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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 전에 가봐야 할 은신처 (정감록)
정감록이 예언한 십승지 마을
"보은 속리산 아래 증항(甑項) 근처로, 난리를 만나 몸을 숨기면
하나도 다치지 않을 것이다."
속리산에는 은신처로 숨을 만한 자리가 많다.
고려 공민왕은 홍건적의 난을 피해 도망왔다가
홍건적 소탕 뒤에 연이어 일어난 반란 때문에 환도하지 못하고
보은에 몸을 숨겼다고 한다.
속리산 깊이 자리 잡은 법주사에는 고려 공민왕 뿐 아니라
세조도 거쳐간 사찰로 유명하다.
경북 영주가 사람 살기에 좋다고 했던 이중환의 택리지는
속리산 일대도 '난리를 피할 수 있는 곳'이라고 쓰고 있는데,
실제로 이곳에도 십승지를 찾아와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구병산에는 6.25 한국전쟁 때 이북에서 내려온 주민들이 지금도 살고 있다.
보은에는 세조가 벼슬을 내린 소나무로 유명한 정이품송이
600년 넘게 살고 있다.
속리산, 구병산, 법주사와 함께 꼭 들려봐야 할 곳이다.
보은은 대추의 고장으로 유명한데
매년 10월이면 대추 축제가 열린다.
4. 전라북도 남원 운봉
"남원 운봉 동점촌(銅店村) 부근 100여리이다."
남원 운봉 지역은 일대가 고산 분지로 이루어져 있어서
피신처로 삼기에 적합하다.
한국지명총람에는 한 여인이 이성계를 운봉의 황산으로 안내해
왜장 아지발도를 죽이고 왜적을 물리치게 했다고 한다.
이성계는 그 여인을 산신령이라 생각해 여상(女像)을 새겼고,
그 고개를 산신령이 사는 고개라 하여 '여원치(女院峙)'라 부르고 있다.
이성계가 적장 아지발도를 무찌른 전투가 바로
고려사에 길이 남은 '황산대첩'인데,
이를 기념하여 황산대첩비를 세웠다.
또, 남원은 판소리의 양대 산맥인 동편제의 태자리이다.
판소리 다섯 마당 중의 하나인
흥부전의 배경이 된 남원시 아영면 성리마을이 있다.
이곳은 흥부가 정착하여 부자가 된 발복지(發福地)라 한다.
춘향전의 주인공인 춘향과 이도령이 처음 만난 광한루도 남원에 있다.
이러한 판소리 소재의 발원지가 된 것은
십승지로 알려져 각지에서 많은 사람이 찾아와 살았다는 것과
결코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남원에는 앞서 말한 광한루와 춘향테마파크, 황산대첩비,
지리산 일대와 지리산 허브밸리 등을 방문해보면 좋다.
가왕 송흥록 선생의 생가, 작가 최명희의 소설 '혼불'을 기념하기 위한
혼불문학관 등도 있다.
먹을거리로는 남원추어탕이 유명하다.
"예천 금당실에는 난의 해가 미치지 않는다.
병란이 미치지 않지만 임금의 수레가 다다르면 그렇지 못하다."
조선 말기 이유인은 명성황후의 단골무당으로 신임을 받았던
신령군의 치맛바람으로 벼락출세를 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대한제국 법부대신이었던 이유인은
어느날 갑자기 금당실에 찾아와 99칸 행궁을 지었다.
금당실 마을에 내려오는 이야기로는
이유인 대감이 명성황후의 도피처로 금당실로 결정하고 행궁을 지었다는 설이 있다.
정감록에 의하면 십승지의 조건으로 '임금의 수레가 닿으면 안 된다'는 조건이 있었는데
그 금기가 어겨질 뻔한 것이다.
금당실은 실제로는 별다른 전란의 화를 입지 않았다.
마을 주민들은 이를 십승지 마을로써의 축복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조선의 도읍 후보지로 거론됐을 만큼 명당으로 알려진 금당실 마을이
금당(金塘)인 것은 마을 지형이 '물에 떠있는 연꽃'을 닮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고택들에 대한 복원공사가 잘 되어 있어서
'생활문화체험마을'로 선정된 금당실 전통마을은
한옥탐방 여행을 하기에 적격이다.
주위에는 학가산 자연휴양림, 예천 용문사, 예천 온천, 회룡포 등
가볼 만한 명소가 많다.
"유구와 마곡의 두 물길 사이 둘레가 200리나 되므로
피란할 만하다."
마곡사는 주변 산세가 겹겹이 에워싸
난리를 피할 수 있는 십승지로 꼽혔다.
백범 김구 선생과 매월당 김시습이 이 곳에 은신한 것으로 유명하다.
김구는 명성황후 시해 사건에 격분하여 일본 장교를 죽이고
이곳 마곡사까지 내려와 은신했다.
약 3년 간 숨어 지내던 김구는 이후 조국 광복 운동을 하게 된다.
또, 김시습은 세조가 단종을 몰아내자 이곳에 은신했다.
세조는 김시습에게 벼슬을 내리고자 이곳 마곡사까지 찾아왔지만
그를 찾지 못했다.
마곡사 영산전의 현판은 이 때 세조가 남긴 것이라고 한다.
다른 십승지처럼 이곳도 나라의 난리가 있을 때마다
십승지를 찾아온 사람들로 정감록촌을 이루었다.
1800년대 이후에는 전국의 유생들이 이 곳으로 몰려와 자손을 보존하려 했다.
한국전쟁 때는 이북 주민들도 많이 모여 들었다.
계룡산이 가까이에 있고, 공주산성, 무령왕릉, 공주 한옥마을 등이
가볼 만한 곳이다.
공주는 밤으로 유명하다.
7. 강원도 영월 정동쪽 상류
"영월 정동(正東)쪽 상류는 난리를 피해 몸을 감출 만하나,
수염이 없는 자가 먼저 들어가면 그렇지 못하다."
영월의 십승지 역시도 한국전쟁 때 이북 주민들이 많이 몰려왔다.
기묘사화 때 중종에게 숙청을 당한 조광조의 후손들도
영월의 미사리에 숨어들었다고 한다.
영월은 또 김삿갓면으로 유명하다.
방랑시인 김삿갓의 할아버지가 홍경래의 난에 휩쓸리면서
멸문지화를 당한 김삿갓은
어머니와 함께 간신히 이곳 영월땅으로 숨어들었다.
방랑을 하던 김삿갓은 죽어서 다시 고향 땅에 묻혔다고 한다.
김삿갓의 생가와 김삿갓 묘, 시비, 문학관 등이 조성되어 있다.
영월에는 세조에게 왕위를 빼앗긴 어린 단종이 유배왔던 청령포와
단종의 능 장릉이 있고,
한반도면 옹정리의 한반도 지형이 있다.
한반도 모양을 닮은 지형을 갖춘 한반도 지형은 유명 관광지로 자리 잡았다.
8.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
"무주 무봉산 북쪽 동방 상동으로 피란 못할 곳이 없다."
오지의 대명사로 불렸던 '무주구천동' 이웃에 있는 무풍은
덕유산 직전에 있는 대덕산이 감싸 안고 있다.
이중환의 택리지에는 '무풍을 복지(福地)'라고 했다.
또, 택리지에 '충청, 전라, 경상 3도가 마주친 곳'에 있는 덕유산이 가까이에 있다.
그 중 '나제통문은 신라와 백제가 치열한 영토 다툼을 벌이던 곳으로
'신라 사람이자 전라도 사람'으로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전라도 사람들이 살고 있기도 하다.
이런 지리적인 요인으로 무풍에는
고종과 명성황후가 피신할 곳으로 99칸짜리 별궁 '명례궁'을 지었었고
지금은 터가 남아있다.
을미사변으로 갑작스럽게 명성황후가 시해되어
이곳으로 피신하지는 못했다.
덕유산의 향정봉에 오르면 충청, 전라, 경상 3도를 한 눈에 볼 수 있고,
덕유산 자락에 있는 무주리조트는 최고의 휴양지로 꼽힌다.
구천동, 나제통문 등을 함께 둘러보는 것도 좋다.
9. 전라북도 부안군 변산
"부안 호암(壺巖) 아래가 가장 기이하다."
부안 변산은 허균이 은거했던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가 거처한 곳은 부안 변산 우반동 골짜기에 있는 정사암이었다.
이곳에서 허균은 '홍길동전'을 집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그는 조선 최고의 여류문인으로 꼽히는 이매창을 만나게 되는데
둘은 시를 통해 정신적인 교감을 하며 각별한 친구로 지냈다고 한다.
매창이 죽은 후 그는 그녀를 위해 시를 남기기도 했다.
매창공원에는 매창의 묘와 매창의 시비 등이 있다.
변산반도에는 붉게 타오르는 석양을 볼 수 있는 낙조대,
새만금방조제, 곰소항, 격포항, 채석강 등 둘러볼 곳이 많다.
10.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산
"합찬 가야산 만수봉으로 그 둘레가 200리나 되어
영원히 몸을 보전할 수 있다.
동북쪽 정선현 상원산 계룡봉 역시 난을 피할 만하다."
만수봉은 '장수하는 마을'에 붙는 지명이다.
정감록에는 합천 가야 만수동(萬壽洞)이라고 쓰고 있지만
현재는 없는 지명이다.
유추해서 그 지역을 찾아내야 하는데
풍수지리학적으로 볼 때 해인사에서 바라보이는 맞은편
돼지골일 확률이 높다고 한다.
가야산의 대표적인 인물로는 고운 최치원 선생이 있다.
반란을 일으킨 황소를 글로써 격퇴한 '토황소격문'으로
당나라에서 더 유명해진 인물이다.
후에 벼슬을 버리고 해인사 근처 홍류동 계곡으로 들어왔다.
해인사는 가야산 가장 깊은 곳에 있는 피신처다.
한국전쟁의 위기도 무사히 넘긴 해인사에는 팔만대장경이 있다.
한국전쟁 당시 해인사에 있는 빨치산을 몰아낼 때
폭탄을 쓰지 않고 기관총을 사용해 대장경의 파괴를 막았다고 한다.
정감록에서 말하고 있는 십승지는 하나 같이
깊은 산 속에 자리잡아 쉽게 접근할 수 없고,
풍수지리학적으로 좋은 곳에 위치해있으며
자급자족으로 살아갈 수 있는 곳들이다.
이제 21세기에 십승지는 더 이상 은신이나 도피처로써의 장소보다는
역사의 장소를 보며 쉬어갈 수 있는 곳이 되어 사람들의 발길을 이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