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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요물나라 원문보기 글쓴이: 요물
안락암의 안내를 읽어보면
이곳 권금성 안락암은 해발 700m에 위치하고 있으며, 청정법신 비로자나 부처이신 대청봉(大靑峰 1,708M)을 위로 하고, 앞에는 노적봉(露積峰)과 장구히 흐르는 토왕성폭포 (土旺城瀑布)의 물소리는 번뇌망상을 깨끗이 씻어주고, 오묘한 절경은 팔만사천 부처님 말씀이 아닐 수 없으며, 봄이면 피어나는 안개 역시 청정법신 불께 올리는 향 공양이요, 여름이면 소토왕골에서 부 는 시원한 바람은 더위를 잊게 하고, 가을이면 오색 찬란한 단풍 역시 불께 올리는 꽃 공양이요. 겨울 이면 처마끝까지 눈이 쌓여 속세의 오욕과 번뇌의 티끌을 묻어 두니 법계의 진리가 바로 여기에 있지 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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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적봉과 선녀봉,토왕성폭포]
[무학송 舞鶴松]
안락암 아래 수령 800년 된 舞鶴松은 노적봉, 선녀봉, 토왕성폭포의 병풍을 두르고
한쪽으로는 바람에게 내어주고 동쪽으로만 가지를 벋으며 특이한 모양으로 살아가는
춤추는 학의 형상을 닮았다하여 '무학송'이란 소나무가 말 그대로 춤을 춘다.
햇살을 받아 자연과 노래하며 이 좁은 여인의 눈길속에 첩첩이 포개져있는 산들과
큰소나무 가지는 바람에 춤을 추고 있었다.
[같이 온 산친구들은 찍고 찍으며 사진을 담고]
[달마봉을 무대로 담기도 하고]
[신흥사를 무대로 ]
안락암에서 보는 노적봉과 선녀봉은 바로 안락암의 앞산이다. 그 옆에는 토왕성폭포의 얼음속에 물이 흐르는
360M의 크기가 무색할 정도로 작게 보였다.
권금성으로 올랐다. 이곳 권금성은
강원도 속초시의 서쪽 설악산국립공원 내의 외설악에 위치한 석성이다. 험준한 석산(고도:860m)의 정상에 있는 둘레 337m의 성이다. 권금성은 『세종실록지리지』 「양양도호부」에 "옹금산석성(擁金山石城)이 부(府) 북쪽에 있다. 둘레가 1,980보(步)이며, 비가 오면 바위 사이에 물이 솟아 흘러서 샘이 된다."는 기록에서 처음 나타난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양양도호부」 고적조에 "권금성(權金城) 설악산 꼭대기에 있으며 석축이다. 둘레는 1,112척이고 높이는 4척이었는데, 지금은 반쯤 무너졌다. 세상에 전해 오기로는 예전에 권씨와 김씨 두 집이 여기에 피란한 까닭으로 이름하였다 한다. 낙산사 기문에 원나라 군사가 우리 강토에 마구 들어왔는데 이 고을에서는 설악산에다 성을 쌓아서 방어하였다고 한 곳이 이곳인 듯하다."고 기록하고 있어 권금성의 유래를 짐작할 수 있다. 따라서 몽고 침입을 막기 위해 권씨와 김씨 두 장수가 하룻밤에 쌓았다고 하여 권금성이라는 지명이 생겼다는 전설과도 관련이 있어보인다. 『대동지지』 「양양도호부」 성지조에는 "설악산고성(雪岳山古城)이 산 정상에 있으며 권금성이라고 하며 토토성(土土城)이라고도 하는데 둘레는 2,112척이다."고 기록되어 있어 설악산고성이 권금성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토토성은 토왕성(土王城)의 오기인 듯한데 권금성과 토왕성을 혼돈한 것으로 보인다. 국립공원 소공원에서 케이블카로 연결되어 10분 정도면 도착할 수 있다. 정상에는 80칸에 이르는 반석과 실료대(失了臺) · 방령대(放鈴臺)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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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상 뒤로 공룡능선, 1275봉, 나한봉과 마등령과 세존봉]
권금성에서 바라보는 세존봉이 손톱만큼 작게 들어왔다.
[골이 깊어 어데서든 금방 알아볼 수 있는 저항령과 황철봉과 상봉까지 조망할 수 있었다]
[봉화대는 바람에 내어주고 아무도 없는 공허만 있을 뿐이었다]
소나무 가지가 한쪽으로 약속이나 한 듯 바람이 줄을 세운다.
질서를 세운다.
내가 떠밀려간다.
[바람이 찰라에 멈춘순간, 산친구들은 무엇을 말하는지 알 수 없지만 세찬 바람에 내어준 봉화대의 꽃이 되기도 했다]
[딱 30년 만에 내 흔적을 찾아 보았더니 이곳이다. 왼쪽 산에 있는 뾰족한 바위를 보고 위치를 알 수 있었다]
사진을 보니 그 때는 등산복도, 등산화도 없고 끈달린 가방을 메고 있고 있었다.
그때 설악산 여행은 혼자였다. 눈이 많이 온 설악산을 보러 서울에서 한걸음에 속초를 가는데 대관령 고개
를 넘는데 버스가 달리지를 못했던 기억이 지금도 아슬아슬했던 생각이 난다.
30년이 지나 다시 여기에 서 보았더니 위 사진보다 배경이 약간 비껴 있지만 사진 왼쪽 끝 뾰족한 바위를 보고 이곳임을
알았다.
권금성에 바람이 세차게 분다. 벚꽃이 필때면 이렇게 바람이 분다고 한다. 내 무거운 몸이 바람에 서 있지 못하게
불어온다.
더 높은 곳을 가려던 발길을 잡고 우리는 돌아온 길을 발자욱따라 온다.
[한 번쯤 소리내어 불러보고 싶은 정든 길, 눈으로 보고 걷던 그 길이 위에서 보니 세찬바람은 어데로 가고
내 마음 깊은 곳에서 그 때와는 조금다른 두근거리는 심장소리를 듣게 된다. 내 발자욱소리를,,]
바람부는 곳을 피하여 양지바른 햇살 가득한 아늑한 곳에 앉았다. 안락암安樂이 이곳 아닌가.
따뜻한 아침밥에 곁들인 찬이 전복과 메밀전였다. 메밀전은 김치를 한번 씻어 짜아 메밀가루
와 물을 젖어 만든 부침개였고 전복은 안락암 계곡물에 씻어 솔잎을 넣어 삶은 전복였다.
거기에 5대의 전수를 받아 비밀이 담겼다는 쌈장까지 전복과 먹으니 난 이 설악산 노적봉이 다
내것인양 배를 두둘기며 먹었다. 거기에 두 잔의 막걸리을 마시니 '설악산아, 메롱, 약오르지롱'
난 처음으로 이 높은 산에서 눈이 쌓인 노적봉이 보이는 겨울산에서 전복을 많이 먹어 보았다.
전복 창자가 손톱속에서 범벅이 되는 줄도 모르게 먹었다. 에궁..
올라왔던 길을 따라 내려간다. 올라올때 텅빈 설악산에 찾는 이들도 제법 많아졌다. 케이블카도 운행하지
못하는 설악산은 桜風이 저 멀리서 오고 있는 것 같았다.
내려갈땐 더 조심스럽다. 눈이 있어 미끄럽고 경사진 길에 내 눈은 좁은 계단, 낡은 시설물들은
이제 허물어져 가는 길도 끊긴 곳이 많기 때문이다.
한참을 거의 내려왔는데 뒤에서 부르는 소리가 난다. 바람소리에 목청껏 지르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전화기를 꺼내여 산친구에게 넣었더니 숨가쁜소리였다. 내려가라는 그 소리를 듣고
다시 내려온 길을 따라 올라가 보았다. 심장이 멎는듯 했다. 말을 건네 보았다. 그래도 천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천둥치는 소리보다 더 겁먹은 마음을 조여매고 산에서 내려왔다.
얼레지와 노루귀가 꼬리를 흔들며 내 마음을 달랜다. '괜찮다고 , 그래 괜찮아야지'
춘천에서 총떡[영월에 메밀전병과 비슷한데 맛이 약간 다르다.]과
막국수를 먹고 춘천에 사는 산친구를 떨구고 서울로 왔다. 오늘 설악산은 바람이 모진 우리의 발목을 잡았다.
'여기까지라고'
세차게 불던 그 바람이 아직도 설악산에서 날 붙잡고 있다. '부디 괜찮냐고 묻고 싶다'
설악산은 벚꽃 필 즈음에 바람이 분덴다. 벚꽃이 바람을 따라 가는 것이 아니라 바람이 벚꽃맞이를 하는가 보다.
첫댓글 총각때 지금은 남의 여자가 된 사람과 함께
공구리 계단으로 안락암 오를때가 있었습니다.
그때 얼마나 원망을 당했는지.. 머리위로 지나는
케블카 안타고 이게 먼짓이냐고..
그 계단들 잘 있습니까?
30년 전에 나도 여름 설악을 올랐을 땐 배낭과 등산화는 제대로 신었으되 리바이스 청바지에 붉은 T셔츠에 구랫나루를 기른 차림이었다![!](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54.gif)
구랫나루는 어느 여인이 기르면 좋겠다해서 길렀는데 좋긴 했는데 젊은 넘이 건방지다고해서.... (그 시절은 그랬다) 딱 1년이었다
아
추억이 묻어나는 서락이라네
서락에 떡붙여놨나 발길이 잦습니다 ~~
길동무가 있어좋고 .... 서락이 있어좋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