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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믿고 세례를 받는 이는 구원을 받고,
믿지 않는 자는 단죄를 받으리라.”
“온 세상”, “모든 피조물”
오늘따라 “온”이라는 말과
“모든”이라는 말이 눈에 들어옵니다.
“온”은 장소적인 예외 없음이고
“모든”은 존재적인 예외 없음입니다.
주님은 사도들에게 어디도 예외를 두지 말고 가고
어떤 존재도 복음 선포의 대상에서
제외시키지 말라고 하십니다.
온 세상에 가는 것,
즉 어디도 예외를 두지 말고 가라는 것은 어떤 뜻입니까?
구체적으로 적용을 하면 이슬람 지역에도 가고
아프리카에도 가고, 남태평양 외딴 섬에도 가고
그리고 북한에도 가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포탄을 쏜 북한에도 가라는 것입니다.
저와 우리 형제 하나는 우리 정부가 허락만 하면
지금도 북한에 들어가 살 수 있는데
지금 이런 상황에서 북한에 들어가 살게 되면
저의 어머니를 비롯해 많은 분들이
한 걱정을 하실 것입니다.
그럼에도 북한에 들어간다는 것은
위험을 무릅쓰는 것이기도 하지만
적대감을 버리는 것이기도 합니다.
위험하니까 들어가지 말라는 사람도 있지만
그 나쁜 놈들한테 왜 가냐면서
말리는 사람도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라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어느 종교와 민족 가리지 말고,
미개인과 문화인 가리지 말고,
남녀노소 가리지 말고 복음을 선포하라는 뜻이고
심지어 프란치스코의 후예인 저에게는
개구리, 올챙이에게도 복음을 선포하라는 뜻으로 읽힙니다.
개구리, 올챙이에게도 복음을 선포할 기세라면
정말 아무도 복음 선포의 대상에서 제외될 수 없겠지요.
오늘 우리가 축일로 지내는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가
바로 이런 분이 아니었을까 저는 생각합니다.
그는 1541년부터 1551년까지
인도, 말레이 반도, 뉴기니 제도,
일본에서 복음을 선포하고
1552년 중국으로 들어가기 위해
기다리다가 운명을 하였습니다.
그는 이냐시오 로욜라 성인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썼습니다.
“그들이 학문에 대해 쏟는 열성만큼만
하느님께서 주신 능력과
자신이 얻은 지식에 대해
결산서를 제출해야 하는 데 관심을 쏟았다면,
자신의 욕망을 떠나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마음으로
다음과 같이 말했을 것입니다.
‘주여, 저는 여기 있나이다.
당신은 제가 무엇을 하기를 원하시나이까?
원하시는 곳이면 어디에나 저를 보내 주십시오.
인도까지라도.’”
그는 실로 기도와 식사와
휴식을 위한 시간조차 가질 수 없었다고
편지에서 토로하는 대로
그는 복음 선포에 열성을 다 하여
그가 세례를 준 사람의 수는
1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됩니다.
어쩌면 닥치는 대로 세례를 주었다고 할 수 있는데
이러한 그에게서 심지어 무지막지함까지 느껴지면서
그의 복음 선포에 대한 열망이 과연
열성인지, 극성인지
욕심인지, 사랑인지 질문할 정도입니다.
그렇다면 나의 열성은?
- 김찬선(레오나르도)신부 작은형제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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