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날을 되돌아보고
잘못된 것이 있으면
이 찰나의 생각부터
고쳐 가는 것
‘참회’는
새로워지는 길이요
선업을 가장 잘 닦는 것
누구나 알 수는 있지만
행하기는 정말 어려워
사소한 것부터 베풀고
마음 여는 법을 배워야
정말 큰 일이 생겼을 때
수습할 수 있는 지혜 생겨…
참회와 회향은 하나이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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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지현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연광스님은 2014년 조계총림 송광사 율주 지현스님에게 전등율맥을 받았다. 제19교구본사 화엄사승가대학 강사, 송광사 총무를 역임하고, 현재 광주 증심자 주지로 대원장학회이사장, 광주불교연합회장 등을 맡고 있다. |
광주 증심사 주지 연광스님은 지난 11일 정기법회에서 ‘참회와 회향’을 주제로 법문했다. “참회는 알 수 있으나 행하기가 정말 어렵다. 사소한 것부터 베푸는 마음을 갖고, 마음을 여는 법을 배우면 정말 큰 일 생겼을 때 수습할 수 있는 지혜가 생긴다”는 것이다. 법문을 요약했다.
반갑습니다. 세월이 참 빠르다는 것을 느낍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무등산 자락에 앙상한 나뭇가지만 있었는데 이제 꽃도 피었다 지고, 산천은 진한 녹색으로 물이 들었고, 무더위가 맹위를 떨치고 있습니다. 세월이 무상하다는 것은 여러분도 익히 잘 아실 겁니다. 살아있는 자연 뿐만 아니라 우리들 자신의 모습도 변해가고 있습니다.
오늘은 ‘참회와 회향’이라는 주제로 여러분들께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참회와 회향이라는 말을 모르시는 분은 없으실 것입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참회는 잘못을 저질렀을 때 자기가 뉘우치는 것이라고 이야기를 하는데 이 참회와 회향에는 정말 깊은 뜻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루를 지나고는 하루를 돌아보고, 한 달을 지나고는 또 한 달을 돌이켜 보고, 1년이 지나가면 1년을 돌이켜볼 때 지금 현재 우리의 자리에서 미래의 밝은 모습을 열어갈 수 있습니다.
이 뜻은 내가 내 자신을 살아오면서 돌이켜보지 않으면 자신의 앞날이 막연하게 시간에 따라서 갈 수 밖에 없다는 겁니다. 남들이 일어날 때 같이 일어나고, 밥 먹을 때 같이 먹고, 막연하게 하루를 보내다가 하루에 끝이 되면 잠자리에 들고, 또 남들이 눈을 뜨면 같이 일어나는 등 막연한 생활 밖에 안 되는 것입니다. 그 세월이 어느덧 오십, 육십, 칠십이 되어서 내일모레 죽음이 앞에 기다리고 있는 것이 우리들의 인생입니다. 그래서 같은 시간을 보내지만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하루가 끝났을 때, 한 달이 끝났을 때, 일 년이 끝났을 때 자신을 돌이켜 볼 수 있는 시간이 아주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자신을 돌이켜보지 않는 사람은 결코 아무리 많은 시간을 기도하고 또 높은 명예를 얻고 있어도 한 해의 무상함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참회와 회향이라는 것은 정말 중요한 것입니다. 설사 어떤 순간 우리가 깨닫지 못하고 장시간 어두운 길을 헤매며 길을 잘못 들어 망상으로 잘못을 저질러 왔더라도 때로는 살피고 뉘우치는 순간이 언젠가는 밝은 미래를 활짝 여는 깨우침을 가져다 줄 수 있습니다.
<보왕삼매론>에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세상살이에 곤란 없기를 바라지 말라. 세상살이에 곤란이 없으면 업신여기는 마음과 사치한 마음이 생기게 되나니 그래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근심과 곤란으로써 세상을 살아가라’ 하셨느니라.”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여러분 뜻대로 인생이 이루어지면 자만에 빠지고 남을 업신여기게 되고 스스로 사치하는 허영심이 생긴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을 살아갈 때는 근심과 걱정으로서 살아가라고 부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깨우침은 어느 누가 주는 것도 아니고 오직 자기가 스스로 뉘우치며 깨달아 열어가는 것입니다. 아무리 비싼 난이라고 해도 그 난의 가치를 가르쳐주지 않으면 황소의 한 입 식사 밖에 안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귀한 고려청자라고 해도 고려청자의 가치를 가르쳐주지 않으면 한낱 개 밥그릇 밖에 안 되는 겁니다.
여러분들이 많은 기도를 하고 몇 십 년 절에 다니면서 신앙생활을 하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고 있지만 가장 기본적인 참회와 회향이라는 말을 이해를 못하면 여러분들이 이때까지 쏟아온 것들이 한낱 물거품에 지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참회라는 것은 나의 어려움이나 나의 불행을 풀어주는 열쇠가 됩니다. 참회라는 것은 나의 불행을 행복으로 가져다주는 것이기 때문에 어느 누가 가르쳐주느냐에 따라서 그 참회가 여러분에게 같은 기도를 하지만 복이 될 수가 있고, 허영된 시간만 보낼 수 있다는 것이죠. 지구가 스스로 밤낮을 만들듯이 지옥과 천상 세계도 또는 불행과 행복도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지구란 자체는 태양을 등 졌을 때는 밤이 되고, 태양을 마주했을 때는 낮이 되듯이 우리 마음에도 누가 불행을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고 누가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누구나 새 것을 좋아하고 새로운 희망, 밝은 지혜로 기쁨이 항상하기를 기원합니다.
참회는 지난 시간, 지난날의 세월을 되돌아보고 잘못된 것이 있으면 이 시간 이후에 이 찰나의 생각부터 길을 고쳐 가는 것입니다. 참회와 회향은 둘이 아니라는 것이죠. 참회를 함으로서 또 다른 우리의 인생을 살아간다는 뜻입니다. 참회는 새로워지는 길이요 선업을 가장 잘 닦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선업이라고 하면 베풂만 생각하는데 내 자신을 돌이켜보면서 참회를 했을 때가 가장 순수한 선업을 쌓게 되어있습니다. 선업을 쌓아야만이 좋은 결과가 오고, 악업을 쌓은 사람은 나쁜 결과가 올 수 밖에 없는 것이죠. 그래서 이 세상에는 종교가 많이 있지만 어느 종교를 갖든지 잘 사는 사람이 있고 못 사는 사람이 있고, 단명하는 사람이 있고 장수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차이가 업의 차이라고 부처님은 말씀하십니다. 그 업의 차이가 어디에서 나오냐 하면 여러분들 생각에서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 생각 하나에 따라서 선업이 될 수가 있고 악업이 될 수가 있는 겁니다. 설령 내 마음 속에 남을 미워하는 마음이 있을 때, 이 생각을 밖으로 표출했을 때 그 업은 악업이 되는 겁니다. 그러나 한 번 참음으로서 그 악업을 절제할 수 있는 겁니다. 그래서 생각에 의해서 선업과 악업이 나온다는 것. 그래서 참회라는 것은 마음을 깨끗이 해주는 것과 더불어 마음을 밝게 해주는 가장 좋은 신행방법 중의 하나고 또한 선업을 쌓는데 아주 중요합니다.
부처님이 말씀 하시기를 ‘참회는 능히 번뇌를 태우며, 능히 삼계의 감옥에서 벗어날 줄 알며, 또한 지혜의 꽃을 피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참회는 괴로움을 즐거움으로, 실패를 성공으로, 불행을 행복으로 이끌어주는 처방이며 우리들의 깨달음을 바른 길로 인도해주는 참으로 수승한 수행 방법 중의 하나입니다.
출가자가 처음 왔을 때, 일주일 동안 행자실에 앉혀 놓습니다. 그리고 나서 마지막 7일째 밤 9시부터 다음날 새벽 3시까지 절을 시킵니다. 세속에서 살아왔던 출가하기 전까지의 참회를 하기 위해서 3000배를 시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대부분 많은 사람들이 그 기도하는 동안 절하는 동안 자기도 모르게 하염없는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그것은 누가 시켜서 눈물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기 자신을 돌이켜보면서 자기도 모르게 쏟아져 나오는 눈물입니다. 이것은 자기 자신을 정화시키고 자기 자신의 마음을 깨끗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화엄경> 보현행원품에도 이 참회 발원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내가 지나간 세상 끝없는 세월에 탐하고 성내고 어리석은 탓으로 몸과 말과 생각으로 지은 악업이 한량없고 끝이 없을 것이다. 만약 그 나쁜 업에 어떤 형체가 있다면 가없는 허공으로도 그것을 다 용납할 수 없을 것이다. 내가 이제 몸과 말과 생각의 청정한 업으로 법계에 두루 많은 부처님과 보살님들 앞에 지성으로 참회하고, 다시는 나쁜 업을 짓지 않으며 항상 청정한 계율의 모든 공덕에 머물겠습니다”하고 발원을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참회를 태양에 비유합니다. 태양은 모든 어둠을 쫓는 거대한 힘이 있듯이 참회는 모든 업장을 녹여 없애는 힘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참회의 힘은 정말로 강합니다. 참회를 하면 모든 업장이 녹아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많은 기도를 하지만 기본적으로 자기 자신을 참회하는 습관을 꼭 가져야 합니다. 기도도 습관입니다. 여러분들이 절에 와서 하는 기도가 정말 좋은 기도가 아닙니다. 기도는 절에 오든 집에 있든 끊임없이 이어지는 것이 참 다운 기도입니다.
자기 자신을 돌이켜보지 않고 막연하게 살아가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알게 모르게 지은 악업이 다시 나에게 돌아와 돌게 되어 있는 겁니다. 그것이 윤회입니다. 이 육신은 때가 되면 없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근본사상이 무아(無我), ‘나’라고 하는 자신이 없다는 것. ‘나’라는 상을 내세우면 그것에 허물이 생기기 때문에 ‘무아’를 항상 강조를 합니다.
참회는 과거의 잘못을 뉘우치는 것만이 아니고 동시에 새로운 출발을 의미한다는 것을 아셔야합니다. 그래서 회향은 참으로 아름다운 것입니다. 우리가 참회 기도를 많이 하면 인내심이 커지고, 자비심이 무한하게 커지기 때문에 너와 나의 따로 차별을 두면서 사람을 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참회는 선업을 짓는 가장 좋은 방법 중의 하나고 참다운 수행하는 수승법의 하나이기 때문에 참회는 누가 이야기하지 않아도 늘 자기 자신을 돌이켜보면서 가정생활을 하고, 사회생활을 대하고 또 사람들과 더불어 하면서도 항시 자기 자신을 돌이켜봐야 합니다. 이런 것을 살피다 보면 남들보다 인내심이 커지고 그러다보면 남들보다 편안함을 가지게 됩니다. 그런 모습들은 여러분들이 키워나가는 겁니다. 참회와 회향은 둘이 아닙니다. 그래서 참회를 많이 할수록 마음도 넓어지고 다가오는 여러분의 앞날에도 좋은 일이 있게 되어 있습니다.
참회를 쉽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행하기가 정말 어렵습니다. 누구나 알 수는 있지만 행하는 것이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사소한 것부터 베푸는 마음을 가져야하고, 마음을 여는 법을 배워야만 정말 큰 일이 생겼을 때 수습할 수 있는 지혜가 생기는 것입니다.
[불교신문3028호/2014년7월2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