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독서 후기도 두어개 올립니다.
"미래에서 온 전설" 이 책을 읽다보니 마치 어린시절로 되돌아간 느낌, 동화책, 만화책, 주변에 읽을수 있는 모든 청치적인 색갈을 띈 책 말고 순수한 어린마음에 읽어보고 싶었던 책들을 구해 최대한 읽어보고 싶었고 읽어두고 싶어했던 나의 어린 시절이 떠올른다.
하지만 집집에 책장들마다 희환하게도 일반인들이 모두 읽을수도 가질수도 없는 정치적인 내용이거나 찬양, 및 충성심을 유도하는 책들로 가득하다보니 어린 나이에 읽을만한 책이 별로 없었던 아주 책이 귀했던 시절을 보내다보니 이렇게 순수하게 아이들이 좋아할만한 책을 만나는 일은 하늘에 별따기라 할 정도로 구하기도 읽기도 어려웠다.
동심을 갖게 해주고 동심을 불러일으켜주는 책이라서 더더욱 애착이 가는것 같다.
아련하게 사라지고 멀어져가는 우리 모두의 동년 시절들의 기억을 새록새록 마치도 내가 지금 그 시절 그때로 되돌아간 것 같아 너무 행복하다.
또한 이 책을 읽으면서 사라져가거나 잃어져가는 주변의 자연모습 그 자체를 안타깝게 바라보고 두발을 동동 구를수밖에 없는 처지도 한심하게 느껴진다.
늦었다고 생각할때, 심각성을 깨달을때쯤 이미 되돌릴수 없는 상황임을 우리는 아주 천천히.... 아주 뒤늦게 알게된다는게 문제다.
지구의 모든 자원은 무제한이란 없다. 지극히 제한적이고 그것들을 보호하고 지켜야할 의무와 책임감을 갖고 있다.
하지만 인간이 발달하고 발전함에따라 생존의 모든 분야에서 필수로 그 자연의 일부들이 훼손되고 결국에는 그 존재자체를 잃어버리는게 다수라는 점이다.
나무는 베어내고 또 심으면 그만이지만 멸종위기에 동물들은 그대로 다시 만들어내는 것이 힘들다.
내 기억에 다섯살되던 해 어느 산골짜기 탄광마을로 이사를 왔다.
주변은 온통 소나무로 뒤덮혀있었고 아침이면 꿩울음소리도 아주 가깝게 들렸었다.
그런데 불과 10년도 안되서 주변에 숲은 제거되어있었고 온통 밭으로 일궈져있었다.
나무들은 베어내어 탄광내부에 동발로 쓰여버렸다.
"미래에서 온 전설" 을 읽다보니 한심한 어른들이 미웠었고 무더운 여름땡볕에 그늘하나 없게 만든 탄광 그 자체가 미웠었다.
지금은 성인이 되어 어린 아이의 입장에서 이 책을 접하니 사명감에 두 어깨가 무거워지고 회복이라는 두 글자가 아주 거대하게 느껴진다.
우리의 지구는 과연 회복될 수 있을까?
우리 주변의 자연환경은 과연 원시인이 최초로 생겼을때만큼 모든것을 풍족히 내주는 본래의 상태로 되돌려질 수 있을까?
등 여러가지의 심각성도 아이와 함께 알아보는 의미있는 독서시간이 된 것 같다.
우리 아이들에게 재미와 동시에 자연에 대한 가치와 소중함을 동시에 알게해주고 지켜야 하는 책임감을 키워줄수 있는 좋은 교육도서로 활용될 수 있을 것 같다.
아이들뿐만아니라 이 책을 읽는 모든 독자들도 같은 생각으로 한번 더 주변을 둘러보고 자연의 소중함을 깨우치는 시간이 될것 같다.
안필령의 『미래에서 온 전설』을 읽고
보통 우화 소설이라 할 때, 그 교훈성으로 인해 뻔한 결말이 보이므로 기분 좋은 선택을 하기 힘든 점이 있다. 더욱이 ‘자녀와 함께 읽는 우화 소설’이라 할 때는 그 동화적 속성이 예측되어 기대를 낮추어 책을 대하기 십상이다.
나도 그런 마음을 한켠에 가지고 『미래에서 온 전설』을 읽어 나갔다. 그런 점이 없지 않았다. 그런 상태로 읽어 나가다가 급기야는 책에 밑줄을 치기 시작했다. 그 지점이 바로 페이지 51부터 였다. 아마도 내가 미리 좋은 느낌을 가지고, 편견없이 책을 대했더라면 그 전에 줄친 지점이 있었을 것이다. 감동을 주는 지점이 몇 번을 겹치자 그냥 보아서는 안 되지 싶어, 줄을 치기 시작한 것이다.
다소 길지만 줄 친 곳을 인용한다. 왜냐하면 이 무명 작가의, 그것도 우화 소설이라는 멍에를 쓰고서까지 출간된 이 소설의 힘이 바로 이 인용문, 그에 담긴 묘사와 서정에 들어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발까랑의 모습은 쓸쓸해 보였다. 마치 알곡 거둬들인 들판을 찾아와, 머무를 곳 찾지 못해 휘돌고 있는 바람처럼 쓸쓸한 여운이 그를 감쌌다. 그는 착잡해진 마음을 긴 한숨으로 토해냈다. 별까랑의 모습을 바라보는 꼬까선도 마음이 아팠다. 극심한 가뭄에 마른 논바닥 갈라지는 듯한 아픔이 명치 끝에 매달려 있는 듯하다.(p 51)
한참 동안 나무 그늘 같은 침묵이 이어졌다. 침묵이 길어지니 거대한 강줄기나 큰 산 하나가 비집고 들어선 느낌이 든다.(p 55)
별까랑을 보내고 나자 비로소 꼬까선은 자신의 가슴 속에 시간의 법칙을 벗어난 사랑이 자라고 있음을 깨달았다. 간절함이란 이렇게 애타고 허전할 때 찾아오는 것일까.(p56)
화톳불처럼 은근하게 묻어 놓고 안으로 달구어 온 세월이었다. 하지만 서로의 가슴에 인삼꽃보다 빨간 뜨거운 사랑이 심어진 것만은 분명하다.(p57)
아빠 까치의 얼굴에는 소나기 내리기 직전의 먹구름 같은 수심이 가득했다.(p59)
배고픔의 슬픔은 감정 조절을 불가능하게 하는지라 왈칵 심장으로부터 물기가 차오르는가 싶더니 꼬까선의 눈으로 흘러내렸다.(p60)
과거의 기억은 색깔, 소리, 냄새, 느낌이 한데 어우러져 미릿속에 저장되는 법이다.(p68)
감나무 잎 몇 개를 넣어 김장을 하거나 밥을 지으면 뜨거운 여름철에도 밥이 상하지 않는다고 집집마다 뜰 안에 감나무를 키웠단다.(p69)
과학과 의학이 아무리 발전해도 단 하나 사랑을 대신해줄 명약은 없었다. 배신의 상처를 혼자 감당해야 하는 시간은 익모초처럼 쓰고 북극처럼 추웠다.(p78)
들녘이 아랫목에 장작불을 때 구들장처럼 뜨거운데 왕개미 일가족이 일렬종대로 일터에서 돌아오고 있었다.(p90)
산다는 것이 사찰 법당의 추녀에 달린 풍경처럼 작은 바람에도 울어야 하고 흔들려야 했다.(p93)
시의원 당선자들은 봉투를 받자 하나같이 입 가장자리가 염천의 소불알처럼 길게 늘어졌다.(p115)
그 시절 인간의 가슴은 햇빛에 데워진 강물처럼 늘 따뜻했단다.(p148)
어쩌면 시골에서 자란 사람들의 마음 한구석에는 고향을 그리는 그리움이라는 애틋한 방이 별도로 마련되어 있는 것이 분명하다.(p166)
마당은 마치 까만 콩을 깔아놓은 듯 개구리로 가득하다.(p173)
헉! 듣고 있던 손지영도 오천만 원이라는 말에 밤송이처럼 입이 벌어졌다.(207)
저만치 연한 황색의 꽃잎이 바람개비 모양으로 비틀어진 물레나물이 보인다. 이삭 모양의 흰색 꽃이 핀 까치수염이며 좁쌀풀, 메꽃, 배초향이 있다. 병아리처럼 샛노란 색으로 우산처럼 펼쳐진 마타리꽃 위에 벌과 나비가 춤을 추고 있다. 보라색 종처럼 생긴 꽃이 대롱대롱 매달린 잔대 위에는 실잠자리가 앉아 있다. 서로서로 어울려 시샘도 탐욕도 없이 염천에도 꽃을 피워내고 있다.(p221)
여자의 가슴은 설날의 민속놀이처럼 널을 뛰고 있다.(p223)
마치 미릿속이 항아리에 가라앉혀 놓은 녹말가루를 휘저어 놓은 듯합니다.(p232)
총알이 빗발치자 여기저기서 비명과 함께 동족들이 꼭지 썩은 과일처럼 맥없이 땅바닥으로 떨어지는 모습이 보였다.(252)
현중만의 얼굴은 먹다 남은 라면 국물처럼 불그레하게 변했다.(p262)
웬만한 충격은 살찐 아랫배로 튕겨 가면서 살아온 그였지만 이번만은 달랐다.(p263)
모기 일가들은 간밤에도 포식을 했는지 아코디언처럼 주름 잡힌 배가 저마다 볼록하게 솟아 나와 있었다.(p280)
사랑이라는 그 숨 막히는 단어를 알게 해준 단 한 명의 존재요, 가슴 깊이 마음을 허락한 그다.(305)
소문은 빛의 속도보다 빠른 법이다.(p314)
다음 순간 그는 두 눈에 수많은 바늘이 찔러대는 것 같은 통증을 느꼈다.(p321)
최루탄 가스에 질식된 수많은 왕파리와 벌, 모기 떼들의 사체가 카펫처럼 깔려 그들이 걸을때마다 포장재로 쓰는 뽁뽁이 터트리는 소리를 냈다.(p322)
이제 신출내기인 안펼령 작가의 우화소설 『미래에서 온 전설』은 여러 한계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서사 구성이 단단하지 못한 점이나 문장력이 약한 점이 그것이다. 그런 태생적 한계를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강점은 따로 있다. 그러한 한계를 넘어선 지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평면에서 돋아난 부조의 골격처럼 그만의 개성적인 표현이, 그의 체험으로 녹아서 돋을새김 되어 있다. 그 돋을새김은 과거의 체험이 만든, 그만의 묘사로 나타났고 또 그것이 서정으로 녹아서 배면에 흐르고 있다.
왜 이 작가는, 무명의 신출내기는 이 소설을 썼을까, 하는 지점에 이르러 내가 확인한 것은 바로 이 이야기다. 그러니까 내가 밑줄을 쳐서 뽑아낸 이 묘사와 그 바탕을 이루는 서정을 말하려고 이 소설을, 우화라는 멍에를 쓰고도 써냈구나, 하는 그 확인을 확신할 수 있었다.
호불호와 찬반이 있을 수 있겠으나 그는 전문작가가 아니다.
외려 그 엉성함이 신선하게 다가옴은 왜 일까, 소설의 감동은 기법의 완숙함이나 능란 전개, 흠 없는 어떤 완성이 아니라, 그 바탕에 흐르는 기운의 신선함이 주는 감동이 아닐까 싶다.
우화 소설이라는 게 빗대어 인간과 세상을 풍자하는 것이지만 동물 세계에선 ‘인간 같은 놈!’이라는 말이 욕이라는 것이 남의 얘기 같지가 않다. 우화를 넘어선 재미마저 있는 게 이 소설이다. 일독을 추천한다.
=======================
출판사인 '어문학사'의 서평을 끝으로 이제 그만...
시인인 저자의 유려한 문체가 돋보인다. 어른을 위한 동화 같은 우화소설이다.
저자는 인간을 배제시킨 동물의 왕국을 열어놓았다. 동물의 관점에서 인간을 바라보는 시각과 해석이 신선하다. 몰입도가 높아 자연환경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유도하는 소설이다.
인간으로 인한 문명의 부산물과 이기가 자연의 무질서함을 불러왔다. 위험에 처한 수봉산 자락 동물들이 인간을 향해 따가운 경고를 준다. 인간이 주는 피해와 개발로 곧 사라질지도 모르는 수봉산에서 동물들은 생존을 위해 수봉산을 오르는 인간을 심판하며 죽이기를 결심하는 내용으로 전개된다.
저자는 인간의 비루한 삶으로 정치적 야망을 품은 현중만과 실업으로 희망을 잃은 한 집안의 가장 최선우을 통해 동물들을 변호한다. 눈앞에 이익을 위해 목숨을 거는 위험한 도박, 거래를 하지만 결국 최선우는 오백만원의 미끼로 수봉산에 올라 독을품은 동물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인간의 세계도 자연생태계의 먹이사슬처럼 약육강식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소설 속에서 어필한다.
정권이 교체 될 때 마다 굵직굵직한 국책사업에서 토지개발이 제외된 적이 없었다. 소설 속 두 사람의 이해관계 속에서도 자연스럽게 해석 할 수 있다. 개발은 산이 깎이고 나무가 쓰러진다. 산에 존재하던 수많은 동, 식물과 땅속에 사는 생명체는 또 다른 삶의 환경을 개척하거나 죽어야 한다. 그러나 뫼비우스의 띠처럼 인간과 동물은 자연에서 공생해야 하는 필수불가결한 관계다. 한번 파괴된 자연은 원래 모습을 회복하는데 수없이 많은 시간이 걸리지만 완벽한 회복은 100년 정도 걸린다고 한다. 인간도 동물이다. 인간은 동물의 희생으로 부를 축적했다. 허영심으로 다양한 동물의 가죽백을 만들고 밍크코트를 만들었다. 심지어 코끼리의 상아를 채취하기 위해 밀렵꾼이 잔인하게 죽인 코끼리의 사체가 널려있던 사진를 보았다. 세계를 막론하고 인간의 자연환경파괴는 도를 넘은지 오래다.
영국동물학자인 제인구달은 말했다. “이제 우리는 우리 스스로 환경에 끔찍한 손상을 가했다는 것을 직시했기 때문에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총 동원하여 기술적인 해결책을 찾고 있다.” 고 말했다 그리고 동시에 충고를 했다. “과학기술 하나만 가지고는 불충분하기에 우리의 마음도 함께 쏟아야 한다.”고
인간이 동물과 다른 것은 이성적인 가치 판단과 생각의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욕심과 환경에 대한 무지함이 인과응보가 되어 돌아오고 있음을 우리는 종종 확인하면서 살고 있다.
주인공 까치 꼬까선과 까마귀 별까랑이 추억하던 청정 지역 비무장지대를 그리워 하는것은 과거 하늘에서 내린 눈도 먹을 만큼 풍요로 왔던 세상을 추억하고 있는 인간의 모습이다. 문명의 편리함을 추구하는 인간들이 종종 그리워하는 모순 이기도하다. 당대뿐 아니라 자연은 소중한 우리 후손에게 물려줘야 할 유산이다. 자연이 불행한 미래에서 전설이 되어 오지 않기를 바랄뿐이다.
부제에 "자녀와 함께 읽어도 좋은 우화"라고 쓰여있다. 동물의 눈으로 바라본 인간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과 관점이다. 어린 자녀에게 재해석이 요구되는 적당한 어른의 여과 지도가 필요한 부분이 있을 것이란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