다.” “정말 문제가 되겠군요.” 목사는 대꾸했습니다.
“지금 즉시 무릎꿇고 앉아서 하나님께 구합시다. 선생의 수입이 줄어들어서 다시 한 달에 십만 원만 바치면 될 수 있게 해달라고 말입니다.” 우리의 욕심은 때로 얻을 것만을 헤아릴 뿐, 잃는 것을 염두에 두지 못하게 합니다.
마치 세상을 얻기 위해 천국을 포기하는 사람들과도 같이 말입니다.
작은 것을 얻기 위해 큰 것은 놓아 버리는 어리석음. 당신의 작은 만족을 위해 하나님의 사업을 그리치고
있지는 않는지…
(시 106:13-15).
시 106:13 저희가 미구에 그 행사를 잊어버리며 그 가르침을 기다리지 아니 하고 시 106:14 광야에서 욕심을 크게 발하며 사막에서 하나님을 시험하였도다 시 106:15 여호와께서 저희의 요구한 것을 주셨을지라도 그 영혼을 파리하게 하셨도다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
십일조 (본문:레27:30,31)
성도가 하나님께 봉헌하는 삶은 헌금으로도 표현되고 있습니다. 그 헌금 가운데 특히 십일조는 하나님의 것을 구별하여 드린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레27:30). 하나님께서 십일조를 당신의 것이라고 말씀하실 때 그 10분의 1은 10전체를 대표한다는 뜻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십일조를 드리게 하신 목적은 그 모든 만물이 하나님의 것임을 인식케 하고 하나님 중심으로 하나님을 공경하고 감사하며 살도록 하시는 데 있습니다. 이에 대해 상고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1. 구약에서의 십일조(민18:23,24)
1) 각 가정의 십일조 십일조는 고대 세계에 있어서 보편적인 관습이었습니다. 애굽, 바벨론, 앗수르 가나안에서도 십일조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이 고대 세계의 십일조는 대개 일종의 세금으로 드려졌습니다. 이에 반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드린 십일조는 종교적 목적의 헌물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소산의 처음 것, 첫 열매, 초태생과 함께 모든 소산의 십일조를 단신의 것으로 규정하고 그것을 당신에게 헌납할 것을 명하셨습니다(레27:30). 이 십일조는 각 가정을 단위로 하나님께 드려졌고, 하나님은 이 십일조를 받아 당신을 기업으로 삼아 섬기는 레위 지파 사람들에게 주었습니다(민18:20). 그들은 땅에서의 기업이 없었기 때문입니다(민18:24).
2) 레위 지파의 십일조 이스라엘 백성들로부터 십일조를 받은 레위 지파는 그 십일조에서 십일조를 떼어 제사장에게 바쳤습니다(민18:25-29). 즉 백성들의 십일조는 레위 지파에게, 레위 지파의 십일조는 제사장에게 바치게 한 것입니다. 레위인들은 백성들을 위하여 성막에서 봉사했고, 하나님은 그들을 제사장에게 선물로 주셨습니다(민18:6). 그들이 제사장에게 십일조를 바친 것은 이러한 종교적 헌신 원리가 적용되고 있음을 나타낸 것입니다.
3) 십일조 헌납의 원리 이스라엘 백성들이 십일조를 헌납하는 생활에는 다음과 같은 원리가 적용되었습니다. 첫째, 십일조는 아래에서 위로 상납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장자였고(출4:22). 레위 지파는 이스라엘의 장자를 대신 했으며(민3:11-13). 아론 자손은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제사장 자손으로 선택되었습니다(출28:1). 장자(첫 새끼, 첫 열매)는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십일조의 상납 원리가 여기서 나왔습니다. 둘째, 십일조는 성소에 갖다 바쳤습니다. 매년 3대 절기인 초실절, 맥추절, 수장절에 성소에 가서 헌납했습니다(신14:23-26;신16:16,17).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임을 나타낸 것입니다. 경배와 순종, 그리고 종속의 원리가 여기에 있습니다.셋째, 그러나 매 3년째의 십일조는 자기들이 살고 있는 성읍에 비축했습니다.(신14:23-26;신16:16,17). 이는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레위인과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십일조가 구제의 목적으로도 사용되었다는 원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넷째, 십일조는 제사장에게 갖다 바쳤고, 제사장은 이를 하나님께 거제로 드렸습니다(민18:24). 이는 십일조가 하나님께 바쳐진 다음에 하나님으로부터 다시 받는다는 뜻을 상징한 것으로 십일조는 하나님의 것이지만, 동시에 제사장과 레위인의 기업인 것을 나타낸 것입니다. 여기서 십일조의 사용 원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십일조 헌납에 있어서의 이러한 원리들은 오늘날 신약교회의 성도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되는 원리라 하겠습니다.
2. 신약에서의 십일조(눅11:42)
1) 십일조에 대한 예수의 태도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의 십일조를 드리되 공의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버리는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아니하여야 할지니라"(눅11:42). 이는 율법에 정해 놓지 않고 품목까지 세밀하게 십일조를 드리고 있는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예수께서 책망하실 때 하신 말씀입니다. 이 말씀 속에서 예수께서는 성도들이 하나님께 십일조를 드리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제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십일조가 율법적 규례이므로 신약 교회에서는 이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하난 그런 생각은 잘못된 것입니다. 예수께서 지키도록 교훈하신 것은 지켜야 마땅한 것이고, 또 구약에서의 십일조의 원리는 오늘날 신약 교회의 성도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2) 십일조에 대한 예수의 교훈 예수께서는 십일조 헌납에 있어서 도식적이고 기계적인 계산보다도 십일조를 헌납하게 하신 하나님의 율법 속에 제시하고 있는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의 정신에 충실할 것을 강조하셨습니다. 이것 없이 십일조를 드리는 것은 외식에 불과한 것입니다(마23:23).
3. 성도와 십일조의 헌납(레27:30,31)
1) 하나님의 것으로서의 십일조 하나님은 모든 소산의 10분의 1은 하나님의 것이라고 하셨습니다(레27:30).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일조는 하나님이 주신 모든 것을 대표합니다.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모든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됩니다. 이는 하나님으로 더불어 살고, 하나님 중심으로 살고, 하나님 제일로 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롬14:8).
2) 전부를 원하시는 하나님 위에서 살펴본 대로 십일조가 하나님의 것이라고 해서 10분의 9는 사람의 것이라는 뜻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십일조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는 전체를 다 원하신다는 뜻으로 이해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서 십일조만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전부를 다 원하시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바치라고 한 것은 아브라함의 모든 것을 바치라고 하신 것이고, 사도들을 부르신 것은 그들의 인생 전부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성도의 생명은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헌납된 것이므로 삶의 전부를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롬12:1;고전6:19,20). 십일조는 이러한 삶을 유지시키고 촉진시키는 하나의 지렛대입니다.
결론 십일조는 구약에서나 신약에서나 하나님이 일관되게 요구하시는 예물입니다. 십일조를 드리면서 우리들 자신 전부를 함께 드려야 합니다. 그렇지 않은 십일조는 무의미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전부를 원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기도 우리에게 만물을 주신 하나님, 그 가운데서 십분의 일을 당신에게 드리게 함으로써 당신이 우리의 전부를 갖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을 잊지 않도록 하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가 드리는 십일조를 통하여 당신의 공의와 사랑이 성취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