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아 에그냐티아(Via Egnatia)
유럽 선교의 첫발자국을 네아폴리스에 찍고 바오로는 필립비로 향했다.
필립비는 카발라에서 20Km 떨어져 있는 곳으로, 잘 알다시피 바오로가 제 2차 전도여행 때
마케도니아의 도시인 필립비에 세운 유럽 첫번째 교회가 아닌가.
그러나 지금은 지도에도 나오지 않는 엣날 유적지에 불과하지만 로마제국 때는 로마로 가는
비아 에그나티아가 놓여 있을 만큼 번성했던 도시였다.
필립비는 원래 크레미데스(Kremides, 작은 샘들이라는 뜻)라고 불리었는데,
기원전 358~354년 경 알렉산더 대왕의 아버지 필립비 2세가 은과 금광으로 부유해지게 된
이 도시를 자신의 이름을 따서 필립비라고 명명하였다고 한다.
기원전 168년, 로마인들이 이 도시를 점령하고 그로부터 20년 후에 로마의 속주가 되었고,
기원전 31년 필립비는 로마제국의 다른 도시들처럼 자치권, 면세권, 절대 사유권 등을 누리는
로마제국의 자치시로 승격하였다고 한다.
이주 정책에 의해 주민들은 인구의 절반이 로마인이었고,
유다인들도 소수의 그룹을 형성하여 살았다고 한다.
필립비 유적지는 현재 아스팔트 도로를 가운데로 하여 양쪽으로 나뉘어 있었다.
왼편 산등성이에는 야외 극장과 5세기 때 세워진 성당 터, 바오로가 갇혔었다는 감옥
(사실은 감옥이 아니라 로마시대 저수조였다고 함)이 있고,
도로 아래쪽은 아고라(Agora, 시장터. 장터에는 가게들과 함께 사람들이 모여 자신들의 사상,
철학 등을 발표하고 의견을 나누던 넓은 공터가 있고 베마(vema, 연단. 이것이 로마로 와서 Forum이 됨)와 신전 터(후대에 성당으로 사용됨),가게 터들과 로마로 가는 국도인
비아 에그냐티아(Via Egnatia)의 일부가 남아 있었다.
비아 에그냐티아는 기원전146년에 무역과 군사용으로 포장 건설된 길 이름인데
콘스탄티노플에서부터 로마까지 연결되어 있던 도로였다.
이 도로는 현재 터키 이스탄불에서 네아폴리스, 필립보, 암피볼리스, 아폴로니아, 테살로니카, 펠라를 지나 알바니아의 아드리아 해를 건너 이탈리아 브린디시까지 연결되었으며,
브린디시에서 로마까지는 비아 아피아(Via Appia)와 연결되었다고 한다.
사도 바오로도 바로 이 길을 따라 그리스 북쪽 마케도니아 지방의 도시들을 순회하며
초대 교회들을 세워나간 것이다.
리디아의 세례터
우리는 지금은 그냥 돌로 쌓아놓은 얕트막한 장독대 같이 되어버린 베마에 서서
바오로 사도께서 적어도 한 번쯤은 이곳에서 연설을 하지 않으셨겠냐고 이야기하면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필립비의 유적은 에페소보다 보존 상태가 좋지 않았고 규모도 작아 보였다.
아래 위 유적을 대충 살펴보고(그날 오후에 아테네로 가는 비행기를 타야 했기 때문에
자세히 설명을 들으면서 볼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우리는 다시 버스를 타고
바오로 사도가 리디아 부인을 만났다는 지각티스 강으로 갔다.
아니나 다를까, 짐작했던 대로 지각티스 강은 폭 1.5미터 정도나 될까 싶은 그냥 개울이었다.
개울물은 제법 콸콸 흘렀다. 여름에는 멱도 감을 수 있을 수 있을 만큼 물이 많았다.
개울가엔 리디아 세례 기념으로 자그마한 자리가 마련되어 있었고,
2-30미터 떨어진 곳엔 아담한 기념경당이 세워져 있었다.
경당 구조는 제단 중심이 아니라 세례대 중심이었다.
성당 한가운데 커다란 침례예식을 할 수 있는 세례당이 있는데 아주 멋졌다.
가끔 이곳에서 세례예식이 거행된다고 한다.
우리는 지각티스 개울가에서 미사를 드리고 다시 테살로니키를 향해 길을 떠났다.
암피폴리스 사자상
필립비에서 테살로니카로 가는 중간에 암피폴리스를 지나는데(지진으로 유적지는 없어짐)
그 길가에 기원전 4세기에 만들었다는 거대한 사자상이 서 있었다.
당장이라도 포효하며 달려들 듯한 쩍 벌린 돌사자 입 속엔 새가 둥지를 튼 듯
조그마한 새들이 겁도 없이 포롱포롱 날며 드나들고 있었다.
귀여운 것들, 사자 무서운 줄도 모르고...
버스가 언덕에 멈춰섰다. 그래도 원형이 많이 보존되어 있는 에그냐티아 국도였다.
지금은 다 붕괴되어 여기저기 부분적으로 남아 있을 뿐이지만 터키에서 북유럽까지 이어진
대로였다니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바닥에 깐 돌은 로마 아피아 가도처럼
커다란 돌이 아니라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자그마한 돌들이었다.
바오로 사도께서도 분명 이 길을 지나셨을 텐데, 어디를 딛고 지나셨을까?
우리는 조금이라도 아버지의 자취를 느끼려고 잠시 동안 그 길을 천천히 걸어 보았다.
"아버지, 정말 고맙습니다. 정말 애쓰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