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사자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어 무기력해질 때
당사자를 만나다 보면 사회복지사로서 당사자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어 무기력해질 때가 있습니다.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자신이 전문성이 부족한 것 같아 당사자에게 미안해지기도 합니다.
만약 내가 아닌 다른 사회복지사를 만났더라면
당사자에게 더 많은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싶어 죄책감마저 들기도 합니다.
이런 생각이 계속되어 사회복지사로서 소진을 느끼고 힘들어하는 후배들을 꽤 많이 봐왔습니다.
선배로서 후배 사회복지사의 이 마음이 귀합니다.
어쨌든, 당사자에게 도움이 되고 싶고 당사자가 지금의 어려움을 이겨내고
더 나은 삶을 살게 돕고 싶은 마음이 큰 거니까요.
그런데 달리 생각해 보면 이러한 고민 자체에 오류가 있는 건 아닐까요?
제가 생각한 오류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당사자를 ‘해주어야 하는 존재’라고 생각한 것은 아닐까요?
당사자를 사회복지사인 내가 무언가 해주어야 하는 존재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당사자에게 무언가를 해줄 수 없는 내 모습이 초라해 보이는 것은 아닐지 싶습니다.
그러나 사회복지사인 우리는 당사자에게 무언가를 ‘해주는’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는 그저 인생의 어느 순간에 닥친 문제를 혼자 해결할 힘이나 정보가 부족한 당사자를 만나
그가 자기 삶을 살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할 뿐이지요.
당사자에게 ‘해주는’ 것과 ‘하도록 돕는’ 것은 엄연히 다릅니다.
사회복지사 윤리강령 중 클라이언트에 대한 윤리기준 일부가 2023년 개정되었습니다.
내용을 보면 “사회복지사는 사회복지 실천 과정에서 클라이언트의 자기 결정을 존중하고,
클라이언트를 사회복지 실천의 주체로 인식하여
클라이언트가 자기 결정권을 최대한 행사할 수 있도록 돕는다.”라고 되어있습니다.
개정 전에는 “저들(클라이언트)의 이익을 최대한 대변해야 한다.”라고 되어있었는데
이를 앞선 문장으로 개정함으로써 당사자를 실천 주체로서 인식할 수 있도록 돕고,
그들이 자기 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함을 명확히 하게 되었습니다.
개정된 사회복지사 윤리강령을 보더라도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당사자에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둘째, 사회복지사인 나와 당사자의 능력을 넘어서는 목표를 세웠거나,
감당키 어려운 과업을 붙든 것은 아닐까요?
표준국어대사전을 찾아보니 ‘무기력’의 사전적 정의는 ‘어떠한 일을 감당할 수 있는 기운과 힘이 없음’입니다.
물론 우리는 당사자에게 내재한 힘을 믿습니다.
당사자는 앞서 말한 것처럼 인생의 어느 부분에서 어려움을 혼자 힘으로 해결하기 어려워 도움을 얻고자
사회복지사인 나를 만난 것뿐입니다.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지금까지 살아내 온 당사자는 이 어려움 또한 이겨낼 것을 믿습니다.
하지만 삶을 살아내는 당사자에게도, 그를 돕는 사회복지사인 내게도
해결하기 어려운 일을 붙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봅니다.
예를 들면 당사자의 술 문제입니다. ‘술’이라는 문제를 붙잡으면 우리는 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당사자에게 금주할 수 있도록 교육하고, 병원 진료를 받게 합니다.
처음에는 나아지는 듯하다가도 또 문제가 반복될 겁니다.
사정해 보기도 하고, 협박(?)해 보기도 하다가 결국 사회복지사도 당사자도 지칠 겁니다.
술과 같은 여러 문제가 있더라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붙잡기보다는
문제가 일어나는 원인이 무엇인지(외로워서, 몸과 마음의 힘듦을 잊고 싶어서….) 확인하고
우리가 할 수 있는, 해볼 만한 것들을 붙잡는 편이 낫겠습니다.
이와 관련한 실천 사례는 구슬꿰는실에서 출판한 「곡선의 시선」*을 읽어보면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해볼 만한 일을 붙잡으면 성공 경험이 쌓이고 이는
당사자에게도 사회복지사에게도 조금 더 어려운 일도 해낼 수 있는 힘이 됩니다.
처음부터 무리하게 큰 과업을 목표로 삼기보다는
낮은 수준의 과업에 성공해 보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조금 더 큰 과업을 계획한다면 일이 수월할 겁니다.
*책방 ‘구슬꿰는실’에서 2023년 출판한 책으로 1권과 2권이 한 세트입니다.
당사자를 사회사업으로 도운 사례관리 사회사업 사례집으로 총 63편의 사례가 실려있습니다.
셋째, 사회복지사인 내가 ‘슈퍼맨’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요?
사회복지사는 모든 일을 다 해결해 주는 만능이 아닙니다.
사회복지사인 나의 처지, 역량, 상황도 있고
내가 속해있는 기관과 당사자가 속해있는 지역사회의 처지, 역량, 상황 등도 고려해야 합니다.
당사자가 요구하더라도 사회복지사가 이룰 수 없는 일이 있습니다.
사회복지사에게는 한계가 있습니다.
사회복지사의 정체성, 처지와 역량, 기회비용과 자원을 생각했을 때 돕기 어려운 때도 있습니다.*
대부분 사회복지사는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할까요? 끝까지 문제를 해결하려 합니다.
당사자가 힘들어하고 도와달라 하니, 나를 만난 당사자를 더욱 잘 돕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해결하지 못하는 일도 있습니다.
보통은 한계를 인정하고 내려놓기가 어렵습니다.
당사자의 욕구를 외면하는 것만 같고, 내가 자질이 부족한 사회복지사인 것만 같습니다.
그러나 사회복지사의 정체성, 처지와 역량, 기회비용과 자원을 무시하고
무조건 당사자를 돕는 것이 옳은 일일지 생각해 봅니다.
주어진 상황에서 감당할 수 있는 일을 붙잡는 편이 더 유익할 겁니다.
당사자를 처음 만난 사회복지사가 끝까지 당사자의 모든 일을 떠안고 해결하려고 할 필요는 없습니다.
만약 여러 상황을 고려했음에도 당사자를 잘 돕지 못하겠다면 억지로 붙잡고 해결하려 하기보다는
당사자를 더 잘 도울 수 있는 담당자, 기관에 의뢰합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내가 역량이 부족해서 당사자를 잘 돕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미안함이 들 수 있습니다.
만약 실제로 내 역량이 부족하다면 학습하고 성찰하여 더 나은 사회복지사가 되기를 게을리하지 않으면 됩니다.
* 「복지관 사례관리 공부노트」 (구슬꿰는실, 2021.) 내용 중 ‘욕구’ 부분에서 일부 발췌하였습니다.
이러한 여러 요인을 고려했는데도 여전히
사회복지사인 내가 당사자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어 무기력해질 때가 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고민을 하는 것 자체가 당사자를 더 잘 돕고자 하는 마음이 크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사자를 대하는 마음이 깊지 않다면 이런 고민조차 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러한 고민이 사회복지사로서 성장의 기회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사회복지사로 15년을 지내오며 무기력의 파도를 수도 없이 넘어왔습니다.
그때마다 좌절했고, 당사자에게 미안했으며, 스스로가 전문적이지 못한 것 같아 부끄러웠습니다.
그럼에도 그 거친 파도를 지나 지금까지 사회복지사로 존재하는 이유는
당사자와의 인격적인 관계, 선배들의 지지와 격려, 동료들과 함께했던 학습 덕분입니다.
사회복지사인 우리도 삶을 살아가며 힘들고 지칠 때도 있지만
우리에게도 어려움을 이겨낼 충분한 힘이 내재해 있습니다.
당사자를 믿는 만큼 자기 자신도 믿고, 부족한 부분은 선배에게 슈퍼비전 받고
여러 사례를 읽고 공부하며 채워나간다면 당사자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어 무기력한 지금을 넘어
한 뼘 더 성장한 자신을 마주하게 될 겁니다.
당사자를 더욱 잘 돕기 위해 고민하는 당신이 귀합니다.
고맙습니다.
첫댓글 '사회복지사인 우리도 삶을 살아가며 힘들고 지칠 때도 있지만 우리에게도 어려움을 이겨낼 충분한 힘이 내재해 있습니다.' '당사자를 더욱 잘 돕기 위해 고민하는 당신이 귀합니다.'
이런 글을 쓰고 공유해주는 동료가 있어 힘을 냅니다. 이런 동료가 소중하고 반갑고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