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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을 왜곡할 때 마음은 미혹된다, 실낙원 복락원 (21P)
창세기 3:1-4:1절
말씀을 왜곡할 때 마음은 미혹된다, 실낙원 복락원 (21P)
1그런데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이르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2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열매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3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4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5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6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7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
8그들이 그 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9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10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11이르시되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알렸느냐? 내가 네게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먹었느냐?
12아담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13여호와 하나님이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여자가 이르되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14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
15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16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17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18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19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20아담이 그의 아내의 이름을 하와라 불렀으니, 그는 모든 산 자의 어머니가 됨이더라.
21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22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의 손을 들어 생명 나무 열매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23여호와 하나님이 에덴 동산에서 그를 내보내어 그의 근원이 된 땅을 갈게 하시니라.
24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 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어 생명 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창4:1아담이 그의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임신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
옛날 어느 바닷가에 해오라기와 무척 친하게 지내는 한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가 바닷가에 나가면 뭇 해오라기들이 날아 와서 그의 어깨나 손 위에 앉아 놀았다. 어느 날 그는 이 이야기를 아내에게 해 주었더니, 아내는 대뜸 한 마리를 잡아 오라고 했다.
다음 날 이 사람은 해오라기를 잡을 마음을 먹고 바닷가에 나갔다.
그런데 웬 일인가?
해오라기들은 한 마리도 날아 오지 않았다. 새들은 벌써 이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알고 경계하고 있었다.
오늘날 사람들의 심성을 보라. 이 타락한 세속에 빠진 사람들의 때 묻은 영혼을 보라. 어찌 그 속에 영성이 있으며, 신령한 영적인 것이 교통하겠는가?
거룩하신 하나님이 어찌 접촉하시겠는가?
사람도 겪어 보고 私心(사심)을 발견하거나 이기심을 발견하거나 실망과 배신감을 느끼면 이내 돌아 서고 마는데, 이 더러운 영혼의 옷을 입고 있는 우리를 보시는 하나님의 심정이 과연 우리와 교통하시고, 우리의 소원을 들으시고, 우리를 가까이 하시고, 우리에게 복을 주실까?
우리가 진정 하나님께 무엇을 요구할 수 면목이 있을까?
그 해답을 인류의 시조 아담과 하와를 통해 들어 보자.
아담과 하와는 인류 최대의 희망, 그 낙원의 삶을 허락 받은 유일한 한 쌍이었다. 사실 모든 인생은 하나님으로부터 태어 나면서부터 낙원과 행복을 허락 받았다. 그러나 본인이 잘못 살아 스스로 파괴할 뿐이다. 또는 주변의 사람이 파괴한다.
1>.그들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하나님의 모양대로 창조되었다.
도덕적 형상인 참 지식, 의, 거룩함과 자연적 형상인 이성, 양심, 판단 기능 등이다.(창1:26-27절) 그들은 또한 하나님의 생기를 코로 받고 생령(living soul)이 되었다.(2:7절) 살아있는 생명이 된 것이다.
생명이란 얼마나 신비로운가?
오래 전에 한 젊은 홍0표 (나는 이 이름을 영원히 잊고 싶지 않다) 청년이 세상을 떠나, 병원 응급실에 그 시체가 누워 있는 것을 보았다.
살았을 때의 모습과 똑 같았다.
그러나 그 속에 생기는 이미 떠나고 없었다.
일년 간을 매주 심방을 하며 돌보고 기도했던, 하얀 그의 얼굴은 평생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2>.그들은 만물의 영장이었다.
가장 신령한 존재였다. 그들은 하나님께 복을 받았고,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정복하라, 다스리라.”는 은혜를 입었다.(창1:28절)
그들은 모든 동식물의 주인이었다.
3>.그들은 하나님이 주신 최고의 환경 속에서 살았다.
창1:31절은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했다. 창2:8절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셨다.”고 했다. “환희의 낙원”이란 최고의 환경이 선물로 주어졌다.
4>.그들은 또한 배필로 지어졌다.(창2:18-25절)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창2:18절)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한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로다.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 하니라.”(창2:22-23절)
가장 이상적인 배우자는 “돕는 배필”이다. 히브리어 ezer 는 “적합한”, “상응하는”, “감당하는”...이란 의미이다.
남편과 아내는 서로의 모든 요구, 즉 육체적, 정신적, 감성적, 사회적, 나아가 영적인 요구까지 가장 적합하며, 서로 상응하며, 서로를 감당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는 이 지극한 복락 가운데서 타락했다.
창12:16-17절에서 하나님은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하셨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는 뱀의 꾀임에 빠져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고 불순종 하고 타락했다.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 먹고, 자기와 함께 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창3:4-6절)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했다. 마귀의 말을 믿었다.
말씀을 과장했다.
말씀을 添削(첨삭)했다.
말씀을 약화시켰다.
말씀에 대한 부정으로 나아 갔다.
종내에는 마귀와 짝하여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들고 말았다.
사람이 사물을 인식하는 데는 인식 객체와 인식 주체가 서로 상호 작용을 한다. 인식 주관이 너무 강하면 사물의 실체에 접근하지 못하고 허상에 끌려 미혹을 당하게 된다. 인식 주관에서 벗어나 객관적으로 정확하게 볼 수 있는 것을 깨달음이라 한다.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객관적으로 보려고 하라. 우리는 미혹을 버리고 깨달음의 자리로 나아가려고 몸부림을 쳐서 자기의 껍질을 벗기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
주관; 미혹; 죄; 파괴로 나아가는 것이다.
죄의 특성
죄는 맛있다, 쉽다, 달콤하다, 쾌감이 있다, 매력적이다. 저절로 끌린다.
화장품 이름에 tamptation(유혹)이란 이름을 보았다.
반면에 선은 의지력을 요구한다, 노력을 요구한다, 힘들다, 인내를 요구한다, 힘들다.
창2: 6절(죄의 전염성)-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 먹고 자기와 함께 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창2: 7절(죄의 위장성)-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 나무잎을 엮어 치마를 하였더라.
죄는 위선, 양의 탈, 정의의 화신으로 위장한다.
창2: 8절(죄의 은닉성)-아담과 그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창2:12절(죄의 전가성)-아담이 가로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하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실과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변명하지 말라. 솔직하라. 합리화 하지 말라. 인정하라. 환경 탓하지 말라. 자신의 능력 부족이다. 남 탓 하지 말라. 자기 과오를 인정하라.
3종류의 실패
사건적 실패(창3:6절):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 먹고 자기와 함께 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관계적 실패(창3:8-10절):
그들이 날이 서늘할 때에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아담과 그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가로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책임적 실패(창3:11-13절):
아담이 가로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하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실과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여자가 가로되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목사 장로, 남편과 아내, 상사와 부하가 사건의 실패로 관계적 실패를 유발한다.
실패와 책임
하나님의 “네가 먹었느냐?”,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란 질문은 저들의 솔직한 고백과 잘못에 대한 뉘우침을 원하시는 질문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전혀 반대의 길인 책임 전가의 길로 가 버렸다.
아담에게는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는”(창3:17절) 노동의 형벌을 받았다.
일하는 존재로서의 인간이 그 일 때문에 수고하고 괴로움을 당해야 하는 현실을 보라. 직업의 인격성과 직업에의 행복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절감케 하는 말씀이다.
하와에게는 “네게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는 해산과 남편 복종의 고통을 형벌로 받았다.
자기 변명의 기회가 있을 때에 왜 솔직하지 못한가?
인격적인 대접을 주고 받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왜 인간 세계에는 끔찍한 관계적인 비인격적인 형벌이 존재하는가?
인격과 자기 변호의 기회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에게 변명의 기회를 주셨다. 그러나 뱀에게는 변명의 기회를 주시지 않고, 바로 정죄하셨다. 그 차이는 인격체와 비인격체의 차별이다. 인격체에게는 자기 변명과 변호의 기회를 주지만, 비인격체에게는 그럴 필요성이 없다.
법에는 “변호인 없이 재판 받지 아니할 수 있는 권리”라는 것이 있다. 아무리 잘못했을지라도 재판 없이 처벌하는 것은 잘못이며, 변호의 기회를 주지 않고 비난하는 것은 사람을 비인격으로 대우하는 것이며, 인격체로 대접하지 않는 것이다.
폴 틸리히는 “남의 인격을 무시하는 그 자체로서 자신의 인격도 비인격화되는 것”이라 했다.
<피아니스트>란 영화를 보았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나찌가 행하는 만행을 적나라하게 표현했다. 인간이 어디까지 짓밟힐 수 있는가를 보여 주는 정말 감동적인 영화였다.
TV 광고에 부자 집 아이가 비싼 장남감을 가지고 막 논다. 리모콘으로 자동차를 조정하다가 자동차가 병아리를 치고 지나 간다.
절룩거리는 병아리를 쥐고서 아이가 말한다.
“엄마! 병아리가 고장 났어.”
어느 여집사님이 목사에게 많은 정신적, 물적 피해를 입었다. 마지막 떠나면서 이런 말을 남겼다.
“당신이 목사가 아니었더라면, 나는 여기까지 오지 않았어요.”
남의 인격을 존중하라.
남의 인격을 존중치 못하는 자는 아무리 그럴듯한 위치에 있어도 그는 인격 파탄자이다.
실패 후에 다시 부르게 된 찬송
범죄한 아담과 하와에 대한 하나님의 배려는 무엇인가?
하나님은 어떻게 범죄한 저들과의 관계를 회복 하셨는가?
1>.먼저 찾아 오신 하나님(창3:8-10절):
그들이 날이 서늘할 때에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아담과 그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가로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2>.사랑과 위로의 표시(창3:21절):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3>.원시복음의 허락(창3:15절):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희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4>.희망을 담은 이름(창3:20절):
아담이 그 아내를 하와라 이름하였으니, 그는 모든 산 자의 어미가 됨이더라.
5>.기쁨을 담은 이름(창4:1절):
아담이 그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잉태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
가인은 “더함”이란 뜻이다.
호6:1-3절은 치료하시고 일으키시는 하나님을 이렇게 노래한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1.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솔직히 말해 보자.
2.자신의 인식 체계에 대하여 제 3자가 무엇이라 말하는지 들어 보자.
3.자기 변호의 기회를 황금률(마7:12절)에 대입하여 생각해 보자.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4.자신의 실패의 체험을 돌이켜 보자.
1>.인생의 행로가 뒤바뀌는 실패를 한 적이 있는가?
2>.실패의 요인은 무엇인가?
3>.사건적 실패, 관계적 실패, 책임적 실패에서 어디까지 실패했는가?
4>.실패 후에, 그것이 범죄적 실패라면 하나님의 징계가 무엇이었는가?
5>.징계 후에 하나님의 특별하신 배려가 무엇이었는가?
6>.지금 다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노래할 수 있는가?
실패 후에 다시 부르게 된 찬송이 있는가?
7. 실낙원, 복락원
창3:1-21절
창3:1그런데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이르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2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열매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3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4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5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6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 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7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
8그들이 그 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9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10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 하여 숨었나이다.
11이르시되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알렸느냐? 내가 네게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먹었느냐?
12아담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13여호와 하나님이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여자가 이르되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14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 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
15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16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17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18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19네가 흙으로 돌아 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 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20아담이 그의 아내의 이름을 하와라 불렀으니, 그는 모든 산 자의 어머니가 됨이더라.
21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존 밀턴 (John Milton, 1680~1674)
런던에서 태어났다. 영국의 시인들 가운데 가장 교양있는 시인으로 알려져 있다. 케임브리지 대학에 다닐 때, '그리스도가 탄생하신 아침'을 써서 이름을 날렸다 이탈리아를 여행하기도 했고, 청교도 혁명 때 크롬웰의 라틴어 비서를 지내기도 하는 등 다채로운 일생을 살았다.
왕정 복고 후에 장님이 되면서 아내를 잃게 되고, 그와 같은 슬픔 가운데 불후의 명작 '실락원'을 썼다.
주요 작품으로는 '코머스', '가면극', '리시더스', '추도시' 같은 시와 정치 문제를 다룬 논문 '아레오 파기티카(1644)'가 있다.
밀튼의 '실낙원'(Paradise Lost)
'실낙원'이라고 하면, 영국의 밀튼이 쓴 일종의 종교 작품이라는 것 쯤은 알고 있지만, 정작 어떤 내용인지 모르고 있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은 것 같다. 이번 기회에 이해를 높이기를 바라는 의미에서 '실낙원'에 대한 설명을 시작코자 한다.
'실락원'은 17세기 영국의 시인 존 밀튼(John Milton: 1608-1675)이 쓴 서사시적 무운시(無韻詩: Blank verse)이다. 무운시라는 것은 운문시가 아니라는 말이다.
'실낙원'은 밀튼이 59세가 되던 1667년에 출판되었다. '실낙원'은 모두 10권(Book)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권의 서두에는 논쟁(Arguements)이라는 제목 아래에 요약문이 별도로 기록되어 있다.
'실낙원'은 처음 출판된지 7년 만인 1674년에 재판이 이루어졌다. 재판에서는 10권을 12권으로 확장하였다. 이것 저것 설명할 것은 많지만 간단히 말해서 '실낙원'은 존 밀튼을 당대 영국의 가장 위대한 시인으로 추앙 받도록 만들어 준 작품이다.
'실낙원'의 큰 줄거리는 구약성경 창세기에 나오는 '인간의 타락'에 대한 것이다. 추락한 천사가 뱀의 형상으로 아담과 이브를 유혹하여 선악과를 따먹게 만들어서 결국 에덴동산으로부터 추방당하도록 했다는 것이 기둥 줄거리이다.
그러면 이 저서는 어떤 목적을 지닌 것일까?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자 했던 것일까?
밀튼은그 대답을 '실낙원 1장'에 적어 놓았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행하신 조치가 정당하다는 것을 설명한다'는 것이다.
'실낙원'과 '복락원'(Paradise Regained)은 대칭을 이루는 작품이다. '복낙원'은 제2의 아담으로 불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사탄의 유혹을 이기고 인류에게 잃어 버린 낙원을 되찾아 준다는 내용이다.
밀튼이 '실낙원'을 쓰기 시작한 것은 1658년이며, 완성한 것은 1663년이라고 하니 5년이란 세월에 걸친 작품이다. 그런데 일부 학자들은 실상 밀튼이 훨씬 전부터 '실락원'의 부분 부분을 써 놓았었고, 그것을 나중에 그대로 본 책에 많이 인용했다는 주장이다.
그러면 밀튼의 '실낙원'이 어째서 불후의 명작이란 말인가?
많은 학자들은 밀튼의 '실낙원'이 공간과 시간을 포용하는 대작이라는 데에 입을 모으고 있다.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참뜻이 어디 있는지를 설명해 주는 작품이라고도 말한다. 하기야 인간으로서는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뜻이 어디 있는지를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밀튼은 '실낙원'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이 어디 있는지를 간접적으로 제시하였다. 아마 그런 의미에서 '실낙원'이 유명하다고 말할수 있다.
그러면 존 밀튼은 어떤 사람인지 간단히 소개코자 한다.
존 밀튼은 1608년 12월 9일 런던의 칩사이드(Chipsaide)에 있는 브레드 스트리트의 집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원래 공증인 또는 대서인이었지만 작곡가로서도 알려진 사람이었다. 아버지의 이름은 아들과 마찬가지로 존 밀튼이었다. 나중에 사람들은 아버지를 존 밀튼 시니어라고 불러서 구별했다. 아들 존 밀튼은 아버지의 음악적 재능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는지 평생을 훌륭한 음악 애호가로서 지냈다. 그리고 친구 중에 음악인들도 많았다. 아무튼 훗날 그에게 붙은 호칭은 시인, 신학 논객, 서한 작가, 공무원 등등이다. 공무원이라고 한 것은 올리버 크롬웰의 정부에서 복무한 일이 있기 때문이다. 밀튼이 활동하던 당시는 종교적으로 여러 논쟁이 있었으면 정치적으로는 새로운 봉기가 발흥하던 시기였다. 영국의 내전도 이 때에 일어났다. 존 밀튼은 캠브릿지의 그리스도 대학에서 문학을 공부하고 문학사 학위를 받았다. 존 밀튼은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성직자가 되려고 했다가 문학 공부를 계속하고 싶어서 대학원에 진학하여 문학석사 학위를 받았다.
존 밀튼은 향년 69세로서 1674년 11월 8일에 던던의 번힐에서 세상을 떠났다. 존 밀튼의 묘소는 세인트 가일스 위다웃 크리플게이트(Saint-Giles-Without-Cripplegate)라는 교회에 있다.
런던의 세이트 가일스 위다웃 크리플게이트 교회 내부에 설치되어 있는 존 밀튼 기념 명판이 있다.
'실낙원의 저자인 존 밀튼은 1608년 12월에 태어 났으며, 1674년 11월에 세상을 떠났다. 그의 아버지인 존 밀튼은 1645년 3월에 세상을 떠났다. 두 사람 모두 이 교회에 매장되어 있다.'라고 적혀 있다.
런던에 있는 세인트 가일스 위더웃 크리플게이트 교회의 최근 전경. 존 밀튼의 묘지가 있으며, 올리버 크롬웰이 이 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렸으며, '로빈슨 크루소'로 유명한 다니엘 디포도 이 교회의 교인이었다. '천로역정'으로 유명한 존 번얀도 이 교회의 교인이었다.
밀튼의 '실낙원'에서 각 책의 서두는 라틴어로 In medias res라는 말로 시작한다. 이 말은 원래 '갑자기 이야기의 한 가운데로'라는 의미이지만, 우리 식으로 보면, '각설하고' 또는 '차설하고' 라고나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무튼 In medias res라는 말로 글을 시작하는 것은 당시의 전통이었다. 밀튼의 스토리는 두 개의 커다란 틀로 구성되어 있다. 하나는 사탄, 즉 루시퍼(Lucifer)에 대한 것이며, 다른 하나는 이어서 전개되는 아담과 이브에 대한 것이다.
이야기는 사탄과 기타 하나님에게 반역한 천사들이 하나님에게 대항하였으나 패배를 당하고 지옥으로 추방된 이후부터 시작된다. 시에서는 사탄과 그의 추종자들이 추방 당한 곳을 지옥(Hell)이라고 표현하지 않고 무저갱(Tartarus)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였다. 무저갱(無底坑)이란 말은 지옥 밑바닥에 이르기까지의 끝없는 구렁텅이를 말한다. 아무리 떨어져 내려 가도 끝이 없는 곳이라는 뜻이다. 사탄은 지옥에서 마치 거대한 왕궁처럼 큰 도시를 세웠다. 판데모니움(Pandaemonium)이다. 판데모니움이란 말은 복마전, 악마전, 또는 모든 악마들이 모여 있는 곳이란 뜻이다. 사탄은 판데모니움에서 청산유수 및 감언이설의 언변으로 추종자들을 모았다. 사탄의 사업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 맘몬(Mammon), 벨즈버브(Beelzebub), 벨리알(Belial), 몰로크(Moloch)와 같은 우상들도 판데모니움에 기꺼이 모여 들었다는 것이다.
실락원에 나오는 판데모니움. 지옥의 수도이다.
지옥에서 사탄을 도와 준 존재로서 마몬, 비엘지버브, 벨리알, 몰라크 등이 있었다고 했는데 이들이 과연 어떤 존재들인지 간략히 소개코자 한다.
마몬(Mammon)이란 단어는 '재물'이란 뜻이다. 재물은 재물이지만 주로 탐욕으로 차지한 재물, 구체적으로는 돈을 말한다. 그로부터 마몬은 재물의 신으로 알려져 왔다. 마몬은 판데모니움에 사탄의 궁전을 지었다고도 한다.
마몬은 구약성경에는 나오지 않고 신약성경에 나오는데 보통 재물이라고 번역되어 있다. 마태복은 6장 24절의 기록인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에서 재물은 곧 마몬을 말한다. 누가복음 16장 13절에도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라고 되어 있는데 마찬가지로 여기서 말하는 재물은 바로 마몬을 말하는 것이다. 마몬이란 단어는 히브리어에서 비롯하였는데 '돈'이란 뜻이다. 비엘지바브는 블레셋 신으로 가나안 신인 바알(Baal)과 연관이 있다. 신학적으로는 사탄과 동등한 존재로 인식되어 있다.
악마학에서는 지옥에 7공자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라고 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비엘즈버브를 마왕이라고 번역하고 있다. 우리 성경에는 바알세불이라고 번역되어 있다. 누가복음 11장에 보면 예수께서 사람의 몸으로부터 귀신을 쫓아 내는 일을 하시니 사람들이 예수를 보고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 냈다'라고 말했다고 되어 있다.
벨리알은 타락한 천사 중의 하나라고 한다. 사악한 악마이다. 하나님의 나라에서 타락하여 지옥으로 추방된 천사는 666명이라고 하는데 그 중의 하나가 벨리알이란 것이다. 몰로크는 왕이란 뜻의 단어이다. 역시 가나안의 우상신이다. 어린 아이를 제물로 받는 것으로 유명하다.
얀 브뤼겔이 그린 '타르타러스'
사탄은 지옥에서 하나님이 새로 창조하신 우주 만물을 파괴하겠다고 스스로 나선다. 사탄은 특히 하나님이 마지막으로 창조하신, 그리고 가장 총애하는 존재, 즉 인간을 파멸시키겠다고 다짐한다. 사탄은 아비스(Abyss)도 두렵지 않으므로 오디세이와 이니아스처럼 혼자서 모든 하고자 하는 바를 감당하겠다고 나선다. 아비스는 심연의 구렁텅이라는 뜻이지만 신학적으로는 창조 전의 혼돈 상태를 말한다. 즉, 창세기 1장 2절의 말씀대로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의 상태를 말한다. 또한 시편 42장 7절에는 '주의 폭포 소리에 깊은 바다가 서로 부르며 주의 모든 파도와 물결이 나를 휩쓸었나이다'(Deep calls to deep at the noise of your waterspouts: allyour waves and your billows are gone over me.)라는 구절이 있는데, 여기에서 Deep calls to deep라는 표현이 바로 아비스 상태를 설명해 주는 것이라는 얘기다.
한편, 오디세이와 이니아스를 예로 들었는데 이들은 물론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영웅들을 말한다. 호머의 대서사시 '오디세이'의 주인공인 오디세이(오디세우스 또는 율리시스)는 트로이 전쟁 후에 10년 동안 고국 이타카를 떠나서 방랑하며 온갖 시련을 다 겪지만, 결국 이타카로 돌아 와서 원수들을 모조리 처치한 인물이며, 이니아스는 역시 트로이 전쟁에서 트로이가 패배하자 트로이를 탈출하여 저 멀리 이탈리아 반도로 가서 이탈리아 건국의 시조가 되었다는 인물을 말한다.
이니아스는 이탈리아 건국 신화에 나오는 로물루스와 레무스 형제의 선조라는 것이다. 사탄은 이들처럼 온갖 난관이 있어도 헤쳐 나가서 목적을 이루겠다고 다짐한 것이다. 그리하여 사탄은 지옥에서 벗어나 혼돈으로 험난하기 이를 데 없는 길을 거쳐서 마침내 하나님이 지으신 새로운 물질세계, 즉 에덴동산에 도착한다.
반란 천사들의 멸망(The Fall of the Rebel Angels). 피에터 브뤼겔 엘더 작.
'실낙원'의 여러 파트에는 하늘에서의 '천사들의 전쟁'에 대한 이야기가 여러 번 나온다. 신약성경 요한계시록(묵시록)의 말씀에 바탕을 둔 내용이다. 요한계시록 12장 7-9절을 보면 '하늘에 전쟁이 있으니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이 용과 더불어 싸울 새 용과 그의 사자들도 싸우나/이기지 못하여 다시 하늘에서 그들이 있을 곳을 얻지 못한지라/큰 용이 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천하를 꾀는 자라. 그가 땅으로 내쫓기니 그의 사자들고 그와 함께 내쫓기니라'라고 되어 있다.
천사장 중의 하나인 미가엘이 이끄는 천군 천사들과 악마 또는 사탄으로 판명된 용이 이끄는 무리가 전쟁을 벌이지만, 미가엘이 사탄의 세력을 물리치고 그들을 하늘에서 땅으로 쫓아낸다는 내용이다. 신실한 천사들과 사탄의 세력의 전쟁은 사흘 동안 계속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마지막 날의 전투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단 한 칼에 반란을 일으킨 천사들의 전체 부대를 물리치고 그들을 하늘에서 사라지게 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늘나라를 깨끗게 한 후에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창조의 마지막은 아담과 이브의 창조로서 완결시켰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자기의 형상대로 지으신 아담과 이브에게 모든 자유를 주셨으며, 모든 창조물들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셨다. 다만 한 가지 예외가 있었으니 선과 악을 알 수 있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 것이며, 만일 먹는다면 죽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천사장 미가엘이 사탄을 물리치는 장면. 피터 파울 루벤스 작
'실낙원'에서의 아담과 이브가 유혹에 빠지고 타락하게 되는 스토리는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알고 있는 내용과는 기본적으로 다르다. 아담과 이브의 타락은 어찌 보면 순전히 인간적이고 세속적이다. 아담과 이브는 아직 죄를 짓지 않고 있을 때부터 로맨틱한 관계를 유지하며 따라서 섹스를 즐기기도 했다는 것이다. 아담과 이브는 하나님의 로봇이 아니라 열정과 개성을 지닌 존재였다는 것이다. 그러한 아담과 이브에게 사탄이 뱀의 형상으로 가장하여 접근한다. 사탄은 먼저 이브의 허영심을 자극하고 감언으로 유혹하여서 선악과를 먹게 한다. 아담은 이브가 죄를 지은 것을 알고도 똑 같은 죄를 짓는다. 아담은 이브가 자기의 살과 뼈로 만들어진 존재이므로 한 몸이니 이브가 만일 죽게 된다면 자기도 죽어야만 한다고 선언한다. 밀튼은 이러한 방식으로 아담은 영웅적 인물로 그려 놓았다. 하지만 또한 이브보다도 더 큰 죄인으로도 그려 놓았다. 왜냐하면 무엇이 나쁜지를 알고서도 죄를 지었기 때문이다. 처음에 아담은 이브가 선악과를 따 먹는 것이 유익하다고 생각한 것이야 말로 옳은 일이라고 확신했다. 아담과 이브는 선악과를 먹은 후에 곧 잠에 빠졌으며, 자면서 아주 무서운 악몽을 꾸었다고 한다. 두 사람은 잠에서 깨어난 후에 처음으로 죄의식과 수치심을 경험하게 되었다고 한다. 두 사람은 하나님에 대하여 두렵도록 나쁜 죄를 지은 것을 깨닫고서 자기의 죄를 덮기 위해 서로를 비난하였다. 그리고 '실낙원'에 따르면 아담과 이브는 선악과를 먹은 후에 쾌락적인 섹스를 가졌다고 되어 있다.
사탄의 꼬임에 빠져서 하나님이 먹지 말라고 하신 선악과를 먹는 아담과 이브. 뱀은 릴리스라고 한다. 라파엘 작.
한편, 아담과 이브를 파멸시켜서 에덴동산으로부터 쫓겨 나게 만든 사탄은 마치 개선장군처럼 지옥에 돌아 온다. 사탄은 타락한 천사들로부터 찬양을 받는다. 사탄은 타락한 천사들에게 어떻게 자기의 계략이 맞아 떨어졌는지, 그리고 인간이란 존재들이 파멸했는지에 대하여 얘기해 준다. 사탄은 덧붙여서 이제로부터는 에덴에 대하여 완전한 지배를 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한다. 사탄의 설명이 끝나자, 사탄의 주위에 모여 있던 타락한 천사들은 순식간에 소름 끼치는 뱀으로 변했고, 이어서 사탄 자신도 뱀으로 변한다. 더구나 사탄은 손발이 모두 없어지고 말도 할 수 없게 된다. 사탄과 타락한 천사들은 모두 같은 처벌을 받은 것이다. 모두 같은 죄를 졌기 때문이다.
이브는 아담에게 하나님과 화해하라고 호소한다. 아담은 이브가 그렇게 간청하자 마음을 가다듬어서 하나님에게 다가 간다. 아담은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은혜와 자비로서 용서해 달라고 간청한다. 하나님은 대천사 미가엘로 하여금 아담이 비전을 볼 수 있게 하신다. 하나님은 비전을 통해서 아담에게 앞으로 대홍수가 있을 때까지 인간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을 목격하게 될 것이라는 말씀하신다. 아담은 당장의 용서가 아니라 미래의 비전을 보여주신데 대하여 크게 실망한다. 이에 미가엘이 아담에게 인간의 원죄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원 받을 수 있다고 말해 준다. 미가엘은 예수 그리스도를 '왕되신 구세주'(King Messiah)라고 부른다. 그 후 아담과 이브는 에덴으로부터 쫓겨 난다. 미가엘 대천사는 아담에게 '그대 안에서 낙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며, 마음 속에서 더 행복함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아담과 이브는 에덴에서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를 언제라도 볼 수 있고 얘기를 나눌 수 있었지만, 에덴에서 추방된 이제는 하나님을 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 거리가 있는 관계에 있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상이 '실낙원'의 줄거리이다.
복락원 (Paradise Regained)
※ '복락원'은 '실락원'의 속편이라 할 수 있는 작품으로, 전 4권으로 된 서사시.
황야의 그리스도와 사탄의 유혹을 주제로 하고 있다.
빵도 명예도 권세도 지식도 물리치고 사탄을 전락시킨 그리스도에 의해 지상 낙원은 다시금 인간에게 회복된다.
'실락원'에서 볼 수 있는 웅대하고 숭고한 취향은 없으나, 정연한 형식미와 고담한 필치는 시인의 한층 성숙된 면을 보여 주고 있다.
복락원 서시
내 일찍이 행복의 동산을 노래했으니,
한 사람의 불순종으로 해서 잃은 바 이야기였으나
다시 노래하는 바는 인류에게 회복된 낙원이어라.
이 또한 한 사람이 확고한 순종으로 해서
온갖 유혹을 넘고, 많은 시련을 겪은 뒤에
유혹자는 모든 간계가 드러나 패하고 배척을 받아
에덴은 황막한 광야에 서게 되었어라.
성령이시여, 이 영광의 은자를 당신은
황야로 인도하여 영혼의 원수에 대하여 승리의 땅을
얻게 하시고, 거기 하나님의 참된 아들의 증거로
불러 일으키소서. 이 내 자국의 노래를.
아니면 침묵에 묻히리라. 그리고 순조로운 날개를 충분히
가누어 자연의 한계의 깊이와 높이로 이끌어 가
더욱 영웅적인 공적을 전할 수 있게 하시라.
비록 그런 공적은 남모르게 이루어지고 또한
세세 대대에 걸쳐 기록도 없이 남겨지는 하지만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노래조차 없이
남겨지지 않을 수 있으랴.
자, 저 위대한 예언자는 나팔소리 보다도
더 엄숙한 소리로 회개하라고 외쳤도다. 세례를
받은 모든 신도에게 천국이 가까왔다고
외쳤도다. 그의 위대한 세례를 보고 근처
사방에서 사람들이 두려움을 안고 모여 들었도다.
저들과 더불어 나사렛으로부터
요단 강으로 왔도다. 그 때까지 아직도 세상에 이름도 없었고
드러나지 않고 알려지지도 않은 사람이 왔도다.
인류의 역사는 낙원을 잃은 인생들의 몸부림치는 발자취와 낙원을 회복코자 하는 인생들의 몸부림치는 발자취라고 해서 좋을 것입니다.
개인의 생활을 비롯해서 나라의 정치, 경제, 문화등 모든 영역의 활동이 이상적인 나라, 또는 이상적인 세계를 건설해 보겠다는 인간의 욕구의 발로라고 하겠습니다.
뜻 있는 사람들은 예외 없이 이상적인 세계를 동경하고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동경하는 이상적인 세계는 어떤 세계입니까?
성경에 이상적인 세계를 알려 주는 내용이 2곳에 있습니다.
그 하나는 창1장과 2장이요, 다른 하나는 요한계시록 21장과 22장입니다. 오늘 우리들이 이 이상적인 세계를 건설할 수 있을까요?
예, 분명히 우리들에게는 소망이 있습니다.
우리들은 그 축복의 세계에서 살도록 부르심을 받은 것입니다.
파탄에 이른 세계를 어떻게 회복할 수 있습니까?
1.하나님이 처음 지으신 아름다운 세계를 보십시다.
하나님이 처음 천지 만물을 창조하셨을 때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말씀이 창1장에 7번이나 나옵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그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창1:3,4)
“하나님이 땅의 짐승을 그 종류대로 육축을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그 모든 것을 종류대로 만드시니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여기 “좋았더라”는 히브리 말씀은 “아름답다”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창1:31)고 했는데, 여기 “심히 좋았더라”는 말씀은 “보라 얼마나 좋은고” “보라 얼마나 아름다운고”라는 감탄의 말입니다.
우리들이 4인치 망원경으로 맑은 밤 하늘을 보노라면, 200만개의 별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미국의 팔로마루(Palomar) 산정의 천문대에 있는 200인치 망원경으로 밤 하늘을 보면 10억개가 넘는 별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여러분 밤 하늘에 반짝이는 그 별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하나님께서 사람을 자기 형상대로 창조하시고,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기를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창1:28)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에덴 낙원에 살도록 하셨습니다.
에덴이라는 뜻은 “즐거움”, “기쁨”, “쾌락”이라는 뜻입니다.
이 낙원에는 4강이 흘렀고, 각종 나무의 실과가 아름답게 풍성히 맺혀 있었습니다. 실로 즐거운 동산이요, 복락의 동산이었습니다.
아담은 하나님이 지으신 각종 들짐승들과 공중의 각 새들과 각종 생물을 다스리기 위하여 각각 이름을 지었으니, 아담의 지혜가 대단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들 부부의 삶은 얼마나 행복했습니까?
아담이 하와를 일컬어 하는 말이 “이는 내 뼈중의 뼈요, 살중의 살이라”고 하였으니, 이는 아담의 사랑의 고백이라 할 것이요, 그의 사랑의 노래라고 할 것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사랑의 노래는 이러합니다.
“나는 나의 사랑하는 자에게 속하였구나. 그가 나를 사모하는구나. 나의 사랑하는 자야. 우리가 함께 들로 가서 동네에서 유숙하자. 우리가 일찍이 일어 나서 포도원으로 가서 포도움이 돋았는지, 꽃 순이 퍼졌는지, 석류꽃이 피었는지 보자. 거기서 내가 나의 사랑을 네게 주리라.”(아가7:10-12)
실로 에덴 낙원에는 해함도 없고, 상함도 없었습니다.
눈물도 없고, 탄식도 없었습니다. 질병도 없고, 고통도 없었습니다.
에덴 낙원에는 굶주림도 없고, 불편한 것이란 전혀 없었습니다.
실로 그 동산은 사랑이 넘치는 동산이요, 기쁨이 넘치는 동산이었으니, 축복의 낙원이라 할 것입니다.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2.오늘 인간의 파탄의 모습을 보십시다.
1>. 그 무엇보다도 영적인 파탄이 생겼다는 것이 가장 큰 비극이요 불행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며 섬기는 것이 우리들의 행보인데, 오늘 많은 인생들이 하나님과의 적대 관계에 있다는 것이 큰 비극이 아닐 수 없습니다.
2>. 이성의 파탄입니다.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로 알고, 무화과 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하였더라.”(창3:7)
또 다른 말씀은 그들의 판단이 흐려지고 생각이 잘못됐다는 것을 암시해 줍니다.
이성의 파탄으로 어두워진 인간의 부끄러운 모습을 성경은 이렇게 알려 줍니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롬1:21-23)
① 사람이 얼마나 어두워졌으면,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는 조각품 앞에서 큰 절을 하며 복을 구합니까?
② 사람이 얼마나 미련해졌으면 돼지 머리 앞에 큰 절을 하며 평안을 구합니까? 사람이 얼마나 미련해졌으면 원숭이가 사람의 조상이라고 말합니까?
③ 1960년 미국 예일 대학의 인류학자 데이비드 필립스 박사는 “사람의 조상은 원숭이다”라고 주장하면서, 그는 10년 간을 파키스탄을 헤매면서 그 사실을 실증코자 했습니다. 그리고는 라마티커스라는 화석을 발견해서 그것이 원숭이와 인간의 중간형이라고 주장을 했습니다.
3>. 정서의 파탄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이 부르실 때 대답하기를,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3:10)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분명히 정서가 잘못된 것입니다.
현대인들이 복잡한 사회에서 바쁘게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정서적으로 안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마음의 초조함, 불안, 긴장, 공포, 고독, 갈등... 등 여러 가지 정서불안 현상이 있어서 요즘은 심리학이나 상담학을 공부한 사람들이 인기라고 합니다.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 인구의 1%인 42만 여명이 정서 불안으로 정신과 의사를 찾는다고 합니다.
최근에 어떤 정신 이상자가 일가족 4명을 살해한 끔찍한 사건도 있었습니다. 악담을 하거나 폭언을 하거나 비방하는 이들의 심리를 분석해 보면 그들의 정서에 이상이 있다는 것입니다.
4>. 대인관계의 파탄입니다.
지난 날 아담이 사랑하는 아내 하와를 가리켜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고 고백한 바가 있었는데, 아담은 자기의 잘못한 것을 책임질 줄 모르고 하와로 인하여 잘못을 저질렀다고 말했습니다. 들어 보시지요.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이렇게 물어 보셨습니다.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고하였느냐?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고 명한 그 나무 실과를 네가 먹었느냐” 아담의 대답이 이러합니다.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하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실과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창3:12)
“나와 함께 하게 하신 여자” 아담의 이 말에는 하와를 멸시하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천대하는 뜻도 들어 있습니다. 아담의 그 말은 하와에게 대해서 적대감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아담은 울분을 품고 그 말을 한 줄 압니다.
이제는 아담과 하와의 오고 가는 사랑은 사라졌고, 함께 누리던 기쁨도 사라졌으며, 그들 사이에 울분이 깃들어 있었다고 봅니다.
이것은 그들의 가정이 파탄 지경에 이른 것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인격 관계에 있어서 멸시하거나 천대하거나 적대감을 가지면, 그 관계는 파탄에 이르는 것입니다.
훗일 가인이 동생 아벨을 시기하던 나머지 쳐죽인 사건이 생겼습니다. 우리 나라의 경우는 자세히 알 수 없으나 미국에서는 일년에도 160만명의 태아가 살해된다고 하니, 실로 끔찍스러운 일입니다.
천하 보다도 귀한 생명의 존엄성을 모를 만큼 인간이 사나워졌습니다. 개인 간의 싸움이나, 부족 간의 싸움이나, 나라와 나라 간의 전쟁도 서로 존중함이 없고, 멸시 천대하고, 적대감을 가지는 데서 발생하는 것입니다.
5>. 환경의 파탄입니다.
땅이--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환경의 파탄을 뜻합니다. 처음 하나님이 지으신 동산에는 사람을 괴롭히거나 해치는 것들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이 땅에 가시덤불과 엉겅퀴가 생겼습니다.
오늘 우리들은 환경의 오염으로 시달리고 있습니다.
공기 오염도 심해집니다. 요즈음 우리 나라에서는 물 오염으로 인한 문제가 심각하게 논란되고 있습니다.
쓰레기 오염 등 환경 오염은 위험 수위에 이르렀다고 해서 좋을 것입니다. 농토의 산성화로 인해서 농사에도 막대한 피해가 있다고 합니다.
6>. 육신의 파탄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 갈 것이니라.”(3:19)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우리 인생이 병들어 죽든지, 굶어 죽든지, 무슨 사고로 죽든지, 늙어서 죽든지 육신이 파탄하게 되어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말하기를 “주께서 저희를 홍수처럼 쓸어 가시나이다. 저희는 잠간 자는 것 같으며, 아침에 돋는 풀 같으니이다. 풀은 아침에 꽃이 피어 자라다가 저녁에는 벤 바 되어 마르나이다.”(시90:5,6) 라고 하였습니다.
3.인간 파탄의 원인
인간이 이처럼 파탄 지경에 이른 것은 한 마디로 말해서 죄 때문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께서 금하신 금단 과일을 따 먹으므로 인간의 파탄과 온갖 비극이 생긴 것입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창2:17)
이것은 하나님이 내신 법입니다. 짐승과의 관계에는 법이 필요 없으나, 인격 관계에는 반드시 법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를 인격적으로 대하시고저 법을 내신 것입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는 그 법을 파기 하였습니다. 이것이 파탄의 원인입니다. 이제 아담과 하와의 범죄의 단계를 잠깐 소개합니다.
1>. 하와가 뱀과 교제를 한 것입니다.(창3:1-3)
뱀으로 가장한 마귀는 하와가 하나님과의 계약의 당사자가 아님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와를 넘어뜨리면 아담을 쉽게 넘어뜨릴 수 있다고 판단을 하고 하와에게 접근하여 말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 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뱀의 말에 하와는 대답할 필요가 없습니다. 악한 자, 유혹자에게는 대답을 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할 말이 있다면 “사탄아. 물러 가라”고 했어야 합니다. 그런데 하와는 뱀에게 말을 하였습니다.
이것은 사탄과의 교제를 뜻합니다.
2>.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했다는 것입니다.
하와는 뱀에게 대답하기를 “동산 나무의 실과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만지지도 말라”는 말은 하나님의 말씀 외에 다른 것을 더한 것이요, “죽을까 하노라”는 이 말은 하나님의 말씀을 감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죽는다고 했지, 죽을지도 모른다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인 일점 일획도 변치 아니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 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계22;18-19)
오늘 교계에는 이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 외에 더한 불건전한 신비주의가 날뛰고, 또 하나님의 말씀을 감한 자유주의 신학이 날뛰고 있는 것을 우리들은 경계해야 합니다.
3>. 하와가 눈으로 그 나무를 보았습니다.
많은 죄가 눈을 통해서 들어 옵니다.
사사기 서에 보면 장사인 “삼손이 -- 한 여자를 보고”(14:1) “삼손이 --한 기생을 보고”(16:1)란 기록이 있습니다.
삼손이 눈으로 한 여자를 보므로, 범죄하여 훗날 두 눈이 뽑히고 부끄러운 지경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 보자.”(히12:2)고 말합니다.
4>. 하와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 먹었습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1:15)
처음에 욕심을 다스리고 악은 그 모양이라도 버려야지, 그렇지 않았을 때에는 죄를 범하게 되는 것입니다.
5>. 하와가 그 실과를 남편에게도 주매, 아담도 먹었습니다.(3:6)
죄는 팽창력이 있습니다. 죄는 이전성이 있습니다.
하와는 자기만 혼자 범죄하지 않고 가장 사랑한다는 남편까지 범죄케 하였습니다. 실로 죄악은 전염병과 같아서,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로 확산이 됩니다.
토마스 왓슨이라는 성경학자는 “아담과 하와가 범한 죄에는 10가지 내용의 죄가 들어 있다”고 말했습니다.
① 불신앙 ② 감사치 않은 것 ③ 불만족 ④ 교만 ⑤ 억측 ⑥ 월권하려는 심사 ⑦ 불순종 ⑧ 방종 ⑨ 신성모독 ⑩ 살인죄
롬1:29 이하를 보면, 사람이 마음에 하나님을 두기를 싫어할 때 온갖 죄를 범하는데 여기 21가지 죄목이 열거되어 있습니다.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롬1:29-31)
4.파탄된 인간의 회복의 길
1>. 부정적으로는 인간 스스로의 힘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무화가 나뭇잎을 얶어 치마를 해 입은 것은 인조 종교의 원형적 행위였다고 하겠습니다.
우리 인간의 죄 문제는 자기의 수단, 방법이나, 자기의 노력으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우리 인간이 죄 문제를 해결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정상화하는 일은 인간 자신의 그 어떤 공로도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울어도 못하네
2>. 긍정적으로 인간 회복과 구원의 길은 긍휼이 많으신 하나님이 내어 주셔야 합니다.
그래서 긍휼이 많으신 하나님께서는 먼저 범죄한 아담을 찾으신 것입니다.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이것은 하나님께서 아담이 어디 있는지 몰라서 찾으신 것이 아닙니다.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이 말씀 속에는 다음과 같은 뜻이 있다고 봅니다.
① 네가 나를 가까이 하고 있느냐? 멀리 하고 있느냐?
② 네가 나를 섬기는 자리에 있느냐? 네가 나를 대적하는 자리에 있느냐?
③ 네가 나를 기뻐하는 자리에 있느냐? 불평하는 자리에 있느냐?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께서 아담을 부르시는 것은
① 아담의 어려운 처지를 아시고, 도우시려고 하신 것입니다.
② 하나님께서 그의 사랑에 변함이 없다는 것을 아담에게 알리시는 것입니다.
③ 범죄한 인생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바로 응해야 살 길이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아 감은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기 때문이요, 죄인을 부르시는 하나님의 자비의 음성은 오늘도 들려 오고 있습니다.
어서 돌아 오오
3>. 하나님께서 원수 마귀를 물리쳐 주셔야 살 길이 열립니다.
하나님께서 하와를 미혹해서 범죄케 한 뱀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이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창3:15)
이것을 신학적으로 원시복음이라고 합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범죄한 인생들에게 들려 주신 구원의 첫 소식이었습니다.
이 말씀은
① 우리 인생은 영원히 마귀를 원수로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②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여인의 후손으로 메시아, 곧 구세주를 보내주시겠다는 첫 번 약속입니다. 그 약속대로 예수님은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신 것입니다.
③ 이 말씀은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마귀에게 조금 상처를 입으신다는 것이니 이로써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육신의 고초를 당하셨습니다.
④ 여인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라는 뜻은 우리 구주 예수님께서 마귀의 세력을 온전히 정복할 것을 예고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성경대로 우리들을 위하여 육신을 입으시고 동정녀의 몸에서 나시고 우리들을 위한 화목제로 십자가의 고초를 당하사 보배로운 피를 흘려 주셨습니다.
그는 성경대로 3일 만에 다시 살아 나사 사망 권세를 정복하시고 마귀의 세력도 온전히 정복하신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제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들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사53:5)
아담은 하나님의 구원의 소식을 들은 후, 아내의 이름을 하와라고 불렀습니다. 그 뜻은 “모든 산 자의 어미가 된다”는 뜻이니, 이는 아담의 신앙의 표현이라고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입혀 주셨습니다.
이것은 피 흘림이 있어야 사함이 있음을 암시한 것이요(히9:22),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게 된다는 구원의 도를 가르쳐 준 것입니다.
기독교는 사죄의 종교요, 믿음의 종교입니다. 이제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습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 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5:17)
사람이 새로워지면, 모든 것이 새로워 집니다.
사11:6-9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거하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찐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나의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한 것임이니라.”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성도 여러분!
인간의 파탄으로 사람 만이 아니라, 자연 만물까지 탄식하는 소리가 들려 오는 이 때에 회복의 길, 구원의 길이 오직 하나임을 확신하고 널리 알립시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주를 믿는 우리들은 주님 다시 오시는 그날 신천신지 새 땅에서 영생 복락을 누리게 될 것이니,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가 누릴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을 믿고,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