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소리
새로운 미디어작업에 관하여
남희조
<화가>
지난 7월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의 개인전시회는 오래된 고철(steel, scrap iron plate)나무(old tree), 천(fabric), 종이, 돌, 또는 내가 직접 만든 도자기의 조형물 같은 다양한 소재들을 사용하여 마치 하나의 합창곡 발표회(chorus festival) 같은 전시회 였었다.
특히 짙게 녹슨 철판들은 물건을 실어 나르던 작은 화물차의 바닥이었을 수도, 어느 변두리의 허름한 창고에서 하늘만 살짝 가려주던 양철지붕이었을 수도, 아이들이 뛰어 놀던 집의 추억이 깃든 녹슨 대문이었을 수도 있다. 그것들의 역할은 모두 그들의 몫이었지만, 어떤 형태로든 각기 고유한 소재들이 변화의 순환을 거듭하며 도달한 그것들만의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이야깃거리들에 매우 흥미를 갖게 되었고, 새로운 미디어를 활용한 작업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것들의 시대적 배경과 이야깃거리들을 찾아 해석하고, 나만의 회화적 사유와 예술성을 조합하여 현대적 조형물로 이끌어내는 것은 내 자신 작가로서의 본질적인 몫이라고 생각되었다.
따라서 예전에 만들어놓았던 내 도자기작품도 아낌없이 조각 내어 나누고, 종이나 헝겊 또한 오려 붙이고, 오래된 놋수저들을 엮어 리듬을 불어넣었으며, 그 어떠한 재료나 소재에 대한 제한을 스스로 뛰어넘으며 개성 가득한 여러 목소리들을 다듬어내어 어울림을 이끌어내는 신명 난 지휘자가 되어 보려고 시도했다.
시인 김춘수님의 “꽃”을 기억한다. 거기서 시인은 누군가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진정한 존재의 의미를 확인하고 인식하는 것이며, 그렇게 이름을 부르는 것이야말로 서로를 진정으로 만나게 하는 인간 삶의 근본 조건이라는 걸 알게 된 것은, 그런 오브제들을 만나고 다듬으면서 그것들이 지닌 내면의 깊은 소리(영혼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부터 이다.
내가 그대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대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무심코 피어난 한 송이 들꽃도 누군가가 그 이름을 ‘꽃’이라 불러주었을 때 하나의 꽃이 되어지는 것 처럼 잊혀지고 버려진 물건들도 내 품으로 깊이 끌어들여 다듬고, 붙이고, 재조합 하여 나의 작품으로 다시 탄생시키는 과정은 달리 비할 바 없이 나를 더욱 신명 나게 한다. 어렵게 한 작품씩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키면서 느끼는 이 신명의 과정은, 내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막연한 정신적 방황을 해갈시키는 과정이고, 예술행위를 제대로 하고 있다는 내 존재에 더 깊은 확신을 갖게 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번에 출품된 주요 작품들 속에 담긴 이미지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정신적 모태가 되고 있는 한국의 지리산, 미국의 그랜드캐년 (Grand Canyon), 브라이스캐년 (Bryce Canyo)등의 대자연이 가지고 있는 거대한 울림에서 힘입은 바가 크다. 더불어 그리스의 미테오라 (Meteora)와 델피 (Delphi)같은. 영적이면서 거대하고 신비한 자연풍경들도 포함된다. 때문에 녹슨 철판이나 오래된 나무가 가지고 있는 재료자체의 특성을 그대로 살리려 노력하면서도 세월을 견딘 중후한 무게감 자체가 지니고 있는 신비한 흔적이나 고결한 느낌을 강조하게 된 배경은 그런 이유에서이다. 특히 거대한 자연이 주는 영혼의 장소와 소리 울림 같은 정신적 주제를 염두에 두고 종교나 민족문제 등 제한된 이슈가 아닌 우리 지구촌 모두의 영혼을 담은 메시지(영혼의 소리)를 전달하고 싶은 욕망도 그와 같은 이유 때문이다. 다만 절대 슬프거나 무겁지만은 않게...
보고 생각하고 창조하는 것이 예술행위라면, 나는 주변의 소리없는 소리, 즉 내면의 소리에 더 귀를 기울여보자. 그렇게 더 깊은 내면의 소리를 들을 수 있을 때, 오랜 모진 세월에도 견뎌온, 강한 인내로 버티어 온 그것들에게 또 다른 새 생명을 주게 될 것임을 확신한다. 오래된 철판 한 조각도 쉽게 여기지 않고 나의 품 안에 깊숙이 껴안아 낼 때, 가장 의미 있는 ‘작가의 몸짓’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바라건대 이번에 발표된 모든 작품들이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무엇’이 되어 있기를 마음 깊이 소망한다.
2012년 7월 남희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