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두화는 요즘인 5월에 피고, 수국은 1개월 뒤에 핀다.
수국은 개량종이 참으로 많다.
색깔도 다양하고, 크기, 온실용, 노지형으로도 사뭇 다르다.
이에 비하여 불두화는 그다지 품종이 많지 않을 것 같다.
수국과 불두화는 꽃잎, 잎, 줄기 등이 엇비슷해서 혼동하기 쉽다.
모두 똑같은 품종인 것처럼 여기기에.
우리가 흔히 보는 꽃은 수국이 아닌 불두화.
모양새가 마치 스님 머리를 닮았다고 해서 절 마당에 심는 나무는 불두화이다.
우리 고유의 이름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내 시골집 텃밭에는 불두화 열댓 그루가 있다.
꺾꽂이를 하거나 뿌리 곁에 난 곁가지를 나눠서 심으면 금세 증식할 수 있다.
수국 여러 종류는 몇 차례나 사다가 심었지만 거의 실패했다.
개량종은 냉해에 무척이나 약하기에.
오래전, 이십 년쯤이다.
시골집에서 빤히 바라다보이는 건너편에 있는 종조부(작은할아버지) 집에 마실 갔다.
작은할아버지네는 두 분이 살고 계셨다.
종조할아버지는 재혼했다.
원종조할머니는 폐병으로 쉰 살이 채 안 되어 돌아가셨다.
후처인 종조할머니는 이북사람.
한국전쟁 당시 남편 따라 이남으로 피난 나왔다가 남편은 이내 죽었단다.
종조할머니는 혼자서 살다가 마흔 살에 재혼하여 현재의 서해안 시골로 내려왔다.
내 작은종조할머니가 되었다.
조촐한 시골집, 작은 마당가 구석 한 편에 키 작은 화목들이 있었다.
종조할머니는 마당이 좁다면서 불두화를 자르고 뿌리를 캐 내버리겠다고 나한테 말씀하셨다.
캐 낼 바에야 내가 캐다가 심겠다고 말씀드리니 종조할머니는 승낙했다.
내가 괭이와 삽으로 어렵사리 캔 뒤에 리어카에 실고는 내 집으로 돌아왔다.
캐 온 불두화의 뿌리와 곁가지는 마구잡이로 엉켰다.
톱, 도끼, 자구, 망치 등으로 불두화 뿌리를 잘게 나눠서 길가, 밭 가운데에 적당히 심었다.
크면 나중에 옮겨 심겠다고.
불두화는 꺾꽂이와 포기 나누기가 무척이나 쉽고, 쉽게 증식된다.
포기 나누기를 두어 차례나 해서 증식했다.
불두화는 곁가지를 잘라내서 한 줄기로만 올곧이 키워야만 굵어진다.
그런데도 나는 증식 목적으로 키웠기에 뿌리 근처에서 곁가지 많이 나왔다.
곁가지다 많으면 수령도 나빠지고 모양새도 지저분하다.
나는 몇 년간 텃밭을 가꾸기 못했다.
늙은 엄니 병환으로...
피난 나온 뒤에는 이북으로 가 보지 못한 채 눈감았다.
이북에 남은 사람들을 그리워하다가 고향 뒷산에 묻혔다.
마흔 살에 재혼했기에 자녀 하나도 낳지 못했던 분, 마음이 착하던 종조할머니이었다.
언제이던가.
충남 부여군 작은 절깐 마당 화단에서 불두화를 보았다.
외줄기로 키운 불두화가 무척이나 정갈해 보였다.
잔가지를 쳐냈기에.
꽃잎 색깔이 파르스름하기에 시인 조지훈의 '승무' 시가 떠 오른다.
'파르라니 깎은 머리...'
갯바람 산능선을 넘어 오는 곳, 내 시골집에 들어서는 길섶에도, 텃밭에도 불두화나무는 있다.
5월 초순인 지금쯤 꽃봉오리가 중머리처럼 푸르스름하게 부풀어 올랐을 게다.
지난해 늦가을, 내가 고향 석공장에 부탁하여 상석(床石) 일곱 개를 마석했다.
올 3월 말경에 큰당숙이 말씀하셨다.
지금의 어머니 무덤 앞에 상석 한 벌을 놔 드리고 싶다기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었다.
큰당숙의 생모는 수십 년 전에 폐병으로 일찍 돌아가시고, 지금의 어머니는 작은어머니었다.
그래도 어머니라고 불렀다.
십여 년 전.
종조할머니한테서 얻어온 나무가 또 있다.
바깥마당 구석에 있던 왕보리수 한 그루.
그게 터를 차지한다면서 가지를 힘겹게 잘라냈던 종조할머니는 삽으로 파 내 버리겠다고 말씀하셨다.
내가 캐 간다고 허락받았다.
리어카에 실어서 내 집으로 가져온 뒤에 톱, 도끼, 자구, 낫을 써서 한 그루의 뿌리를 열 개쯤의 묘목으로 나눴다.
모두 살아서 내 텃밭, 윗밭 중간에 줄줄이 서 있다.
6월에는 자잘한 열매가 열린다. 다 따면? 반 가마니만큼이나 많이 딸 게다.
맛이 시크름해서 누가 따랴? 산새들이나 날아와 입맛 조금만 즐기겠지.
내가 보유한 왕보리수 종류 세 종류.
종조할머니한테 얻어온 나무가 가장 못났다.
열매가 자잘했기에.
그래도 6월에는 붉게 익어서 열매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흐뭇했다.
나는 텃밭에 먹을거리 작물보다는 꽃나무와 화초들이 더 좋다
산에서도 잡목을 캐다가 텃밭에서 증식시켰다.
잡목 잡풀이라도 꽃이 피면 나한테는 소중한 자연자원이다.
들꽃, 산꽃이라도 나는 증식하기를 좋아한다.
남이 욕심내면 나는 삽으로 푹푹 떠서, 그의 차에 실어 주기를 좋아한다.
내가 큰돈을 들여서 사 온 것들이 아니기에.
그냥 수수한 나무와 꽃들이기에.
종조모는 나중에 친정 여조카를 만났다고 한다.
남한에서 이북 친정식구 한 사람이라도 만났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이었다.
이북을 고향으로 둔 실향민의 한 사람이었던 종조할머니의 아픔이 조금은 가셨겠지.
불두화가 꽃 피고, 왕보리수 열매가 익어갈 무렵이면 생각날 게다.
종조할머니를.
고향에 다시는 되돌아가지 못한 실향민의 아픔도...
2017. 5. 7. 일요일. 최윤환
국보문학 조미경 수필가, 시인의 '일반 수필' 방에 불두화 사진이 올랐기에 내가 댓글 달았다.
댓글을 정리하면 글감 하나가 되기에 다듬기 시작했다.
'한국어 맞춤법 문법 검사기'는 약 90% 정도는 맞다.
나머지 10%는 띄어쓰기 사전, 국어사전과 대조해야 한다.
국어대사전이 없는 나는 ㅠ.ㅠ...
첫댓글 고맙습니다
꽃을 자주 올리는 편입니다
친구들과 만나는 밴드에
꽃을 보면 친구들이 추억 이야기를 할때 저도 글감으로
올리기도 하지요
행복한 저녁 되세요
댓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