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효 막심한 놈이되겠습니다
나병훈
오늘도/내 키보다/둥실 높이 떠서
끝내는 눈을 감지 못하는/聖女
오, 내 어머니여
- 김동수.「새벽달」부분
시를 도저히 쓸 수가 없을 것이다. 자책하다 뒤척이다 잠에든다.
나는 어느 차가운 취조실 둔탁한 테이블에 붙잡혀 와 진술서를 쓰고 있다. ‘왜 친모를 살인하려 했습니까? 라는 질문에 이르자 붉은 밑줄을 긋는다. 변명을 생각하며 한참을 망서린다. 최소한 사형만은 면하기 위한 변명에 집중해야 했다. 볼펜을 만지작거리다 미양미양 답글을 적는다 “ 어머니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시를 비롯한 예술작품의 세계에서도 생명의 근원이자 성녀聖女라는 지극히 보편화된 소재와 이미지의 옷만 즐겨 입으시기를 고집하기 때문이죠” 옥동자 순산을 갈망하는 시인들에게는 복통腹痛이 터질 일일 것이라는 주석과 함께 굵은 밑줄을 한번 더한다. 자리에서 일어서려다 담당검사를 향해 작심하고 민틋하게 한 문장 더 보탠다. “어머니를 주제나 시적 대상으로 삼을 때에는 얼마만큼 개성적인 구상을 통해 '낯설게' 할 수 있느냐가 옥동자 순산의 비결이라는 시인들의 고통스런 외침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단독범행은 아닙니다. 선처를 부탁드립니다.”라고 적고 나니 가슴이 조금 후련해진다.
왜 그렇게 황당무계荒唐無稽 한 불효를 자초해야만 하느냐고? 이 세상 모든 어머니의 이미지는 인류 보편적인 사랑과 헌신의 화신임을 왜 모르겠는가? 시 습작생인 나는 오늘도 어김없이 시의 행간을 들추며 막 들어가시려 하는 어머니의 치맛자락을 붙잡는다. 실망스럽게도 어제와 같은 똑 모습이요 감촉이다. 어머니는 오늘도 저 지극히도 보편적이고 평범한 이미지의 치마를 입고 웃고 계신다. 나를 조롱하듯 오묘하게 행간을 유영遊泳하며 몸을 가린 채 물안개 너울 되어 말이다. 인내에도 한계는 있는 법. 오늘은 기어코 저 조롱하는 어머니를 죽여 드려야만 할 것 같다.
그러한 나의 불효는 사실 시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계획되었음을 고백한다. 그것은 사실 의도 된 공모였음도. 시가 존속살인尊屬殺人 공범을 자초하고 나섰기 때문이라 굳이 보태지는 않겠다. 시는 구속할 수 없는 새로운 인식이요 함축적 표현이며 이미지 자체로 보이지 않는 정신세계에 살고 있으므로 공모자가 될 수 없음을 알고 있을 터이므로.
사실 진술서를 통해 나는 《온글문학》 시당詩堂을 공모자로 끌여 들여 살인 동기는 “역설의 미학”으로 배우고 익힌 원죄라고 변명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 그들의 견해대로 이 시의 헌법과 같은 역설을 무시하면 무미건조하고 맥아리가 없어 개성의 향기마저 잃어버리게 되어 사산死産을 감수해야 함을 나는 공모해 왔기 때문이다. 고백하건데 나는 ‘진짜 어머니’를 돌아가시게 하는 천하의 불효자로 전락 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과 공포에 시달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때마침 전주고을 《온글문학》으로부터 편지한통. 공모자로서 다가와 흔들리는 어깨를 포근하게 감싸준다. “시 창작은 친숙한 것보다 낯선 것에서 독자들은 소위 '낯섦의 미학적 가치’를 느끼고 새로운 감동을 공유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는 접근이 필요합니다.” 변호인을 자처하신 지도교수의 시혼詩魂이 담긴 가르침 속의 이 ‘낯섦’의 철학을 당장 저 앞에 치맛자락 붙잡으신 어머니에게 어떻게 풀어내야 할까? 답답한 마음은 허공에 메아리가 되고 있을 뿐이다. 아직은 그 경구를 이해 할 수 없는 처지이므로.
이내 그 가르침은 천상의 언어로 반향反響되어 명쾌한 풀이를 해 준다. “ 詩 세상으로 모시는 ‘어머니’들은 역발상과 탁월한 시적 상상력을 구사하여 가능한 개성적이고 ‘낯선’ 옷을 입혀 드리는 것이 어머니를 죽이지 않고 영원히 살리는 시인 된 자식 된 도리입니다.” 그 천상의 메아리는 나의 심금을 울리더니 해답을 주려는 듯 조용히 귓가에 속삭여 준다. “우리의 어미들은 이미 속으로 알고 있기에 위축되거나 지레 겁먹지 마세요. 시 세상의 어머니는 자식을 향해 제발 나를 ‘낯섦’의 보금자리로 갈수 있도록 이 평범한 옷을 벗겨 달라 애원하고 계시는지도 모를 일이니까요. 그러므로 죄의식 가질 필요 없겠지요? 평범한 ‘어머니’는 이미 ‘시인의 어머니’가 아니에요. 자신있게 평범한 ‘어머니’를 죽임으로써 영원히 살려 드려야 합니다. 신기한 시 세상에서만 법률적으로 허용되는 역설적인 친모살인죄입니다. 잊지 않으시겠죠? “.
나는 살인죄 진술을 거부하고 검찰청 문을 나서버린다. 진술서는 이미 구겨진 채 회색 휴지통 밑바닥에 데굴거리며 숨을 몰아 껄떡거릴 뿐 미동이 없다. 대신 《온글 문학》 창작 이론 교재인 「시적 발상과 창작, 2008,김동수」을 펼치면서 시를 위해 마련 해 둔 마음 벽의 가장자리에 ‘사즉생 死卽生’이라고 힘주어 한자 한자 새기고 있었다. 아! 바로 저 옷이다! 공소기각 판정을 받고 《온글 문학》에 귀환하니 김동수 지도교수의 ‘어머니’를 경모하는 대표시 「새벽달」 속에서 5년전에 별이 되신 성녀聖女 같은 어머니가 낯설은 치맛자락으로 사뿐사뿐 걸어 나오신다. “ 아들아, 당당하게 이 어미를 한번 더 살해 해 보거라. 불효막심不孝莫甚의 죄를 많이 저지를수록 좋은 시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시인 나라의 율법이란다. ”
소스라치며 허욱적거리다 꿈에서 깨어난다. 친모살인을 다시한번 공모하며 주먹을 불끈 쥐어본다. 여명이 드리우기 시작하는 서재 창가에 중첩되어 감실감실 당신이 미소짓고 계시다. 그리운 당신, 불효막심不孝莫甚 한 놈이 되겠습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