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광 시인 회고
김소월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 빛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의자와 나무
여기 좀 쉬어 가세여
의자가 웃으며 말하다
양산을 씌워드릴 게요
나무가 웃으며 말한다
산책 길 의자 겨에
나무도 감께 서 있다
지금 꽃들을 덤으로 드릴께요
작은 꽃들이 발아래 웃고 있다
의지와 나무 김진광 작
‘엄마야 누나야 강변살자’는 다 잘 아는 소월의 동요다. 소월이 지금은 어찌 되었는지 모르지만 그는 4아들과 3딸을 두고 살았다. 가난한 집에서 즐기고 살 수 있었던 것은 자연의 아름다움이 아니었나 싶다. 세 누이와 어머니와 즐겨 산 것이 시를 쓰게 된 동기인 것 같다. 누구도 부인할 수 없겠다. 없는 아버지는 불구가 되어 없었지만 얼마나 단란한 어머니와 누이들의 아름다운 곳이다. 김소월이 태어난 곳은 외가인구성이라 하지만 소월의 고향은 김진광 시인도 마름다운 곳에서 살았다, 촛대바위가 이룬 마을. 촛대바위를 보기 위해 사시사철 관광객이 모여드는 곳이다. 세상 사람들이 촛대바위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세상에서 이런 아름다운 촛대바위 마을을 가진 마을도 찾기 쉽지 않을 것이다.
일출이면 사진작가들이 몰려드는 곳. 바다와 산경이 이름다운 곳에 그는 출생지를 가졌다. 그가 공직생활에 있을 때 ‘수로부인’에 관심을 가졌고 자신의 마을에 수로부인의 조각상을 조성했다. 그의 애향심이 여기에 이르렀으나 역사가들의 의견이 위치 선정이 타당치 못하다는 것이었다. 누구의 고향이 아름답지 않은 곳이 없겠지만 김진광의 고향만치 아름다운 곳도 드물 것이다.
그의 수로부인에 대한 역시 의식도 좀 불확실한 증언이나 고향을 사랑하는 뜻이 담겨있다고 보인다. 인간이 어린이의 마음으로 돌아가 어린이의 영혼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것은 노인들도 동심을 바라는 것이다. 수로부안이 강릉태수로 가는 수로부인이 되어 가는 길. 그 길은 바다가 맞지만 험악한 절벽이 있었다. 그 전설아 김진광의 고향과 잘 어울리지 않는다. 무언가 불완전하다. 그러나 김진광은 애향심으로 밀어붙인 것 같다.
여기 김진광의 약력에 대한 얘기를 좀 하겠다. 이것은 오해라기보다도 사실을 알자는 뜻이지 불만은 전연 없다. 서로 알아보자는 얘기다.
소년(1898)년. (현대문학) 추천완료.
위의 이력에서 소년 (현대문학)에서 추천완료를 받았다는 얘기는 처음 듣는 얘기다. 특히 김진광은 어느 잡지에 이력서를 쓸 때 자세히 쓰는 습성이 있기 때문이다. 서로 알아볼 일이다. ‘현대문학;에 동시 추언완료는 저음 듣는 예기며 알아보아야 할 일이다.
매일신문 신춘문예 당선도 그렇다.
위의 메일신문 신춘문예 당선도 아는 바가 없다, 김진광은 어느 이력에서도 매일신문 신춘문예를 밝히지 않았다. 다만 위의 의문이 나타나 밝혀보는 것이다. 다른 의도는 아무것도 없다.
육사문학상, 한국동시문학상,
강원문학상 수상 등 수상,
김진광의 양력을 보면 몇 거지 이상한 점이 몇 개 발견된다. 여기서 의문 되는
점이란 현대문학 추천 완료를 말한다. 현대문학 잡지에서 시(詩)를 추천받았는지
아니면 동시를 추천 받았는지 구분이 없으며 알기로는 현대문학지에선 동시 추천
제도가 없던 것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없는 제도에서 추천이 있을 수 없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까지 김진광 시인이 어느 경력에도 대구 매일신문 신춘문예
당선을 밝힌 이력을 보지 못했다. 다른 문인들은 모르지만 나는 알지 못하고 지냈다.
이 일은 나의 무지인지 모른다. 이 문제를 갖고 오래 얘기할 생각은 없지만 사실은 규명해야 한다고 본다,
김진광 시인은 시도 쓰고 시조 동시 뿐 만 아니라 동시평론까지 쓰면서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했다. 그런 활동을 하면서 그 중에서도 동시에 두각을 나타낸 것은 다 아는 바와 같다. 그는 특히 어린아이들을 소재로 한 동시를 써서 문단에서 주목을 받았다. 나는 늘 동심의 마음으로 돌아가 죽고 싶은 게 내 소원이라고 말해왔다. 이것은 나만이 아닐 것이다.
김진광은 교육자 생활을 주로 했다. 그가 삼척시 하장고등학교에 근무할 적이다. 재경 삼척문인회의 인원들이 그의 초청으로 두타산을 넘어 벽지에 있는 고등학교를 들렸다. 그가 초대한 교장실에서 우리 일행은 따뜻한 차를 대접받았다. 마침 그 자리에 전 국회의원이었던 김정남님이 동행해 하장 상수원 저수지도 보고 그곳에서 발원한 물이 도계 배백의 상수원을 이룬다는 것에 국회의원의 업적이 컸다고 여겼다. 또한 고랭지 채소인 배추와 무를 재배해 추력에 실어서 서울의 용산 시장터에 도매로 팔아서 살아간다는 말도 들었다.
또한 태백으로 가는 길에서 원시림으로 들어가는 산림 속으로 들어갔는데 땅속 바위틈에서 샘물이 솟아올랐다. 일행이 설명하기를 이게 바로 유명한 용신이 나온다는 검룡소라고 했다. 여기서 발원하는 물이 남한강물의 원류가 된다는 것도 설명해 주었다. 다시 태백으로 와서 각종 명물을 구경했고 황지연못도 구경했다. 황 부자가 스님과 주고받은 예기며 황부자의 부잣집이 벼락을 맞아 연못이 되었는데 이게 바로 낙동강의 발원이 되었다는 얘기도 흥미롭게 알게 되었다.
언젠가 내가 철암선탄장 석탄 분석 장으로 있을 때 석탄을 원료로 석탄을 채취해 석탄의 칼로리를 채취해 석탄의 가격을 결정하는 과정을 설명해 주기도 했다. 김진광은 교육자로 석탄분야에 근무자지 못했으나 조금이나마 일게 되었을 것이다. 그와의 인영은 또한 그가 하장고등학교 교장 시절에 해변공원 시낭송회가 있을 때 먼 하장교에서 외국어선생을 영어낭송을 가르쳐 낭송회 분위기가 좋은 때가 있었다. 이게 다 김진광 교장의 노력이었다.
언젠가 백재를 보려고 갔는데
백제를 보려고 갔는데
돌속에 들어간 웃음이 웃는다
자비와 너그러움이 주는 고결은
임금이 울었던 천년 저쪽
백제의 혼은 일본에 갔거니
충남 서산에 백제의 마애불이 돌 속에 웃고 있다는 말을 듣고 우리문학여행은 갔었다. 도예가를 납치해 일본으로 끌려간 일연의 도예가들은 대접을 받았다 헀다, 여기 백제의 웃음은 마지막 웃음을 살았던 도공의 마지막 웃음일 것이다. 우리가 마애불에서 돌에 새겨진 미소를 중요시하는 것은 이들 미소를 통해서 백제인의 외모뿐 아니라 내부의 백제인과 그 습성까지 알 수 있겠다는 사상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또한 상상을 중요시 하는 것은 백제의 문화에 이른다. 이런 얘기를 나누며 문안들은 흥분을 느꼈다.
일본 도예 선호자들이 유독 심수관 도예가 일당을 납치해 스스로 살도록 마을을 내주고 자립하도록 도와준 것도 우리에겐 교훈이 된다. 이들이 일본 땅 흙이 맞지 않아 백제에서 가져간 백자를 만들 수 밖에 없었고 이 백자는 일본 특유의 백자로 일본 상위층에서 부르는 것이 값이라 했다. 이 예기는 기술자를 천시해서 쟁이라고 해 기술 강국이 되지 못한 것에 대한 불만이 크다, 어쩌다 기술의 낙후를 얘기 하는 과장에서 필요 없는 얘기가 많았다.
김진광 시인과의 문학여행은 많았다. 그는 시와. 시조와 동요와 동요작곡에도 힘을 썼으며 동요평론에도 일가견을 가진 시인이었다. 그가 중앙의 유명 동시인을 물리치고 중요문학상을 탄 것은 그의 시의 가치를 인정한 것이리라. 늘 내가 말하는 것이 있다. 좋은 시는 좋은 조건에서 나오지 않는다. 좋은 별장에서 좋은 음식을 먹는다고 명작이 탄생하는 것이 아니다. 춥고 배고픈 유배지에서 추위를 견디기 위해 글 읽는 자들, 책은 읽지 않고 잡지사나 언론사나 문화부 기자를 찾아 술이나 나누는 그런 자들이 좋은 작품을 쓴다고 믿을 자는 한 사람도 앖다. 김진광 시인을 두든 하는 것은 아니지만 빈방에 묻혀서 시 한 편에 목숨을 거는 자가 반드시 있다. 71세면 가장 활기찬 활동시대다. 생각하면 두타문학의 큰 재목이 무너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