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초반 말단 직원 시절 제일 어려운 업무가 기안문(방침 문서)과 시행문(기안문 전달) 타자와 시외전화 사용, 복사 등이었다. 부수적인 일에 주 업무보다 더 신경을 쓰고 시간과 노력을 들였다. 당시는 컴퓨터나 인터넷도 없었고, 비용 절감을 위해 시외전화도 통제했다. 시행문은 타자치고 첨부물은 복사나 등사했다. 부장 결재 문서까지는 손 글씨로 작성하고 이사 이상의 결재 문서는 타자쳤는데, 타자원 한 명이 30~40명 부서원 타자를 전담하니 기안문 타자에 2~3일 이상 걸렸다.
기안문 결재 과정마다 상사의 다양한 질문에 막힘 없이 답변해야 하기에 철저하게 준비해야 혼나지 않는다. 요즘은 웬만한 지식은 인터넷에 검색하면 되지만, 당시엔 전문가나 관계 관계기관에 문의하거나 도서관을 찾아서 관련 지식을 습득했다. 기안문서는 결재 과정에서도 과장, 부장, 이사 등을 거치면서 수정 부분이 많으면 다시 타자하는 때도 있다. 다른 직원들이 손 글씨로 작성하는 부장 결재 문서까지 필자는 악필이라 타자를 시켜야 해서 타자수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졌다.
결재가 난 문서를 지사에 전달하기 위해서는 타자원에게 시행문 타자를 또 부탁해야 한다. 시행문에 덧붙이는 첨부물은 복사하거나, 보내는 곳이 많을 때는 등사를 한다. 부서마다 배치하기엔 복사기가 부족하여 십여 대를 한곳에 모아놓고 전체 직원이 쓰다 보니 복사기가 과부하로 용지가 걸리거나 고장이 나 관리 직원의 눈총을 받았다. 시행문 보내는 곳이 많을 때는 스텐실((stencil, 등사 원지)에 타자하여 등사실에 등사를 의뢰하는데, 관리 직원에게 굽실거려야 했다.
지방 지사(지점)와의 시외전화는 경비 절감을 위해 교환실을 통해서만 가능했다. 지역본부와는 전용회선(통신사에 일정액을 지급하고 무제한 통화)이 설치돼 통화에 애로가 없으나, 지방 지사와 시외전화를 하려면, 문서로 총무부에 요청하고 그 허가증을 전화교환실에 제출하여 시외전화를 했다. 전화 요청이 거부되거나 급한 전화는 교환원들에게 뇌물(?)을 바쳐 통화를 한다. 시외전화 통제가 없는 지사에서 전화가 걸려 오면 직원 수명이 번갈아 줄줄이 통화하는 진풍경도 벌어진다.
출근하면 다방에 커피, 쌍화차 등을 시켜서 사무실에서 마시곤 한다. 보온병과 찻잔 등을 보자기에 싸서 배달 온 여성 다방종업원(레지)과 정담을 나누는데, 신입은 정겨운(?) 대화에 감히 낄 수도 없다. 점심 식사는 보통 과나 계별로 하는데 메뉴 선정과 식당 선택은 상급자가 선호하는 식성을 파악해 식당을 선택해야 한다. 업무 감사를 받을 땐 감사 자료 작성하느라 모텔에서 철야 작업을 하기도 하고, 야유회나 체육대회 준비하느라 고생은 하지만 뒤풀이가 흥겹다.
계속되는 야근에 퇴근 후 신입끼리의 한 잔에 회포를 푼다. 회식 때는 넥타이 머리띠로 노래와 춤으로 기쁨조가 되고, 짓궂은 선배들이 따라주는 구두(잔) 맥주도 마신다. 발동이 걸리면 고고장에서 광란의 밤을 보내고, 통금에 걸리면 상가(喪家) 방문 핑계로 지인 부모님이 몇 번씩 사망(?)한다. 용돈이 부족하면 월급봉투를 변조하여 수당, 보너스나 연월차 수당 등을 착복(?)한다. 옛날엔 단골을 정해놓고 외상술을 마시고 월급날 갚거나, 월급을 당겨 받는 가불(假拂)도 했다고 한다.
눈앞의 경비 절감에 눈이 멀어 불필요한 부대 업무에 에너지를 소비하였다. 신입 직원 시절 타자원, 전화교환원, 복사실, 등사실 관리 직원 등에게 커피 믹스, 브라보콘과 헤픈 미소를 많이 바쳤다. 다행히 90년대부터 사무자동화로 1인 1pc, 사무실마다 복사기, 프린터, 팩스 등이 설치되고 시외전화도 제한이 없어졌다. 전자결재를 받고, 문서를 업로드하면 수백 곳의 원격지 사무실에 실시간으로 전달된다. 갑질, 스트레스 단어도 모르고, 혼나고 시달리며 야근을 밥 먹듯 해도 통과의례인 양 힘든 줄 모르고 퇴근 후 한잔 술로 달랬다.
0. 브라더 루이(Brother Louie) - https://www.youtube.com/watch?v=rzuOJ6JtYJg
0. 할렘 디자이어(Harlem Desire) - https://www.youtube.com/watch?v=ohWU8j_2iEg&list=RDMM&index=32
0. 가터 고 홈(Gotta Go Home) - https://www.youtube.com/watch?v=hBP9txbREWI&list=RDMM&index=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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