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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부천에서 활동할 때 남다르게 부지런하고 무슨 일이든 정열적이던 최 씨가 있었다. 중국이 문이 열리자 열심히 드나들면서 보따리 장사를 하던 최 씨가 어느 날 상기된 얼굴로 나를 찾아왔다. 장개석 정부가 대만으로 도망갈 때 가지고 가지 못하고 숨겨두었던 달러를 찾은 중국 사람들을 만났다며 그들과 함께 한국 돈으로 바꾸는 사업을 하겠다고 했다. 은행에 확인해보니 옛날 돈이지만 지금도 사용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황당무계한 스토리였지만 그는 그것을 굳게 믿고 있었다. 오히려 말리는 나에게 자기는 인생을 걸었으니 말리지 말라면 돈을 많이 벌면 크게 후원을 할 터이니 그 때를 기다려 달라고 했다.
그 후 나는 호주로 왔고 몇 년이 지난 후에 소식이 궁금해서 그의 안부를 물었더니 중국에서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고 바로 천국으로 갔다는 것이다. 그가 세상을 떠난 일이 ‘진짜 달러 사건’ 때문인지 아닌지는 몰라도 50대의 젊은 나이에 허망하게 간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인간에게 허망한 꿈을 품게 만들기 쉬운 것은 아무래도 종교 이상은 없을 것이다. 종교에 근거해서 환상을 품고 일어났던 혁명이나 반란이 성공한 예는 마호멧트 외에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마호멧트야 자신이 직접 지도자가 되어 군사력을 사용했으니 그럴 수도 있겠지만 종교 자체의 힘 만으로 역사를 바꾼 일이 있는지는 과문한 탓으로 모르겠다.
예수가 와서 한 일은 ‘ 하나님 나라’를 선포 하는 일이었다. 도대체 ‘ 하나님 나라’를 세운 것이 아니라 ‘선포’만 한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마치 3.1 운동 때 당장 독립을 할 수 없으니 우선 선포만 한 것과 같은 것인가? 그러나 우리 선조는 임시 정부라도 세우기나 했지만 예수는 맥 없이 십자가에 달려 죽고 말았다. 100년 전에 한반도에서 태어났던 강증산을 보면 이러한 예수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38년이란 짧은 인생(1871-1909)을 살고 간 증산 강일순은 전봉준(1855-1895)과 거의 같은 시기에 살았다. 증산은 가난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어린 시절에 남의 집 머슴살이도 했고, 나무꾼 노릇도 했으며 독학 끝에 처가에서 서당 훈장 노릇을 하다가, 24살 때 동학혁명을 맞았다.
증산은 ‘하느님’으로서 하늘에 있다가, 마태오리치를 통해 동서양을 교통케 하려 했으나 실패하자 금산사 미륵불상에 내려와 30년을 보내다가 최수운을 선택하여 사명을 맡겼으나 ‘유교의 테를 벗어난 진법’을 드러내지 못하였기에 강일순이라는 인간으로 직접 하강하였다고 한다. 이런 주장은 물론 황당하게 들릴 수밖에 없는 일이지만 예수가 처녀의 몸에서 태어났다는 것을 따질 필요가 전혀 없는 것과 같이 이 또한 사실이냐 아니냐를 따질 필요가 없는 이치라고 하겠다.
증산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가장 특기할 만한 것은 그의 생애의 한 복판에 일어났던 동학혁명에 관한 태도라고 하겠다. 그는 동학군이 실패할 것을 예언하고 동학에 참가하는 사람들을 도시락 싸가지고 다니며 말렸다.
전봉준과 강증산, 두 사람은 똑같이 장 어려운 시기를 보낼 때에 민족이 겪는 고통을 안고 씨름을 했으나 해결하는 방법은 완전히 달랐다. 전봉준은 도탄에 빠진 민중의 힘을 모아 물리적으로 후천 개벽을 하려고 힘을 다하다가 죽음을 당했지만 증산은 동학혁명을 올바른 것이라고 판단하지 않았다. 오히려 여러 군데서 동학군이 민간에 입힌 폐해에 대하여 한탄하고 있을 정도이다. 마치 예수와 열심당 같은 차이라고나 할까?
강증산은 일생 동안 많은 기적을 일으켰다고 하는데 그의 기적은 사적인 것이 많았다. 이 점은 예수의 기적과 대비되는 점이다. 예수의 기적은 어느 쪽에 유익이 되면 다른 한편에 손해가 되는 그런 기적이 없는데 비해 강증산의 기적은 주변사람 중심적인 것이 많았다.
예수의 언행이 상당히 체제 부정적이었다면 강증산은 다분히 체제 긍정적이었다고 볼 수 있다. 예수는 세속적인 권력과 종교의 권력에 대하여 비판적이었지만 증산은 당시 우리민족을 폭압적인 방법으로 지배하고 있던 일본의 역할을 인정하고 오히려 호의적으로 설명하는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다. 증산은 일본 사람들이 조선에 와서 일만 하고 품삯도 받지 못하고 돌아가는 처지가 될 것이니 말이라도 후하게 대접하라고 가르치고 있다. 증산은 친일적인 경향이 있었다고 오해를 받을 수 있을 정도로 일본에 대하여 호의적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신약 성서에 나오는 로마인은 다 나쁘지 않은 사람-심지어는 군인인 백부장까지- 으로 나오는 것과 같은 이유이다. 로마 지배하에 사는 백성들이 별 수 있었겠나?
그러나 친일적인 모습으로 보일 수 있는 증산의 태도는 방금 말한 정치적 이유가 아닌 ‘원한을 사지 않는다’는 것을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신앙적 입장에서 나온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구약성서의 예레미아도 바벨론에 대하여 무모한 반란을 일으키지 말고 하나님이 구원해 주실 것을 믿고 기다리라고 권면했었다.
그러나 증산은 의병의 봉기조차도 그 폐해를 지적함으로 현실세계에서의 물리적인 어떤 역할도 부정하고 오직 신명계의 변화를 통해서 현실의 변화만을 추구하는 자세로 일관했다. 이것은 증산을 이해하는데 키워드가 되겠다.
증산은 인간의 문제를 사회구조적 모순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인간관계를 지배하는 신명계 내의 신들의 역학관계라는 형이상학적인 차원에서 이해했다. 인류가 수천, 수만 년을 살아오는 동안 맺힌 한과 원이 우주에 그득 차 있기 때문에 이미 죽은 이들의 이러한 원한을 어떻게 하든 풀어 주어야 새 세상을 펼 수 있다는 논리였다. 그러므로 사회개조가 아닌 신명계의 개조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며 그것이 이룩된 세상이 후천 개벽이며 그것을 실천하는 방법을 해원상생이라고 했다. 그러나 증산에 의하면 신들 사이의 원한을 푸는 것도 결국은 이 땅의 인간들이 담당하는 것이다. 흥미 있는 것은 성서에도 신명계의 개조를 주장하는 증산의 논리와 비슷한 구절이 있다고 하는 것이다.
“우리는 혈육을 가진 인간들을 상대로 해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악마의 지배와 권력과 이 시대를 다스리는 암흑의 세력과 하늘에 있는 허다한 영들을 상대로 싸우는 것 입니다”(엡6:12)
즉, 바울이 로마감옥에서 기록한 이 구절은 그가 느끼고 있는 인간세계의 모순의 근원을 신화적 언어로 표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증산은 신명계 내의 원한관계를 인간들이 엮어내는 원한관계들의 깊이로 표현하려고 했던 것 같다.
해원상생이라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간단히 말해서 인간 관계의 원한을 푸는 것이 해원인 것이다. 해원상생은 물론 각자가 마음으로 실천할 수 있는 도이기는 하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듯이 해원상생 할 수 있는 것을 증산상제의 은사라고 보고 해원상생을 실천할 수 있는 능력 즉, ‘상대를 신명과 같이 대함’은 상극(相極)의 선천시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자연적 능력이 아니라, 후천 개벽에 동참한 신인간의 능력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증산의 하강은 새 시대의 시작이며 증산이 사람들로 하여금 ‘생명의 근원’과 접하게 해준다고 믿는다. 결국 해원상생은 ‘자력과 타력을 합쳐서 성취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기독교에서 ‘성령 받고 거듭난 사람’만이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다는 것과 같은 말인 셈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원한을 맺지 않고 푼다’는 ‘해원’이라는 논리가 약자의 입장에서 볼 때는 고통스런 현실의 변화의 기회를 더 멀리 밀어 버릴 근거도 될 수도 있다.
왜냐하면 때리는 시어머니 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는 속담처럼 사실상 원한을 끊임없이 만들어 가는 기존의 체제를 개혁하지 못하고 제도화하고 오히려 영구화하는 이데올로기로 악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증산은 적어도 보수적 기독교 신앙에서 구원의 관점을 ‘철저히 개인의 문제’로 국한시킨 것에 비해서 세계의 문제를 근원적으로 파악하려고 노력을 했다는 점을 높이 평가할 수 있다. 예수는 인류를 구원하는 방법으로 십자가를 지셨지만 증산은 굿을 했다. 이게 무슨 개소리냐 싶겠지만 증산이 살던 그 시대는 굿이 가장 민중적인 의식이었다는 것을 감안해야 할 것이다.
증산이 천지도수를 뜯어고치기 위해서 은밀하게 공사를 행했다는데 이것은 좋게 보면 천진난만한 아이들이 유치원에서 하는 놀이와 같은 것이요, 아주 부정적으로 보면 종교적 상상력이 풍부하고 현실적인 능력은 없는 사람의 정신질환적인 망상에 불과하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돼지고기 몇 점과 술과 떡을 단지에 넣어 땅에 파묻는 공사를 벌여 미래에 있을 대전쟁을 예방한다는 식이니. 그렇게 볼 수도 있다. 어쩌면 증산의 이러한 기묘한 행각에서 우리는 시대변화의 추이와 진전에 대해서는 천재적으로 예민하면서도 현실적으로는 전혀 무기력하여 아무런 역할을 할 수 없는 인간의 소아병적인 보상행위와 과대망상증을 목격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알고 보면 구약성서에서도 예언자들이 정상인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주술적인 상징행위를 했던 사실이 여러 번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예언자들의 이런 상징행위는 후에 사실대로 일어났다고 성서는 기록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도대체 증산이 남 모르게 천지를 뜯어고쳐 놓았다는 황당무계한 주장을 어떻게 믿을 수가 있을 것인가? 그러나 이것은 기독교인들이 예수가 하나님의 어린양으로서 보배로운 피를 흘려서 인류의 죄를 사하고 머지않아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할 인류를 위해서 새로운 프로그램을 짜놓았다고 하는 것을 믿는 것과 같은 것이다.
왜냐하면 강일순이 ‘천지도수를 뜯어고쳤다’는 것과 요한계시록에서 하나님의 어린양 예수가 ‘생명책을 연다’는 것이나 모두 현상세계 바깥의 일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오직 그의 가르침을 따르는 이들의 해석이요 믿음일 뿐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우주 전체의 틀을 전부 고치겠다는 天地公事라고 하는 것이다. '뜯어 고쳐야 된다'가 아니고, '뜯어고쳐 진다'도 아니고, '뜯어고치겠다'는 의지적 표현이 중요한 것이다. 즉, 자기가 옥황상제가 되어, 자기 한 사람만이 아닌 모두 인간이 자기 마음 속에서부터 하늘님이라고 알고 , 깨우쳐서 뜯어 고쳐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가 ‘너희는 종이 아니고 하나님의 자녀다’, ‘천국이 이미 도래했다’와 같은 것이다.
증산은 ‘주역을 보면 나를 알리라’고 이야기했고 예수는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느니라’고 했다.
증산은 우리가 어려서 병정놀이할 때 골목대장이 조무래기들을 모아놓고 종이로 만든 가짜 계급장을 달아 주듯이 자기의 제자들에게 천상의 직책을 나누어주기도 했다. 그러나 이것도 예수가 자기의 제자들에게 이스라엘의 12부족을 심판하는 위치를 주어서 갈릴리 하층민들인 제자들의 영혼에 천상에서의 특별한 지위를 부여했던 것과 같은 경우라고 하겠다.
주로 전라도 하층민으로 구성된 소그룹이 은밀하게 몰려다니며 장차 올 우주적인 변화를 대비한다고 하는 것이나 갈릴리 일대의 하층민들로 구성된 예수의 작은 무리들이 하나님 나라를 준비하기 위해서 몰려다니는 모습이나 수상쩍어 보이기는 마찬가지라고 보겠다.
증산은 기독교에 대해서 “기독교는 죽어서 잘 되자는 종교이니 쓸모가 없다. 종교는 살아서 잘되는 종교야 하느니라” 라고 말했다고 한다.
증산에 대한 기록을 보면 증산이 기독교에 대해서 익히 알고 있었음을 말해 준다. 증산 도전에 증산이 어느 목사가 인도하는 부흥회에 참석하여 들었던 설교의 요약이 나오기도 한다.
그는 생전에 기독교의 목사들을 여럿 만나기도 했고 예배를 보는 교회에 찾아가서 소란을 피우기도 한 사실이 있음을 기록하고 있다. 증산이 대했던 당시의 기독교는 선교사가 가르치던 대로 따르던 조잡한 기독교(잡표 기독교)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증산이 기독교에 대하여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기는 오늘날의 기독교도 그 당시 선교사들이 가르쳐준 것과 크게 다르지 않기는 마찬가지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기독교에 대한 증산의 비판은 여전히 올바른 측면을 가지고 있다고 하겠다. 하여간에 증산의 모습은 예수가 우리 시대, 우리 땅에 태어났다면 그 모습과 어떠했을까 하는 것을 그려보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80년 전에 이 땅에 존재했던 토종 예수, 신토불이 예수, 증산의 모습에서 적어도 하느님이란 힘 없는 나라 그늘진 곳에서 태어나 삶이 주는 온갖 어려움을 손수 당하며 살아야 하는 존재라는 것을 우리에게 깨우쳐 주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조직이나 구조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개인이란 것이다. 자본주의가 추악한 것이기는 하나 이걸 고쳐 보겠다고 맑스가 들고 일어나서 애매한 목숨 수 천 만명만 희생되고 말짱 도로묵이 되고 말았다.
증산이 예수라는 말이 아니라 증산의 방법론이 예수적이었다는 말이다.
즉, 전태일이 예수가 아니라 예수적이었다는 것과 같이 .
전봉준은 도탄에 빠진 민중의 힘을 모아 물리적으로 후천 개벽을 하려고 힘을 다하다가 죽음을 당했지만 증산은 종교적 측면에서 후천개벽을 하려고 했다. 그러나 증산은 적어도 보수적 기독교 신앙에서 구원의 관점을 ‘철저히 개인의 문제’로 국한시킨 것에 비해서 세계의 문제를 근원적으로 파악하려고 노력을 했다는 점을 높이 평가할 수 있다.
선천(先天)이 기존체제라면 후천(後天)은 새로운 사회를 의미하며 개벽(開闢)은 '새로운 시대'가 열리는 것을 말한다. 최제우는 정신과 물질 현상이 근본적으로 혁신되어 새 세상이 된다는 뜻으로 '개벽운수(開闢運數)'를 제시하였다. 또한 천도교에서는 기미년 3ㆍ1혁명 후 『개벽』이란 제호의 종합지를 창간하여 72호까지 내다가 일제에 의해 강제 폐간된 바 있다.
동학사상을 비롯 한말의 각종 민족종교에는 '후천개벽'이 큰 자리를 차지했다. 동학의 창시자 수운 최제우, 「정역」의 창시자 일부 김환, 「증산교」의 창시자 증산 강일순, 「원불교」의 창시자 소태산 박중빈 등 신흥 민족종교의 공통적인 키워드는 우연인지 섭리인지 공교롭게도 후천개벽사상이었다.
후천은 선천(先天)의 대칭개념으로 풀이되었다. 인지가 열리지 못하고 모순과 불합리와 상극이 지배하던 어두운 시대와 세상이 선천이라면, 인지가 열리고 통일과 합리와 상생이 지배하는 밝고 새로운 시대와 세상이 후천이다. 민족종교에서는 선천과 후천의 교역(交易)에 따라 선천의 시대가 막을 내리고 후천의 신천지가 열리는 것을 후천개벽이라 한다.
과천에 있는 신천지 말고...
판타지는 비현실적이라는 측면에서 자기만의 세계이기도 한다. 그래서 때로는 당사자의 삶을 이끌어가는 강한 힘이 되기도 한다. 자기만의 판타지를 갖는 것은 남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어도 자신의 삶에는 중요하기도 하고 때로는 삶의 큰 동력이 되기도 한다..
따지고 보면 성서도 판타지 투성이다.
아마 가장 대표적인 것이 요한계시록일 것이다. 요한계시록에는 밧모섬으로 유배를 간 요한이 환상으로 본 강물을 내뿜는 용이 나오고 여섯 날개와 눈이 수도 없이 많이 달린 기괴한 생물들이등장하며, 사람의 얼굴에 사자 이빨을 가진 메뚜기 괴물, 입에서는 불을 뿜고 이상한 머리가 달린뱀 꼬리를 가진 말이 나타나며, <오즈의 마법사>에 나오는 에머랄드 성을 연상케 하는 휘황찬란한 하늘의 성이 나온다.
뿐만 아니다. 구약의 에스겔은 셀 수 없이 많은 뼈들이 일어나서 서로 맞춰지며 살과 근육이 붙어 사람으로 되는 장면을 그리고 있고, 욥의 노래에서는 베헤못와 리워야단과 같은 상상의 짐승이 나온다.
여섯 날개를 가진 스랍이라는 존재는 벌겋게 피어난 숯을 이사야의 입에 대지만 그의 입술은 멀쩡하기만 하다. 출애굽을 요구하던 모세는 나무 지팡이를 던져서 뱀으로 만들고 이집트의 마술사들도 이런 놀라운 일을 벌인다. 다니엘이 본 짐승은 뿔이 열 개나 달렸고 쇠로 된 이빨도 가지고 있다. 예언자 발람의 당나귀는 자기 주인에게 말을 걸고, 스가랴에서는 책들이 공중으로 날아다닌다. 여기에는 천사라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흰 옷을 입고 등에는 하얀 비둘기 같은 날개를 단 천사의 모습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천상의 존재들도 수 없이 등장한다.
신약으로 돌아와서 베드로 역시 이런 판타지를 경험한다. 사도행전 이야기에서 베드로의 눈앞에는 날아다니는 보자기가 펼쳐져 있고, 바울은 셋째 하늘이라는 곳까지 날아 올라갔던 사람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은 산 위에서 몇 천 년 전의 인물인 엘리야와 모세가 살아 나와서 대화하는 것을 본다.
물고기 두 마리와 떡덩이 다섯 개가 들어있는 꼬마의 도시락에서는 한도 끝도 없이 물고기와 떡이 쏟아져 나오는 이야기는 또 어떤가?
그러나 판타지와 현실은 다르다. 판타지를 현실에서 구현하려면 자신의 삶 전체를 투자해야 한다.
80년대 젊은이들이 돌과 화염병을 들고 거리로 나섰던 것은 세상을 바꾸어보자는 열정 때문이었다. 정반대로 전혀 다른 형태로 이상한 신흥종교에 빠지는 것도 세상이 뒤집어질 것을 전제 하기 때문이었다. 일종의 종교적 판타지에 빠지게 하는 것이다.
좋은 예로 동학과 증산도를 비교할 수 있겠다.
동학혁명은 정신적 가치로는 높지만 현실적으로 무모했다. 결과적으로 우리 땅에서 청일전쟁이 벌어지게 만들었고 조선이 일본에 예속되는 시간표를 재촉하는 사건이 되어 버렸다.
동학은 현실에 절망한 사람들이 새로운 세계에 문을 연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종교성에 갇혀 있었던 반면에 동학군이 실패할 것을 예언하고 도시락 싸가지고 다니며 말리러 쫓아다니던 강증산은 종교성에 갇힌 것 같지만 오히려 현실에 열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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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봉준과 강증산, 두 사람은 똑같이 우리 민족이 가장 어려운 시기를 보낼 때에 민족이 겪는 고통을 안고 씨름을 했으나 민족의 고통을 해결하는 방법은 완전히 달랐다.
전봉준은 도탄에 빠진 민중의 힘을 모아 물리적으로 후천 개벽을 하려고 힘을 다하다가 죽음을 당했지만 증산은 종교적 측면에서 후천개벽을 하려고 했다.
오히려 증산은 일본 사람들이 조선에 와서 일만 하고 품삯도 받지 못하고 돌아가는 처지가 될 것이니 말이라도 후하게 대접하라고 가르쳤다. 증산의 이런 태도는 다분히 친일적으로 보일만 하다. 그러나 여기서 내가 주목하는 것은 종교는 어떤 상황에서도 사람의 마음을 닫게 하느냐 열리게 하느냐 하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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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시대에 살았지만 지금의 호남 고속도로 서쪽인 고부의 전봉준은 현실 정치에 참여한 반면에 동쪽인 입암의 강증산은 정신세계에 더 관심을 가졌다.
이것은 마치 노자가 현실정치에 관심을 가졌다면 장자는 은자로서 종교성이 강했다고 볼 수 있는 것과 같다.
또 가깝게는 함석헌은 현실 참여에 강하고 다석 유영모는 종교성이 더 강한 것으로 보인 것과 같다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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