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오전(11월28), 낯선 산골의 평창 대화 면소재지에서 30분정도의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버스터미널 근처의 괜찮은 카페는 문이 닫혀있어서 시내를 어슬렁거리다가 눈에 띈 '미소다방' 간판, 우리는 동시에 서로의 눈을 바라봤다. 불이 켜지긴 했지만 왠지 영업을 할 것 같지않은 샷시문을 삐끔 연 친구가 웃는다.
"영업 한대요." 깨끗한 걸 좋아하는 친군데 마법에 걸린 것 같다.
"아직도 이런 다방이 있다니 재밌잖아요."
몇 십년 거슬러 찾아간 듯한 촌스런 다방, 특유의 방향제가 코끝을 훅 치고 들어올때 본능적으로 주춤 거려졌다.
못 올 곳을 들어선 것 같았지만 그럼에도 석유난로 옆, 텅 빈 낡은 소파에 앉았다.
꽃그림 벽지와 실내장식이며 꾸밈없는 메뉴판, 홍콩야자였을까? 파티션 용도로 놓인 실내화분 등
기억 속 다방풍경이 영락없는 영화세트장 같았다.
"노른자 동동 뜬 쌍화차가 있을 것만 같지않아? 있는지 물어볼까?" 있다면 시키자며 홀에 계신 주인마담같은 종업원한테 물어봤다.
있다없다가 아닌 "물어볼게요." 주방으로 들어가는걸 보니 다방레지인가 보다. ㅎㅎ
"된대요."
"와우~"우리는 일제히 환호를 했다.
메뉴판을 보니 커피,율무,마차 등은 2천원이며 쌍화차 등은 6천원이다.
남편과 친구는 쌍화차를 시키고 나는 마차를 시켰다.
차를 기다리는 동안 남편은 도라지 위스키가 있는지 궁금해 했다.
내가 그런게 어딨냐고 반문하자 최백호의 낭만에 대하여 가사에 나온단다.
검색을 하니 실제로 판매하던 술이다. 내친김에 유튜브로 노래를 틀어놓고 벽에 걸린 작은 텔레비젼을 꺼달라고 부탁했다.
츗추르 츗츠~ 석유난로의 훈기와 탱고풍의 노랫가락이 우리들의 웃음소리와 흥얼거림에 뒤섞여서 다방 안에 가득 찼다.
궂은 비 내리는 날
그야말로 옛날식 다방에 앉아
도라지 위스키 한 잔에다
짙은 색소폰 소릴 들어보렴
새빨간 립스틱에
나름대로 멋을 부린 마담에게
실없이 던지는 농담 사이로
짙은 색소폰 소릴 들어보렴
이제와 새삼 이 나이에
실연의 달콤함이야 있겠냐만은
왠지 한 곳이 비어 있는
내 가슴이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
밤 늦은 항구에서
그야말로 연락선 선창가에서
돌아올 사람은 없을지라도
슬픈 뱃고동 소릴 들어보렴
첫사랑 그 소녀는
어디에서 나처럼 늙어갈까
가버린 세월이 서글퍼지는
슬픈 뱃고동 소릴 들어보렴
이제와 새삼 이 나이에
청춘의 미련이야 있겠냐만은
왠지 한 곳이 비어 있는
내 가슴에
다시 못 올 것에 대하여
낭만에 대하여
골동품같은 작은 찻잔에 견과류가 소복소복,계피가루와 노른자가 살포시 들어있는 쌍화차가 나왔다.
견과류에서 살짝 쩐내가 나는 듯 했으나 오히려 내 몫으로 한 잔 더 시켰다.
뭘 더 바랄까?
추억을 목줄기로 넘기면서 친구가 조곤조곤 이야기를 했다.
조용히 쉬고 싶을때 온다는 평창집에 기꺼이 초대한 첫번째 손님이 나였다는, 우리부부가 살아온 삶은 당연한 일이지만 그래서 더 해내기 힘든 일을 해주어 고맙다고 했다. 주어진 것들 속에서 가장 최고를 선택하고 그 선택에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모습이 때로는 애처롭지만 그 또한 우리의 선택이기에 조용히 지켜보는 것으로 감사하다는 말에 남편이 눈물나게 할거냐고 했다. 이해받는다는건 참 감동이다. 우리는 이런 질문을 자주 받아왔다.
"경제적인 부분은 어떻게 하셨나요? 돈을 많이 버셨나봐요. 부잔가 보다. 그러니까 그 많은 애들을 키웠겠지."
"그만해. 자신있어?"
그럴 때마다 우린 말 대신 웃었더랬다.
금요일날 오후 친구가 우리집에 와서 함께 떠나게 된 평창, 남편 없이 2박3일 여행을 가긴 몇 년만인 것 같다.
사육일까? 고문일까? 아님 케어?
매끼니 메뉴선정부터 집안의 난방까지 사려깊게 돌봐줬다.
일부러 이천까지 데려다주고 다시 평창으로 온다는 말에 남편이 데리러 와줬다.
"차 값은 내가 낼게요." 남편이 일어나더니 계산을 하고나서 살짝 내 귀에 속삭였다.
"차 값이 2만원이나 나왔어." 능글맞게 웃는 의미를 물어볼 필요는 없었다. 함께 웃었다.
심봉순소설가를 잠시 만난 후에 평창 흥정계곡으로 송어회를 먹으러 갔다.
계곡옆에 자리한 커다란 횟집은 문닫은지 꽤 오래되어 보였다. 텅 빈 횟집 마당에서 주변을 둘러보는 내내 마음이 아팠다. 친구말에 의하면 최근 문닫은 송어회식당들이 많아서 안타깝다고 한다.
전화로 영업 여부까지 확인하고 찾아간 송어횟집에서 친구는 푸짐하게 회와 매운탕을 시켰다. 배불리 먹고 산책을 하고싶었으나 남편이 조문 갈 일이 생겨 곧바로 올라왔다.
집으로 올라오는 차 안에서 우리는 마치 외가에 다녀오는 기분이 들었다.
마냥 흥얼거려지는 흥겨움이랄까?
친구!! 고마웠어.
그대와 함께 한 시간은 2박3일이었지만 그대가 우리 가슴에 꽂아논 사랑은 사철 푸른 나무처럼 싱그러움으로 남아있을 것 같아.
열심히 건강관리해서 좋은 추억 많이 만들자.
편안하게 놀고 쉬자.
첫댓글 낭만에 대하여
가슴이 따듯해 집니다
그런데 눈물도 나네요^^
눈물샘 때문은 아닌거죠? ㅎㅎ 고맙습니다.
선생님
낭만적이세요
그런가요? 다 아시는 내용 아니었던가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