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쟁이와 이웃
지난 3월말에 1년간 먹을 봄나물을 채취해서 냉장고에 가득 채워 넣었다.
그리고 일주일 후 다시 아내와 함께 당진에 내려가 하루를 보냈다.
책을 들고 가지 않았으니 시간이 남아돌아 나물을 또 했다.
냇둑에 지천인 민들레와 소리쟁이를 욕심껏 캤다.
아마도 소래쟁이 역시 옛날에는 구황식품이었을 거다.
된장을 풀어서 국을 끓여 먹는데 그 맛이 그냥 시큼하다.
도시 사람들이나 젊은 사람들은 먹는지도 모르는 나물이다.
농막에서는 물을 펑펑 쓸 수 있으니 씻어서 가지고 올라왔다.
나물을 한번 끓여 먹을 만큼 담아 이집 저집 나눠 줬다.
이웃 간에 잔정이 없기로 아파트보다 더 한 곳이 있을까.
가족이 몇 명인지 어디로 출근하는지 도대체 알 길이 없고,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면 어색한 목례를 나누는 것이 고작이다.
난 이집에서 눌러앉아 살 생각으로 이웃들과 트고 지내고 싶었다.
입주해서부터 터줏대감처럼 옆집도 초대하고 아랫집도 불렀다.
상차림이래야 그저 장을 봐서 사온 과일, 초밥, 생선회, 족발 등이고
벽을 공동으로 쓰는 옆집과 술 한 잔 하면서 거리를 좁히고자 하였다.
그렇게 해서 서너 집과는 음식도 나눠 먹을 만큼 친숙해졌다.
낯선 공간의 어색함을 조금씩 줄여 가는 나만의 즐거움이다.
퇴근길에 곧잘 재래시장을 들러 찬거리를 사는데,
5천원인 매운탕거리나 한 묶음이 천원인 곰피는 서너 개 집어 온다.
문 앞에 걸어 놓으면 내가 다녀 간줄 알고 인사문자가 온다.
어릴 때 시골 이웃과는 울타리 너머로 수시로 소쿠리가 오고갔다.
그 시절에는 바다에서 잡은 생선이나 시루떡을 쉽게도 갈라 먹었는데,
요즘 아파트는 옆집도 타인이기에 문 열기가 무척 어렵다.
7층은 맞벌이인데 출근길에 보이는 종종걸음이 무척이나 안쓰러웠다.
아내가 퇴근길 전철에서 우연히 부인을 만나 전화번호를 따왔다. 초등학생이 둘이라나.
우리집 애들 어릴 때 생각이 왜 안 나겠는가? 초대날짜를 잡았다.
마트에서 애들 먹거리로 치킨, 음료수, 아이스크림을 고르는 것도 색다른 즐거움이었다.
그 집 아이들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엄마아빠가 급한 일이 있어 집에 안 계실 때,
갑자기 학습준비물 살 돈이 필요하면 아저씨한테 오너라.”
아이들에게는 의지할 이웃이라도 있으면 편안하겠다 싶어 일러두었다.
(선물받은 7층 작은 아이의 젠텡글 작품과 큰 아이가 만든 레몬차)
7층은 사실 이곳 아파트와는 아무런 연고도 없이
그냥 우연한 기회에 동료의 권유로 장만한 집이란다.
옆단지에 그 직장 동료가 살고 있는 것이 위안이라고 했다.
아파트는 참 외롭다. 담장을 허물어 가다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양치중에 초인종이 울려 아내에게 나가 보라했다.
7층 젊은 아주머니의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다.
도란도란 얘기하더니 아내는 품위있어 보이는 꽃다발을 들고 들어온다.
그 분은 꽃으로 집안을 장식하는 취미와 여유가 있는 듯 했다.
거실 호접란을 잠시 식탁에 옮겨놓을까 궁리하던 차에
이웃에게서 기념일도 아닌데 꽃다발을 받으니 느낌이 신선하다.
오랜만에 크리스탈 꽃병이 식탁에 올라왔다.
코로나19로 인한 무료함 속에서 색다른 행복을 누린다. 밥맛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