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광산 장안사(佛光山長安寺)
- 부산시 기장군 장안읍 장안리 598
30여 년 전에 아내와 연애할 때 처음 왔던 절이다.
한 겨울, 눈이 내린 날이었다. 대웅전과 응진전, 명부전 그리고 대웅전 마당에 작은 3층석탑,
고즈넉하였고 눈이 내려서 그런가 절이 아름다웠다.(내 기억엔)
장안사, 금강산 장안사를 연상케 하는 이름이다. 느낌이 참 좋았던 절이었다.
몇 년 전에 왔을 땐 도떼기시장 같았다. 절 주위에 우리나라 풍토에 맞지도 않은 석질의 거대한 조각들.
이 조잡(?)한 것을 볼거리라고 가져다 놓았단 말인가? 흉물스럽게 보였다.
지금은 그런 조잡(?)한 석조각들은 없다.
절로 향하는 길도 잘 닦여져 있고, 식당과 카페, 전원주택들도 많이 들어서 있다.
장안사 앞엔 주차장이 조성되어 있다. 사찰이 잘 정돈되어 있다.
연휴의 마지막 날이라 그런지 절을 찾은 사람들이 많다.
장안사는 신라 문무왕 13년(673) 원효가 창건, 쌍계사라 불렀다. (절 좌우에 계곡이 있다.)
애장왕(재위 800~809년)이 방문한 후 장안사로 고쳐 불렀다.
임진왜란 때 전소, 1638년(인조 16) 태의가 중건, 1654년(효종 5) 원정, 학능, 충묵 등이 중건하였다.
대웅전의 경우, 부산지역에서 건립 연대가 가장 오래된 다포식 건축물이다.
(장안사 안내문 정리)
'송고승전'의 기록에 따르면 원효가 척판암 창건 시 같이 창건하였다고 한다.
1631년(인조 8)과 1638년에 의월 대사와 태의 대사가 각각 중창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어서 1654년(효종 5) 원정, 학능, 충목이 대웅전을 중창하였다. 1948년 각현(覺玄)이 큰 규모로 중수하였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발췌)
아직 척판암엔 가보지 못 했다. 다음 기회에 척판암과 불광산을 만나야겠다.
척판암은 원효가 중국의 승려 1,000명을 구한 전설을 가지고 있다.
불광산에서 가까운 곳에 천성산이 있다. 이 전설과 연계된 것이 아닌가?
일주문이 따로 있지 않다.
대웅전, 명부전, 응진전 그리고 대웅전 건너편에 강당이 있었던 산지형 사찰이었다.
강당은 없고...이 전각이 사천왕문을 대신한다.
사천왕상, 동판 같다.
설법전은 문이 닫혀 있고, 그 안에서 법문이 들리는 것으로 봐서 법회가 있는 모양이다.(소속된 승려만 참석한)
태국에서 가져온 진신사리가 있다는 안내가 있다.
사찰의 규모에 비해 문화재가 많다.
대웅전 / 보물 제1771호
석조 석가여래 삼존불 좌상 / 보물 제1824호
대웅전에는 참배하는 이들이 많아 들어가서 건축 구조를 보지 않았다. 불상도 밖에서 촬영.
격자살과 교살, 꽃 문양의 어간문.
대웅전 외벽에 그려진 그림 몇 장을 담아봤다.
응진전 / 부산시 유형문화재 제107호
석조 삼존불과 나한상 / 부산시 유형문화재 제85호
산신각
명부전 / 부산시 유형문화재 제106호
석조 지장보살과 시왕상 / 부산시 유형문화재 제86호
(사진을 편집할 기술이 없어 명부전에 올려져 있는 영정 사진, 미안하게 생각함)
해동전
원효 이야기 숲. 따라서 걸었다.
석탑 2기가 있지만 별도 안내문은 없다.
부도밭. 여기저기 있는 부도를 이곳에 모았다.
이런 모양도 부도인가? 불상이 아닌가?
선교양종월조당대선사지탑
선암당명?대사
연파당대사??지탑
(연파 혜장(蓮坡惠藏)은 아닌 모양. 연파(법호) 혜장(법명)은 해남 대둔사에 주로 주석하였고 40대 초에 입적한 승려)
백팔번뇌(108 계단)의 진리.
계단의 수를 세면서 올랐다. 계속 산행을 하였다. 1시간 가량 걸었다.
불광산 정상까지는 무리, 중도에 장안사로 내려왔다. (오후 3시~4시)
앞산에 햇살이 걸려있다. 장안사 경내엔 햇살이 없다.
설법전 옆, 어디서 구해 왔을까?
설법전 안에는 와불이 봉안되어 잇다. 좌우 협시보살도 있으면 와불 안에 진신사리가 있는지 모르겠다.
보호수인 단풍나무, 수령은 200년쯤, 높이 5m, 둘레 2.8m
범종각
응진전
첫댓글 구경 잘 하구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