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 영광군 도동리 홍교(全羅南道 靈光郡 道東里 虹橋 )
全羅南道 靈光郡 道東里 虹橋(전라남도 영광군 도동리 홍교)
1992년 11월 30일 전라남도문화재자료 제190호로 지정되었다. 영광군에서 소유하고 있다. 상춘곡(賞春曲)의 저자로 가사문학(歌辭文學)의 효시인 정극인(丁克仁 1401~1481)이 숭유척불(崇儒斥佛)한 공을 기리기 위하여, 사후 16년이 되는 해인 1497년(燕山君 3)에 왕명으로 건립한 것이라 전해온다. 1728년에 보수하여 오늘에 이르며, 석재의 치석이 우수하고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다.
속칭 구름다리 또는 무지개다리(虹橋)라고도 하며, 영광군(靈光郡) 영광읍(靈光邑) 도동리(道東里)의 옛날 5일장이 서던 입구에 세워져 있다. 옛날 성이 있던 당시에는 나주와 함평 등지에서 영광으로 들어오는 대로의 길목에 있었으나, 오늘날에는 시가지의 변화로 논밭으로 가는 샛길과 주택지 사이의 하천 옆길을 잇는 다리 역할을 하고 있다.
전라남도 지방에서 이미 문화재로 지정된 선암사 승선교(보물 400), 흥국사 홍교(보물 563), 고흥 옥하리 홍교(전남유형문화재 73) 등은 규모가 크고 가공 부재를 이용하여 매우 인위적이고 세련된 기법을 사용한 데 비해, 도동리의 홍교는 왜소하고 소박하지만 구법은 단순하나 견고하며, 자연적인 부재를 토대로 손질하여 자연스럽고 투박한 멋이 난다.
너비 184㎝, 반지름 174㎝의 홍예구조(虹霓構造)로 이루어졌으며, 13개의 부재로 결구되었다. 홍예 부재로서 장대석은 크기가 평균 184×50㎝이며 부재의 평균 길이는 180㎝, 굵기는 50㎝이다.
경복궁(景福宮) 영제교(永濟橋)와 영제교의 천록(天鹿)
영제교(永濟橋) 영제교의 천록
영제교의 길이 13.85m 너비 9.8m 세 칸으로 나뉘어져 있고 중앙이 3.4m, 양쪽이 3.2m이다.영제교 가운데는 임금만이 다니시는 어도이다. 임금님은 이 길을 어가를 타고 지나가셨다.영제교를 건너다가 좌우를 살펴보면 도랑 축대 사방에 엎드려 있는 동물상이 눈에 뛴다. 온몸이 비늘로 덮여 있고, 정수리에 뿔이 하나 있는데, 네 마리 모두가 도랑 바닥을 뚫어져라 감시하고 있는 모습이다. 금천으로 밖에서 들어오는 사악한 기운을 막아도 '다리'로 들어오는 잡귀를 막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금천 위에 놓인 영제교 난간과 개천가에 흥례문과 금천을 노려보고 있는 영험한 동물들을 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서울특별시 종로구 와룡동(臥龍洞)의 창덕궁(昌德宮) 금천교(錦川橋)
錦川橋(금천교)
이 돌다리가 금천교(錦川橋)이다. 1411년(태종 11년)에 창덕궁을 처음 지을 때의 그 다리가 참 고맙게도 아직까지 남아있다. 다른 나무 건물들은 임진왜란, 인조반정, 1917년 대화재 등 여러 차례의 환란 때 불에 타서 계속 다시 지은 것들이다.
조선 궁궐에는 모두 금천(禁川)이라는 개울과 그 위를 건너는 금천교(禁川橋)가 있다. 풍수지리 사상의 영향으로, 명당수(明堂水)가 있어야 길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경복궁 영제교(永濟橋)와 창경궁 옥천교(玉川橋), 경운궁 금천교도 모두 그런 이유로 만든 다리다. 창덕궁 금천교(禁川橋)의 이름이 '금천교(錦川橋)'이다. 그러나 지금 금천에는 물이 흐르지 않는다. 이 개울을 늘 채워주던 물은 아마도 인근 주택가 하수도와 연결되어 다른 어디론가로 열심히 흘러가고 있으리라고 짐작한다.
응봉아래에서 발원한 개천이 남쪽으로 흘러 창덕궁의 돈화문, 금호문 안으로 들어와서 명당수를 이루니 그 개울, 즉 어구를 금천이라 하며 거기에 걸친 다리를 금천교라 한다.
정궁인 경복궁에서 광화문과 흥례문 사이를 흐르는 어구를 금천, 그 위에 걸쳤던 돌다리를 영제교라 하였고, 창경궁에서 정문인 홍화문과 명정문 사이를 흐르는 어구 옥천에 걸친 다리를 옥천교라 하듯이 이 어구와 다리들은 궁궐 형성에 있어서 하나의 법도였다.
그런데 경복궁의 영재교나 창경궁의 옥천교는 정문에서 들어오는 주 방향으로 놓였는데 반하여 금천교는 직각으로 꺾여서 놓여 있다.
금천교는 두 홍예(아치)를 틀어 교각을 삼고 거기에 의지하여 귀틀을 설치하고 청판들을 건너지르고, 그 좌우 가장자리에 난간을 설치하였다. 난간에는 법수와 동자를 각각 여섯씩 좌우에 세우고, 기둥 사이에는 귀접이한 돌난대를 얹었다.
전라남도 강진군 병영면의 병영 홍교(全羅南道 康津郡 兵營面 兵營虹橋)
兵營虹橋(병영홍교)
병영면소재지에서 병영 하고리로 오는 중간지점(배진강 옆)에는 병영출신 숭록대부 유한계 정승의 금의환양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홍교’라는 돌다리가 있다.
병영의 관문으로 배진천에 건축된 홍교는 일명 ‘배진강 다리’로 불리웠고 화강암 74개를 둥그런 아치형으로 쌓아 크고 작은돌을 채운후 점토로 다리윗부분을 마감했다. 높이 4.5m 너비 3m 길이6.75m 크기의 홍교다리는 옛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미적이면서도 건축공학적인 면을 엿볼 수 있다.
다리의 중앙에 돌출돼 여의주를 물고 있는 용머리는 정교함이 더해져 타지역 홍교에 비해도 손색이 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방유형문화재 제129호로 지정되어 병영의 명물로 불리우는 홍교 건축연대는 숙종 무인년(1698)에 양한조가 감독해 준공한 것으로 나타난다.
또 병영 주민들은 매년 정월 보름이면 민속행사로 홍교위에서 나이 숫자만큼 목화씨앗을 뿌리며 다리밟기를 했지만 지금은 명맥이 끊어진 상태이다.
송광사 삼청교(松廣寺 三淸橋),
삼청교(三淸橋)
조계산(曺溪山) 도립공원의 서편에 자리 잡고 있으며 통도사, 해인사와 더불어 한국 삼보사찰 중의 하나다. 송광사(松廣寺)는 예로부터 한국의 유명한 고승을 많이 배출하여 승보사찰이 되었으며 국사만 총 16명을 배출하였다고 한다.
삼청교(三淸橋) 및 우화각(羽化閣)이 18세기 초의 건물은 다리와 누각, 문을 합친 유일한 구조로 전라남도 지방 유형문화재 제 59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지붕은 한쪽은 너새가 있는 박공구조이고, 다른 한쪽은 박공구조입니다. 처마는 단순하게 기둥에 지지되어 있습니다. 들보에는 꽃무늬 판이 장식되어 있으며 건물 안에 문이 있다.
승보사찰 송광사에 없는 것 세가지
풍경과 석탑 그리고 석등이 없고
풍경이 없는 것은 바람에 풍경소리가 나면 승녀들의 공부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라고 하며
석탑과 석등이 없는 것은 송광사 터가 풍수학적으로 물위에 뜬 연꽃 모양이라 하여 무거운 석탑과 석등을 세우면 가라앉기 때문이라고 한다.
<계속됨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