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화엄은 보살행을 굳이 보현행원이라 이름 붙였는가?
보현행원을 하면 불가사의한 세계가 펼쳐진다.
아무 것도 안 했는데,
단지 원을 세우고 공경 칭찬만 했는데
상상도 못했던 그런 세계가 열리는 것이다.
보현행원은 이렇게 보살행을
특별한 몇 개의 거룩하거나 고매한 행이 아닌,
어디에나 있고 누구나 할 수 있는 행으로 확대한 데 의의가 있다.
보살만이 할 수 있는 행이 아니라
범부중생도 할 수 있는 행인 것이다(普遍廣大).
보현행원은 저 어려운 화엄교학과 장엄한 화엄세계가
우리의 일상을 떠나 있는 것이 아님을 알려준다.
범부 중생의 일거수 일투족(예:공경)이
바로 화엄세계요 화엄법계를 여는 열쇠다.
보현행원은 이와 사를 관통하고(理事無碍)
덧붙여 사와 사를 관통하는(事事無碍) 가르침이다.
그래서 화엄의 처음이요 끝, 아니 화엄의 전부다.
이것이 화엄경에 보현행원이 처음부터
그리고 끝까지 전체를 걸쳐 나오는 이유다.
그럼에도 아직도 화엄 따로 보현 따로(先悟毘盧法界 後修普賢行海)
즉 화엄을 먼저 다 배우고 그 후에야 다시 화엄을 총 정리하는 의미에서
마지막에 보현행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화엄이 바로 보현,
보현이 바로 화엄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https://youtu.be/u6xmZm04IYo
https://youtu.be/5e-_kRMza1g
첫댓글 화엄사상의 극치가 사법계 중 사사무애법계라 합니다.
사사무애 법계는 화엄종 초기부터 있었던 사상은 아니고, 법장만 하더라도 이사무애법계를 최고로 치고 거기에 머물러 있었다고 하지요.
의상 역시 그러하나 의상의 사상에서는 사사무애법계를 고민한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고 하죠.
그렇지만 의상 역시 사사무애법계까지는 나아가지 못하고,
화엄의 절정이라는 사사무애의 사상은 청량 징관에 와서야 완성됩니다.
우리가 지금 아는 법계연기의 四법계는, 이렇듯 처음부터 그러했던 건 아닌 겁니다.
왜 그렇다면 징관 때 와서야 이런 개념을 만들었을까요?
보현행원품이 들어있는 40화엄경의 번역은 중국 3가지 화엄 중 맨 나중에 이루어졌고,
40화엄의 번역에 징관이 참여하지요.
그리고 징관은 그후, 보현행원품소를 쓰고,
징관의 제자 종밀은 스승의 소에 다시 주를 단 보현행원품소초를 쓰지요
나무마하반야바라밀...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