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랑자
주 장 성
마포麻布에 엎드려 잠든 수부여
한줄기 둥근 빛이 하늘에서 내려와
네 이마에 닿아 있다
소금기 머리칼은 아직 마르지 않았고
눈물 한 방울 시울에 서려 있다
무엇을 꿈꾸고 있는가 수부여
바람 그 설레임을 꿈꾸고 있는가
안개 그 두려움을 꿈꾸고 있는가
흔들거리는 잔교를 지나
좁은 골목 구석방
낡은 어깨가방을 내려놓고
깊이 잠든 수부여
독주는 반이나 남았구나
열두 번의 태풍을 견뎌낸
오랜 유목流木 같은 수부여
그대
그 젖은 머리칼은
언제 마를 것이며
떠나 온 고향은
언제나 돌아갈 것인가.
영일만 친구
영일만의 오랜 친구는
동해의 고래잡이가 금지되자
표표히 제주도로 떠나
황금 조약돌을 키우고 있다
날카로운 작살은
엔진을 들어내고 육상에 전시된
옛 포경선 선수에 단단히 용접되었다
친구가
그 까탈스러운 유기농법으로 기른다는
황금 조약돌은 주인을 닮았는지
겉은 울퉁불퉁 거치나
속은 맑은 생명수로 가득하다
동산에서 처음으로 만든 것 같다
친구는
평소에도 문득문득 도인 같긴 하였지만
어느새
유기농법으로 황금 조약돌을 키우는
마술사가 되었는가
노오란 조약돌
온 들판에 가득하다.
완 도
마에루암 통과하고
북북서로 돌아서니
해는 지고 맞바람 몰아치네
지금 이 뱃길 돌파 못 하면
밤새 캄캄한 바다를 헤매야 해
겨울바다 아니랠까
칼바람 얼음파도 세차게 몰아치네
돛은 부풀어 터지려 하고
돛대는 비틀려 신음해
뱃전은 물이 넘쳐
허연 파도가 갑판을 휩쓰네
뱃머리는 완강히 고집을 피워도
늙은 수부는
굳건히 타각을 잡고
돛 줄을 당겨
저 멀리 완도항 불빛
쉬 가까워지질 않네
이 항해를 마치면
목로주점 따스한 등불 밑에 앉아
독주 한잔을 마시고 싶어
내일 새벽엔 또 하늬바람 타고
여수로 가야해.
주장성
시인, 《한강문학》(22호, 2020) 시부문 신인상 수상 등단, 희곡부문 신인상 수상(23호, 2020) 해군사관학교졸업(1972), 해군 복무(1972-1993), 세한대학교 명예교수, 대한요트협회교육이사(1995), 요트스쿨운영, 한강문학 극시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