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증 가선대부 이조 참판 이수인(李守仁)의 묘갈명 병서 -우복 정경세

[이원철]

증 가선대부 이조 참판 이공 수인(李公守仁)의 묘갈명 병서

일찍이 듣건대 자식들에게 황금이 가득 찬 곳간을 물려주는 것이 자식들에게 경전(經典) 한 권을 가르치는 것만 못하다고 하였는데, 참판에 추증된 이공의 경우를 보고서는 그 말이 믿을 만하여 속이는 말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공은 집이 아주 가난하여 생활을 꾸려 갈 수조차 없었으나 일찍이 화리(貨利)를 늘리거나 자산(資産)을 경영한 적이 없이 오로지 어린아이들을 가르치고 힘써 농사지으면서 온 집안의 생활을 꾸려 갔으며, 충분히 댈 수 없을 경우에는 환곡(還穀)을 꾸어서 끼니를 이으면서도 마음이 태연하기만 해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두 아들이 유학(遊學)을 하는 것을 돌보아 줌에 있어서는 멀고 가까운 것을 따지지 않고 오로지 덕이 있는 사람인가만을 보아 나아가 배우게 하였다. 바야흐로 두 아들이 아주 어렸을 적에 곧바로 슬하를 떠나 스승을 따르게 하였는데, 멀어서 가지 않으려고 하면 등을 쓰다듬으면서 타이르기를, “참으로 너희들로 하여금 항상 내 곁에 있게 하고 싶다만, 글을 읽는 것은 모름지기 입에 착 달라붙게 하여야 하는 것으로, 때를 놓치고 나면 아무리 애를 써도 이루기가 어렵다.” 하였다. 아들이 부모님을 뵙기 위해 집으로 돌아오면 맛있는 것을 먹여 주었으나 집에서 묵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면서 이르기를, “학문을 함에 있어서는 중간에 중단하는 것을 가장 크게 꺼리는 법이다. 그러니 속히 사문(師門)으로 돌아가라.” 하였다. 이미 아는 것이 있게 된 다음에는 항상 알뜰하게 말해 주기를, “나는 젊어서 학문을 배우지 못하였는데, 늙어서 후회해도 소용이 없었다. 너희 형제가 만약 힘써 닦지 않는다면 우리 선대의 업(業)이 무너지고 말 것이다.” 하였다.
공의 부인 역시 현명하여 또 능히 가산(家産)의 있고 없음을 가지고 염려하지 않았다. 두 아들을 위하여 벗들을 불러와서는 머리카락을 자르는 풍모가 있었다. 두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부지런히 학문을 닦으면서 이치를 구하여 날이 가고 달이 갈수록 진보해 울연히 문학(文學)과 행의(行誼)로써 사람들에게 추중(推重)되었으며, 동생은 또 사장(詞章)에 크게 힘을 쏟아 과거에 급제해 청현직(淸顯職)을 역임하였다. 그리고 여러 손자들이 집 안에 가득하여 화락하면서도 한가롭게 시서(詩書)를 익히는 것으로 업을 삼았다. 그러므로 그 집의 대문을 들어서는 자가 눈을 들어 바라보면 이씨(李氏)의 복록이 한창 이르러 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이는 모두가 공이 수립한 바로, 아, 위대하기도 하다. 그러니 이 세상의 착한 행실은 하지 않으면서 금백(金帛)을 쌓아 놓는 것을 자손을 위한 산업으로 삼는 사람들과 공을 비교해 볼 때 서로 간의 차이가 또 어떠하다고 하겠는가.
공은 사람됨이 진솔하고 화락하여 털끝만큼도 가식적으로 꾸미는 것이 없었다. 젊은 나이에 아버지를 잃었는데, 어머니를 받들어 모심에 있어서는 마음을 기쁘게 하는 도리를 다하였고, 일곱이나 되는 동생들을 어루만져 기름에 있어서는 때를 놓치지 않고 혼인을 시켰다. 여러 동생들이 자신의 몸을 검속하지 않을 경우에는 정성스러운 뜻으로 가르치고 이끌었으며, 욕을 하거나 꾸짖지 않았다. 다른 사람을 대함에 있어서는 화락하면서도 공손하여 무도(無道)한 자에 대해 보복하지 않았으며, 궁핍한 자를 보면 자신의 재물을 덜어 돌보아 주었다.
공의 휘는 수인(守仁)이고 자는 춘경(春卿)이며, 그 선대는 흥양인(興陽人)이다. 대대로 벼슬을 한 사대부 집안으로, 관봉(官封)과 사적(事蹟)은 가첩(家牒)에 상세하게 실려 있기에 여기서는 기록하지 않는다. 고조의 휘는 언(堰)으로, 남원 부사(南原府使)를 지냈으며, 광묘(光廟)가 어찰(御札)을 내려 청백(淸白)함을 장려하였는데, 전주 부윤(全州府尹)으로 승진되어 떠나가자 백성들이 생사당(生祠堂)을 세워 제사 지냈다. 증조의 휘는 수천(壽川)으로, 사헌부 집의(司憲府執義)를 지냈다. 조고의 휘는 조년(兆年)으로, 의장고 판관(儀仗庫判官)을 지냈다. 선고의 휘는 탁(琢)으로, 벼슬하지 않았다. 비(妣)는 상산 김씨(商山金氏)로, 집현전 부제학(集賢殿副提學)을 지낸 김상직(金尙直)의 후손이다.
공의 초취(初娶)는 금산 김씨(金山金氏)로, 김련(金璉)의 딸인데, 사당에 배알하기도 전에 죽어서 그쪽 집안의 선산에 장사 지냈다. 재취(再娶)는 고령 신씨(高靈申氏)로, 신수경(申守涇)의 딸이며, 영의정에 추증된 신장(申檣)의 현손이니, 바로 이른바 ‘어진 부인’이라고 한 사람이다.
공은 두 아들을 두었다. 큰아들 전(㙉)은 생원으로서 여러 차례에 걸쳐 천거되어 세마(洗馬)와 찰방(察訪)을 지냈다. 그러나 시속을 따르는 것을 제대로 하지 못하여 문득 벼슬을 버리고 시골로 돌아갔다. 차남 준(埈)은, 일찍이 홍문관 교리(弘文館校理)가 되었는데, 한때의 장차(章箚)가 모두 그의 손에 의해서 지어졌다. 또 딸 하나를 두었는데, 주부(主簿)에 추증된 이무남(李茂男)에게 시집갔다. 찰방은 안수인(安守仁)의 따님에게 장가들어 아들 일규(一圭)ㆍ덕규(德圭)ㆍ신규(身圭) 및 김구(金懼)에게 시집간 딸을 낳았다. 교리는 문수민(文秀民)의 딸에게 장가들었는데, 장남 대규(大圭)는 진사(進士)이고, 차남은 원규(元圭)이며, 딸은 이혐(李馦)에게 시집갔다. 또다시 구충윤(具忠胤)의 딸에게 장가들어 아들 문규(文圭)ㆍ광규(光圭)ㆍ정규(貞圭)와 조흥원(趙興遠)에게 시집간 딸을 두었으며, 한 딸은 아직 어리다. 또 측실(側室)에게서 아들 산규(山圭)를 두었다. 주부 이무남은 딸 하나를 두었는데, 권경행(權景行)에게 시집갔다.
공은 가정 갑신년(1524, 중종19)에 태어나 만력 임진년(1592, 선조25)에 안령(鞍嶺)의 싸움에서 죽었는데, 부인도 순절(殉節)하였다. 유천(酉川)의 남쪽 산등성이에 있는 선영의 묘향(卯向) 언덕에 합장하였다.
처음에 조정에서 휼전(恤典)을 내려 공을 선무랑(宣務郞) 사섬시 주부(司贍寺主簿)에 추증하였다. 그 뒤에 막내아들이 재차 원종공신(原從功臣)의 훈적(勳籍)에 참여됨으로 해서 은혜를 미루어 여러 차례 추증되어 가선대부(嘉善大夫) 이조참판 겸 동지의금부사(吏曹參判兼同知義禁府事)에 이르렀으며, 김씨(金氏)와 신씨(申氏) 두 부인도 모두 정부인(貞夫人)에 추증되었다. 처음에 공이 아주 빈곤하게 지낼 적에 관상을 보는 자가 지나가면서 말하기를, “그대는 아무런 한이 없겠다. 뒤에 반드시 자식이 귀하게 됨으로 해서 은혜를 받을 것이다.” 하였는데, 이때에 이르러 그 말이 과연 징험되었다.
경세는 두 아들과 더불어 서로 간에 형제와 같이 친하게 잘 지냈으며, 역시 일찍이 당(堂)에 올라가 절을 올리면서 자제(子弟)로서의 예를 올린 적이 있었다. 두 아들이 나에게 명을 지어 달라고 부탁하매 감히 사양할 수가 없었다. 그 명은 다음과 같다.

재주 있는 아들 낳긴 어려운 법이니 / 有子難才
재주 있고 착한 아들은 더 어려운 법일세 / 有才難穀
공께서는 그와 같은 아들 낳고는 / 公毓其英
다시금 또 학문으로 면려하였네 / 又勖以學
김매 주고 다시금 또 북돋워 주어 / 旣穮旣蔉
끝내 그에 대한 보답 받아먹었네 / 終食其報
잠영들이 다시금 또 혁혁하나니 / 簪纓再赫
규와 벽이 보배로운 것이 아니네 / 圭璧非寶
저기 있는 서산 기슭 바라다보니 / 瞻彼西麓
유계의 물 흘러가는 그곳이구나 / 酉溪之潯
그 유택은 깊숙하고 그윽한 데다 / 有窈其宅
주위 숲은 울울창창 우거졌구나 / 有蔚其林
공이 나서 살아가던 곳인 데다가 / 公生所居
공이 죽어 묻혀 있는 곳이로구나 / 公歿而藏
편안하게 돌아가서 쉬고 있나니 / 以燕以庥
후손들이 반드시 꼭 창성하리라 / 後人其昌

 

贈嘉善大夫吏曹參判李公碣銘 幷序 a_068_328d

嘗聞遺子黃金滿籯。不如敎子一經。觀於贈參判李公。而信斯言之不誣矣。公家甚貧。不能了伏臘。然未嘗殖貨利營貲產。惟課童僕力耕稼。給一家裘餁。不給則以糶繼。夷然不爲意。資二子遊學。不問遠近。惟有德是就。方二子幼稚時。卽令離膝下從師。不欲遠則撫背而詔之曰。固欲汝輩常在側。但讀誦須口軟。過時則勤苦而難成。歸寧則與餠餌啗之。不許宿留曰。爲學最忌間斷。可速還門館。旣有知則常丁寧之曰。吾少失學。老悔無及。汝兄弟若不勖。吾先業替矣。夫人賢。又能不爲有無慮。爲二子迎致賓友。有翦髻之風。二子由是能勤學敏求。日邁月征。蔚然以文學行誼見重於人。其季又大肆力於詞章。取科第歷淸顯。諸孫滿堂。雍容嫺雅。以詩書爲業。入其門者擧目知李氏福祿方至而未艾。皆公之所封殖也。嗚呼韙哉。世之爲不仁積金帛。立子孫產業者。較公所得。其相去又如何也。公爲人眞率愷悌。無一毫修飾。少孤。奉慈闈盡其歡。撫養七弟妹。婚娶以時。諸弟有不檢。以誠意敎導之。不加恚詈。待人和以恭。無道不報。遇有窮乏者。斥其有以周之。公諱守仁。字春卿。其先興陽人。世爲簪纓胄。官封事跡。詳在家牒。今不著。高祖諱堰。爲南原府。光廟以御札奬淸白。陞尹全州府。旣去。民立生祠祭之。曾祖諱壽川。司憲府執義。祖諱兆年。儀仗庫判官。考諱琢。不仕。妣商山金氏。集賢殿副提學尙直之後。公初娶金山金璉女。未廟見而歿。葬于其黨。再聘高靈申氏諱守涇之女。贈領議政檣之玄孫。卽所謂賢夫人也。二子曰㙉。以生員累薦爲洗馬爲察訪。不能俯仰。輒棄歸。曰埈。嘗爲弘文館校理。一時章箚皆出其手。一女。贈主簿李茂男其壻也。察訪娶安守仁女。生男長一圭。次德圭，身圭。女適金懼。校理娶文秀民女。生男長大圭。進士。次元圭。女適李馦。再娶具忠胤女。生男文圭，光圭，貞圭。女適趙興遠。其一幼。側出男山圭。主簿有一女。適權景行。公生于嘉靖甲申。不淑于萬曆壬辰鞍嶺之兵中。夫人殉焉。合葬于酉川南岡先兆次卯向之原。初。朝廷降恤典。贈公宣務郞，司贍寺主簿。後以季子再參原從勳。推恩累贈嘉善大夫，吏曹參判兼同知義禁府事。金氏，申氏俱贈貞夫人。始公貧困。有相者過之曰。子無恨。後必有以子貴受恩錫。至是果驗。經世與二子相善如兄弟。亦嘗升堂展拜。執子弟禮矣。二子屬以銘。不敢辭。銘曰。
有子難才。有才難穀。公毓其英。又勖以學。旣蔍편001旣蔉。終食其報。簪纓再赫。圭璧非寶。瞻彼西麓。酉溪之潯。有窈其宅。有蔚其林。公生所居。公歿而藏。以燕以庥。後人其昌。

[편-001]蔍 : 穮

[주D-001]머리카락을 자르는 풍모 : 어진 어머니가 아들을 위하여 온 정성을 다해 아들의 친구들을 접대하는 것을 말한다. 진(晉)나라 때 도간(陶侃)의 집이 몹시 가난하였는데, 도간의 친구인 범규(范逵)가 많은 사람을 거느리고 지나가다가 도간의 집에 머물게 되었다. 그때 마침 쌀이 떨어져 대접을 할 수 없게 되자, 도간의 어머니 담씨(湛氏)가 자신의 머리카락을 잘라 팔아 식량과 술을 마련해 범규를 잘 대접하였다. 《晉書 卷66 陶侃列傳》
[주D-002]생사당(生祠堂) : 고을의 수령이 선정을 베풀었을 때 그 고을의 백성들이 그 수령이 살아 있을 때부터 제사를 지내기 위해 세워 놓은 사당을 말한다.
[주D-003]김매 주고 : 원문에는 ‘蔍’으로 되어 있는데, 뜻이 통하지 않기에 ‘穮’로 바로잡아 번역하였다. 《춘추좌씨전》에 이르기를, “비유하자면 농부가 김을 매 주고 북돋워 주는 것과 같다.〔譬如農夫是穮是蔉〕” 하였다.
[주D-004]잠영(簪纓) : 관(冠)에 꽂는 비녀와 갓끈으로, 고관대작(高官大爵)을 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