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놀고 잠잘 때 자랍니다.
주말이면 창원의 사파동성당에서 집사람 카타리나와 저의 두 아들 가브리엘과 요셉에게 참 친절하게 대해 주셨던 선배님께 깊이 감사를 드립니다.
서울에서 근무하시면서도 항상 선배님과 사모님께서 창원에 있는 성당 미사에 참석해서 후배들과 함께 해 주셔서 너무 감사했습니다.
당시 아이들이 6살, 4살이었는데 지금은 14살 12살이 되었으니 세월이 참 유수와도 같이 빨리 흘러간다는 것을 느낍니다. 집 사람이 늘 사파동성당 뒤편에 있는 대동상가에서 아이들에게 떡볶이와 오뎅을 사 먹이며 평일 날에도 성당을 열심히 다녔습니다. 그 꼬마들이 지금은 초등학교 6학년 4학년이 되었습니다.
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해서 창원에서 그림을 그렸던 아내는, 아직도 사파동성당에 다녔을 때 미사가 끝난 후 친근하게 대해 주셨던 선배님과 사모님을 생각하면 늘 편안한 가수 ‘김창완’이 떠오른다고.. 지금도 저녁밥 먹다가도 제게 자주 말하곤 합니다.
그래서 선배님이 바쁘시지만 꼭 한번 찾아뵙고 인사를 올려야겠다고 맘은 먹고 있었는데.. 선배님 댁에 찾아가서 인사를 드리기도 쉽지 않고 해서 금년에는 1월 1일부터 문자로 인사라도 드려야겠다고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있었습니다.
막상 펜을 잡고 문장을 내려가니 졸필(?)이라 쉽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제 집사람이 김창완을 좋아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선배님하고 이미지가 같기 때문이래요. 집사람은 김창완 선배님의 “어머니와 고등어”라는 노래를 좋아하거든요.
집사람은 제가 2005년도에 서울에 다시 올라오기 전에 경남 진주에 사셨던 친정 엄마를 ‘담도암’으로 먼저 떠나보냈습니다. 그래서 집사람이 친정 엄마가 생각 날 때면 어렸을 때 고등어를 구워주었던 그 노랫가락 그대로 “소금에 고등어를 절여 놓고 주무셨던” 모습이 떠오르나 봅니다.
「한 밤중에 목이말라 냉장고를 열어보니
한 귀퉁이에 고등어가 소금에 절여져 있네
어머니는 고등어를 구워주려 하셨나 보다
소금에 절여 놓고 편안하게 주무시는 구나
나는 참 바보다 엄마만 봐도 좋은 걸」
서민들에게 값도 싸고 가장 친근한 생선이 고등어라고 합니다. 조선시대부터 ‘바다의 보리’라고 불릴 정도로 영양가도 높고 염장한 것이 곳곳에 판매되었습니다. 동해, 서해, 남해 할 것 없이 두루 생산되었다고 합니다.
제 생각엔 선배님도 다양한 계층에서 꾸준한 사랑을 받고 계시니 시민타자, 시민배우, 시민가수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민중의 보편정서를 대변하고 계신 것으로 이해합니다.
지금으로부터 30년 前 제 또래의 친구들이 초등학교 2학년 때인 1979년에는 친구들이「어깨동무」, 「보물섬」이라는 만화를 많이 봤습니다. 저는 만화책을 살 형편이 못되어 친구들 어깨너머로 보거나 운이 좋으면 빌려 보기도 했습니다.
허영만 화백님의 작품이죠. 소년들의 우정과 성장을 밝고 경쾌한 터치로 그려낸 아동만화입니다. 한국인의 정서와 살냄새를 펜끝으로 가장 잘 그려내는 만화가이시기도 하죠. 30년의 집념으로 우리 밥상의 맛을 그려낸 「식객」으로도 유명합니다. 선배님하고 이미지도 비슷해서.. 선배님도 이 만화를 보셨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어느 초등학교 ‘학부모 연수자료’에 이런 내용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아이들은 작은 어려움에도 쉽게 굴복하고 좌절하며 여러 가지 면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5학년 3학년 두 아들을 키워 봐도 아이들은 호기심은 많은데 집중력이 모자라고 부모의 말 보다는 행동을 따른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잘 놀고, 잘 먹고, 잘 자야 무럭무럭 큽니다. 아이들은 놀고 잠 잘 때 자랍니다.
학생도 놀 권리가 있고 잠 잘 권리와 쉴 권리가 있는 인간입니다. 선배님께서 우리 아이들에게 밥 먹고 잠 잘 권리를 보장해 주자고 하시는데 공감하고 또 공감합니다.
선배님께서 어릴 때 아버님과 찍은 사진을 인터넷에서 본적이 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똑 같이 머리를 깍고 찍은 사진이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선배님에 대한 진한 父情이 묻어나 있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 시나 수필을 잘 쓰셔서 선생님들 사랑을 독차지 하신 것, 논과 밭에서 함께 하며 가슴과 가슴이 통하는 방향으로 농촌회생을 고민하시는 것, 과묵하면서도 포용력과 리더십이 뛰어나신 것, 학생들에게 일방적으로 설명을 듣게하는 수업방식 보다는 스스로 발표하게 하고 토론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 교육에 관심이 많아 야학을 여신 것 등..
이 모든 것이 아마도 이 빛바랜 흑백사진 1장의 父情의 한 점에서 축약적으로 유래되었다는 사실은 정상적인 인간의 오감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가나 쉽게 캐치할 수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술이 미디어다”라는 선배님의 신조어가 맘에 들었습니다. 편안한 친구들과 아님 집사람과 조용히 빈 잔에 술을 채우며 이야기도 나누고 감정, 문화도 나누는 것이 좋습니다.
제 자신도 느리고 더디지만 기쁘게 함께 갈 수 있는 삶을 살고 싶기 때문일 것입니다. 항상 허겁지겁 하는 것 같은 현실의 삶에서 우리의 꿈과 이상도 벽돌을 쌓듯 하나하나 튼튼하고 실하게 쌓아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면, 이상하게 선배님의 편안한 얼굴이 떠오르곤 했습니다.
6년전 제가 살던 ‘사파동’은 품질 좋은 쌀의 주산지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쌀밭들이 살무정, 살푸정으로 그리고 사파정으로 말이 변했다고 들었습니다. 창원 사파동에서 소리를 지르면 진례면까지 그 소리가 들렸다고 하니, 넓은 터에서 농사가 성하긴 성했던 모양입니다.
2009년 연말인가.. 인터넷에서 눈내린 정병산을 사진으로 본적이 있습니다. 정병산에서 바라다 보면 주남저수지도 훤하게 내려다 보이죠..
수만 마리의 철새들이 겨울 하늘을 화려하게 수놓고 있는 주남저수지.. 특히, 해질 녘 석양을 배경으로 하늘을 새까맣게 뒤덮는 ‘가창오리떼’의 군무모습은 탐조의 백미입니다. 이들은 시베리아에서 번식하여 한국에서 겨울을 난다고 합니다.
창원은 선사시대부터 철기문명을 꽃피운 역사적인 전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러한 전통이 국내최초의 계획도시, 기계공업의 메카, 산업화 시대의 모순과 혼란을 지나
선배님하시면 생각나는 단어인 서민적인 소주와 생선 고등어, 야학, 더딘 삶의 여유 등 수 많은 점으로 모자이크처럼 구성된 철새의 거대한 군무처럼, 이상과 꿈으로 미래로 전진하리라 확신합니다.
오늘같은 날에는 6년전 창원 사파동 성당에서 근무하셨던.. 정병산의 아침의 눈보다 맑은 영혼의 이형수 블라시오 주임신부님, 정연동 세바스챤 신부님, 김정훈 도미니코 신부님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2009. 10. 14. 이형수 블라시오 신부님께서 파라마타 교구 한인성당에서 하신 강론 내용 중 일부입니다.
“삶에 필요한 온갖 지식, 지혜, 깨달음은 먼저 말을 정성을 다해 들을 때 이루어집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오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이루어집니다.”(로마서 10장 17절)
선배님 신묘년 한 해도 늘 평안하고 건강하십시오.
첫댓글 잘 어울리는 부부입니다 ㅡㅡㅡ순수한 미소가 아름답습니다
서로 닮았습니다ㅡ ㅡ 지금도 서로 사귀는 사람들 같습니다 ㅎㅎ
ㅡ 더 많이 사랑하고 이해하는 부부가 되시기를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