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랑스러운 6등의 긍정적인 힘
“헉, 헉… 엄마, 허…”
내뱉는 숨소리가 도무지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하교를 알리는 종소리가 들린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나를 향해 달려오던 아들은 차 문을 열며 오늘따라 유난스럽게 거칠게 숨을 몰아쉰다. “천천히, 천천히. 숨 좀 가라앉으면 그때 말해.” 출발하려다 차 안의 거울을 통해 아들을 바라보니 얼굴이 벌겋다. 체육 수업을 마치자마자 옷만 갈아입고 뛰어온 듯한 아들에게서 풍기는 소년의 체취가 스멀스멀 앞자리를 건너온다. 바이올린 수업하러 가기에 시간도 있고 젖은 냄새를 처치해야 선생님께도 예의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임스 배고파?”
“왜? 뭐 먹고 가도 돼? 시간 있어? 그럼, 나 먹을래.” 묻는 말 한마디에 속사포로 이어지는 아들은 말을 내뱉는 동시에 안전벨트가 풀리고 차 문을 열고 나갔다.
길 건너 패스트푸드점에 들어가 햄버거 한 개를 뚝딱 먹곤 내가 내미는 또 하나를 베어 먹는다. 시장기가 무척 돌았는지 콜라도 단숨에 들이키니 아들의 만족한 기분이 시원한 트림에 섞여 나왔다. “엄마, 오늘 체육 시간에 달리기했는데, 나는 6등으로 들어 왔어.” 스스로 대견하고 자랑스럽다는 듯이 짓는 웃음 속에 햄버거가 빨려 들어간다. “얼마나 힘이 들었는지 뺨이 덜덜 떨렸어.” 한 손으로 자기 뺨을 위아래로 흔들어 대며 쏜살같이 달렸다는 표현을 하는 아들이 귀여웠다. 무엇보다 6등으로 들어왔다는 아들의 자랑스러움에 나도 동화되어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몇 명이 뛰었는데?” 물으니 예상 밖의 숫자가 귀에 들어온다. 큼직하게 남은 조각을 입안으로 쑤셔서 넣는 아들이 뱉은 소리가 아무래도 귓속으로 잘못 들어온 것 같아 재차 물었다.
“몇 명이 뛰었다고?” 얼음 부딪치는 소리가 요란스럽더니 더 이상 빨려 올라오지 않는 속 빈 빨대를 입술에서 떼어내자 “6명이 뛰었어.” 해맑은 아들의 웃는 얼굴 속에 담긴 말소리가 다시 귓구멍을 찾아왔다. 정확하게 6명이라고 했다. ‘어라? 아까 분명히 6등 했다고 했는데…?’ 등수를 잘못 알고 있거나 함께 달린 친구들의 숫자를 모르고 있거나 둘 중의 하나인 것 같았다. “그렇구나.” 엄마의 의문을 눈치채지 않은 녀석은 또다시 한쪽만 볼이 패인 매력적인 보조개를 보이며 자랑스러움을 다시 뽐내기 시작했다.
나는 아들들의 보조개를 볼 때마다 한 편으론 신기하다고 생각한다. 두 아들은 한쪽 뺨에만 깊은 볼우물을 지니고 있다. 더욱이 희한한 것은 큰아들은 왼쪽 뺨에 작은아들은 오른쪽 뺨에 있다. 서로 다른 방향에 보조개가 있다 보니 형제가 나란히 앉아 나와 마주하면 보조개가 좌우 뺨에서 완전체가 되어 두 우물에서 흘러나오는 매력이 배가 된다. 윙크할 때 한쪽 눈만 살짝 감는 것처럼 미소 지을 때 지어지는 한쪽 볼우물이 마치 뺨이 보조개를 통해 윙크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은 적도 있다. 그래서 볼수록 신기하고 매력적인 두 아들의 윙크하는 보조개는 늘 나에게 신선한 즐거움을 주었다. 잠시 아들들의 한쪽 보조개의 신기함을 떠올리며 미소 짓던 내게 정적을 깨는 아들아이의 반문.
“엄마, 진짜 열심히 바람돌이처럼 뛰었더니 6등을 한 거야. 나 잘했지?” 순간 내 머릿속은 복잡했다. ‘녀석의 트레이드 마크인 길고 긴 속눈썹이 휘날리도록 달렸다는 건데… 6명이 뛰고 6등이면 꼴등이잖아?’ 내가 알고 있는 셈으로 생각해보면 꼴등인데도 저렇게 만족하며 흐뭇해하는 아들의 모습이 약간 의아했다. 꼴등이라는 말을 모르지는 않을 텐데… 하면서.
“제임스, 6명이 뛰어서 맨 마지막으로 들어왔는데, 왜? 6등이야?” 짐짓 아무것도 아닌 척하며 속내를 드러내 슬그머니 물어보았다. “응. 그건 6등이니까 6등이라고 그러는 거야. 꼴등이라고 그러면 웃기잖아. 친구들이 정말 달리기를 잘해. 윙~ 소리 나는 것처럼 엄청나게 빨라. 나는 달리기를 못 하니까 6등이지. 1등, 2등, 3등…6등! 그러니까 나는 6등이 맞잖아. 엄마, 그렇지?” 내게 자기 말에 동조해주길 바라는 아들의 물음은 아니었다. 당연한 것을 왜 물어보냐는 5학년 남자애의 당당하고 긍정적인 발언에 가슴 안에서 눈물방울이 파장을 일으키며 도는 것이 느껴진다. “달리기를 잘하는 애가 있고, 나처럼 피아노 바이올린을 잘하는 애가 있잖아. 그렇지?” 이어지는 아들의 설명에 젖은 눈으로 보이는 아들의 형상이 얼마나 아름답고 귀하게 보이던지 할렐루야! 절로 나오는 감사의 한마디.
바이올린 수업을 기다리는 동안 잠시 근처의 산책로를 걸으며 좀 전에 나눴던 이야기를 되새겨 보았다. 내가 아들의 나이 때였다면, 같은 상황이었다면 자연스럽게 ‘꼴등’이란 단어를 사용했으리라. 물론 꼴등이란 말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꼴등과 6등의 느낌 차이가 엄청나게 다르다는 것을 난생처음 느껴보는 순간이었다. 또래보다 뒤처지거나 조금 더 월등하면 그에 따라 반응하던 내 모습이 떠오르자 이유를 알 수 없는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마다 그에 맞는 은사를 주셨다고 했는데… 나는 욕심이 많은 사람이었구나… 내 것이 아닌 것에 비교하고 스스로 자책하고 슬퍼하고 분노하고 기뻐하던 내 모습. 고린도전서 12장 28절에는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셋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을 행하는 자요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말하는 것이라”라는 말씀으로 개개인이 받은 은사는 다 다르지만, 분량의 크기와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은사가 있다는 것을 사도 바울은 가르쳐 주고 있다. 내가 받은 은사가 무엇인지… 앞으로 좀 더 신중하고 진중하게 하나님 말씀을 사모하며 공부해 나가야겠다는 생각으로 번져갔다. 마치 “줄리아 네게 받은 은사가 무엇인지 깨닫고 잘 활용하여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라고 성령의 불씨를 가슴에 떨구어 놓은 것처럼 뜨거움이 솟구쳤다. 나와 함께하시는 하나님. 나를 먼저 알아봐 주신 아바 아버지. 내 안에 피어오르는 성령의 불씨가 활활 타오르도록 끊임없이 감사 기도하며 ‘오늘’을 성실하게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긍정적이고 선한 마음으로 늘 엄마를 일깨워주는 사랑스러운 아들 덕분에 쉼 없이 감사가 노래처럼 흘러나오는 것도 감사 기도할 때 가장 행복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데살로니가전서 5장 18절에서 역시 예수님과 함께하는 삶 속에선 감사가 끊어지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신다. 아들의 자랑스러운 6등의 긍정적인 힘으로 내가 되레 격려받고 용기 얻는 기분이다. 나보다 더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열두 살 소년의 미래를 꿈꾸니 아름다운 현실이 되어 내딛는 발걸음에 행복이 실리고 있다.
-2008년 7월 2일 아들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아 가던 행복한 날에
*3월에 새 학년이 시작하는 한국과 달리 캐나다는 9월에 시작한다. 그래서 3월과 9월에는 학년 차이가 생기는데, 글 속의 아들은 5학년이지만, 한국에선 4학년이고 열 살 소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