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풍처럼 반전이슈가 지나갔다. 저 추악한 기름전쟁이 몇 달에 걸쳐 각본대로 수순을 밟더니 마침내 비디오게임같은 불꽃이 CNN의 앵글을 타고 안방에 찾아들었 때, 우리는 술렁일 수밖에 없었다. 전쟁이 끝나고 상처투성이의 이라크를 지켜보면서 다시 한번 회의에 젖어들었다.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를 갈구하는 인류보편의 가치 앞에서 미술하는 사람들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에 대해 전혀 준비된 바 없이 머뭇거리고만 있었다. 몇 달이 흐른 후 이제 한 숨 돌리고 돌아보니, 어디선가 누군가는 무엇인가를 시도하고 있었다. 2003년 봄을 거치면서 우리미술계에 남겨진 파편들을 어떤 맥락으로 읽어낼 수 있을까.
현장미술과 전시장미술
피할 수 없는 절박한 사안을 만났을 때, 미술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이 대목에서 다시금 현장미술과 전시장미술의 역동을 돌아본다. 80년대 전반기, 현발, 임술년 등과 같이 비판적 리얼리즘을 미학적 잣대로 삼았던 일군의 미술가들과 더불어 '공동체적 신명을 회복하여 현실 속에서의 일상성과 현장성을 구현'하고자했던 광자협과 두렁이 있었다. 이들 두 가지의 지향을 놓고 전시장미술과 현장미술로 갈래지었던 시기가 있었다. 양자는 10여년에 걸쳐 노선의 다름과 같음을 확인하면서 한 시대를 일구었다.
전자는 담론의 생산과 실현의 장으로 기능하여 일상 속에 편재한 권력의 함의를 파헤치고 계급계층의 정체성을 들춰내는 데 주력했다면, 후자는 구체적인 상황으로서의 현실에 대해 문화적으로 개입함으로써 현장성을 획득하려 했으며, 물리적인 공간으로서의 현장과 그곳에서의 이슈에 대해 전향적인 참여미술의 형태로 현장미술을 지향했다. 전시장미술의 가치 지향은 대체로 미술시스템이 요청하는 바대로 우여곡절 끝에 몇몇 민중미술 스타를 배출하는 것으로 귀결되었으며, 일부 현장미술마저도 1994년에 과천에서 장례식을 치른 바 있다. 지난 봄 반전열기 속에서 많은 수의 미술문화 생산자들이 숨죽여 자신의 정체를 돌아보아야만 했을 때, 현장미술에 투신해 열정을 불살랐던 그 많은 익명의 다수 (옛)미술인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하나의 패션으로 지나가는 것이 아닌 바에야 특정 이슈를 만났을 때, 현장미술을 지향한 미술가들의 가치를 재고하는 일은 필수불가결의 일일 것이다.
80년대 후반기에 현장미술의 전성시대를 열어나갔던 가는패, 엉겅퀴, 활화산, 둥지, 작화공방, 여성미술연구회, 노동미술위원회, 노문연, 흙손공장, 우리그림, 수문연, 광미공과 같은 크고작은 현장미술가들의 모임, 그리고 민미련으로 크게 묶였던 지금우리는, 열린패, 색올림, 낙동강, 일그림터, 부산미술연구소, 겨레공방, 시매연 등의 창작소그룹과 청미공에서 학미련으로 이어진 학생미술운동 등의 전설같은 이름들을 기억해본다. 거리에서, 공장에서, 농촌에서, 대학가에서, 그리고 전시장에서 현실비판과 현장참여를 일구어냈던 이들이다. 목판화, 걸개그림, 벽화, 만화, 사진, 출판미술, 생활미술에 이르는 매체활용의 다변화 속에서 프로파간다의 전성기를 열었던 그들이다.
월드컵이라는 전지구적 규모의 스포츠마케팅이 대한민국 국민들을 자발적인 광장참여형 대중으로 조직화해내고 있을 때 미술 또는 문화 영역에서 제시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있었던가. 여중생의 희생에 뒤이은 촛불시위의 거대한 소용돌이 속에서 시각이미지 생산자들은 어떤 방식으로 자신을 표현할 수 있었던가. 이라크전쟁이 터져 온통 반전과 파병반대의 여론이 번져나갈 때, 미술가들은 생활인들로부터 일부 위임/부여받은 인류 정신세계에 대한 깊은 성찰의 책임을 토대로 인류의 평화와 인권에 대해 그 어떠한 비젼을 제시할 수 있었던가.
여러 가지 미술과 공공미술 혹은 바깥미술
한 시대의 절정 이후, 모두들 흩어졌다. 그 자리에 '여러 가지 미술'이 종다양성을 구가해왔다. 이것이 90년대 미술이 남긴 미덕이다. 새로운 감수성에 기반을 둔 여러 가지 미술들은 타라, 난지도 메타복스 이래 황금사과에 이르는 소수자 창작소그룹들의 지난한 창작실험들이 남긴 성과의 한 부분이기도 하거니와, 거대담론과 중앙집중적인 미술가 조직의 큰 물결이 휩쓸고 간 자리에서 개별과 파편의 시대를 견뎌낸 386세대 미술가들의 치열한 몸부림의 소산이기도 하다.
기성 미술시스템의 후기적 양상으로 출현했던 나이브한 포스트모더니즘 미술의 소박함에서 비판과 저항의 태도를 견지한 탈현대적 전환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미술로 집약되는 이 시대의 흐름은 감성과 소비의 시대에 걸맞는 새로운 코드를 개발해왔다. 그 가운데 근래에 들어 더욱 유력해지고 있는 것이 이른바 공공미술 혹은 바깥미술이다.
'Public Art'라는 이름으로 수입된 이 흐름은 장소지정형 미술흐름, 현실개입으로서의 공공적인 미술행위, 이데올로기적인 효과를 발생하는 참여미술의 방식을 채택함으로써, 예술을 통한 공동체의 건설이나 사회적인 이슈에 대한 적절한 표현, 나아가 공공의 의제를 설정하는 미술가의 지위에 대한 접근으로까지 나아가고 있다. 설치, 퍼포먼스, 개념미술, 혼합매체미술 등의 새장르아트들을 끌어들여 관객과의 상호작용을 극대화하고 결과 뿐만 아니라 과정으로서의 미술을 강조하기도 한다. '새장르공공미술'로 불리우는 일련의 흐름들이 여러 가지 미술의 종다양성을 더욱 튼튼하게 만들고 있다.
공공미술(논의)의 함의는 새로운 패션의 미술을 만들어내는 데 있다기 보다는 미술(가)의 지위와 역할에 관한 근본적인 반성을 촉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간과해서는 안되는 중요한 대목이다. 그러나 한 가지 발상의 전환을 모색해야할 지점이 있다. 한국현대미술에 있어서 가까운 과거에 존재했던 현장미술에 대한 재평가와 현재적 맥락화 작업이 그것이다. 과연 오늘날 우리가 (새로운)공공미술이라고 부르는 것과 지난 시기의 현장미술 양자는 서로 다른 맥락의 별개인가. 올봄 우리는 반전평화 미술흐름을 지켜보면서 그 해답의 실마리를 잇는 몇가지 단서를 얻을 수 있었다.
새로운 현장미술 흐름
이라크 전쟁을 전후로 고조되었던 반전평화 흐름과 함께 한 미술 프로젝트들은 리얼리즘, 현장미술, 포스트모더니즘, (새로운)공공미술 등의 잣대들 가운데 어느 하나로 규명하기 쉽지 않은 것들이다. 바그다드 현지에서 걸개그림을 그리고 퍼포먼스를 한 최병수, 촛불시위 현장에 캐릭터인형들을 들고 나선 박건웅, 놀이터에서 시민들과 함께 피스마크를 새긴 김영현 같은 현장미술 프로젝트를 비롯해, 여러 대안공간 갤러리에서 불특정 다수의 엽서를 수집한 <반전엽서전>, 참여진행형 프로젝트로 반전아트를 모아낸 <A4반전>, 온라인을 활용해 미술가들과 시민들의 그림들을 모아서 출판으로까지 연결한 <아트무브닷컴> 등의 온오프라인 상의 전시프로젝트 등 다양한 방식의 미술실천들이 문화적 생산과 수용의 진폭을 워낙 폭넓게 교란해 놓았기 때문이다.
1987년 <이한열 열사도> 이래 지속된 현장미술가 최병수의 미덕은 삶자체를 내맡긴 실천가로서의 면모였다. 십수년간 민주화, 환경, 반전 등을 주제로 현장미술 활동을 지속해온 최병수는 반전평화팀에 합류해 바그다드에 다녀오기도 했으며, <오일깡패> 퍼포먼스, 걸개 <야만의 둥지>, <너의 몸이 꽃이 되어>와 같은 작업을 진행했다. 떠오르는 샛별 미술가 박건웅의 반전인형 프로젝트는 그 발상과 실천의 방식이 가히 미술동네의 뭇 허장성세를 잠재울 만했다. 목판화 형식의 그림들로 이루어진 장편극화 <꽃>을 출간한 만화가 박건웅은 유관순, 부시, 노무현, 전투경찰 등의 인형을 제작해 촛불시위에 참여하면서, 반전시위에 참여한 대중들로부터 호평을 얻었다. 그는 오는 6월13일의 시위현장에 대규모의 퍼포먼스와 인형 프로젝트를 진행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청미공 활동경력이 있는 386세대 미술가 김영현은 피스마크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공공문화개발센터 URART를 이끌며 거리미술 프로젝트를 진행해온 그는 홍대앞 놀이터에서 피스마크 만들기를 진행했다. 이라크 사막을 상징하는 모래를 뿌리고 그 위에 선인장을 심은 후 조약돌에 반전의 이미지들을 그려 피스마크를 새기고 촛불을 밝혔다.
문화연대 문화행동센터를 중심으로 진행된 <반전엽서전>은 대안공간과 갤러리들을 중심으로 엽서를 배포한 후, 시민대중들의 그림과 글이 담긴 엽서를 전시의 형태로 펼쳐보였다. '부시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주제로한 이 기획에 많은 수의 예술인들이 참여했으며, 시민들과 어린이들의 반전 열기를 담은 재미있는 작품들 다수가 출품되었다.
A4에 담는 반전아트(Art for No War)를 기치로 조직적인 미술참여를 준비하고 있지 않았던 미술인들의 순발력과 재치를 끄집어낸 <A4反戰>은 <까페시월>과 <www.artoctober.com>에서 온-오프라인 상의 참여-진행형 프로젝트로 열렸다. 반전관련 현장미술들이 사진자료로 소개되었으며, A4용지 드로잉 뿐만 아니라, 컴퓨터그래픽, 페인팅, 드로잉, 입체, 만화, 영상, 퍼포먼스 등 서울-인천-광주-LA-파리에서 보내온 다양한 작품들이 소개되었다. 아트무브(www.artmov.com)는 전쟁이 터지기 훨씬 전에 반전프로젝트를 진행할 정도로 일상적인 '온라인상에서의 미술행동'을 지속해온 사이트이다. 옛 민미련 성원들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들은 '웹은 21세기형 걸개'라는 점을 십분활용하는 그룹으로 잘 알려져있다.
조직적인 미술운동을 펼치며 한 시대와 맞장뜨던 시절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그렇다고 분출하는 에너지를 담아 답답한 문명의 시스템에 야성의 절규를 끌어내는 열정의 시대도 아니다. 그저 평온하기만 한 미술동네가 아니었던가. 미술시스템이 허용하는 시각의 장에서 이미지권력 게임에 몰두해 있었던 것이다. 올 봄, 우리 미술계에 찾아든 반전평화의 열풍은 역설적인 방식으로 현재의 좌표와 역량을 점검해보는 바로미터같은 역할을 했다. 미리 준비하고 점검해보아야 한다. 현재의 시각이미지 환경 속에서 "현장미술은 여전히 가능한가" 하는 점이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러한 식의 열풍들은 멀지않은 미래에 우리 앞에 생생한 현실로 다가올 것이라는 점이다. 민족의 생존과 아메리카의 패권주의, 생태와 인권, 신자유주의와 전지구화의 문제 등 시각예술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에 대해 탐문해 들어올 저 섬득한 의제들이 목전에서 부글부글 끓고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