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시편 28편 1~9절
[서론] 영혼의 어두운 밤과 테레사의 부르짖음
삶을 살아가다 보면 억울한 일이나 감당하기 힘든 위기보다 우리를 더 깊은 절망으로 밀어 넣는 순간이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침묵’입니다. 내가 아무리 부르짖어도 하늘이 놋쇠처럼 닫혀 있고, 아무런 응답도 느껴지지 않는 영혼의 어두운 밤 말입니다.
16세기의 위대한 영성가였던 아빌라의 테레사(Teresa of Ávila) 역시 기도의 여정 중에 길고 참혹한 ‘하나님의 침묵’을 경험했습니다. 기도를 해도 아무런 감흥이 없고, 하나님이 멀리 계신 것만 같은 영적 건조함 속에서 그녀는 괴로워했습니다. 그러나 테레사는 그 침묵에 굴복하지 않고 오히려 십자가의 예수님을 깊이 바라보며 기도의 자리로 더 깊이 들어갔습니다. 훗날 그녀는 영혼의 지성소에서 하나님을 만난 은혜를 기억하며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하나님 한 분만으로 충분합니다(Solo Dios basta)."
실존주의 철학자 임마누엘 레비나스(E. Lévinas)가 말했듯, 인간은 나를 바라봐 주고 내 말에 반응해 주는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비로소 자신의 존재를 확인합니다. 나를 지탱하던 절대적인 하나님이 침묵하시는 것처럼 느껴질 때, 우리는 자신의 존재 가치가 뿌리째 흔들리는 실존적 고통을 겪습니다.
오늘 본문의 다윗 역시 바로 그 깊은 침묵의 구덩이 한가운데 서 있습니다. 그러나 다윗과 테레사는 그 침묵 앞에서 절망에 무너지지 않고, 마침내 구원의 확실한 평안과 찬양으로 나아갔습니다. 오늘 우리는 본문을 통해, 침묵 속에서 어떻게 소망을 얻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로 나아갈 수 있는지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 침묵의 구덩이에서 언약의 지성소를 향해 부르짖으라
본문 1절에서 다윗은 간절히 울부짖습니다. "내가 주께 부르짖으오니 나의 반석이여 내게 귀를 막지 마소서 주께서 내게 잠잠하시면 내가 무덤에 내려가는 자와 같을까 하나이다" 여기서 ‘무덤’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보르(בּוֹר)’는 생명력이 완전히 상실된 절망의 구덩이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응답하지 않으실 때 신앙인이 느끼는 상태는 실존적 죽음, 즉 영적인 구덩이(보르)에 빠진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어디를 바라봅니까? 2절에서 그는 ‘주의 지성소를 향하여’ 손을 듭니다. 여기서 ‘지성소’의 히브리어는 ‘데비르(דְּבִיר)’인데, 이 단어는 ‘말하다’라는 뜻의 '다바르'에서 유래했습니다. 즉, 데비르는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고 임재하시는 장소’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는 침묵의 구덩이(보르)에 빠졌을 때, 다윗과 테레사 수녀는 자신의 감정이나 환경을 보지 않고 ‘말씀하시는 장소(데비르)’를 향해 손을 들었습니다.
신약의 빛 아래에서 우리의 영원한 지성소(데비르)는 누구이십니까? 바로 십자가에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라며 우리의 모든 침묵과 버림받음을 대신 짊어지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피로 하늘 지성소에 들어가셨습니다(히 9:12).
성도 여러분, 기도가 막히고 세상이 침묵하는 것 같습니까? 감정에 속지 마십시오. 우리의 온전한 중보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말씀의 지성소(데비르)를 향해 빈손을 들고 부르짖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위선적 세상에서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여 기쁨을 회복하라
다윗이 처한 세상은 겉과 속이 다른 위선으로 가득했습니다. 3절에 보면 악인들은 입으로는 ‘샬롬(שָׁלוֹם, 화평)’을 말하지만, 마음에는 ‘라아(רָעָה, 악독)’를 품고 있습니다. 언어가 진실을 잃어버리고 타인을 기만하는 도구로 전락한 사회적 폭력의 현장입니다. 이러한 위선과 공의의 붕괴 속에서 다윗은 어떻게 반전을 맞이합니까? 6절과 7절입니다. "여호와를 찬송함이여 내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심이로다 여호화는 나의 힘과 나의 방패이시니 내 마음이 그를 의지하여 도움을 얻었도다" 여기서 ‘의지하여’의 히브리어는 ‘바타흐(בָּטַח)’입니다. 이는 ‘자신의 계산과 능력을 내려놓고, 하나님 앞에 자신을 전적으로 확 던져 엎드리다’라는 뜻입니다. 다윗이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바타흐)했을 때, 그의 마음에는 ‘알라츠(עָלַז)’, 즉 ‘기쁨으로 뛰어놀다’ 라는 극적인 찬양이 터져 나왔습니다. 놀라운 점은 6절에서 찬양이 터져 나올 때, 다윗을 둘러싼 외부 환경은 아직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라는 사실입니다. 현상학적으로 시선의 전환이 일어난 것입니다. 세상의 거짓된 화평에 속지 않고, 오직 하나님을 의지(바타흐)할 때, 환경을 뛰어넘는 하늘의 평강과 기쁨(알라츠)이 영혼 깊은 곳에서부터 솟구쳐 오릅니다.
사도 바울은 감옥 속에서도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빌 4:6)고 권면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바타흐의 신앙입니다. 세상이 주는 가짜 화평에 마음을 빼앗기지 마십시오. 내 삶을 하나님께 전적으로 던져 맡길 때, 그리스도 안에 있는 참된 기쁨이 우리 심령에 넘쳐나게 될 것입니다.
셋째, 개인의 구원을 넘어 선한 목자이신 주님의 백성을 어깨에 메어 올리라
본문의 서사는 다윗 개인의 절망으로 시작하지만, 결말은 놀랍게도 공동체를 향한 기도로 확장됩니다. 8절과 9절을 보십시오. "여호와는 그들의 힘이시요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의 구원의 요새이시로다 주의 백성을 구원하시며 주의 산업에 복을 주시고 또 그들의 목자가 되시어 영원토록 그들을 인도하소서" 9절에서 "그들의 목자가 되시어 영원토록 그들을 인도하소서"라고 할 때, 개역개정 성경에서 번역한 ‘인도하소서’의 히브리어는 ‘나사(נָשָׂא)’입니다. 이 단어는 ‘안아 올리다’, ‘어깨에 메다’, ‘짊어지다’라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 구절은 전원적인 목자의 이미지를 보여줍니다. 험한 길에서 지쳐 넘어진 어린 양을 목자가 자기 어깨에 메어 올려 보호하듯이, 하나님께서 주의 백성을 영원히 안아 올려 보살펴 달라는 간절한 기도입니다.
철학적으로 인간은 고립된 개인으로 존재할 때 고독과 무력감에 빠지지만, 타인을 품고 연대할 때 참된 존재의 사명을 발견합니다. 다윗과 테레사 수녀는 자신의 구원과 영적 체험에 머물지 않고, 공동체와 시대의 아픔을 가슴에 품고 참 목자이신 하나님께 그들을 안아 올려 달라고(나사) 기도하고 섬겼습니다.
이 기도는 신약에서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요 10:11)라고 말씀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완성되었습니다. 주님은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죄와 질고를 어깨에 짊어지시고(나사), 우리를 영원한 생명의 길로 안아 올리셨습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와 성도의 사명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나 혼자 구원받고 복 받는 개인주의적 신앙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연약한 이웃, 상처받은 성도, 방황하는 영혼들을 내 기도의 어깨에 메어 올리고(나사), 참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공동체적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결론] 침묵의 구덩이에서 참된 목자의 사명자로 일어서라
아빌라의 테레사와 다윗의 삶을 기억해 보십시오. 두 사람 모두 세상의 고독과 위선 속에서, 하나님의 침묵이라는 깊은 영적 구덩이(보르)를 경험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침묵의 밤이 찾아왔을 때 절망의 구덩이에 앉아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내 감정과 환경을 내려놓고 말씀이 거하는 영원한 지성소(데비르)를 향해 기도하며 손을 들었습니다.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을 전적으로 의지하며 자신을 내던졌을 때(바타흐), 하나님은 침묵을 깨뜨리시고 그들의 내면에 세상이 줄 수 없는 뛰어노는 기쁨과 확신(알라츠)을 안겨 주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나 혼자만의 영성에 머물지 않고, 지친 교회의 이웃과 공동체를 가슴에 품고 기도의 어깨에 메어 올리는(나사) 참된 목자의 사명자로 일어서게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여러분의 삶이 깊은 구덩이(보르, בּוֹר) 속에 있는 것처럼 느껴지십니까? 하나님의 침묵으로 인해 외롭고 힘드십니까?
ㆍ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대신 침묵 당하신 영원한 지성소(데비르, דְּבִיר),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 손을 드십시오.
ㆍ세상의 거짓된 화평에 속지 말고, 오직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바타흐, בָּטַח)하여 하늘의 기쁨(알라츠)을 회복하십시오.
ㆍ그리고 나에게 주신 그 은혜와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지친 이웃과 교회를 기도의 어깨에 메어 올리는(나사, נָשָׂא) 사랑의 파수꾼이 되십시오.
선한 목자 되신 주님께서 오늘도 침묵을 깨뜨리고 찾아와 여러분을 안아 올려 주실 것입니다. 그 주님의 손을 잡고 승리하는 복된 날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