ㅎㅎ 아랫집 담이엄마가 부모모시기란 카페에 쓴 글을 담아왔습니다.
담이네는 작년에 할머니가 오셔서 함께 사세요.
새롭게 함께 하는 삶에서 생기는 이야기를 차암~ 재미나게도 썼네요. ^^
재밌지만 결코 가볍지만은 않은 삶의 이야기 함께 나누고파 올립니다.
온 밭의 고랑마다 푸릇한 이파리가 고개를 내밀기 시작하던 어느날.
오른쪽 입꼬리를 살짝 밀어올리며 옅은 미소를 지어보이는 이가 있었다.
70년 넘게 남녘 대평원에서 갈고 닦은 제초권법을 펼쳐보일 기회를 맞이한
제초계의 살아있는 전설, 허허 거사였다.
그의 현란한 제초권법에 무림의 고수들이 속속 쓰러지기 시작했으니
뒤끝 거사 역시 쓰러진 무리 중 하나였다.
뒤끝 거사는 밭에서의 정면 대결을 피하기로 마음 먹은 채 훗날을 도모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뒤끝 거사의 뒤끝을 작렬하게 만든 사건이 벌어졌으니...
허허 거사는 제초 권법을 펼치는데 가장 중요한 무기인 호미 한 자루만이 중요할 뿐이었다.
모자와 옷, 신발, 이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하루는 털신, 하루는 운동화, 하루는 마실화(마실 다닐 때 신는 준 외출화),
그저 발에 닿는대로 걸치고 밭으로 나갈 뿐이다.
사건은
제초권법에 몰입하느라 마실화가 너덜너덜해진 것을 뒤늦게 알게 된 허허 거사가
뒤끝 거사의 유일한 외출용 신발을 꺼내신고 마실을 가면서 시작되었다.
그 누가 알았겠는가!
뒤끝 거사는 신발에 엄청 집착한다는 사실을.
그때부터 뒤끝 거사의 뒤끝 작렬 권법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마치 제초권법에 밀린 자존심을 되찾으려는 듯 처절한 몸부림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허허 거사는 뒤끝 거사의 외출화를 쓰레빠 삼아 중원을 누비고 다녔다.
뒤끝 거사는 이름에 걸맞게 요청 한 번 안 하고 자신의 외출화를 숨기기에 급급했으니...
뒤끝 거사가 숨겨놓으면 허허 거사는 귀신처럼 찾아내고
숨기고, 또 찾고
쫓고 쫓기는 숨막히는 신발 싸움은 사나흘간 계속 되었다.
뒤끝 거사의 사매가 이런 질문을 던졌다.
"왜 하나밖에 없는 외출용 신발이니까 신지 말아달라고 요청하지 않고 뒤끝 권법을 사용하는가?"
물론 허허 거사에게 외출화 착용 중단을 요청했더라면 정면대결로 빠르게 승부가 났을지도 모를 일이다.
허나, 뒤끝 거사는 비장의 무기인 뒤끝 권법으로 진검 승부를 내고자 했다.
진검 승부까지 간 데에는 어쩔 수 없는 이유가 있긴 했다.
그 외출화가 허허 거사의 발에 걸리면 언제 밭에 끌려나갈지 모를 일촉즉발의 위기였다.
'쓰레빠는 신발이요, 외출화도 신발이요. 신발은 신발이로다'라며
본질을 꿰뚫어보는 마음의 눈을 지닌 이가 바로 허허 거사다.
정면 대결을 할 경우 허허 거사의 필살기 허허신공에 당할 것이 너무나도 분명했다.
신출귀몰 허허신공에 무력하게 쓰러진 숱한 나날들이 이를 증명하고도 남았다.
"허허 거사. 이곳에선 쓰레기 분리수거를 한다오. 이 통에는 종이만 모아 태운다오. 요 통에는 비닐처럼 태울 수 없는 것을 넣어주시오."
"허허, 알겄다. 뒤끝 거사."
(바로 다음 날..)
"허허 거사! 내 말하지 않았소! 어째서 종이와 비닐을 마구 섞어서 버린단 말이오?"
"허허, 몰러~ 죄다 태워버림 되제..."
"허허 거사. 한낮의 뙤약볕이 너무 뜨겁소. 점심 먹은 뒤엔 쉬어야 하오."
"허허, 알겄다."
(바로 10분 뒤)
"허허 거사. 어째서 벌써 나가는 것이오!"
"허허, 빨리 밭매야제. 허허, 난 암시랑 안응께."
허허 신공을 우연히 엿보고 북받쳐오르는 감동을 주체하지 못해 이렇게 노래한 이가 있었다.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흙탕물에 더럽혀지지 않는 연꽃처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리라.
뒤끝 거사는 이미 허허 신공에 수차례 당하였고, 그 여운이 채 가시지도 않은 상태였다.
또다시 당할 순 없었기에 손가락질 받을 위험을 무릅쓰고 신발을 숨기는 뒤끝 강렬한 무공을 펼칠 수밖에 없었다.
"허허.. 고 신발이 어데갔댜.."
며칠간의 숨바꼭질 끝에 허허 거사는 이 말을 남기고 노란 쓰레빠를 찾아 신고 마실을 다니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며칠 뒤,
허허 거사는 노란 쓰레빠를 끌고 밭에 나가 제초권법을 또 펼쳐보이니
뒤끝 거사, 숨을 크게 몰아쉬며 가슴을 쓸어내린다.
승리는 뒤끝 거사의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이 싸움의 진정한 승자는 허허 거사임을 뒤끝 거사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때부터 뒤끝 거사, 자신의 무공에 깊은 회의를 느껴 깊은 고민에 빠져들었다.
어렸을 적 파파 거사의 폭력에 항거하던 중 삼십육계 권법을 터득했고,
마마 거사의 끝없는 잔소리에 대항하여 자동으로 귀를 닫는 셔터 권법을 연마했다.
수많은 고통과 괴로움을 이겨내는 길은 현실에 눈을 감고
현실계와 상상계를 넘나드는 것 뿐이라는 깨달음으로
시공을 초월하는 권법으로 집대성한 것이 바로 뒤끝 작렬 신공!
얼마나 아름다운 무공이었던가!
평화를 사랑하는 마음 없이는 도저히 펼칠 수 없고,
부딪치지 않고서 해결하는 달아남의 미학이 숨어 있으며,
그 누구도 자신의 마음 속에서 벌어지는 일을 알아챌 수 없는 신비로움까지 서려있다!
이처럼 뼈를 깎는 고통으로 완성된 무공이 허허 거사 앞에서 너무나도 맥없이 무너져버린 것이다.
허허거사!
그대의 무공은 정녕 놀랍도다!
눈꼽만큼의 집착도
뒤끝도 없이
허허라는 주문 하나로 무림을 평정하는구나!
단 하나뿐인 외출화를 끌어안고 면벽수련에 들어간
뒤끝 거사의 운명은 앞으로 어떻게 펼쳐질 것인가!
첫댓글 언니! 이거 뭐임!!!!
완전 깜짝 놀랐어요! ㅋㅋㅋ
요즘 새로운 무협 쓰고 있는데 가제 "도꿀 거사, 평화를 염원하며 스스로 무공을 폐하기까지" ㅋㅋㅋ
ㅋㅋ깔깔깔ㅋㅋ 이거 읽고 얼마나 웃었는 지 몰라요. 눈앞에 훤히 그려지는걸요~~ 물총새, 이건 능력이에요.. 생활 속의 고충을 문학으로 승화 시키는 창조적 능력!!
난 이래서 영주가 조아...
내 맘 알쥐?
아까 고양이 가지러 왔을 때 냉면 김치 담가놓은 거 조금 싸주려고 했는데
이 몸쓸 놈의 기억력 땀시 까묵읐다 아이가...
도꿀거사가 무공을 폐하다니.....
그건 너무 슬픈 무협이야~
살신성인으로 또 다른 세상과 만난다고나 할까...
슬프지만 결코 슬프지 않은...
이 세상 많은 남자들에게 귀감이 되어주는 가슴 따뜻한 무협... 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