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끔 컨설팅을 해 주는 국가기술표준원 사람들은 자신들이 하는 일이 헌법에 규정된 것을 매우 의아스럽게 여겼다.
국가는 국가표준제도를 확립한다.
바로 내가 사무관 시절에 전두환이 체육관 선거에 관심을 두지 못하도록 새로운 것들을 잔뜩 집어 넣으라는 지시에 따라 세계 각국 헌법을 들추고 진시황의 도량형 통일까지 들먹이며 집어 넣었던 조항이다.
표준제도는 우리 일상의 모든 일에 필요하다.
표준이란 좋지만 다원성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는 사람까지도 표준화하여 공장에서 찍어내지 않을까 걱정거리를 안겨 준다.
그래도 실제 사례로서 우리가 초기에 한글자판(유식한 용어로 폰트라고 하던가?)을 하나와 아래 아 등 몇개로 나뉘는 바람에 엄청난 행정적 손실을 초래했다든지 하는 이른바 표준화 문제는 효율의 기본 아이콘이 되었다.
국제적으로도 ISO란 단체에서 표준화를 삶의 모든 분야에서 추구하고 있다.
무려 근 40년 전에 내가 생각해서 헌법에 집어 넣었던 것이 이렇게 중요한 것이었줄 줄이야?
국가기술표준원은 또한 제품안전정책을 총괄한다.
제품안전은 소비자단체에서도 엄청난 관심을 갖는다.
핸드폰 밧데리에 불이 붙어 사람이 상할 뻔 했다든지, 가습기에 살균을 한다는 게 애꿎은 엄마와 아이의 호흡기를 절단냈다든지, 편한 잠을 잔다고 샀더니 라돈이란 방사능을 뿜어대는 침대라든지.
소비자 운동을 보호한다는 조항도 내가 넣었다.
그 때에도 일부 치마부대가 소비자운동을 하고 있었다.
나는 소비자권리를 기본권의 차원으로까지 생각하지는 못했고 그저 소비자들도 자신들이 겪은 피해와 억울함을 재벌들과 행정기관에 항의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정도의 생각에서 집어 넣은 것이다.
소비자단체의 주력부대인 엄마부대 사람들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아줌마, 나는 이 조항을 무려 40년 전에 생각해 낸 사람이란 말이오.
걸핏하면 헌법적 가치를 들먹인다.
표준제도도 헌법에 규정된 이상 헌법이 보호하여야 할 가치라고 하며소비자의 권리도 헌법의 핵심인 기본권으로 고양되었다는 것이다.
뭐 그것이야 같은 일을 여러 단체에서 나누어 가지면서 업무 매뉴얼도 제각기 만드는 바람에 촌각을 다투는 상황에서 단체간 협조가 전혀 안되고 혼란만 가중되는 현실을 본다든지, 수백명의 소중한 목숨이 처절한 고통 속에 스러져 간 가습기 살균제 사건을 보면서 나도 뼈저리게 느낀 사항이긴 한데.
헌법이란 게 별것이냐?
많은 국민들이 편하게 안전하게 사는데 지장을 주는 요소들을 없애는데 신통력을 발휘한다면 참 기특한 헌법일 수 밖에 없지.
그런데 농협에서 농업가치를 들고 나오자 수협에서는 수산업의 가치를 들고 나오고 같은 바다를 무대로 하는 해양단체들은 해양의 가치를 들고 나온다.
산림청은 산림의 가치를 부르짖고 동네마다 난리들이다.
헌법을 연구한다는 학회에서 이런 현상을 부추기기도 한단다.
농업가치는 시사적인 측면이 있다.
농업을 기본으로 하여 수천년을 내려온 우리가 지금은 주식마저 자급을 하지 못하고 국내에서 토종 농산물을 생산하는 농민들의 어려움은 가중되어 가는데 WTO니 FTA니 하는 것들은 걸핏하면 농산물을 희생양으로 삼으려 드니 농업이란 게 도대체 무엇인지 한번 물어볼 여지는 있다.
전두환이는 체육관 선거에 대한 비난만 줄일 수 있다면 기본권과 경제조항 등에 좋은 말을 마구 집어넣으라고 성화였다.
또 자신의 임기가 다 되어 가자 수상독재제라는 장기집권 플랜을 가동하기 위해 또 국민들의 환심을 살 조항들을 더 집어 넣으라고 성화여서 서빙고인지 동빙고인지 하는 안가에서 머리를 싸매면서 새로운 것들을 집어 넣으려 안달을 했다.
덕분에 기본권 조항을 보면 소년과 여성에 대한 특별 근로보호(이는 노동법의 역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자본주의가 재생산을 멈출 가장 큰 요인 중 하나가 여성과 소년 노동으로 인한 출산율 저하와 교육수준 저하임을 깨달은 저들이 구휼적 차원에서 여성과 소년을 보호하는 노동입법을 한 것이 오늘날 노동법의 시원이었으니) 정도 였던 것이 전두환 장인이 노인회장을 하는 바람에 부쩍 커버린 노인들이 들어가자 아동 외에 청소년도 넣자, 장애인도 넣자, 하다 못해 국가유공자도 뭔가 특별대우를 해달라 등등이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나처럼 성인 남자로서 장애가 없는 사람만 서럽게 될 처지가 되었다.
하기야 나도 노인이 되어간다만 요즘 노령화 시대에 80은 되어야 노인대접을 받을 것 같으니 아직 멀었다.
게다가 환경권 등이 들어간 자리에 갑자기 주택정책 수립이 들어가고 범죄피해로 인해 알거지가 된 사람이 범죄가 횡행하도록 방치한 국가에 대하여 금전적 도움을 요구하는 것이 청구권인지 생존권의 일종인지도 문제가 되었다.
아무튼 헌법이 무슨 동네북 내지는 온갖 낙서로 뒤범벅이 된 초등학생의 미술작품이 되어 버린 느낌이었다.
이번 개헌에서는 웬일인지 이런 사태가 조금 진정되었다.
헌법학회 등에서 부추겨도 별무 반응을 보이는 집단들이 태반인 듯 싶다.
물론 몇몇 단체들은 회원들의 눈총이 두려워 건의서도 내고 세미나도 하는 시늉을 하지만 꼭 헌법에 넣어 달라고 떼를 쓰지는 않는 것 같다.
자기들이 생각해도 좀 멋적은 면이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헌법에 한 줄, 아니 한 단어라도 들어가면 나중에 법률을 만들 때 목에 힘을 줄 수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돈줄을 꽉 쥔 기재부 예산실도 헌법에 나오는데요 하면 움찔한다.
헌법적 가치는 이럴 때 써 먹으려고 만든 용어인 듯도 싶다.
그러나 권력분립과 기본권 보장, 법치주의 등 수많은 사람들이 피흘려 쟁취하고 쌓아온 고상한 이념들은 헌법적 가치의 자리에서 외면을 받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대의제이다.
대의제는 인구의 증가와 사회의 분화로 어쩔 수 없이 채택하지 않으면 안되는 제도이다.
그런데 촛불에 고무된 사람들은 걸핏하면 국회해산을 부르짖고 의원이 갖는 특권에 저주를 퍼붓는다.
모든 것은 촛불들이 직접 결정하겠다는 것.
그러나 왜 개헌 국민투표를 지방선거와 맞추려 했고 그것이 무산되자 사실상 개헌은 물건너 갔다고 했겠는가?
주어진 밥상에 슫가락 얹는 것도 귀찮아 하는 국민들이 수도 없이 많다는 반증이다.
헌법적 가치는 그리 가벼운 것이 아니다.
역사의 무게가 얹혀져 있고 수많은 사람들의 애끓는 사연들이 스며 있으며 붉은 피로 물들여져 있는 것이 바로 헌법적 가치이다.
헌법적 가치는 간단하다.
헌법이 기본권과 권력구조로 대별되는 만큼 기본권에서의 헌법적 가치는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확보하고 국가권력으로부터 개인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권리를 쟁취해 내며 바이마르 이후 정립된 인간다운 삶을 보장받는 것이다.
여기에는 소수파라고 예외가 있지 않으며 사회적 약자는 오히려 특별한 보호를 받을 권리가 있다.
무상급식을 타파하려다 시장직을 날린 불행한 사나이를 기억한다.
재벌가 아이와 막노동 내지는 그도 없어 빈둥거리는 실업자 아이가 밥 먹을 때는 똑같이 먹도록 하자는 갸륵한 무상급식.
몰지각한 일부 교사들이 급식비를 걷으면서 "개똥이는 무상급식이니 안 내도 돼"라고 하여 밥 조차도 공짜밥과 돈낸 밥으로 나뉘어 아이들 가슴에 피멍이 들었다는 것이 무상급식의 논거.
그러나 몰지각한 교사들을 꾸짖고 그에 앞서 개똥이는 헌법이 특별히 보호하는 중요한 사람임을 다른 아이들에게 가르쳤어야 하지 않았을까.
아무튼 우리는 헌법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
자유권이란 것들은 국가로부터의 권리이므로 최대보장이 필요한 반면 생존권에 해당하는 것들은 국가를 향한 권리인데 이를 최대보장 할 경우 사회주의와 구분이 안되기에 이는 최소보장에 그쳐야 한다는 논리도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다.
권력구조는 더 간단하다.
절대권력은 절대부패하므로 권력은 분산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여러 헌법기관을 만들어 기능적으로 분산시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당정치에서 복수정당을 만들어 어느 하나의 정당이 설치지 못하도록 국민들에게 선택권을 부여한다는 것도 잊어서는 안된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지방선거가 특정 정당의 싹쓸이로 끝나 가는데 선거 후 야당다운 야당이 복원되도록 국민들도 관심과 조력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권력은 쪼개져야 하지만 쪼개진 권력은 효율면에서는 손해이다.
따라서 한없이 쪼개는 것은 곤란하고 준비가 안된 집단에게 건네주기 위해서 쪼개서도 안된다.
나는 최근의 개헌논의를 형편없는 것으로 평가절하한다.
30년을 참고 지낸 헌법을 고치면서 코 앞조차 내다보지 못하고 개헌을 논의한다는 것이 참 걱정스럽다.
아무리 세상이 급하게 변해도 이번 헌법은 최소한 30년을 내다보고 만들어야 한다.
지금 세계는 무자비한 자원 및 시장쟁탈전과 새로운 패권주의를 추구한다.
각국에 속한 개인들은 개인의 삶이 모든 면에서 부족함이 없고 편리함과 평안함을 보장해야 한다고 믿는다.
이런 세상을 만들려면 과학이 관건이 된다.
2등 이하는 설 자리가 없는 극한 경쟁시대에 살아남는 비결은 남이 생각하지 못한 것을 먼저 생각해 내 독점하는 것이다.
선택과 집중이 요구되고 국가의 대규모 지원이 필수이다.
그러나 우리 과학기술은 아직도 사이드에서 눈치나 살피는 가련한 처지이다.
헌법에 집어 넣을 것은 바로 과학의 가치이다.
아울러 국가의 권력집행과 국가역량의 우선순위를 정할 때 과학기술에 절대적 가점을 부여하는 방안이 헌법에 명시되어야 한다.
일본이 가증스럽고 중국의 추월이 못마땅하고 독일의 독주가 배아프다면 우리는 과학기술에 특혜와 특전을 아끼지 말아야 하며 그런 취지가 헌법에 명시되어야 한다.
다음으로 우리 상황에서 필수적인 것은 통일이다.
김구선생이 부르짖은 통일은 외세의 분단을 극복한 직후 동족끼리 총부리를 겨누어야 하는 비극을 막으려는 몸부림이었다.
이 시대 우리가 부르짖는 통일은 동북아 국제정치의 각축장에서 5천년 유구한 역사와 문화를 간직한 우리가 우리의 것을 지키고 우리의 지분을 확보하려는 것이다.
통일은 기회이다.
평화정착에서 한 발을 더 내디뎌라.
우리의 궁극적 목표는 통일이다.
헌법에는 최소한 통일에의 청사진이 선명히 그려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