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화. 허탕
신성한 매실 758
그런데 그때였다.
출입문이 열리면서 젊은 여자가 나왔다.
“무슨 일인가요?”
권 팀장은 도도한 자태를 뽐내는 그녀를 보고 깜짝 놀랐다.
피부는 백옥같고 얼굴은 석류같이 붉었다.
눈도 초롱초롱하여 여자는 한눈에 봐도 굉장한 미인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이 마을의 사무국장, 민서라였다.
그런 그녀에게 권 팀장은 언제 준비했는지 영장을 꺼냈다.
“일전 원지 둔치에서 일어났던 방화·살인 사건 아시죠?”
“그런데요?”
“그 사건의 용의자가 이곳에 있다는 제보가 들어왔습니다.”
권 팀장의 말에 민서라는 웃었다.
“그래서 범인 두 명이 우리 마을에 있다, 그 말씀인가요?”
워낙에 민서라의 말이 추상같았다.
권 팀장은 대답 대신 고개만 끄덕였다.
“일단, 들어오세요. 날이 차갑습니다.”
그녀의 말에 권 팀장은 박수무당을 앞세우고 김유리와 함께 안으로 들어갔다.
복도를 따라가니 맨 안쪽에 사무실이 있었다.
여자는 안내원에게 차를 준비시키면서 모두를 소파에 앉게 하였다.
“누가, 어떤 제보 했기에 이런 날 형사님들이 오셨죠?”
권 팀장이 기선제압을 위해 여자의 말을 끊었다.
“먼저 이곳 분들, 마을 사람들 명부를 보여주시고, 우리 팀원들이 마을 수색을 할 수 있도록 허락해주시기를 요청합니다.”
갑작스러운 권 팀장의 요청에도 여자는 수행원에게 눈짓으로 뭔가를 지시했다.
마치 경찰이 이곳으로 올 줄 알고 있었다는 표정이었다.
잠시 후, 따뜻한 차와 함께 마을 명부가 탁자 위에 놓였다.
수행원은 권 팀장의 요청대로 마을 방송을 하였다.
어떤 일로 경찰들이 집을 수색하는데 협조를 당부한다는 내용이었다.
그제야 권 팀장은 밖에 있는 조 형사에게 전방위적인 마을 수색을 명령했다.
“이제 됐나요? 그래, 형사님들이 찾는 범인들은 도대체 누군가요?”
여자는 짐짓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들에게 차를 권했다.
그때 그녀와 박수무당의 눈이 마주쳤다.
그런데 웬일인지 김유리도 느낄 만큼 박수무당이 움찔했다.
“여기 보니 대부분이 연세 드신 분들 같은데 …. 아! 아래쪽 명단에 청년들이 열 명이나 있네요.”
권 팀장이 의기양양한 듯 볼펜으로 청년들 이름을 확인하며 내려갔다.
“산골 공동체 마을이 다 그렇죠. 그 청년들은 얼마 전, 산골 생태 마을 체험차 전국에서 온 분들입니다.”
“언제 왔단 말입니까?”
“형사님이 말씀하시는 원지 둔치 방화· 살인 사건이 있던 날요.”
“네? 그날요?”
“네, 시외버스 승차권을 보관해 두었으니 금방이라도 확인이 돼요.”
권 팀장은 묻지도 않았는데 청년들이 알리바이가 있다는 말에 의심이 갔다.
어차피 그건 잠시 후 청년들을 따로 불러 조사하면 되겠다 싶었다.
그래서 그녀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제보에 따르면 이곳에서 한 달에 한 번씩 솔봉 근처로 사체를 운반하여 불법으로 매장했다는데 사실입니까?”
그러자 여자가 크게 웃었다.
그녀의 웃음에 김유리와 박수무당은 그만 깜짝 놀라고 말았다.
“사람의 시신을 말하는 건가요? 아니면 동물?”
권 팀장이 이런 장난스러운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그녀를 향해 고함을 질렀다.
“이봐요! 당신. 난 범인들이 이 마을로 잠입했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그들을 체포하러 왔소.”
“알아요.”
“그러니 빨리 묻는 말에 대답이나 하세요. 사체를 불법으로 매장한 사실이 있는지 그리고 범인들을 어디에 숨겨뒀는지.”
하지만 권 팀장의 말에도 그녀는 태연했다.
“무슨 개뼈다귀 같은 말을 그리 함부로 하시나요? 여기가 어디라고.”
“뭐?”
여자의 무례한 대응에 권 팀장은 결국, 권총을 빼 들었다.
철컥!
그러자, 민서라의 수행원이 그녀를 가로막으며 공격 자세를 취했다.
김유리 역시 이 돌발적인 사태에 자신도 허리춤에 있는 권총을 꺼냈다.
쨍그랑.
퍽!
그러다 보니 찻잔들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내 좁은 사무실 안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오직 한 사람, 박수무당만 고개를 파묻고 벌벌 떨고 있었다.
“아니, 하지 마요. 비켜요.”
이 상황을 정리한 것도 그녀, 민서라이었다.
그녀는 권 팀장에게 자신의 무례한 언행에 관하여 정중히 사과하였다.
그녀의 사과에 권 팀장도 총을 거두니 사태는 일단락되는 듯싶었다.
“제가 해명하죠. 솔봉 밑의 사체는 우리가 키우는 짐승들의 사체입니다.”
“뭐요?”
“그리고 자꾸 범인 운운하시는데, 여긴 오갈 데 없는 노인들이 모여 그저 짐승이나 키우고 농사지으며 자급자족하는 공동체 마을입니다.”
“음~.”
“이런 곳에 우리가 범인을 왜 숨겨줄 것이며, 설사 그들이 우연히 우리 마을에 왔다면 당연히 제가 신고하지 않았겠습니까? ”
여자가 의외로 차분하게 답변하자 권 팀장도 질세라 말을 이었다.
“좋소. 동물의 사체라. 그런데 사체를 왜 마을 안에 묻지 않고 그곳에 파묻는 이유는 무엇이고 또 시체의 이마에 ‘666’이란 숫자를 새긴 이유는 무엇이오?”
여자는 권 팀장이 만만치 않은 경찰이라 판단했다.
“그건 솔직히 말씀드리면 마을 예산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여기가 겨울이 되면 좀 춥습니까? 난방비가 턱없이 부족합니다.”
“단지 그게 이유요?”
“아뇨. 또 있어요. 얼어 죽고 병들어 죽은 짐승들로 마을 매장지에는 죽은 짐승들이 포화상태입니다. 또한, 그것들의 이마에 숫자를 넣는 건 그래야만 짐승들이 그들만의 천국에 다다를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지요. ”
권 팀장은 여자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했다.
그래서 대꾸를 망설이다, 옆에 머리를 처박고 있는 박수무당을 발로 찼다.
“야! 어떻게 된 거야?”
박수무당은 갑작스러운 발차임에 권 팀장과 여자의 눈치만 살폈다.
그러자 여자가 큰 소리로 웃었다.
“호호. 이제야 알겠네요.”
“뭘요?”
“이 모든 것의 제보자가 저기 앉아 있는 박수무당님인가 보군요.”
권 팀장은 뜨악했다.
“이자를 아시오?”
“그럼요. 지리산 바닥에서 박수무당을 모른다면 그건 지리산 사람이 아니죠.”
헉!
반전이었다.
“그래, 박수 양반! 아직도 죽은 아들을 살리기 위해 우리가 버린 짐승의 심장을 훔쳐 가나요?”
여자의 말에 권 팀장은 어안이 벙벙했다.
그녀는 박수무당을 잘 알고 있었다.
그뿐 아니라, 이 자의 괴이한 행각까지 파악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자신은 아무런 검증 없이 박수무당의 거짓말에 놀아난 셈이었다.
“이봐! 어떻게 된 거야? 저 여자분의 말이 사실이야? ”
권 팀장은 얼마나 화가 났던지 그를 하대하고 있었다.
“아닙니다. 저기 저분, 네, 저, 저 여자분이 거짓말을 하는 겁니다.”
그는 얼마나 떨었는지 말을 더듬고 있었다.
그런 박수무당을 여자는 매서운 눈초리로 꼬나 보았다.
“아니, 제 말은 저 여자분이 잘 못 알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때 사체를 옮긴 사람들은 젊은 남자였거든요. 그래서 저 여자분은 잘 모를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뭐? 이 새끼가! 똑바로 말해 봐. 횡설수설하지 말고.”
퍽!
권 팀장이 재차 손을 들어 박수무당의 머리를 때렸다.
이번에 그녀가 한마디 했다.
“이봐요. 박수 양반. 제가 여기 책임자인 것도 아시고 있죠? 사람 사체라뇨? 그건 가당치 않은 말이고, 분명 짐승의 사체입니다. 알겠습니까?”
권 팀장은 비로소 박수무당의 말만 믿고 무작정 이곳으로 온 것을 후회했다.
그런데 그때 옆에서 침묵을 지키던 김유리가 나섰다.
“팀장님. 오늘은 무리이니 내일 다시 와서 솔봉을 수색해요. 그러면 누구의 말이 맞는지 알 수 있을 거잖아요.”
그러고 보니 김유리의 말이 맞았다.
그러자 박수무당도 권 팀장에게 넌지시 눈짓으로 그렇게 하자고 하였다.
결국, 권 팀장도 그렇게 하기로 했다.
그리곤 여자에게 이곳에 체험 와있다던 청년들을 불러 달라고 요청했다.
그녀의 말이 맞는지 아닌지는 자신이 직접 조사해보면 알 것이었다.
“정, 그들을 만나보시려면 우리가 가죠. 바로 옆 강당에 있습니다.”
여자가 일어서자 수행원이 먼저 사무실 문을 열었다.
권 팀장은 김유리에게 청년들의 명부를 챙길 것을 지시했다.
이번에도 권 팀장은 박수무당을 앞세웠다.
비록 그가 탐탁지 않았으나, 범인들의 얼굴을 아는 유일한 자란 것을 상기했다.
권 팀장은 그가 대충 그린 범인들의 몽타주를 품속에서 꺼냈다.
청년들은 강당 안에 둥글게 모여 앉아 토론하고 있었다.
낯선 사람들이 들어왔는데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 열띤 논쟁을 벌이고 있었다.
그 사이에 권 팀장은 몽타주와 청년들 하나하나를 대조하였다.
그러면서 박수무당에게도 그들을 자세히 살펴보라고 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