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북도 청주시 '운리단길'
2년 전쯤 별칭으로 불리던 '운리단길'.. 정식 명칭으로 자리잡아 문화특구로 개발
늦어졌지만 특화거리사업으로 상권활성화 속도 작년 예산 2억 들여 간판 개선 마
무리.. 매장별 특성 살려 교체 일반주택 피해 우려 목소리에 '도시재생 현장지원
센터'개설 해결
2일 오후 청주 운리단길. 옛 거리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다.(디지털타임스)
청주시는 운리단길을 지역 골목 경제 융·복합 상권 개발 대상지로 지정하고 활성
화 사업에 착수한 상태다.(청주시 제공)
한산한 운리단길 거리. 오후 6시도 안된 시간에 문을 닫은 점포도 보인다.
(디지털타임스)
운리단길은 세련된 카페와 음식점이 오래된 전파상과 한데 어우러져 거리를 공유
하고 있다.(디지털타임스)
카페가 보이기 시작하는 운리단길 중간 지점에 뉴딜사업 공사 안내 플래카드가 걸
려있다.(디지털타임스) 카페, 패션, 인테리어 등 사회전반에 불고 있는 뉴트로(New-
tro) 열풍이 뜨겁다.
뉴트로란 새로움(New)과 복고(Retro)를 합친 신조어로, 복고를 새롭게 즐기는 경향
을 일컫는다. 여기에는 '유행은 돌고 돈다'라는 말에 따라 차례를 맞은 유행도 있지
만, 획일화해 가는 현대사회에서 개성을 찾아 다른 것과 차별을 두기 위해 옛것을
재구성하는 방법을 선택하면서 오는 유행도 있다.
복고 즉 과거의 재구성은 익숙함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동시에 새로움으로 세련됨
까지 느끼게 하는 정서적 트렌드 콘셉트로도 활용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것을 빈티지(Vintage)라고도 부른다. 과거를 재구성해 새로운 문
화를 만들어나가는 뉴트로, 빈티지 열풍은 충청북도 청주의 옛 골목에도 불고 있다.
청주시 흥덕구 운천동에 위치한 청주고인쇄박물관에서 흥덕초등학교를 거쳐 운천
신봉동주민센터를 잇는 흥덕로는 이제 '운리단길'이라는 새 이름으로 불린다.
2년 전쯤 옛 골목에 하나둘 작은 카페와 음식점, 옷가게들이 들어서면서 몇몇 청주
사람들이 별칭으로 부르던 게 지금은 정식 명칭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흔히 '○리단길'은 서울 이태원 경리단길에서 따온 것으로 '뜨는 상권'의 대명사처럼
사용되고 있지만, 최근 들어서는 전국적으로 급격하게 늘어나면서 '○리단길'에 대
한 희소성도, 인기도 시들해지고 있는 추세다.
실제 '○리단길'은 대한상공회의소 조사 결과 이미 지난 2018년 기준 20개를 넘어섰
다. 현재로서는 30여개를 훌쩍 넘어선 것으로 추산된다.
그럼에도 청주 운리단길이 떠오르는 상권으로 지목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소
위 '핫 플레이스' 사람들이 특정 장소를 찾아서라도 가는 이유는 그 곳만의 독특하고
개성적인 분위기와 고유한 문화를 경험하기 위해서인데, 운리단길이 바로 그런 거리
다. 지난 2일 찾은 운리단길은 개성적이었다. 10여년 전 문화 특구로 지정된 지역에
덧대어 만들어지고 있는 길이기 때문일 터다.
이 거리는 지난 2007년 현존 세계 최고(最古) 금속활자본인 '직지심체요절'이 청주
흥덕사지에서 인쇄된 점 등을 고려해 직지 문화 특구로 명명됐다. 청주고인쇄박물
관을 포함해 금속활자 전수교육관, 근현대인쇄전시관 등이 들어선 지역에 뉴트로
하면서 빈티지한 카페들이 속속 들어서고 있는 것이다.
독창성의 이유인 문화특구 지정은 양날의 검으로 작용하기도 했단다. 문화특구이
다 보니 개발에 따른 규제가 많이 적용됐다는 게 청주시 관계자의 설명이다.
흥덕로가 운리단길로 불리기 시작한 것은 2년 전인데도 아직 상권 활성화가 진행
중인 이유이기도 하다.
이런 분위기는 운리단길의 초입부터 바로 전해진다. 청주고인쇄박물관 입구부터
이어지는 운리단길 들머리는 아직 일반적인 유적지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평일 오후 3시에 찾은 운리단길은 유난히 한산했다. 카페 유리창 너머로 차를 마
시며 수다를 떠는 몇몇 사람들이 보일 뿐, 거리에 걸어다니는 사람은 찾기 힘들 정
도였다.
한 지역 주민은 "몇 년 전부터 젊은이들이 많이 가는 카페가 생기기 시작하긴 했는
데, 이 동네가 교통이 안 좋아서, 근처 사람들이나 오지, 찾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는
않다"며 "주말에는 그나마 사람이 좀 있다"고 최근 분위기를 전했다.
하지만 분위기는 빠르게 변할 예정이다. 운리단길은 지난해 행정안전부의 지역 골
목 경제 융·복합 상권 개발 사업에 뽑힌 이후 문화 특구 지정과 관계없이 상권 활성
화, 특화거리 조성 사업에 돌입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청주시는 운리단길을 중심으로 올해 말까지 차 없는 거리, 역사·문화 공
간 등이 어우러진 도시 재생을 추진 중에 있다.
기록 문화의 상징인 '직지'를 테마로 한 과거·미래가 공존하는 길이 콘셉트라는 게
청주시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에 대한 예산은 166억원으로 잡혔다.
시는 '기록의 과거와 미래 공존'을 주제로 '구루물 아지트·학당' '디지털 헤리티지
체험마당' '청년 문화가로' 등 문화·예술 공간을 조성할 계획이다.
'구루물'은 '운천'의 옛 이름이다. 벌써부터 메인 도로에는 통행 제한 플래카드가
곳곳에 걸려 있고, 굴삭기 같은 중장비도 종종 보였다.
청주시 경제정책과 관계자는 "운천동 일대의 도시재생 뉴딜 사업과 융·복합 상권
개발사업은 상인과 주민들이 주도해 쇠퇴한 골목상권을 되살리는 지역 공동체 사
업"이라며 "야간경관과 조명, 공원 정비 등 환경개선 위주로 활성화 사업을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말에는 '운리단길' 간판개선사업도 마무리됐다. 앞서 청주시는 2019년 공
모사업에 선정돼 도비 6000만원을 비롯해 자체 예산을 합쳐 총 2억원을 들여 사
업을 추진했다.
사업은 운천동 운리단길 600m 구간 47개 업소의 간판 72개를 철거한 뒤 주변경
관과 조화를 이루는 새로운 간판으로 교체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간판 디자인은 업소에서 요구하는 문자, 도형, 위치, 모양, 크기, 색깔 등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해 매장 특성도 살렸다.
활성화 사업이 이어지면서 일대 거리도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아직 거리는 옛 모
습을 유지하고 있지만 '이런 곳에 카페 거리가 어디 있을까' 하며 잠시 청주고인쇄
박물관 돌담길을 걷다보면 어느새 다른 질감의 간판이 보이기 시작한다.
박물관 앞길을 벗어나 흥덕초등학교까지 지나치면 낡은 건물을 리모델링한 카페
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 일대는 관광지이면서도 학교앞 거리, 일반 주택들이 밀집한터라 문구점, 분식
점, 학원은 물론 청과물 마트 구멍가게 같은 생활 상권도 어우러져있어 특유의 빈
티지함과 독특함을 더한다.
운리단길 일대를 지도로 보면 메인 거리가 부채 윗부분 선을 그리고 골목골목이
부챗살처럼 이어진 부채모양으로 보이는데, 메인 도로를 빠져나와 부챗살 모양으
로 뻗어있는 골목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빈티지한 분위기는 더 짙어진다.
1㎞ 채 안되는 길에 중간쯤 걸었나 싶었을 즈음 소위 '인스타 감성'을 자극하는 아
기자기한 가게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인쇄소, 조명 상가, 각종 공구, 전파상 등 어울리지 않는 점포도
나란히 서있어 이질적이면서도 독특함이 느껴졌다.
결국 리모델링으로 세련된 카페와 공방, 옷가게들이 주택과 낡은 전파상 등과 하
나의 거리를 공유하고 있는 셈이다. 마치 서울의 을지로를 옮겨놓은 듯 한 느낌도
받을 수 있었다.
아직까지는 새로 들어온 가게들이 듬성듬성 있어 빈티지한 느낌은 소규모 군락을
이루고 있지만, 일대 전체가 빈티지하게 변하는 때도 머지 않았다는 분위기도 전
해진다.
옛 건물을 리모델링해 카페를 운영하는 한 업주는 "청주고인쇄박물관 등 주변에
볼거리가 많은 데다 가게 임대료 부담이 비교적 적어 젊은 창업자들 사이에 소문
이 나고 있다"며 "앞으로는 골목 전체가 이런(리모델링 점포) 가게들로 채워지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골목 곳곳이 조금씩 꿈틀대고 있지만, 운리단길의 시계는 아직 짧다. 평일 오후 5
시, 해질녘즈음 인근 가게들은 영업 마감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미 일찌감치 문을 닫은 점포도 몇몇 보였다. "주말에도 토요일에만 저녁 9시까
지 문을 열어 놓지만, 평일과 일요일에는 6시면 다들 문을 닫아요" 커피머신을 정
비하던 한 카페 주인의 말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시에서 하는 개발(상권 활성화 사업)이 끝나고 동네가 더 좋아지
면 여기(운리단길)를 찾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가게를 여는 시간도 늘어나지 않을까
요"라며 기대감도 전했다.
이처럼 상인들은 빠른 활성화를 원하고 있지만, 운리단길은 일반 주택과 공간을 공
유하고 있는 상권이라는 점에서 활성화 드라이브가 급격한 밀집 현상으로 이어지고,
일반 주민들에게 피해가 갈 수 도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청주시는 이런 우려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지역 주민의 목소리를 기울이기 위한
조직도 마련해 뒀다.
청주시는 이미 지난 2019년 초 운천신봉동 도시재생 현장지원센터를 개설했다. 이는
도시재생에 대한 주민이해를 높이고 주민참여를 유도하는 역할을 하는 주민과 행정
의 중간지원 조직이다.
현장지원센터는 도시재생 사업의 효율적인 추진을 위해 주민들의 요구사항을 들어
주고 다양한 주민 교육 프로그램을 기획·추진하고 있다.
도시재생허브센터를 중심으로 건물주연합회,
임대상인연합회, 상가번영회가 모여 애로사항을 나누고 있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