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장 성
시인, 《한강문학》(22호, 2020) 시부문 신인상 수상 등단, 희곡부문 신인상 수상(23호, 2020) 해군사관학교졸업(1972), 해군 복무(1972-1993), 세한대학교 명예교수, 대한요트협회교육이사(1995), 요트스쿨운영, 한강문학 극시회 회장
퇴 함
▸나오는 사람들
함 장
부 장
기관장
조타장
작전관
주임상사
위생병
견시
승조원 1, 2, 3 외
막이 오른다
2010년도 3월 하순 야간 휴전 상태의 D국과 C국의 해상군사분계선 남쪽 해상 C국의 끊임없는 도발로부터 나라를 지키기 위해 해상 경비 임무를 수행 중인 D국 해군 초계함 함교
캄캄한 가운데 레이다의 푸른빛이 돌아가며 점멸한다.
어둠 속에 함교 근무자들이 배치되어 있다.
함장 양현 앞으로 둘. 270도 잡아.
찌링 찌링 기관 전령기 소리가 울린다.
함장 해도 위에 경비 구역을 작도한다.
조타장 (복창 한다) 양현 앞으로 둘, 현재 침로 270도 잡기 완료.
함장 작전관.
정해진 경비구역 내에서 금야 기동 경비 임무를 수행하라.
모든 대공, 수상, 수중 접촉물은 즉각 차단 추적하고 경계 태세를 철저히 유지하라.
작전관 잘 알겠습니다.
지정된 경비구역 내 기동 경비에 임하겠습니다.
순간 “꽝”하는 커다란 폭발음과 함께 물결이 솟구치고 선체가 크게 들썩이며 왼쪽으로
기울기 시작한다.
동시에 기관 작동 소리가 멈추고 붉은 비상등이 일제히 켜진다.
쓰러졌던 함교 근무자들 몸을 일으킨다.
함장 뭐야?
총원 전투배치.
양현 앞으로 전속.
키 왼편 전타.
대잠수함 전투 배치.
전투배치 경보가 울리고 승조원들이 급하게 움직인다.
함장 급히 함교 외부로 나가 선체를 살펴보고 소리친다.
함장 함미가 절단 되었다. 함미가 침수한다.
오오, 함미가 절단되어 침수한다.
전포 장전하라.
방수요원 배치하라.
충돌 경보가 울린다.
함교는 더욱 기울며 침수한다.
함장 신속하라.
침착하라.
기관장과 타수가 급히 장비 상태를 보고한다.
기관장 전 기관 정지됨. 전원 공급되지 않음.
조타장 타기 고장. 타기 작동 불능.
함장 각 포 수동 발사 태세로 전환하라.
기관장, 선체 하부 손상 상태 확인하라.
작전관, 사령부에 현재 상황을 보고하라.
견시 우현 견시 보고. 절단된 함미 침몰되었음.
수중으로 사라졌음.
기관장 계단을 뛰어 내려간다.
함교는 더욱 기울며 침수한다.
함장 부상자를 신속히 치료하라.
위생병이 여기 저기 부상자를 치료한다.
잠시 후 기관장이 돌아와 보고한다.
기관장 함장님.
함 손상 상태가 치명적입니다.
선체는 연돌 부분에서 반으로 절단되어 함미 부분이 침몰하였고
함수 부분은 넘어져 침수 중입니다.
함미 대원은 전원 탈출하지 못하였습니다.
함수 부분에는 50여명이 생존하여 전투태세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함장 아! 무슨 폭발 같은가?
기관장 선체 파손 상태로 보아 외부 폭발입니다.
함장 외부 폭발이라면?
부장 적 잠수함의 버블 기습 공격밖에 더 있겠습니까?
함장 이 수심에서?
부장 조류를 탄 잠수정이면 해저 물골로 접근 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현 시각 들물이 시작 되었습니다.
함장 선수 부분 부력은?
기관장 손상이 너무 커서 부력 유지 불가합니다.
현 상태에서 함의 전투력 발휘 불가합니다.
퇴함을 건의합니다.
함장 대답이 없다.
멀리 함포 사격 소리가 들린다.
함장 무슨 상황인가?
부장 통신기 침수 장애로 상황 파악이 원활치 않습니다.
북방한계선 근방에서 교전이 벌어진 것 같습니다.
함장 아아, 이 위중한 순간에 막중한 임무를 다하지 못하고 전우들을
잃다니, 가슴이 찢어지는구나.
이 죄를 어찌해야 하나?
선체 침수가 빨라지고 있다.
부장 함장님! 더 이상의 병력 손실을 막아야 합니다.
함장 (무겁게 입을 연다) 내가 내려가서 최종적으로 확인하겠다.
부장은 함교를 지키도록.
함장 계단을 내려간다.
기관장과 주임상사가 따라간다.
선체는 더욱 기울고 침수되고 있고
모두 굳은 표정으로 자신의 위치를 지키고 있다.
구조정이 도착하여 경적을 울린다.
구조정 구조정이 도착 하였습니다.
신속히 이함하여 주십시오.
잠시 후 함장이 올라온다.
함장 (비장한 목소리로 명령한다) 함미 전우의 구조는 불가능 하다.
함수 전투태세 유지도 불가능하다.
총원 퇴함을 허가한다.
퇴함 경보가 울린다.
승조원들은 바쁘게 움직이며 중요 반출물을 지참하고
부상자와 수병부터 구조정으로 이함한다.
기관장이 함교로 올라온다.
기관장 함장님. 각 격실 잔류 인원 없습니다.
모든 발브 폐쇄 조치 완료하였습니다.
함장 알았소. 수고 많았소. 함교 인원 즉시 퇴함하시오.
기관장, 조타장 이함한다.
함교에 함장, 부장, 주임상사만 남았다.
주임상사 이함자 총원 번호
하나, 둘, 셋∼ 마흔 아홉, 쉰.
번호는 오십 끝난다.
순간 정적이 흐른다.
주임상사 갑판장 외 49명 구조정으로 이함 완료.
현재 함교 인원 3명 외 잔류자 없음.
사고 46명. 사고 내용…
(말을 잇지 못한다)
함장 (비통하게 말 한다) 전우들의 번호가 오십에서 끝나는구나.
번호를 부르지 못한 용사들은 어디에 있단 말인가?
용감히 싸우지 못하고 기습을 당해 침몰한 용사들이여.
아아 이 죄를 무엇으로 씻으란 말인가?
함장 고뇌한다. 침수 수위는 빠르게 높아진다.
부장 함장님. 시간이 없습니다.
함장 함교 인원 즉시 퇴함 하시오.
부장은 퇴함 인원 총원을 인솔 하시오.
함장은 지시를 하고 함장 자리로 가서 쌍안경을 벗어 놓는다.
이를 본 주임상사가 함장에게 다가가며 소리친다.
주임상사 함장님 안 됩니다.
함장 단호히 고개를 젓는다.
주임상사 함장님!
…부장님! 여기…
부장이 함장에게 다가간다.
부장 함장님. 냉정 하십시오.
침수가 빨라집니다. 빨리 이함 해야 합니다.
함장 현재 이 상황은 모두 나의 책임이오.
나는 침몰한 용사, 침몰한 함과 함께 운명을 같이 하겠소.
구조정에서 이탈을 재촉하는 경적이 울린다.
구조정 (확성기로) 구조정 즉시 이탈해야 합니다.
부장 이함이 더 이상 지연되면 구조정까지 위험해 집니다.
함장 나는 함장으로서 함 피격의 책임을 지고 침몰한 함 그리고 전우들과 생사를 같이 하겠소.
이 길이 우리의 명예를 지키는 길이오.
부장 이하 함교 인원은 즉시 이함 하시오.
나의 마지막 명령이오.
주임상사 대원들 모두 함장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저희는 함장님을 두고 갈 수 없습니다.
구조정 (확성기로) 구조정 즉시 이탈해야 합니다.
부장 함장님.
전투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전투 상황에서 현장 지휘관이 스스로 목숨을 버리라는 명령, 규정은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함장님.
승조원 50명이 생존해 있습니다.
이제 이들을 지켜야 합니다.
함장 그만, 그만 하시오.
어떠한 규정, 그 어떠한 관습도 나의 결심을 바꿀 수 없을 것이오.
부장 저희도 마음은 함장님과 똑 같습니다.
그러나 이 문제는 삶과 죽음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런 사치한 생각을 할 때가 아닙니다.
이것은 정의와 불의의 싸움입니다.
우리와 적의 전적은 일 대 일입니다.
다음 전투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살아있는 전우들과 함께 새로운 싸움을 시작해야 합니다.
정의는 살아서 싸워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함장 (말이 없다)
부장 함장님의 전사는 적의 사기를 올려줄 뿐이요, 주요 전력의 손실일 뿐입니다.
항상 강조하시던 군인의 길은 무엇입니까?
군인이 죽고 싶다고 마음대로 죽을 수 있습니까?
마지막 한 사람, 마지막 전투, 마지막 적탄이 내 가슴을 꿰뚫을
때까지 싸워야 합니다.
포연탄우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함교는 완전히 기울어지고 있다.
함장과 구조정의 승조원들은 서로 한참을 바라본다.
구조정의 장병들 하나 둘… 모두 기립한다.
함장 나의 죽음으로 속죄를 대신할 수 있을까?
나는 또한 이 세상의 모든 불의로부터 저들을 지켜주어야 하지 않는가?
……
그렇다.
마지막 한 사람, 마지막 전투, 마지막 적탄이 내 가슴을 꿰뚫을때까지 함께 싸우자.
갑시다. 모두 같이.
마지막 적탄이 날아오는 곳으로!
함장 천천히 구조정으로 넘어 간다.
주임상사 총원 차렷!
승조원, 침몰하는 함정을 향하여 일제히 경례한다.
구조정에서 단성 3발이 울린다.
막이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