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정한 지혜의 길
(잠 1:1-9) “다윗의 아들 이스라엘 왕 솔로몬의 잠언이라 이는 지혜와 훈계를 알게 하며 명철의 말씀을 깨닫게 하며 지혜롭게, 공의롭게, 정의롭게, 정직하게 행할 일에 대하여 훈계를 받게 하며 어리석은 자를 슬기롭게 하며 젊은 자에게 지식과 근신함을 주기 위한 것이니 지혜 있는 자는 듣고 학식이 더할 것이요 명철한 자는 지략을 얻을 것이라 잠언과 비유와 지혜 있는 자의 말과 그 오묘한 말을 깨달으리라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내 아들아 네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라 이는 네 머리의 아름다운 관이요 네 목의 금 사슬이니라”
지혜란 히브리어로 호크마(레브 소메아 즉 겸손히 듣는 마음) 義結創肢이다.
소피아 : 환히 꿰뚫어 보다.
투시아 : 감각이 아닌 초자연적인 능력 등이다(의롭게 살아가는 지식).
우리가 보통 잠언(箴言)이라고 하면, 어떤 훌륭한 분들에게서 나온 인생의 오묘한 원리를 아주 짧은 한 마디의 말로 표현한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서 세익스피어의 작품을 보면, 우리가 아주 잘 아는 표현들이 많이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중에 한 가지 예를 든다면‘반짝이는 것이 다 금은 아니다’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이 한 마디를 통해서 우리 인생의 길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훌륭한 사람들이 한평생을 살면서 깨달은 것을 단 한 마디의 말로 요약한 것이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데, 아주 중요한 지침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말씀의 지혜는 우리에게 더욱더 참다운 지혜가 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설교자는 하나님의 진리의 원리만 말하지 않습니다. 설교자는 하나님의 진리를 말하면서 이 진리가 우리들의 삶에 어떻게 실제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지? 구체적인 교훈들을 가르쳐 줄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때로는 하나님께서 큰 부흥을 허락하실 때나, 하나님의 말씀이 폭포수같이 쏟아질 때는 그 구체적인 적용도 아주 풍성해지게 됩니다. 이때, 사람들은 하나님의 기본적인 진리 자체도 좋지만, 그 말씀의 구체적인 적용만 모아도 어마어마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원래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진리를 선포하면서 그 말씀에 따라서 실제적인 삶에 적용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워낙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듣다보면, 그 적용들만 모아도 엄청나게 값어치 있는 교훈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모여진 것이 곧 성경에 있는 잠언(箴言)입니다.
구약 성경의 잠언은 세상 사람들의 가르침과는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가르침은 자신들이 인생을 살면서 깨달은 진리를 아주 간단한 한 마디의 말로 재치 있게 요약을 한 것입니다. 사실 세상적인 잠언들이 성경적인 잠언들보다 더 재미가 있고 센스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적인 잠언들은 하나님의 진리를 선포하면서 그 적용 부분을 모아 놓은 것입니다.
그래서 어찌 보면, 세상적인 잠언들과 비슷하거나 똑같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잠언들이 나오게 된 배경이나 뿌리는 다릅니다. 결국 잠언은 하나님의 진리를 나무로 생각할 때, 그 꽃들만 모아 놓은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가르침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다발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어떤 때는 세상적인 꽃다발과도 비슷하거나 같은 것도 있지만, 실제로 그 뿌리는 다른 것입니다.
Ⅰ. 잠언의 구조와 특징
잠언은 이스라엘 왕 솔로몬이 지은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또 실제로 왕상4:32절을 보면 솔로몬이 삼천 가지의 잠언을 만들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솔로몬이 모두 만들었다기보다는 다윗 때부터 하나님께서 부흥을 주시면서 엄청나게 많은 설교들이 선포되었을 때, 솔로몬이나 그의 신하들이 그 적용 부분을 집대성(集大成)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잠언은 넷 혹은 다섯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첫째 부분은 1-9장까지입니다. 여기서 저자는 하나님의 지혜와 세상 적인 지혜를 두 여자의 비유로 비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지혜도 길에서 사람들에게 자신을 선전하고, 세상의 지혜도 길거리에서 사람들에게 자신을 선전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지혜는 바른길을 인도하기 위한 선전이라고 한다면 반면, 세상의 지혜는 어리석은 남자를 유혹하는 창녀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창녀(娼女)들은 겉으로는 그 남자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돈 때문에 사람을 유혹하는 것이며, 결국 그 남자를 파멸로 이끌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지혜는 온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의 창조의 원리와 능력이 가르치는 것입니다.
잠언의 둘째 부분은 10-24장까지로 볼 수 있는데, 학자들은 22-24장을 또 다른 새로운 한 단락을 구성하고 있는 것으로 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부분에서는 그야말로 진리의 꽃다발로서 거의 무분별하게 하나님의 가르침이 나열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이 부분에는 어떤 구조도 없이 닥치는 대로 좋은 가르침을 모아 놓은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요즘은 그 안에도 구조가 있다는 식으로 연구가 되고 있습니다.
셋째 부분은 25-29장까지로서 히스기야의 신하들이 수집한 솔로몬의 잠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잠언이라는 것이 어느 한 순간에 한 저자가 책을 저술하듯이 완성된 것이 아니라, 긴 시간을 두고 수집되고, 정리된 가르침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잠언에 대하여 가장 많은 관심을 가졌고 또 잠언이 많이 만들어진 것은 솔로몬 때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넷째 부분은 30-31장인데 아굴과 르무엘 왕의 잠언으로 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나오는 르무엘이 누구인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왜냐면 적어도 이스라엘 왕들 중에는 르무엘 이라는 이름을 가진 왕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학자들은 이 르무엘이 이방 나라의 왕인데, 나중에 하나님을 믿게 된 사람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잠언 안에는 이방의 지혜가 성경의 지혜로 편입 된 것도 있습니다. 이것이 옛날에는 하나님의 지혜인 줄 몰랐는데, 나중에 하나님을 믿고 보니까 그것이 더욱더 하나님의 지혜였던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또 잠언에서 문장을 표현하는 데, 가장 많이 쓰는 기법은 평행 법이라는 것입니다. 평행 법은 저자가 말하려고 하는 사상을 두세 번 반복해서 말하는 것인데, 둘째는 첫 째 내용과 반대되는 사상을 이야기해서 첫째 사상을 부각시키기도 하고, 때로는 같은 사상을 말을 바꿔 반복해서 이야기를 함으로 설명하거나 강조하는 방법입니다.
특히 구약 시대의 선지자나 설교자들은 이런 평행 법에 아주 능통한 사람이었던 것을 기억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성경의 이 잠언이 이미 하나님을 믿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왜냐면 이 잠언의 세계를 보면, 하나님의 지혜가 길거리에서 소리를 지르면서 사람들을 부르고 있는데, 이것은 오직 이스라엘 안에서만 가능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왜냐면 세상에서는 아예 하나님의 지혜라는 것 자체를 거의 들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회에서는 하나님의 지혜를 만나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사람들이 이런 하나님의 지혜를 들으려면,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보따리를 싸서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곳으로 오는 것이 우선적으로 필요했습니다.
그렇게 한 대표적인 사람이 스바의 여왕이었습니다. 스바의 여왕은 하나님의 지혜를 듣기 위해서 바쁜 일정들을 모두 취소하고 엄청난 선물(금4톤)을 준비해서 솔로몬의 설교를 들으러 이스라엘로 왔습니다. 스바 여왕이 예루살렘에 와서 가장 놀랐던 것은 이곳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너무나도 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솔로몬의 신하들은 매일 하루 종일 하나님의 지혜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스바 여왕은 자기가 예루살렘에서 가장 부러웠던 것이 곧 이것이라고 했습니다. 예루살렘 사람들이나 솔로몬의 신하들은 자기가 원하기만 하면, 매일 하나님의 지혜를 들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에 잠언이 필요했던 이유는 이스라엘 안에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이 흔하다 하더라도 얼마든지 본인이 하나님의 말씀을 싫어하고 타락한 정욕의 길을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잠언에서 지혜의 길도 있고, 정욕의 길도 있다는 것은 이 세상 사람들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우리 중에 부흥이 일어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얼마든지 정욕의 길 즉 세상의 길로 갈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것이 곧 하나님의 백성들의 중요한 과제입니다. 우리에게 부흥이 일어나고 있고, 하나님의 말씀이 강같이 풍성하다 해서 모든 것이 다 된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부흥을 지키기 위해서 다시 한 번 우리 자신을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자기를 쳐서 복종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 우리가 자만(自慢)에 빠져서 하나님의 말씀을 소홀히 할 때는 부흥은 꺼지게 되고, 하나님의 축복은 사라지게 됩니다.
그래서 잠언이 이야기하는 것은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무한히 풍성한 하나님의 말씀이 있고, 부흥의 축복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겸손히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하고, 지켜야 할 책임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Ⅱ. 하나님 말씀의 유익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세상에 여러 가지 출세의 길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 세상에는 사람들 누구나 사모하는 많은 보물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는 돈을 많이 가져서 부자가 되는 것도 있고, 권력자가 되는 것도 있고, 유명한 학자가 되는 것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들에게 이런 세상적인 성공을 하는데, 필요한 요령이나 지혜를 주는 것 같지가 않습니다. 만약 이 세상에서 성공하는 데 필요한 요령이나 지혜를 가르쳐주는 데가 있다면, 사람들은 누구든지 기를 쓰고 가서 배우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지혜는 일단 그런 세상 적인 성공에는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지혜가 일차적으로 관심을 가지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우리가 어떻게 하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에서 살아갈 것인가? 하는 이것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없다면, 하나님의 지혜를 배우려고 애쓰는 사람들은 쓸데없는 시간 낭비만 하는 자들로 이 세상에서 가장 미련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 저자는 이 세상의 모든 축복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지속적으로 복을 받는 비결은 하나님을 붙드는 것이며,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유지하는 이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지혜를 주셔서 모든 것을 분별하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축복의 길을 걸어가는데 가장 위험한 것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나도 모르게 하나님의 축복이 막혀 버리는 이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정욕을 따라갈 때, 일어나게 됩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자기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피조물들 중에서 가장 간사하고 가장 교활한 것이 우리 인간들입니다. 거기에 우리 자신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축복의 길을 지속적으로 가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이 하는 달콤한 꾐에 넘어가지 말아야 할 뿐 아니라, 자기 자신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두들겨 잡아서 올바른 길을 가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잠언 1장 1절부터 9절까지는 잠언 전체의 서론에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장언의 첫 부분은 하나님의 말씀이 주시는 유익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젊은이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에는 이런 놀라운 유익이 있다는 것을 알려줌으로서 귀를 솔깃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잠언의 저자는 잠언을 듣는 사람들에게 먼저 하나님의 말씀이 주는 유익부터 알려주고 난 후에, 진정한 지혜는 바로 이것이다.(즉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다)라는 식으로 말씀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지혜에 대한 이 선전은 절대로 과장된 선전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지혜가 처음에는 도대체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데, 무엇이 유익이 되는지? 알 수 없지만, 말씀을 듣고 살아가면서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보호되고 있으며, 이미 축복의 길을 걸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1절) “다윗의 아들 이스라엘 왕 솔로몬의 잠언이라”
하나님의 말씀은 객관적 진리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에 적용할 수 있는 구체적인 가르침들이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모세오경 중에서 출애굽기나 레위기에 나오는 말씀이 원론이라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생활을 하면서 체험한 것이 민수기이고, 가나안 땅 입구에서 모세가 다시 가르친 신명기는 그 적용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말씀의 적용은 식물이 싹이 나고, 자라서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힌 것에 해당됩니다. 우리가 이것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이스라엘에 큰 부흥이 일어날 때 엄청나게 많은 하나님의 말씀이 쏟아지게 되고, 또 그 말씀이 우리 생활가운데 열매를 맺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이때 성도들이 만나면 주로 주고받는 말씀들이 설교 때, 들은 그 말씀, 그 중에서도 자기 자신에게 적용이 되었던 말씀들을 나누게 되는데, 이것이 이스라엘이 가지는 어마어마한 복인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 시대에 엄청나게 풍성한 하나님의 말씀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 생활을 한 것은 그냥 황무지를 할 일 없이 돌아다닌 것이 아니라, 어마어마한 하나님의 말씀의 폭발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에서보다는 오히려 광야에서 더 풍성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말씀으로 그대로 가나안 땅을 정복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윗 때, 다시 엄청난 말씀의 부흥을 체험하게 됩니다. 다윗은 사울 왕에게 쫓기면서 죽어라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았는데, 그때부터 이스라엘 안에는 말씀의 부흥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다윗이 왕이 되고 난 후에 그는 더욱더 말씀의 부흥을 일으켰습니다. 다윗은 자기가 왜 이스라엘의 왕이 된 것인지?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자기가 도망 다니며 생활하면서 붙들었던 그 말씀으로 온 이스라엘에 대 부흥을 일으키라는 하나님의 뜻을 알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들도 하나님의 복을 받았을 때, 두 가지 태도가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께서 나를 축복하셨으니까 이제는 복을 즐기자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다른 하나는 하나님께서 내가 고생하고 가난할 때, 붙들었던 말씀을 더 부흥시키라는 뜻으로 생각해서 더욱 말씀에 열을 올리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두 번째 태도를 가지는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올바르게 파악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 땅에 심으신 것은 광야에서 배운 말씀을 가나안에서 더 부흥을 일으키라는 뜻이었고, 다윗을 왕으로 삼으신 것은 그가 도망자로 있으면서 체험했던 그 말씀으로 왕이 된 후에 더 큰 부흥을 일으키라는 뜻이었던 것입니다. 다윗 때, 일어났던 그 부흥은 솔로몬 때, 이미 잠언으로 엮을 수 있을 정도로 풍성한 말씀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의 아들 솔로몬의 잠언’이라는 것은 솔로몬이 혼자서 만들어낸 격언(格言)이 아니라, 다윗 때부터 일어났던 말씀의 대 부흥의 요약 판 이었던 것입니다. 잠언의 저자는 먼저 하나님의 말씀이 주는 유익부터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2절) “이는 지혜와 훈계를 알게 하며 명철의 말씀을 깨닫게 하며”
여기서 ‘지혜(智慧)’라는 말은 원래‘기술(技術)’과 같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 서 말하는 지혜는 철학적인 지혜가 아니라, 공학적인 지혜 즉 물건을 만드는 요령 같은 것을 말합니다. 즉 어떤 사람이 좋은 물건을 만들어내는 것은 하루 이틀에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람이 그 일에 전적으로 헌신해서 수십 년에 걸쳐서 노력한 결과 터득되는 것이‘기술’이요, 그것은 감히 다른 사람들이 모방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성공하려면, 이런 기술적인 노하우가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조금 이름이 나고 장사가 잘 되면, 금방 다른 사람들이 모방을 해버리기 때문에 가치가 떨어져버리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붙드는 자들에게 주시는 지혜나 능력은 도저히 다른 사람이 모방할 수 없는 특별한 것들입니다. 이것은 마치 오랜 경험해서 나온 기술과 같은 것이어서 어느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탁월한 지혜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지혜가 탁월한 이유가 있습니다. 즉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따라가다 보면, 하나님의 창조의 지혜 속을 파고 들어가게 되는데, 하나님의 말씀은 무(無)에서 유(有)를 만드는 능력이 있고, 하나님의 기적을 가져오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모방이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리고 둘째는‘훈계(訓戒)’라고 했는데, 훈계는 잘못된 길을 가려고 하는 것을 바로잡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자동차를 운전할 때, 핸들을 가만히 붙잡고 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조금씩 핸들을 움직여서 자동차가 바른길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조종을 하면서 가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갈 때, 항상 바른길에서 조금씩 이탈해서 죄악의 길로 가려고 할 때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탈선에서 바로잡아 줍니다. 그런데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왜냐면 우리가 엄청난 속도로 달리면서 핸들을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은 자살 행위와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는 기계가 아니기 때문에 마음속에 언제나 죄의 충동이 일어납니다. 물론 전혀 죄를 생각하지 않고 살아간다면 좋겠지만, 그럴 수 있는 인간은 단 한 명도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 인간에게 죄의 유혹은 죽음보다 더 강하기 때문에 도저히 뗄레야 뗄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순간 죄의 유혹은 약해지고, 우리는 정신을 차리게 되면서 바른길로 가게 됩니다. 그런데 이것이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결국 대형 사고를 미리 막는 길인 것입니다.
셋째가 ‘명철의 말씀’을 깨닫게 한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명철(明徹)이라는 것은 이미 하나님의 지혜가 우리 몸에 체득(體得)되어 구체적인 분별력으로 나타나는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서 우리가 밤에 어떤 사람을 만나야 하는지, 혹은 자녀들의 진학을 위해서 어떤 결정을 해야 하는지? 는 성경에서 말씀하는 곳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성경에 나오지 않는 이런 문제들을 가지고 매일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예를 들어서 어떤 사람이 동업을 하자고 하는데,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혹은 어디에 이윤이 많이 남는 투자할 데가 있다는데, 투자를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이런 것들은 성경에서는 말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매순간 지혜를 주셔서 분별하게 하십니다. 이것이 곧 명철인 것입니다. 다음절에서는 이것을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3절) “지혜롭게, 공의롭게, 정의롭게, 정직하게 행할 일에 대하여 훈계를 받게 하며”
지혜롭게 행한다는 것은 우리가 어떤 일을 할 때, 그 일의 성격을 알고 하는 것을 말합니다. 지혜롭게 행하는 것의 반대가 맹목적으로 하는 것입니다. 맹목적으로 하는 것은 위에서 하라고 하니까 무조건 밀어붙이는 것입니다. 좋게 말하면, 불도저같이 밀어붙이는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코뿔소나 멧돼지같이 밀어붙이는 이것입니다.
불도저나 멧돼지같이 밀어붙일 때, 불필요하게 다치는 사람들이 많이 생기게 됩니다. 그리고 더 문제가 되는 것이 유연성이 없기 때문에 급작스러운 변동이 생겼을 때, 회전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자는 언제나 유연(柔軟)하기 때문에 같은 일을 하더라도 상처 없이 깨끗하게 해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공의롭게’라는 것은 죄를 이기는 능력을 말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큰일을 하고 성공을 거두었다 하더라도 죄를 지으면, 그 모든 성공은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됩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성공하는 사람들을 보면, 성공하는 만큼 죄도 많이 짓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평가를 내릴 때보면, 성공한 것은 모두 묻혀버리고 죄만 남게 됩니다. 우리 안에는 항상 교만으로 떨어지려는 경향이 있고, 죄를 지으려는 성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은 죄를 이기면서 일을 하게 하기 때문에 그 상급이 영원합니다.
그리고 ‘정의롭게’라는 것은 다른 사람에 대하여 가지는 올바른 태도를 말합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으로부터 공정한 평가를 받으려면, 우리 자신이 먼저 다른 사람에 대하여 공정(空晶)해야 합니다. 물론 우리는 인간이기 때문에 더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덜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눈으로 사람을 보면, 그런 개인적인 차이는 의미가 없어져 버립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자기 일을 하라고 보냄을 받은 자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하라고 보냄을 받았기 때문에 내 감정에 따라 사람을 다르게 대하면 안 됩니다. 결국 공정하게 대할 때, 다른 사람들도 우리를 대할 때, 아주 신사적으로 대하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특히 우리 믿는 사람들은 사회생활을 하면서 원수를 만들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대개 사람들은 눈앞에 있을 이익을 위해서 다른 사람들을 원수로 만드는 것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한번 아픔을 당한 사람들은 그것을 잊지 않고, 기억을 하기 때문에 이미 공정하다는 평가를 받을 수 없게 됩니다.
그리고 ‘정직(正職)하게’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 먼저 정직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쉽게 거짓말하는 이유는 자기 자신을 속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은 유능하거나 똑똑하지 못해도 정직한 것이 기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실수하거나 죄에 빠지거나 나쁜 생각을 하는 것을 다 이해하십니다. 그러나 적어도 우리가 하나님 앞에 정직할 때, 하나님은 모든 허물을 다 용서해주십니다.
그러나 쉽게 거짓말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용서를 받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4-5절은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유익을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요즘 텔레비전에서 광고를 할 때, 즉 그 물건을 샀을 때 주는 혜택을 열거하며‘여기에 추가해서 이런 것까지 드립니다’라고 하면서 이래도 사지 않겠느냐? 고 선전하면 소비자들은 구미가 당기게 될 것입니다. 이제 잠언 기자는 좀 더 공격적인 마케팅을 하고 있습니다.
(4절) “어리석은 자를 슬기롭게 하며 젊은 자에게 지식과 근신함을 주기 위한 것이니”
아마 이 세상에서‘어리석은’자기 자식을 똑똑하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부모는 자식을 거기가 어디든지 보내려고 할 것입니다. 한때, 우리나라 부모님들은 어리석은 자기 자식을 똑똑하게 만들기 위해 조기 유학을 많이 보내었습니다. 그 중에는 성공해서 자식이 정말 똑똑해진 자도 있겠지만, 비참하게 실패한 경우도 많이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 미련한 자를 슬기롭게 만드는 곳만 있다면, 누구든지 가려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슬기롭게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가장 먼저 우리 자신을 찾을 수 있게 만듭니다. 우리가 자신의 가치를 찾으니까 똑똑해지는 것입니다. 특히 여기에 보면‘젊은 자에게 지식과 근신함을 주기 위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젊은이들은 아직 인격이 덜 만들어진 상태입니다. 즉 젊은이들은 이제부터 배우고 받아들이는 것에 따라서 얼마든지 유능하고 큰 그릇으로 만들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젊은이들은 헛된 망상과 정욕에 빠져서 인생을 다 망칠 가능성도 많습니다. 젊은이들은 육체적 쾌락에 가장 잘 빠지기 쉬운데, 젊었을 때의 육체적 쾌락은 인생을 망치는 길입니다.
그래서 젊은이들로 하여금 자기 길을 찾게 하고, 그 길을 열심히 가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여기서‘근신(謹愼)’이라는 것은 채찍질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젊은이로 하여금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계속 바른 길을 가게 하는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5절) “지혜 있는 자는 듣고 학식이 더할 것이요 명철한 자는 모략을 얻을 것이라”
하나님의 말씀은 한번 듣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미 하나님의 말씀의 길을 가고 있는 자에게 튼튼한 엔진을 달아줍니다. 우리가 축복의 길을 가려고 하면, 계속적인 에너지의 공급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계속적인 연료를 제공해 줍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의 길을 가다가 다른 것으로 바꿀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 사람들은 자꾸만 새로운 것을 찾는다고 하면서 변덕을 부리다가 결국 하나님의 축복을 놓치는 것입니다. 그리고 ‘명철한 자는 지략을 얻는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지략(智略)은 전쟁할 때, 전략과 같은 것입니다. 우리는 자기만 정직하고 바르다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로 하여금 다른 사람들에게서 나타날 행동을 미리 알게 하고 악한 자들의 습성을 알게 해서 대비를 하게 합니다. 이것이 지략인 것입니다.
요즘 우리나라 정부의 정책 중에서 크게 실패한 것들은 모두 반대 입장에 있는 세력의 반응을 예측하지 못하고, 자기도취에 빠진 결과였습니다. 국민들의 지지율이 높은 것에 만족해서 자기도취에 빠졌는데, 반대 입장에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교묘하게 기술적으로 국민들의 여론을 혼란시킬 줄 몰랐던 것입니다. 그래서 어느 누구든지 자만(自慢)은 금물(禁物)인 것입니다.
Ⅲ. 숨겨진 하나님의 지혜
하나님은 모든 축복을 언어(言語)로 바꿔서 성경 안에 넣어주셨지만, 성경은 너무나도 평범한 언어나 내용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그 안에 있는 보물을 캐내는 것이 결코 쉽지가 않습니다.
(6절) “잠언과 비유와 지혜 있는 자의 말과 그 오묘한 말을 깨달으리라"
여기서 잠언이나 비유는 수수께끼 같은 말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다양한 형태로 되어 있는데, 그중에는 노천(露天)광처럼 읽기만 하면, 그 자리에서 보물을 캐낼 수 있는 말씀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말씀은 그 의미를 아는 것 자체가 쉽지 않고 어떤 말씀은 바위를 뚫고 깊이 파내려가야 알 수 있는 말씀도 더러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성경이 너무나 오래된 책이기 때문에 우리가 이 시대를 살아가고 성공하는 데, 도움이 되는 말씀으로 믿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우리의 인생 자체가 하나님의 말씀이 없으면, 영원히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라는 것입니다.
즉 우리는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모르고, 그냥 이 세상에 내던져진 인생과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경을 모르면, 우리 인생 자체가 광야에서나 깊은 산에서 길을 찾기 위해 허우적거리는 인생밖에 되지 않습니다. 모든 인간들은 이 세상에서 조난을 당한 인생들입니다. 우리 모든 인간들은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 기억 상실증에 걸린 자들과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내 자신에 대한 비밀들을 하나씩 하나씩 알게 되고, 인생의 수수께끼가 풀리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나에 대한 비밀을 설명해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 안에 하나님의 축복이 담겨있습니다. 성경의 가치는 일단 하나님의 말씀이 내 안에 들어오게 되면, 나 자신의 가치가 달라지는 데 있습니다. 그것도 그냥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어마어마하게 달 라 지게 됩니다.
마치 우리의 인생이 전에는 잡석(雜石)과 같았다면, 지금은 보석(寶石)의 인생으로 바뀌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축복의 문을 활짝 열어주는 능력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성경에 대해 오래된 책이라고 쉽게 판단하는 것은 너무나도 어리석은 짓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지혜의 핵심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그것은 곧 하나님을 올바로 아는데 있습니다. 그러므로 잠언 전체의 핵심은 곧 다음 절 안에 모두 들어 있습니다.
(7절)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우리 인간들이 이 세상에 살면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올바로 알고 믿는 이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인간들을 창조하신 목적이며, 인간의 가장 중요한 사명입니다. 이것이 왜 이렇게 심각한가 하면, 모든 인간들은 이 세상에 태어날 때, 선천적인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곧 하나님을 모르는 장애인 것입니다.
만약 어린아이가 태어났는데, 앞을 보지 못한다거나 혹은 심장이 잘못되어 있다면, 이것은 보통으로 심각한 일이 아닐 것입니다. 그런데 모든 인간들은 태어나면서 하나님을 올바로 모르는 장애를 가지고 태어나게 됩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나 믿는 집의 자녀들도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이 이 장애를 치료해서 하나님을 올바로 알게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올바로 안다는 것은 마치 맹인이 전부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 하나님을 알고 보니까 전부 엉터리이고, 정반대인 것을 알게 됩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다른 사람들과 달 라 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도 예수 믿기 전에는 세상이 전부인 줄 알았고, 가족들이 절대적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를 믿고 하나님을 알고 보니까 전부 정 반대인 것입니다. 즉 전에는 옳았던 것이 이제 보니까 틀렸고, 전에는 절대적으로 지켜야 할 것들이 모두 미신(迷信)이요, 엉터리인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왜‘하나님을 아는 것’이라고 하지 않고,‘경외하는 것이라’고 했을까?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올바로 알았을 때, 우리에게 나타나는 반응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올바로 알게 되었을 때, 우리 영혼 전체는 전율(戰慄)하게 됩니다. 우리가 그 전에 하나님을 알았을 때는 하나님에 대하여 들은 것이고, 간접적으로 아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마치 호랑이를 그림책에서 보는 것과 같습니다. 어린이들이 그림책에서 호랑이를 보는 것은 무섭지 않습니다. 그러나 만약 실제로 눈앞에 호랑이를 만나게 되었을 때, 전신이 전율(戰慄)하게 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을 처음으로 내 마음속에 믿게 되었을 때, 우리에게 나타나는 반응은 전율(戰慄)입니다.
마치 우리 몸 안에 아주 강력한 전기가 들어오는 것처럼, 우리는 전율하게 되고, 지금까지 내가 믿고 의지하고 있던 모든 것들이 하나님 앞에서 다 타서 없어져 버리게 됩니다. 그리고 나는 하나님을 1 대 1로 만나게 되는데, 하나님은 나를 죽이기고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는 살아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일차적으로 인도하는 것은 하나님을 만나게 하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의 일차적인 목적입니다. 이때 우리는 새 생명으로 살아나게 됩니다.
그러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합니다. 그 이유는 미련한 자들은 자신들의 상태를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이 자기에게 아무것도 하지 못하도록 잔소리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즉 내 안에는 많은 야망이 있고, 이 세상은 출세의 기회가 있는데, 이 세상에서 성공하고 출세하는 것이 복된 삶이라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가장 중요한 자기 자신을 찾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즉 그는 가장 중요한 하나님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니까 그의 삶 전체가 실패한 인생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아무리 좋은 것이 있어도 그것부터 붙잡으면 안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먼저 찾아야만 모든 것을 똑바로 볼 수 있고, 올바로 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잠언 기자는 다시 한 번 간곡하게 우리 믿는 자들을 이렇게 권고합니다.
(8절) “내 아들아 네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라”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십계명을 주시면서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제 5계명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사는 복을 이렇게 약속하셨습니다.
(출 20:12)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이스라엘 백성들의 가장 놀라운 축복은 이 세상 어느 곳에도 없는 하나님의 말씀이 흘러넘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싶어도 전해주는 자가 없어서 듣지 못하는데, 이스라엘에는 온 천지에 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특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복된 것은 부모님 자신들이 하나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부모님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일단 살며, 체험한 말씀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그 자체가 지혜요, 명철인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소나기가 쏟아진다 하더라도 장독 뚜껑을 덮어 놓으면, 비가 전혀 들어갈 수 없습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이 흘러넘쳐도 본인이 듣기 싫어해서 귀를 막고 세상길로 가면,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복 받는 비결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떠나지 않는 이것입니다. 그렇게 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복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9절) “이는 네 머리의 아름다운 관이요 네 목의 금 사슬이니라”
하나님의 말씀은 실제로 우리를 존귀하게 하며, 성공하게 하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이 세상의 복(福)과는 다른, 시들지 않는 복(福)인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보면서 이 말씀이 우리들에게 주시는 말씀인 것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흘러넘치는 것은 최고의 복(福)입니다. 그러나 본인들이 그 가치를 인정하지 않고, 말씀을 듣지 않는다면, 축복가운데서 망하는 길로 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세상에서 말씀을 듣지 못해서 정욕의 길로 가는 사람들보다 백배나 더 악한 것입니다. 일시적으로는 그들이 유능해 보이고 똑똑해 보일지 몰라도 결국은 비참하게 망하고 말 것입니다. 그들은 살아가는 것을 너무나 쉽게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간들은 아주 정밀하게 만들어졌고, 우리는 이 세상에서 결코 세상적인 성공으로는 만족할 수 없는 정교한 감정과 의지를 가진 존재들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말씀만이 우리를 살게 할 것이며, 끝까지 아름답고 복된 길을 가게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讀者)여러분, 우리가 지금까지 받은 축복에 자만(自慢)하지 말고, 끝까지 겸손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붙드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정의영(경기 동탄)
첫댓글 이번에도 전체 메일 쪽지를 보내도 한사람도 후원이 없습니다
가정의 달 오월입니다
아무리 애쓰고 참아보려 하지만 사는게 한계에 부칩니다
병원치료도 하질 못하게 된 형편입니다
후원에 참여해 주세요 후원자가 없습니다
카페를 계속해서 운영하려면 회원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통신료 공과금 30만원과,치료비,임대료.먹을것을 마련해야합니다...
카페지기는 생활고를 겪고 있습니다 작은 나눔의 손길이 되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도와주신 분을 위해서 집사람 박경옥 전도사가 매일
기도해 드리고 있습니다.....
지병으로 투병하며 카페일로 소일하며 지냅니다 수입이 전혀 없이 살고 있습니다
예수 코리아 카페를 도와주실분을 기다리고 작정기도합니다 매월
자동이체 정기후원 회원님이 계셔야 카페를 운영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동이체 회원이 없습니다 후원도 한달내내 두세분에 불과하니
카페도 생활도 지탱하기가 어렵습니다
카페지기 전화입니다 010.2261~9301
카페후원계좌-국민은행 229101-04-170848 예금주.황종구
카페후원계좌-농협 233012-51-024388 예금주.황종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