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하는 김형두 재판장님,
저는 지난 2010년 6월 2일 실시된 전라북도교육감 선거에서 전북도민들의 선택을 받아 현재 전북교육감으로서 교육의 주체인 교사와 학생 그리고 학부모들과 함께 전북교육을 이끌고 있는 김승환 입니다.
교육감 당선으로 당연퇴직되기 전까지 전북대학교 법과대학과 법과전문대학원에서 헌법전공 교수로서 25년 간 헌법수업과 연구를 하였습니다. 또한 한국헌법학회 회장을 역임한 바 있습니다.
저는 헌법학자로서 ‘곽노현 교육감 사건’ 해당 조항 즉 검찰의 곽노현 교육감 기소조항인 공직선거법 제232조 제1항 제2호(일명 ‘사후매수죄’) 조항 등에 대하여 헌법과 법률가의 양심에 따른 의견서를 ‘곽노현 교육감 사건’ 재판부에 제출하고자 합니다.
공직선거법 제232조 제1항 제1호(사전매수죄)는 후보자를 사퇴하게 할 목적으로 후보자에게 금전 등의 제공 행위를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후보자를 사퇴하게 할 목적’이 있었는지 여부는 후보사퇴를 한 자와 사퇴를 받아낸 자 사이의 합의가 있었느냐를 증명하는 것 입니다. 여기에서의 합의는 양 당사자의 직접적 합의일 수도 있고, 당사자의 위임이나 지시를 받은 사람들 사이의 합의일 수도 있습니다.
이 사건 초기 검찰은 공직선거법 제232조 제1항 제1호(사전매수죄)에 집중했습니다. 그러나 검찰은 사전매수죄의 범죄구성요건의 결정적 부분인 당시 곽노현 후보와 박명기 후보 사이의 합의를 증명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검찰은 곽노현 교육감의 구속을 전후로 해서 피의사실공표와 함께 증명되지 않은 내용들을 언론에 흘렸고 이후 검찰은 일정부분 사실을 왜곡했다는 비판에 직면하기도 하였습니다. 지난 교육감 선거 전 당시 곽노현 후보와 박명기 후보 사이에 후보사퇴와 관련한 금전 제공 등의 합의를 입증하지 못했던 검찰은 이후 공직선거법 제232조 제1항 제2호(일명 ‘사후매수죄’) 조항으로 곽노현 교육감을 구속 후 기소하였습니다.
공직선거법 제232조 제1항 제2호(일명 ‘사후매수죄’)는 후보자를 사퇴한 데 대한 대가를 목적으로 후보자이었던 자에게 금전 등을 제공하면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사실상 우리 공직선거법상의 일명 ‘사후매수죄’는 외국의 입법례를 거의 찾기 힘든 법조항 입니다. 그럼에도 공직선거법 제232조 제1항 제2호 해당 조항을 ‘체계적으로’ 해석해 보면, 사후매수죄 조항도 사전합의 또는 사전합의에 유사한 의사의 연관을 전제하고 있다고 판단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사전합의가 없었는데도, 또는 사전합의의 정도는 아니라 하더라도 사전에 양 당사자 사이의 서로 의사의 교환이 전혀 없었는데도, 선거 후에 당선된 자가 후보자의 자리에서 물러난 자에게 금전 등의 이익을 제공하는 경우를 상상할 수 있겠습니까? 형사법은 있을 수 있는 경우를 예상하고 그러한 경우가 발생하면 ‘법적 비난’을 합니다.
이와 달리, 양 당사자의 아무런 내적 의사연관도 없이 선거가 모두 끝난 후 금전 등의 이익이 오고간다는 것은 예상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한 경우를 예상할 수 있다고 말한다면, 즉 검찰의 주장처럼 공직선거법 제232조 제1항 제2호를 해석한다면 그것은 법해석을 빙자한 공허한 상상에 불과합니다.
현재까지 재판에서 밝혀진 바와 같이 교육감 선거가 끝난 후 곽노현 교육감이 강경선 교수를 통해서 박명기 교수에게 돈을 건넨 것은 사전합의에 따른 것이 아니었음은 물론이고, 어떠한 대가성도 없었다고 판단됩니다. 돈을 건네받은 박명기 교수 역시 법정 진술을 통해 그 돈이 곽노현 교육감에게서 나온 돈이라는 사실조차도 몰랐다고 진술한 바 있습니다. 돈을 받은 사람이 누구에게서 나온 돈인지도 모름에도 그 돈의 성격에 ‘대가성’이라는 범죄구성표지를 붙일 수 있는지는 극히 의문입니다.
이 사건에서 건네진 금전이 ‘대가성’ 있는 금전제공이고 따라서 곽노현 교육감이 유죄라고 판단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존재해야 하는 사실 즉 조건이 있습니다. 첫째, 돈을 받은 박명기 교수가 ‘곽노현 교육감이 건네는 돈이라는 인식’을 했어야 합니다. 둘째, 곽노현 교육감이 강경선 교수를 통해서 박명기 교수에게 돈을 전달할 때, ‘후보자를 사퇴한 데 대한 대가로 주는 것이라는 인식’을 하고 있었어야 합니다.
그런데 곽노현 교육감의 선거 후 금전제공 행위는 위 두 가지 사실 즉 조건을 결여하고 있습니다.
지난 2010년 교육감선거 후보단일화 논의 당시 곽노현 후보는 금전 제공 등을 통한 후보단일화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반대의사를 표명하고 있었음이 재판과정에서도 밝혀졌습니다. 사실이 이와 같다면 교육감 선거 전에 대가성 있는 금전 제공의 사전합의를 철저하게 거부했던 곽노현 교육감이 선거가 끝난 후에 대가성 있는 돈을 건넸다고 보기에는 상당히 무리가 있습니다. 따라서 검찰이 곽노현 교육감의 선거 후 금전제공 행위를 대가성 있는 금전 제공행위라고 주장․단정하는 것은 논리의 비약일 뿐입니다.
곽노현 교육감의 선거 후 박명기 교수에 대한 금전제공 행위는 첫째, 곽노현 교육감은 스스로 양 선거캠프관계자의 구두합의 당시 금전제공 구두합의에 대한 위임권한을 해당 선거캠프관계자들에게 준 바도 없고, 이후 해당 구두합의에 대하여 추인한 바도 없지만, 따라서 어떠한 금전 제공의 의무 등이 발생한 것은 아니지만, 곽노현 교육감 자신의 선거캠프관계자가 관여되었고 또한 구두합의 사실을 믿은 박명기 교수에 대한 도의적 책임에서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고 둘째, 강경선 교수를 통하여 박명기 교수의 경제적 궁핍상태를 인지하고 이에 대한 긴급한 부조의 측면에서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한다면 오히려 박명기 교수의 절박한 사정을 외면하지 못한 곽노현 교육감의 행위는 도덕적 차원에서도 찬사를 받을 부분도 있다고 판단됩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헌법적 관점에서 판단해 볼 때, 공직선거법 제232조 제1항 제2호 역시 양 당사자의 사전합의 또는 사전합의와 유사한 의사의 연관은 존재해야 한다는 것을 개념필연적으로 내포하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곽노현 교육감과 박명기 교수 사이에 박명기 교수의 후보 사퇴 전에 금전제공 등에 대한 사전 합의가 없었다면 곽노현 교육감은 무죄라고 판단됩니다. 곽노현 교육감의 행위에는 공직선거법 제232조 제1항 제1호 뿐만 아니라 기소조항인 공직선거법 제232조 제1항 제2호에 따른 법적 비난가능성이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2012년 1월 3일 헌법학자 김승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