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곡종택(朴谷宗宅)
이원록(李元祿)- 천성이 간엄하고 청령, 검소하며 5차례나 대사헌을 역임한 문신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사흥(士興), 호는 박곡(朴谷). 이당(李唐)의 차자 이집(李集)을 일대(一代)로 하고 좌통례공 이극견의 차자 승사랑 이지(李摯)를 칠곡 입향조로 하는 광주이씨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부응교(副應敎) 이도장(李道長)이고, 어머니는 안동김씨, 부인은 광주이씨·순흥안씨이다.
미수(眉叟) 허목(許穆)의 문하에서 수학하여 1648년(인조 26)에 향시에 합격, 1651년(효종 2)에 생원시에 장원으로 합격하였다.
세마시직(洗馬侍直)에 임명되어 1663년(현종 4)에 을과장원으로 문과에 합격하였으며 1665년(현종 6)에 성균관 전적(典籍)을 거쳐 형조좌랑, 병조좌랑, 장연부사, 의주부윤, 호조참의, 병조참의, 경상도관찰사, 함경감사, 예조참판 등을 역임하였다.
1680년(숙종 6)에 대사헌(大司憲)이 되어 5차례나 역임하고, 사은(謝恩) 부사(府使)로 벼슬을 마쳤다.
천성이 간엄(簡嚴)하고 몸가짐이 청령하고 검소하여 명위(名位)로 자처하지 않았다. 경신참화로 1681년 안동 박곡(朴谷)으로 옮겨 은둔하였으며, 은둔한 마을 이름을 따서 호(號)를 박곡(朴谷)이라 하였다.
1688년(숙종 14)에 세상을 떠나니 왕명으로 제문(祭文)을 내렸는데, 그 내용은 “천성적으로 타고남이 성실하고 정성스러워 사문(師門)에 모범이 되었다”라고 하였다. 불천위 봉사(奉祀)이며 왜관읍 매원리에서 살았다.
『박곡집(朴谷集)』이 있으며 묵헌 이만운이 지은 묘비문이 있고 불천위 봉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