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2004년 3월 19일부터 12월 18일까지 9개월간에 걸쳐 대한민국의 중추뼈대 백두대간을 완주했다.
2004년 8월 14일/15일 백두대간 구간 중 댓재-백복령 구간 종주 중에 무릎이상으로
백복령으로 진행하지 못하고 원방재에서 탈출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아쉬움을 달래며 부수베리 마을로 내려가서 '메주와 첼리스트' 된장마을을 찾아
메주 스님 돈연스님과 첼리스트 도완녀님을 만나뵙고 밥과 술을 잘 얻어먹었던 일이 있다.
다음 시는 바로 그 돈연스님이 지으신 "벽암록 39"라는 시다.
그 때 도완녀님이 남편인 돈연 스님의 이 시를 암송하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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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주와 첼리스트 된장마을 : 돈연스님과 첼리스트 도완녀님 그리고 그분들의 삼남매 여래, 문수, 보현 조각상
늙은이는 밭을 갈았다
갈지 않으면 먹지 않는 늙은이
늙은이의 한평생은 밭가는 일
밭에서 한 발자국도 떠나지 않았지만
밭에 얽매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 돈연, "벽암록 39" 전문
돈연스님과 함께
첼리스트 도완녀님과 함께 : 탈출할 때 동행해준 분들과 함께
이 시의 마지막 구절,
“밭에서 한 발자국도 떠나지 않았지만
밭에 얽매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를 다시 한번 음미하면 스님이 어떻게 노동과 자유의 삶을 사는지 알 수 있다.
산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산이 좋아 언제나 산을 찾지만
산에 얽매인 적은 한 번도 없는 그러한 산행 말이다.
산을 좋아하면서 산에 얽매인 산미인(산에 미친 인간) 산꾼들은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일이다.
인생사 다 마찬가지다. 사랑도 산도 집착이 화근을 부른다.
인도에서도 2년여 수행을 하신 바 있는 돈연 스님은
일을 하시는 것을 좋아하여 트랙터로 밭을 일구시고,
겨울에는 그 트랙터로 마을 안길의 눈을 치우신다.
된장마을 수익으로 범어경전 한역사업을 하고 계신다.
첼리스트 도완녀님은 서울음대를 졸업하고 첼로전공으로 독일유학까지 하시고
국내 대학에서 강의도 하신 재원이신데 손수 된장을 담그신다.
메주와 첼로, 스님과 첼리스트 그 심각한 부조화를
이 산속에서 조화롭게 만드는 지혜는 두 분만이 갖고 계실 것이다.
두 분 사이에서 태어난 삼남매, 여래, 문수, 보현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궁금했는데 엄마는 아이들이 지금 계곡에 물놀이 갔다고 하신다.
그 아이들 셋은 지금 전교생이 15명인 이곳 분교의 학생들이다.
이 학교 학생의 20%가 돈연 스님 아이들이다.
나는 두 분이 이곳에서 사는 모습을 뵙고
사람 사는 것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도 있는 것임을 새삼 되새겼다.
나의 후반기 생도 저러한 모습으로 살고 싶은 것이 연래의 나의 소망이다.
자연 속에서 노동을 하며 자유를 구가하는 삶은 바로 이런 모습이 아닌가.
특히 돈연 스님의 얼굴에서 ‘old boy’ 즉 ‘老童’의 참모습을 본다.
언제 한번 기회가 된다면 이곳으로 와서 스님과 여러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 당시의 산행기에서 -
첫댓글 "인간은 올무에 걸려 있고 무거운 짐으로 눌려 있다. 인간은 자유를 그리워하면서 동시에 그것을 두려워한다.
해방의 역설은 자유를 보존하기 위해서, 그리고 자유를 위한 투쟁을 위해서는 어떤 의미로 벌써 자유롭게 되어 있어야 하고, 그 자신 속에 자유를 소유해야만 한다. 그 존재의 바로 중심에 노예가 되어 있는 자들은 자유의 이름을 알지 못하는 것이요 또 자유를 위해서 투쟁할 수도 없다."
- 니콜라이 베르쟈에프(Nicolai Berdyaev), <인간의 운명(The Destiny of Man)>中에서 ....
거사님께서 한 말씀 내려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