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목월(朴木月) 시인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시인 박목월은 1916년 경남 고성에서 태어나 경주에서 성장하였으며, 1978년 3월 24일 새벽 산책에서 돌아온 후 지병인 고혈압으로 작고하셨다. 그는 시인, 수필가, 평론가, 교육자이었으며, 그의 본명은 영종(朴泳鍾)이나, 시를 쓸 무렵 필명을 "목월(木月)" 로 하였다.
(변영로의 호 수주(樹州)에서 목(木) + 김소월의 이름 소월(素月)에서 월(月)을 따옴)
1933년 대구 계성중학교 재학시절에 동시 「통딱딱 통짝짝」과
동요「제비맞이」가 당선되었고, 1939년 정지용 시인의 추천으로 《문장》에〈길처럼〉, <그것은 연륜(年輪)이다>를 발표 시인으로 등단 활동
1946년 조지훈, 박두진과 함께 3인 합동시집 <청록집>을 출간하였는데,
책명은 박목월의 시 <청노루>에서 따왔다고 하며, 청록집에는 박목월의 <나그네> 등 15편, 조지훈의 <봉황수> 등 12편, 박두진의 <향현> 을 합한 12편 총 39편의 시가 실려 이후로 3인을 청록파 시인으로 불리었으며, 해방 시단에 큰 수확을 안겨주었다.
향토시인 박목월은 탁월한 모국어로 한국인의 느낌과 생각을 노래해 우리 민족의 감수성과 상상력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높은 경지를 보여준 대표적 민족 시인이다. 정지용 시인은 북에는 김소월, 남에는 박목월이라고 높이 평가하였다.
박목월 시인은 사람들에게 다감하고 시에 준엄했던 스승이었다. 제자 한 사람 한 사람을 소중히 감싸 안으면서도, 제자들의 시가 완벽한 시 미학에 토대를 둘 것을 강조하셨기 때문에 박목월 시인의 손을 거쳐 시단에 등단한 시인들은 별로 많지 않다고 한다.
주요경력으로는
1946년 무렵부터 대구계성중학교, 이화여자고등학교, 서울대학교 음악대학·연세대학교·홍익대학교 등에서 교직에 종사하셨고, 1962년부터 작고하실 때까지 한양대학교에 재임하였다.
문단활동으로는
한국문필가협회를 발족시켰고, 문총, 청년작가협회, 공군종군문인단 등에서 주요직책과 한국시인협회 회장직을 역임했고, 출판사(산아방/山雅房·창조사/創造社)도 경영하였다.
수상경력으로는
1954년 첫 시집 『산도화(山桃花)』로 제3회 아세아자유문학상,
1968년 시집 『청담(晴曇)』으로 대한민국문예상 본상,
1969년『경상도(慶尙道)의 가랑잎, 1968』으로 서울시문화상,
1972년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상하였다.
또한, 2006년 3월 34일 토함산 자락에 동리목월문학관이 개관되면서 문인과 일반인들에게 문예창작활동 후진양성의 터전이 되고 있다.
울산재능시낭송협회에서는 2016년 청록집 발간 7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그해‘청산에 완화삼 두른 나그네’란 주제로 제19회 정기공연을 가진 바 있으며,
그의 40주기 추모일을 맞아 조촐하게 작은 시낭송콘서트를 준비하였다.
추모시낭송콘서트에 참석해주신 내외빈 여러분들께 깊이 감사드리며,
다시 한 번 박목월 시인님을 기리고 그리워하면서 의미 있는 시간 함께 할 수 있는
뜻깊은 시간되시를 바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18 박목월추모 팜플렛.hw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