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슬지 않은 용기
- <심 신부의 예산살이, 낡음에서 빛을 보다>
옆 나라 올림픽이 한창이다. 우여곡절 끝에 개최된 올림픽인지라 말도 많고 탈도 많다. 방사능, 코로나19, 무더위 속에서 무리하게 강행된 올림픽이라 연일 안전성에 대한 보도들이 나오고 있다. 몇 종목을 제외하고 우리 국민들의 관심사도 예전만 못하다. 올림픽에 대한 경험치가 쌓였고 사회도 다원화되었다는 반증이다.
특별히 눈길을 끈 경기가 있다. 17세 탁구소녀 ‘신유빈’과 58세의 ‘니 시아 리안’과의 대결이다. 41년의 나이 차이 속에서 펼치는 대결이라 경기 전부터 많은 관심을 받은 경기다. 니 시아 리안의 탁구 경력이 만만치 않다.
83년에 세계선수권을 제패했으니 현정화 감독의 선배인 양영자 선수와 같은 또래다. 7세트까지 가는 접전 끝에 이긴 신 선수도 훌륭하고 황혼의 길에 접어든 그의 불꽃 투혼은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다.
왕년에 탁구 한 번쯤 안 쳐본 사람 있으랴. 40대 이상은 기억할 것이다. 88올림픽의 영향으로 동네마다 즐비했던 탁구장에서 너도나도 탁구를 즐겼던 기억을. 어려서 탁구를 배웠던 나 역시 탁구가 취미다. 서른이 넘어 양면에 러버를 부착하는 쉐이크핸드로 전형을 바꾸고 레슨을 받으며 제법 큰 생활체육대회에서 입상도 했다.
생활체육에서 정한 탁구 부수가 점점 올라갈수록 다양한 탁구 유형을 만난다. 재미있는 표현을 쓰자면 탁구도 무림세계와 비슷하여 흔히 정파와 사파로 분류한다.
정통파에 해당하는 스타일은 라켓에 일반적인 평면러버를 붙이고 기본기부터 착실히 밟아 올라간다. 그런데 이 과정이 참으로 더디다. 나이 들어 하는 운동이 어찌 금방 늘겠는가. 어려서 배우는 것보다 몇 배의 시간이 요구된다.
어쩌다 대회를 나가면 한두 점 차이가 아쉽다. 실력이 늘지 않으니 애꿎은 장비를 탓하며 이런 저런 라켓 바꿈질을 한다. 반발력이 좋은 라켓, 회전에 도움이 되는 러버 등 장비의 도움이라도 받아보려 애쓴다. 그러나 어쩌랴. 좋은 목수는 연장을 탓하지 않는 법. 탄탄하지 않은 기본기는 이내 약점을 들키고야 만다.
이제 사파의 세계로 눈을 돌릴 차례. 이른 바 핌플러버(pimple rubbe)의 유혹이 기다린다. 위 아래가 뒤집힌 이 러버의 재미가 쏠쏠하다. 상대의 무지막지한 드라이브도 이 러버를 붙이면 두렵지 않다. 게다가 리턴된 공의 불안정성으로 상대가 당황하는 모습에 묘한 쾌감까지.
그러나 만능은 없는 법, 수비에 치중되어 있으니 공격의 한계가 명확하다. 상대 역시 러버 특성을 이해하고 훈련했다면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이 러버를 사용하는 선수들의 비율이 적은 이유다.
탁구 좀 친다고 하는 사람들은 알 것이다. 니 시안 리안이 얼마나 까다로운 유형인지를. 왼손 선수에다 숏핌플과 롱핌플을 양면에 붙이고 상황에 따라 돌려서 사용하는, 감정의 미동조차 느낄 수 없는 냉정한 눈빛까지. 신 선수도 끌려가다 간신히 역전하지 않았던가. 체력적 열세에도 최적화된 전형으로 젊은 선수들과 호각을 이루니 사파 최고의 경지에 올랐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 팀이 나를 필요로 하는 한 나는 이 자리에 설 것이고 최선을 다할 것이다”
경기는 졌지만 그의 용기는 녹슬지 않았다. 끊임없이 자신을 단련하며 묵묵히 길을 걸어가는 그에게 경의를 표한다. 그의 마지막 당부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위축된 ‘라떼’들에게 감동을 준다. 낡음에서 빛을 보았다.
“오늘의 나는 내일보다 젊습니다. 계속 도전하세요. 즐기면서 하는 것도 잊지 마시구요”
심규용 <예산성공회> yes@yesm.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