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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치 하이킹 게임 / 말란 쿤데라
1.
연료계의 바늘이 갑자기 영으로 떨어졌다. 그러자 스포츠카를 몰던 청년은 이 놈의 차가 휘발유를 너무 많이 잡아먹어서 미칠 지경이라고 내뱉았다. "다시 전처럼 휘발유가 바닥이 나서 길바닥에 서 있지나 않았으면 좋겠어", (스물둘 가량 된) 아가씨가 그렇게 말하면서, 운전을 하고 있는 청년에게 이미 전에 그런 일을 당했던 몇몇 장소를 일일이 상기시켜주었다. 청년은 자기는 아무 걱정도 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그 까닭은 그녀와 겪는 모든 일이 그에게 있어서는 사랑의 모험의 매력을 지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자 아가씨가 항변했다. 길가는 도중에 휘발유가 떨어질 때마다 사랑의 모험을 겪게 된 것은 늘 자신뿐이었다고 말했다. 그 남자는 차 속에 숨어 있고, 그녀가 도맡아서 자기 매력을 팔아서, 지나가던 자동차를 세워 가까운 주유소에까지 태워달라고 한 다음, 다시 다른 자동차를 얻어 타고 휘발유통을 갖고 돌아와야 했으니까, 그렇다는 것이었다. 남자가 아가씨에게 물었다. 자신이 떠맡은 임무를 지나친 요구였다고 말할 정도로 그녀를 태워준 운전사들이 그녀에게 그토록 불친절했느냐고. 그러자 (서툴게 교태를 부리며) 그녀는 가끔 진짜 친절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휘발유 통과 함께 차에 태워져, 그들과 무슨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작별을 해야 했는데 무슨 재미를 보았겠느냐고 대답했다. "엉큼한 여자", 청년이 말했다. 그러자 그녀는 자기가 아니라, 그가 엉큼한 남자라고 맞받아쳤다. 그 혼자서 차를 몰고 갈 때 얼마나 많은 여자들이 그의 차를 세워 함께 타고 갔는지 누가 알겠느냐는 것이었다.
그는 차를 운전하면서 그녀의 어깨에 한 쪽 팔을 두르고, 번개처럼 그녀의 이마에 키스를 했다. 그는 그녀가 자기를 사랑하여 질투심이 자주 발동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물론 질투심이라는 것은 별로 그렇게 유쾌한 속성은 아니다. 그렇지만 오용되지 않고 겸손함과 연결될 때, 질투심은 불유쾌한 속성 외에 감동적인 면까지도 지니게 된다. 청년은 적어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이제 스물여덟 살이었지만, 자칭 그 정도로 많은 나이이면 남자가 여자들과 경험할 수 있는 모든 걸 이미 다 안다고 믿고 있었다. 지금 그의 옆 좌석에 앉아 있는 아가씨에게서 그가 높이 사는 것은 무엇보다도 지금까지 접한 다른 여자들에게서 별로 찾아볼 수 없었던 것, 즉 순수함이다.
그가 길 오른편에서 근처 500미터 지점에 주유소가 있음을 알리는 표지판을 발견했을 때, 연료계의 바늘은 벌써 영을 가리키고 있었다. 아가씨가 이제 안심이라는 말을 막 꺼내려는 순간, 그는 어느 틈에 왼쪽 깜박이를 켜고 급유펌프 앞의 빈 공간을 향해 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 곳으로부터 몇 미터 떨어진 곳에 차를 세울 수밖에 없었다. 덩치가 엄청나게 큰 유조차 한 대가 급유펌프 앞에 서서 굵은 호스로 막 탱크에 기름을 채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래 기다려야 될 것 같아", 그가 그녀에게 말하면서 차에서 내렸다.
"얼마나 걸려요?", 그가 작업복을 입은 남자를 향해 소리쳤다.
"일분이면 돼요.", 그 남자가 대답했다. 그러자 청년이 말했다.
"밤낮 일 분 걸린다지." 그가 다시 차에 막 올라타려다 보니까, 반대편에 앉아 있던 그녀 역시 차에서 내려있었다. "잠깐 어디 좀 다녀와야겠어." 그녀가 말했다.
"도대체 어딜 갈려구?", 그가 내심 의도를 갖고 물었다. 그녀를 좀 당황하게 만들려는 심사였다. 그가 그녀를 알게 된 지 벌써 일 년이나 되었지만, 그녀는 그 사람 앞에서는 여전히 얼굴을 자주 붉혔다. 그는 그녀가 부끄러워하는 그 순간을 무척 즐겼다. 그 까닭은 한편으로는 그가 전에 사귀었던 여자들과 바로 그 점에서 그녀가 구별되었기 때문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만물의 무상함을 깨닫게 된 그에게 있어서는 그의 여자친구의 부끄러움까지도 소중하게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2.
그녀는 그와 함께 차를 타고 가다가 나무들이 몇 그루 서 있는 곳에서 잠깐 차를 세워달라고 부탁해야 하는 것이 무엇보다 싫었다 (그 청년은 대개 쉬지 않고 몇 시간씩 차를 달렸다). 그가 짐짓 의아한 표정을 지으면서 왜 차를 세워달라고 하는 거냐고 물을 때마다 그녀는 몹시 화가 났다. 그녀는 스스로 자기가 부끄러움을 잘 타는 것이 좀 우스꽝스럽고 구세대적인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을 그녀는 그녀의 직장에서도 빈번히 확인하곤 하였다. 직장 사람들은 의식적으로 그녀를 집적거려 놓고, 그녀의 얼굴색이 바뀌면 그걸 보고 깔깔대고 웃었던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얼굴이 빨개지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늘 미리부터 얼굴을 붉히는 것이었다.
그녀는 종종 그녀의 육체와 관련해서 주위의 대부분의 여자들처럼 마음 편하고 자유롭고 그리고 홀가분하게 느끼고 싶은 심정이 간절했다. 그래서 심지어 그녀는 아주 특이한 자기 교육방법까지 마련해놓았다. 그것은 그녀 스스로 기회 있을 때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 이미 마련되어 있는 수백만 개의 육체들 중에서 한 개를 받게 되는데, 이것은 거대한 호텔의 수백만 개의 객실 중에서 하나를 할당받는 것과 다름없다고. 그 결과 인간의 육체는 우연적이고 비개성적인 것, 즉 잠시 빌려쓰는 일회용품에 불과하다고. 이것을 그녀는 자신에게 여러가지 변형된 형태로 말해 보았지만, 한 번도 스스로가 그것을 직접 느껴본 적은 없었다. 육체와 영혼의 이원론은 따라서 그녀에게는 낯선 것이었다. 그녀 스스로 그녀의 육체와 너무나 하나가 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녀는 자신의 육체를 언제나 일말의 불안감을 가지고 체험하는 것이었다.
그녀의 그러한 불안감은 심지어 그 청년과의 교제시에도 나타났다. 그를 알게 된 것은 일 년 전의 일이었다.
그와 사귀면서 그녀가 행복을 느낀 것은 아마도 그 사람이 그녀의 육체와 영혼을 결코 분리시켜 생각하지 않았고, 그렇게 하여 두 사람이 완전히 하나가 될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와 같이 분리되지 않은 상태가 그녀의 행복의 원천이었다. 그러나 모든 행복 뒤에는 의혹이 자리잡기 마련이다. 그녀의 의혹은 컸다. 이를테면 (몸과 마음이 홀가분한) 다른 여자들이 자기보다 더 매력적이고 유혹적이어서, 이러한 유형의 여자들을 잘 안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은 그 청년이 어느 날 그런 여자 때문에 자기 곁을 떠날지도 모른다고 그녀는 생각하곤 하였다. (그는 여생을 위해 후회가 없을 만큼 그런 류의 여자들을 충분히 맛보았다고 말했지만, 그녀는 그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그가 훨씬 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사람은 완전히 그녀에게, 그리고 그녀는 완전히 그에게 속하기를 그녀는 바랬다. 하지만 그녀가 그에게 모든 것을 주려고 노력하는 만큼, 그녀가 그에게 주기를 거부하는 그 무엇이 있는 것처럼 여겨졌다. 즉 깊은 사랑이 아닌, 표피적인 연애가 사람에게 제공해주는 바로 그것을 그녀가 그에게 주지 않으려는 것 같은 생각이 그녀에게 들었다. 그녀는 그녀의 진지함을 벗어나서 좀 경솔해질 수 없다는 사실에 괴로워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녀는 고통을 겪지도 않고 그러한 생각을 품지도 않았다. 그녀는 기분이 좋았다. 그 날은 그들이 함께 하는 휴가의 첫날이었고 (그녀가 일년 내내 그토록 애타게 꿈꾸워 왔던 2주 휴가의 첫날이었다), 하늘은 파랗게 개여 있었으며 (일년 내내 그녀는 오늘 하늘이 파랗게 개이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했었다), 그리고 그녀 옆에는 그 사람이 있으니까. "어딜가?"라는 그의 물음에 그녀는 얼굴이 빨개져, 아무 말도 않고 도망쳤다. 그녀는 주유소 주변을 거닐었다. 주유소는 벌판 한가운데 길가에 황량하게 서 있었다. (그들이 차를 타고 갈 방향으로) 백미터 정도 앞에 숲이 시작되고 있었다. 그녀는 그 쪽을 향해 걸어가, 덤불 뒤편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그녀는 쾌감을 만끽했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기쁨도 사실 고독 속에서 가장 잘 누릴 수 있는 것이다.)
그 다음 그녀는 숲에서 나와 도로로 올라섰다. 주유소는 그곳에서 아주 잘 보였다. 주유차는 떠나고 없었고, 스포츠카가 빨간 급유펌프 앞에 굴러가 있었다. 그녀는 도로를 따라 계속해서 걸어갔다. 가면서 가끔 스포츠카가 오나 살피기 위해 뒤를 돌아다 보았다. 그때 차가 오는 것이 보였다. 그녀는 멈추어 서서, 낯선 차를 향해 히치하이킹하는 여자처럼 손짓을 하기 시작했다. 자동차에 브레이크가 걸리더니, 바로 그녀 앞에 와서 차가 멈추었다. 청년이 창문을 내리더니, 웃음 띤 얼굴로 물었다.
"어디까지 가세요, 아가씨?"
"혹시 비스트리카로 가는가요?" 그녀가 물으면서 교태 섞인 미소를 지었다.
"자, 올라타요" 그가 말하면서 문을 열어주었다. 그녀가 차에 오르자, 자동차는 달리기 시작했다.
3.
여자 친구의 기분이 좋으면, 청년도 마음이 즐거웠다. 하지만 그런 경우는 아주 드물었다. 그녀는 힘든 직업을 갖고 있었다. 근무환경은 열악했고, 게다가 아무런 보상도 없는 초과근무가 많았다. 그리고 집에는 병든 어머니가 있었다. 그녀는 거의 언제나 피곤했으며, 성격이 그리 밝은 편이 못 되었고 자신감 같은 것도 거의 없었다.
쉽사리 우울과 불안에 빠졌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그녀에게서 조금이라도 즐거운 기색이 엿보이면 얼른 그것을 양아버지 같은 마음으로 반겨맞았다. 그는 그녀를 향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오늘은 운이 좋군요. 5년이나 차를 몰고 다녔지만, 이처럼 아름다운 히치하이커 아가씨를 태우기는 처음인데요."
젊은 여자는 그 청년의 찬사에 그때마다 고맙다는 말을 빠뜨리지 않았다. 그녀는 그러한 분위기를 좀 더 끌고 가고 싶었다. 그래서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거짓말도 참 잘하시는군요."
"내가 거짓말쟁이처럼 보여요?"
"당신은 여자 사냥꾼 같아요", 젊은 아가씨가 말했다. 그러는 그녀의 말에는 무심결에 오래된 불안의 흔적이 묻어 있었다. 왜냐하면 그녀는 실제로 그 남자친구가 많은 여자들을 속여먹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녀의 그러한 질투심이 그의 마음을 상하게 한 것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오늘은 그것을 가볍게 넘겨버릴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녀의 말은 그 자신이 아니라, 이름 모르는 운전수에게 하는 것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물었다. "그게 신경 쓰이세요?"
"내가 당신 애인이라면, 좀 신경 거슬리겠는데요" 그녀가 말했다. 그것은 그 청년 앞으로 보내는 선생님의 부드러운 충고였다. 하지만 그녀의 말 끄트머리는 낯선 운전수를 향한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내가 당신을 모르기 때문에, 신경 쓰일 건 하나도 없어요."
"여자들은 낯선 남자보다 자기 남자한테 공연히 화를 잘 내죠"(그것은 반대로 아가씨 앞으로 보내는 선생님의 부드러운 충고였다), "우리는 서로 모르는 사이니까, 말이 아주 잘 통하겠군요."
그녀는 의식적으로 그 훈계조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그리고는 다시 오로지 그 이름 모를 운전수를 향해 말했다. "우리는 곧 다시 헤어져야 할 텐데, 뭘 한다는 거죠?"
"왜요?", 그 청년이 말했다.
"나는 비스트리카에서 내려요."
"내가 당신과 함께 내리면은요?"
이 말이 끝나자 아가씨는 청년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 얼굴 모습은 그녀의 질투심이 가장 들끓어오를 때 떠올렸던 바로 그 얼굴이었다. 그녀 (낯선 여성 히치하이커)와 변죽좋게 시시덕거리고 있는 그의 모습과, 바로 그 순간 그가 연출하고 있는 멋진 모습에 그녀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 때문에 그녀는 시비조로 뻑뻑하게 맞받아쳤다. "죄송하지만, 저를 어떻게 하겠다는 거죠?"
"이렇게 예쁜 여자라면 뭐 그렇게 오래 생각할 것도 없어요", 청년이 색깔있는 어투로 말했다. 그 말은 여성 히치하이커보다는 그의 여자친구를 향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수작을 거는 듯한 그의 말을 빌미로 그를 현장에서 체포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즉 묘한 술책을 써서 그의 내심을 알아낸 것 같았다. 순간 그녀는 느닷없이 격한 증오심을 느끼며 말했다. "호언장담이 좀 지나치신 거 아녜요?"
그가 그녀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앵돌아진 그녀의 얼굴은 격한 나머지 뻣뻣이 굳어 있는 것 같았다. 그는 그녀에게 미안한 마음을 느꼈다. 평소의 그녀의 친숙한 눈길(그 눈길을 두고 그는 언제나 순박하고 천진난만하다고 했다)을 갈망하며 그는 그녀에게로 몸을 기울여, 팔로 그녀의 어깨를 감싸며 나직한 목소리로 그녀의 애칭을 불렀다. 이쯤에서 히치하이킹 놀이를 그만두자는 뜻이었다.
하지만 아가씨는 그의 포옹을 풀어내며 말했다. "당신은 좀 급하시군요."
뿌리침을 당한 청년이 말했다. "용서하세요, 아가씨", 그리고 나서 그는 아무 말없이 자기 앞에 펼쳐진 도로만을 바라보았다.
4.
그녀의 우울한 질투심은 불쑥 찾아왔을 때처럼 그렇게 빨리 사라졌다. 마침내 그녀는 이성을 되찾고, 그 모든 게 단지 장난이었다는 것을 명백히 알게 되었다. 질투심에서 생긴 분노 때문에 그 남자를 밀쳤던 일까지도 이제 그녀에게는 우습게 여겨졌다. 만약에 그녀의 행동에서 그러한 것을 그가 알아차렸다면, 그녀로서는 별로 기분 좋을 게 없었다. 다행스럽게도 여자들은 자신들의 행동의 의미를 나중에 싹 바꾸어놓는 기막힌 재주를 갖고 있다. 이제 그녀는 그 재주를 이용하여, 그를 밀친 것은 화가 나서 그런 것이 아니라, 재미나게 놀 수 있어 그들의 휴가의 첫날에 아주 안성맞춤인 그 장난을 계속하고 싶어서 그런 것이라고 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그래서 그녀는 방금 전에 치근덕거리는 운전수를 밀쳐냈던 그 여성 히치하이커로 되돌아갔다. 그녀에 대한 그의 정복의 템포를 늦추고, 그리하여 그것을 더욱 매력적으로 만들기 위한 것처럼 말이다. 그녀는 젊은 남자를 향해 몸을 돌리고 애교를 떨며 말했다:
"저어, 당신 마음을 상하게 할 생각은 없었어요!"
"용서하세요, 다시는 당신 몸에 손대지 않을 게요", 그가 말했다.
자신의 뜻을 받아들여 주지 않은데다가, 이쯤해서 다시 그녀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와 주었으면 하는데 그것을 거절하는 그녀의 행동에 그는 화가 치밀었다. 그녀가 계속해서 가장놀이를 고집했기 때문에, 그는 자신의 분노를 그녀가 역을 맡은 낯선 여성 히치하이커에게 쏟아부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자신의 역할의 성격을 찾아냈다. 즉 그는 지금까지 자기 여자친구를 향해 간접적으로 아양을 떨기 위해서 했던 그러한 모든 상냥한 표현들을 포기하고, 여자들에게 남성의 거친 면들, 이를테면 강인함, 조롱, 자신감 등을 보이는 무뚝뚝한 남자의 역을 과시하기 시작했다.
그 역할은 그가 보통 때 그녀에게 보여주었던 다정다감한 태도와는 엄청난 대조를 이루는 것이었다. 사실 그녀를 사귀기 전까지만 해도, 그는 여자들을 부드럽게 보다는 거칠게 다루는 편이었다. 그러나 그는 정말로 무뚝뚝한 남성 타입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확고부동한 목표만을 추구하거나, 앞뒤 가리지 않고 탱크처럼 밀고 나가는 측면이 그에게서는 두드러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비록 그러한 인간 유형들과는 아무런 유사성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전에는 그는 오히려 그러한 남자들과 비슷해지길 원했었다. 분명 이것은 천진난만한 바램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어린애 같은 소망들은 성인화된 의식의 모든 덫을 피해, 대개 고령이 되어서는 차라리 그러한 의식보다 더 끈질기게 살아남는다. 그러므로 그의 어린애 같은 소망 역시 자기에게 제공된 역할을 행하기 위해서 즉시 기회를 이용했다.
그 아가씨에게는 청년의 조롱조의 냉담성이 더 없이 달가웠다. 왜냐하면 그렇게 함으로써 그녀는 본래의 자신의 모습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그녀 본래의 모습이란 무엇보다도 그녀의 질투심이다.
그녀가 자기 옆 자리에서 추근대며 유혹하는 남자가 아니라, 범접할 수 없는 얼굴을 보게 된 순간부터 그녀의 질투심은 푹 사그러들었다. 그 젊은 여인은 자기자신을 잊고, 자신의 역할 속으로 완전히 몰입할 수 있었다.
그녀의 역할? 무엇이 그녀의 역할인가? 그것은 바로 통속소설에 나오는 여자의 역할이었다. 히이치하이커 아가씨가 차를 세운 것은 실제 차를 같이 타고 가기 위한 것이 아니라, 운전수를 유혹하기 위한 것이며, 그러기 위해서 그녀는 자신의 매력을 한껏 이용하는 뻔뻔스러운 요부가 된다는 것이다. 그 아가씨는 통속소설에 나오는 바로 이러한 유치한 역할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그리고 그녀 스스로 놀라고 매력을 느낄 만큼 그녀는 스스럼없이 그렇게 자기 역할을 해냈다.
그런 상태로 그들은 차를 타고 달리며 대화를 나누었다. 낯선 운전수와 낯선 히치하이커 아가씨가 되어.
5.
그 청년의 인생에서 가장 부족한 것은 여유였다. 그의 인생길은 가혹하리만큼 엄격하게 규정되어 있었다. 그의 일은 하루 여덟 시간의 근무로 끝나지 않았다. 방송통신대학강의와 의무적인 회의의 지루함을 위해 그는 남은 시간을 바쳐야 했고, 수많은 동료들이 눈여겨보는 가운데 일을 위해 자신의 얼마되지 않는 사생활까지도 제공해야 했다. 그의 사생활은 결코 비밀이 보장될 수가 없었으며, 게다가 이미 여러번 쓸데없는 구설수와 공공연한 논의의 빌미를 주기도 하였다. 심지어 2주간의 휴가까지도 그에게 어떤 해방이나 모험의 느낌을 줄 수는 없었다. 엄격한 계획의 회색 그림자는 휴가 기간 위에도 드리워져 있었다. 그 나라의 유흥지 숙박시설의 부족으로 그는 이미 6개월 전에 타트라에 있는 방을 예약해야만 했다. 이를 위해 그는 경영협의회의 추천서를 받아야 했다. 그러니까 그곳 경영협의회의 유령은 어디에건 나타나 그가 무슨 일을 하는가를 살피는 일을 한 순간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는 이 모든 것에 만족하고 살고 있었지만, 줄곧 앞만 보고 달리라고 채찍질하는 수많은 눈동자들 앞에 도망갈 수도 없이 달려가야 하는 자신의 길에 대한 섬뜩한 생각이 가끔 그를 덮쳤다. 이러한 생각이 지금도 그에게 밀려왔다. 전혀 엉뚱하게 그는 지금 달리고 있는 현실의 길이 그의 인생의 길과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것이 그를 전혀 터무니없는 착상 쪽으로 몰고갔다.
"어디로 간다고 했죠?", 그가 아가씨에게 물었다.
"반스카 비스트리카요", 그녀가 대답했다.
"그곳은 왜요?"
"약속이 있어서요."
"누구하고요?"
"어떤 신사하고요."
자동차는 그때 큰 사거리를 향해 굴러가고 있었다. 운전수는 교통 표지판을 보기 위해 속도를 늦추었다. 그러더니 오른 쪽으로 핸들을 꺾었다.
"당신이 약속 장소에 나타나지 않으면 어떻게 되지요?"
"그러면 당신이 그에 대한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나를 책임져주어야 겠죠."
"내가 노베 참키 쪽으로 핸들을 꺾은 걸 눈치채지 못한 것 같군요."
"정말요? 당신 미쳤군요!"
"걱정하지 말아요. 내가 책임져줄 테니까", 청년이 말했다.
그들의 장난은 단숨에 다른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자동차는 가상의 목표인 반스카 비스트리카로부터뿐만 아니라, 아침에 목표로 삼고 출발했던 타트라와 예약된 방으로부터 멀어지고 있었다. 장난으로 한 삶이 느닷없이 장난해보지 못한 삶을 공격한 것이었다. 이렇게 하여 청년은 자기 자신으로부터, 그리고 지금까지 한 번도 옆길로 가보지 못한 엄격한 일직선의 길로부터 벗어나고 있었다.
"하지만 타트라로 간다고 말했잖아요!", 아가씨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말했다.
"나는 마음내키는대로 갑니다, 아가씨. 나는 자유인이예요. 그래서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것과 내게 즐거움을 주는 일만 하지요."
6.
그들이 노베 참키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서서히 어둠이 깔리고 있었다. 청년은 전에 그 곳에 한번도 와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방향을 분간하기까지 얼마간의 시간이 걸렸다. 그는 차를 몇 번이나 세워 호텔이 있는 곳을 물어보아야 했다. 길들이 많이 파헤쳐져 있었기 때문에 그곳까지 찾아가는 데는 이리돌고 저리돌아 족히 15분은 걸렸다. 막상 찾고 보니 호텔은 (그의 질문을 받은 모든 사람들이 말했듯이) 바로 옆에 있었다. 호텔은 첫 눈에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 도시에 하나뿐인 호텔이었고, 청년은 더 차를 몰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아가씨에게 말했다 . "잠깐만 기다려요!"
차에서 내리자 그는 금방 본래의 자신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이 저녁에 원래 생각했던 곳이 아닌 다른 곳에 와 있다는 게 그를 화나게 했다. 누가 그에게 강요한 것도, 또 그렇다고 해서 그 자신이 그렇게 원했던 것도 아니었기에 그는 더욱 화가 치밀었다. 그는 자신의 미친 짓을 스스로 나무랐다. 그러나 타트라에 예약해둔 방이 모레까지는 기다려줄 것이라는 생각에 이르자 그의 마음은 진정이 되었다. 그리고 휴가의 첫날을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일로 축하하는 것도 그렇게 나쁠 것 같지는 않았다.
그는 연기가 자욱하고 사람들로 꽉 들어찬 시끄러운 주점을 가로질러 가면서, 프론트가 어디에 있는지 물어보았다. 사람들은 그에게 뒤 쪽 계단실로 가보라고 가르쳐주었다. 그 곳 유리문 뒤에 나이가 좀 든 금발의 여자가 열쇠선반 아래 앉아 있었다. 그는 아주 힘겹게 마지막 남은 빈 방의 열쇠를 건네받았다.
그 아가씨도 혼자 있게 되자 마자 그녀의 역할을 집어치웠다. 그녀는 물론 예정된 것과 다른 도시에 와서 서로 재회하게 된 것에 화가 나지는 않았다. 그녀는 청년에게 완전히 빠져 있었기 때문에, 그가 하는 일이라면 아무 의심도 하지 않았으며, 그에게 자신의 삶의 매 순간을 자신있게 내맡겨두었다. 그 대신에 그녀의 가슴 속에서는 새로이, 그가 일 관계로 여행 중에 있을 때 - 마치 지금의 그녀처럼 - 다른 여자들이 차 속에 앉아 그를 기다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렇지만 놀랍게도 그러한 생각이 그녀의 마음을 결코 아프게 하지 않았다. 심지어 그녀는 자신이 그러한 낯선 여자가, 아무런 책임도 없는 이름 모를 속된 여자가, 그녀가 그토록 시기했던 여자들 중의 하나가 된 것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를 생각하면서 얼굴에 미소를 띄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는 마치 다른 모든 여자들을 물리친 것 같았다. 그리고 또 여자들의 무기를 사용하는 방법, 그녀가 지금까지 청년에게 줄 지 몰랐던 것, 즉 가벼움, 뻔뻔스러움 그리고 자유분방함 등을 주는 방법 등을 터득하게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뭐라고 표현하기 어려운 만족감으로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것은 단지 그녀만이 단번에 모든 여자가 될 수 있는 능력을 지녔고, 단지 그녀만이 그녀의 애인을 이런 식으로 완전히 사로잡아 삼켜버릴 수 있다는 느낌이었다.
청년은 자동차문을 열고, 아가씨를 레스토랑으로 안내했다. 소음과 지저분함 그리고 자욱한 연기 속에서 그들은 구석에 있는 빈 식탁 하나를 발견했다.
7.
"자 이제 어떻게 나를 책임져 줄 건가요?", 아가씨가 도전적으로 물었다.
"술은 뭘로 할래요?"
그녀는 알코올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아서, 가끔씩 포도주나 한잔 마셨으며, 베르뭇을 가장 좋아했다. 하지만 그녀는 이번에는 의도적으로 이렇게 말했다: "보드카요."
"멋진 생각이군요", 청년이 말했다. "하지만 나때문에 많이 마시고 취하지는 마세요."
"그래도 취하면요?", 아가씨가 말했다.
그는 그 말에 답하지 않고, 종업원을 불러 보드카 두 잔과 스테이크 둘을 시켰다. 잠시 후 종업원은 쟁반에다 두 개의 조그만 잔을 가져와 그들이 앉아 있는 식탁에 내려놓았다.
"청년은 잔을 들고 말했다: "당신을 위하여!"
"그보다 더 재치있는 건배의 말은 생각나지 않으세요?"
아가씨가 하고 있는 히치하이킹 놀이의 그 무언가가 청년의 성질을 슬슬 돋구고 있었다. 그녀와 마주 앉아 있는 지금, 그녀를 낯선 여인으로 만들어 놓은 것은 그녀의 어투뿐만이 아니라는 것을 그는 깨달았다. 그녀는 몸짓과 표정에 이르기까지 완전히 다른 여자가 되어 있는 것 같았다. 차라리 그녀는 그가 익히 잘 알고 있는 혐오스러운 유형의 여자들과 더없이 똑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건배의 말을 정정했다 (술잔을 높이 쳐들고): "그렇다면, 당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짐승의 좋은 면과 인간의 나쁜 면이 성공적으로 혼합되어 있는 당신들 종족을 위해서 건배하죠."
"종족이라는 건 모든 여자들을 지칭하는 건가요?", 그녀가 물었다.
"아니요, 당신같은 부류의 여자들만을 말하는거요."
"그렇지만 여자들을 짐승에 비유한 것은 그렇게 재치있는 것 같지 않아요."
"그럼 좋아요"- 청년은 술잔을 또다시 높이 치켜들었다 - "당신의 종족이 아니라, 당신의 영혼을 위해서, 건배! 됐어요? 머리에서 배로 내려가면 활활 타오르고, 다시 머리로 올라가면 꺼져버리는 당신의 영혼을 위하여."
아가씨도 그녀의 잔을 쳐들었다: "그래 좋아요, 배로 내려가는 나의 영혼을 위하여."
"다시 한번 정정해야 겠군요", 그가 말했다, "당신의 영혼이 내려가 머무는 당신의 배를 위하여."
"나의 배를 위하여", 그녀가 말했다, 그러자 그녀의 배가 (마치 직접 호명을 받은 듯) 부름에 답하는 것처럼 보였다. 즉 그녀는 매 일 밀리미터에 이르기까지 자기 배가 움직이는 걸 느꼈다.
종업원이 스테이크를 가져왔다. 청년은 보드카 두 잔과 소다수를 다시 시켰고 (이번에 그들은 아가씨의 젖가슴을 위하여 건배했다), 그들의 대화는 이상하리만치 야한 쪽으로 계속되었다. 그 음란한 아가씨의 역할을 기가막히게 해내는 여자친구의 모습에 청년의 분노는 갈수록 이글거렸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그녀가 그 역할을 그렇게 잘 해낸다면, 그녀의 실제 모습이 그렇기 때문에 그런지도 모른다; 결국 우주의 어느 곳에서 온 낯선 영혼이 그녀의 몸 속으로 들어간 것이 아니다; 그녀가 맡아 행하고 있는 역할은 사실 그녀 자신의 모습이다 ; 그것은 평소에는 우리 속에 갇혀 있던 그녀 자신의 본질의 일부이다 ; 그것을 그녀가 지금 놀이라는 구실 아래 우리에서 해방시킨 것이다 ; 혹시 그녀는 이 놀이를 통해서 자신을 부정할 수 있다고 믿고 있는가? ; 하지만 이것은 정반대로 된 것이 아닌가? 그녀는 이 놀이 속에서 비로소 자기자신이 되지 않는가? 이 놀이를 통해서 그녀는 해방감을 맛보지 않는가? 아니다, 그와 마주앉아 있는 사람은 그의 여자친구의 몸을 빌린 낯선 여인이 아니다 ; 그것은 바로 그의 여자친구이며, 그녀 자신이지 다른 누구도 아니다. 그는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녀와 마주 앉아 있으면서 그는 혐오감이 자꾸 커가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그가 느낀 게 혐오감 만은 아니었다. 그 아가씨가 심리적으로 자꾸 자신으로부터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그만큼 더 격렬하게 청년은 육체적으로 그녀를 탐냈다. 영혼의 낯설음은 그녀의 육체를 낯설게 만들었지만, 바로 그 낯설음이 그녀의 육체를 비로소 육체 그 자체로 만들어준 요인이었다. 지금까지 그녀의 육체는 청년의 눈에 동정, 연약함, 돌봄, 사랑 그리고 측은함의 구름 속에서만 존재했던 것 같았다. 즉 그녀의 육체가 전에는 그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것처럼 여겨졌다 (그래, 그녀의 육체가 소실된 것처럼 보였었다!) 그는 그녀의 육체를 오늘 처음으로 보게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보드카를 세 잔째 마신 후에 아가씨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교태를 부리며 말했다: "실례해요."
청년은 말했다: "어디 가는지 말해줄 수 있어요, 아가씨?"
"소피보러가요, 실례 좀 할께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서는 식탁 사이를 헤집으며 플러시 커튼을 향해서 걸어갔다.
8.
상당히 순박하기는 한 말이었지만, 그가 한번도 그녀의 입에서 직접 들어본 적 없는 한마디 말로써 청년을 당혹케 한 방식에 그녀는 만족감을 느꼈다. 방금 한 그 말을 발음할 때 집어넣은 교태어린 억양보다 그녀가 역을 맡아 행하고 있는 여자의 성격을 더 잘 표현해줄 것은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 그녀는 흡족했고,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다. 그 같은 놀이가 그녀를 매료시켰다. 그 놀이는 그녀가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했던 것들을 느끼도록 해 주었다: 예를 들면 그것은 바로 무책임이 주는 홀가분한 느낌이었다.
새로운 발걸음을 떼어놓기도 전에 늘 미리부터 두려움을 느꼈던 그녀였지만, 이제 갑자기 거기서 벗어난 듯한 느낌이었다. 그녀가 빠져들어간 낯선 삶은 부끄러움도 전기적 속박도 과거와 미래도 의무도 없는 삶이었다. 그것은 신기할 정도로 자유로운 삶이었다. 여성 히치하이커로서 그녀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었다: 모든 게 그녀에게 허락되었다. 그녀는 자신이 원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말하고, 행하고 그리고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홀 사이를 걸어가며, 식탁에 앉아 자기를 쳐다보는 모든 사람들의 모습을 눈으로 기록했다. 그것 역시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새로운 느낌이었다. 그것은 자신의 육체로 인해 생기는 부끄럼없는 기쁨이었다. 지금까지 그녀 스스로는 제 젖가슴을 부끄러워하는 14살난 소녀라는 생각에서 한번도 완전히 벗어날 수 없었다. 그녀는 여태껏 눈에 띄게 몸에서 불쑥 튀어나온 젖가슴을 개의치 않기 위해 늘 불편한 느낌을 가져왔던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육체가 매력적이며 훌륭하게 잘 가꾸어졌다는 사실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있었지만, 이러한 자부심은 언제나 그녀의 부끄러움에 의해 사그러들곤 하였다. 그녀 자신 여자의 아름다움은 무엇보다도 성적 호소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잘 간파하고 있었지만, 그녀에게는 그것이 오히려 불쾌했다. 그녀는 자신의 육체가 오로지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을 향할 수 있기만을 간절히 바랬다. 길거리를 가다가 뭇남자들이 자신의 젖가슴을 뚫어지게 쳐다보면, 그들이 마치 그녀와 그녀의 애인만이 소유할 수 있는 그녀의 가장 은밀한 부분을 더럽히는 것으로 생각했었다. 그러나 지금 그녀는 여성 히치하이커, 즉 운명을 모르는 여인이 되었다. 그녀는 자신의 사랑의 감미로운 구속에서 해방되었으며, 자기의 육체를 집중적으로 의식하게 되었다. 그녀는 자신의 육체를 쳐다보는 눈들이 낯설면 낯설수록, 자신의 육체가 더욱 더 짜릿해지는 걸 느꼈다.
그녀가 막 마지막 식탁 옆을 지나치려는데, 몹시 취한 한 남자가 자기가 세상물정 다 안다는 것을 자랑이라도 하려는 듯 그녀에게 프랑스 말로 이렇게 말을 걸었다: "아가씨, 얼마요?"
그 말을 알아듣는 순간 그녀는 자신의 몸뚱아리가 바싹 긴장되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자신의 엉덩이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한껏 즐기며 플러시 커튼 뒤로 사라졌다.
9.
그것은 기묘한 놀이였다. 그러한 기묘함은 예를 들어, 자기 자신은 미지의 운전수의 역할 속으로 완전히 몰입해 들어갔으면서도, 청년이 여성 히치하이커의 모습에서 끊임없이 자신의 여자친구를 보고 있다는 데에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것이 고통스러운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자기 여자친구가 낯선 남자를 유혹하는 현장을 목격하고, 그녀가 남자를 속일 때(속였을 때, 그리고 속일 경우에) 어떠한 모습을 보이는가 그리고 무슨 말을 하는가를 아주 가까이서 함께 보는 씁쓸한 특권을 누린 꼴이 되었다. 그는 스스로 그녀가 저지르는 부정(不貞)의 대상이 되는 기묘한 영광을 누린 것이다.
그가 그 아가씨를 사랑했다기보다는 숭배했기 때문에 상황은 더욱 고약했다. 그의 생각으로는 여전히 그녀의 본성은 정절과 순수함의 경계 안쪽에서만 진실되이 존재하며, 그 경계를 벗어나서는 그녀의 본성 자체가 존재할 수 없는 것으로, 그리고 그 경계를 벗어나서는 그 아가씨가 그 아가씨 본래의 모습이길 그만두는 것처럼 여겨졌다 (비등점을 넘어서면 물이 물이기를 그만두는 것처럼). 이제 그녀가 천연덕스럽게 그 가공할 경계를 넘어선 것을 보자, 분노가 그를 엄습했다.
화장실에서 돌아온 그녀는 이렇게 투덜거렸다: "저기 앉아 있는 어떤 작자가 나더러 '아가씨, 얼마요?'라고 하잖아요."
"이상할 것 하나도 없어요", 청년이 말했다, "당신 창녀처럼 보이기도 하니까."
"내가 그런 거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거 아세요?"
"그 사람하고 같이 갔어야 했는데!"
"나는 여기 당신이 있잖아요!"
"나하고 일이 끝나면, 그 사람하고 함께 갈 수 있을 테니까, 가서 그 남자하고 그렇게 협상해 봐요."
"그 사람 내 맘에 않들어요."
"하지만 당신 하룻밤에 여러 남자 상대하는 걸 기본적으로 반대하는 건 아니죠?"
"멋있게만 생겼다면야, 무슨 상관이예요?"
"한 사람씩 할래요, 아니면 한꺼번에 할래요?"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아요."
그들의 대화는 차츰 무서운 쪽으로 변질되어 갔다. 아가씨는 얼마간 쇼크를 받았으나, 항의할 수가 없었다. 놀이에도 여러가지 감추어진 강요가 있으며, 심지어 놀이가 그 놀이에 끼어든 사람들에게 덫이 되기도 한다. 그것이 놀이가 아니고, 실제로 처음보는 두 사람이 마주 앉아 있었더라면, 그 여성 히치하이커는 이미 오래 전에 기분이 상해서 그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을 것이다. 그러나 놀이에서 그렇게 쉽게 벗어날 수 있는 건 아니다. 경기에 임하고 있는 팀은 경기종료휘슬이 울릴 때까지 경기장을 뜰 수가 없고, 장기의 말들은 장기판에서 도망칠 수 없으며, 경기장의 금 밖으로 나갈 수도 없는 것이다. 아가씨는 그들이 하고 있는 것이 바로 놀이이기 때문에 이제 자신이 모든 놀이를 그와 함께 행할 수밖에 없음을 알고 있었다. 놀이가 극단적이 되면 될수록, 그만큼 더 많이 그것은 놀이의 성격을 띠게 되며, 그만큼 더 고분고분 그녀는 그 놀이를 함께 해야 함을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녀가 그 놀이에서 거리를 두고, 그 놀이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말도록 이성에 호소하고, 자신의 당황한 영혼을 향해 경고하는 것도 소용이 없었을 것이다. 그들이 하고 있는 것은 단지 놀이였기 때문에, 영혼은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저항하지도 않았고, 마치 마취약에 취하듯 그 놀이에 취한 것이었다.
청년은 종업원을 불러, 술값을 지불했다. 다음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아가씨를 향해 말했다: "갑시다."
"어디로요?", 그녀가 어안이 벙벙해서 물었다.
"묻지 말고 앞장이나 서", 그가 말했다.
"어떻게 나한테 그런 투로 말하죠?"
"창녀한테 하는 말투지."
10.
그들은 조명이 나쁜 계단을 걸어올라갔다. 2층 직전에 있는 층계참 화장실 앞에 한 무리의 술취한 사내들이 서 있었다. 청년은 한쪽 손을 아가씨의 등 뒤로 해서 끌어안아 그녀의 젖가슴을 꽉 움켜쥐고 있었다. 사내들은 그것을 보자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아가씨가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고 했으나, 청년은 그녀를 향해 소리쳤다: "잠자코 있어!" 사내들은 이것을 보자 친구사이에서나 쓰는 외설스런 말을 해댔으며, 그녀의 등뒤에 대고 몇 마디 추잡한 말을 던졌다. 2층에 다다르자, 그는 방문을 열고 불을 켰다.
방은 비좁았으며, 두 개의 침대와 조그만 탁자 하나, 의자 하나, 그리고 세면대가 하나 있었다. 청년은 문을 잠그고 나서 아가씨 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녀는 이글이글 끓는 관능의 눈빛으로 도전적인 태도를 취한 채 그를 마주하고 서 있었다. 그는 그녀의 얼굴을 쳐다보며 그녀의 음탕한 표정 뒤에서 그가 다정히 사랑했던 친숙한 특징들을 찾아내보려고 하였다. 그것은 마치 요지경 속에 서로 겹쳐져 있는 두 개의 그림을 보는 것과 같았다. 두 개의 그림은 그에게 그 아가씨의 내면에는 모든 것이 존재하며, 그녀의 영혼은 놀랍도록 특정한 형태를 갖추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녀의 내면에는 정절과 부정, 배신과 순진함, 교태와 수줍음 등이 공존한다고 말해주었다. 그처럼 뒤엉킨 혼잡은 쓰레기 더미의 뒤범벅처럼 그를 구역질나게 하였다. 두 개의 그림은 끊임없이 서로 중첩되었고, 청년은 그 아가씨가 단지 표면적으로만 다른 여자들과 구별된다는 점을 깨달았다. 그러나 그녀의 깊은 내면에는 다른 모든 여자들과 마찬가지로 그가 은밀히 품었던 의심과 질투를 증명해주는 모든 가능한 생각들과 감정과 부도덕으로 가득 차 있음을 안 것이다. 그는 그녀의 개성을 특징지워주었던 윤곽은 단지 허상에 불과했으며, 그러한 허상을 바라보다 희생된 상대가 바로 그 자신임을 깨달았다. 실제로 그가 사랑했던 그 아가씨는 그의 동경과 유추와, 신뢰의 산물에 불과했었던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이제서야 비로소 그의 여자친구의 진정한 모습이 그 앞에 서 있는 것 같았다: 절망적으로 다른 모습으로, 절망적으로 낯설게, 절망적으로 모호한 모습으로. 그는 그녀를 증오했다.
"뭘 기다리고 있어? 옷 벗으라니까", 그가 말했다.
그녀는 머리를 요염하게 한 쪽으로 젖히며 말했다: "꼭 그렇게 해야 하나요?"
그녀의 말투가 아주 귀에 익숙한 것처럼 여겨졌다. 오래 전 언제든가 어떤 다른 여자가 그에게 바로 그렇게 말했던 것 같았다. 하지만 그는 그게 어느 여자였는지 알 수 없었다. 그는 아가씨를 깔아뭉개고 싶은 마음이 절실했다. 여성 히치하이커가 아니라, 바로 그 자신의 여자친구로서의 그녀를. 여성 히치하이커가 굴욕을 당하게 되어 있는 그 놀이가 여자친구를 짓밟는 구실이 된 것이다. 청년은 그가 하고 있는 것이 놀이라는 사실을 망각했다. 그는 자기 앞에 서 있는 여자를 그야말로 미워하고 있었다. 그는 그녀를 꼼짝않고 쏘아보더니, 양복 안주머니에서 50 크로넨짜리 지폐를 한장 꺼냈다: "이거면 되겠어?"
그녀는 돈을 받아들며 말했다: "당신한테 내가 특별히 값이 많이 나가지는 않는가 보군요."
청년이 말했다: "넌 그 이상의 가치는 없어."
그녀는 그에게 매달렸다: "나한테 그런 식으로 나오면 어떡해. 나는 다르게 대해 줘야지, 좀 긴장해야 되잖아!"
그녀는 그를 끌어안고, 키스를 하도록 입술을 그에게 내밀었다. 그는 그의 손가락을 그녀의 입에 갖다 대더니, 자기 몸에서 그녀의 입술을 살짝 밀쳐냈다. 그가 말했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여자들하고만 키스해."
"그럼 나를 사랑하지 않아?"
"그래."
"그럼 도대체 누구를 사랑하는데?"
"그게 너하고 무슨 상관이야. 옷이나 벗어!"
11.
그녀는 여태껏 그렇게 옷을 벗어본 적은 없었다. 그 청년 앞에서 옷을 벗을 때마다 (그리고 어둠 속에 몸을 숨길 수 없을 때) 언제나 느꼈던 수줍음이라든가, 더듬거리는 소심성, 내적인 공포감 같은 모든 것은 그녀에게서 완전히 사라졌다. 그녀는 자신만만하고 뻔뻔스런 자세로 그 앞에 서 있었다. 환한 불빛 속에서 그녀는 갑자기 어디서 나오는지도 모를 스스로의 움직임에 소스라치기도 하면서 천천히 그리고 요염하게 옷을 벗기 시작했다.
그녀는 그의 눈길을 의식하며, 장난치듯 옷을 한 꺼풀 한 꺼풀 벗어나갔다. 그러면서 그녀는 벌거벗기의 매 단계를 마음껏 즐겼다.
그러던 한 순간 그녀는 완전한 나체 상태로 그 사람 앞에 섰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모든 놀이는 그 시점에서 끝났으며, 그녀가 옷가지와 함께 그녀가 썼던 가면까지도 벗어버렸다는 생각이 그녀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이제 그녀가 알몸이 되었다는 것은 그녀가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으며, 그 청년이 그녀를 향해 다가와 지금까지의 모든 것을 깨끗이 지워버릴 제스처를 할 것임에 틀림없고, 그 다음에는 그들이 그들의 친숙한 사랑놀이로 넘어갈 것이라는 사실을 뜻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녀는 벌거벗은 모습으로 그 사람 앞에 섰으며, 그 순간 놀이를 그만둔 것이다. 그녀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리고 그녀의 얼굴에는 정말로 그녀에게만 독특한 미소가 나타났다. 수줍고 어찌할 바를 모르는 그녀의 미소가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청년은 그녀에게 다가가지 않았으며, 그 놀이에 종지부를 찍지도 않았다. 그는 평소에 그토록 친숙했던 그녀의 미소를 알아채지 못했다. 그가 자기 눈앞에서 본 것은 다만 그가 증오하는 여자친구의 낯설고 아름다운 육체뿐이었다. 그의 증오심은 그의 관능에서 모든 감정의 장식을 빼앗아갔다. 아가씨는 그를 향해 다가가려고 했다. 그러나 그가 말했다: "지금 있는 곳에 그대로 있어. 너를 자세히 관찰하고 싶어." 그는 단 하나만의 욕구를 갖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그녀를 돈을 주고 산 창녀처럼 다루는 것이었다. 하지만 청년은 창녀를 품어본 적은 한번도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과 관련된 표상들은 모두 문학작품이나 소문을 통해서 알게 된 것들이다. 그는 마음속에서 바로 그러한 모습들을 그려보았다. 그 청년의 눈앞에 가장 먼저 떠오른 모습은 검은 속옷(과 검은 스타킹)을 착용하고서 반짝이는 피아노 뚜껑 위에서 춤을 추던 여인이었다. 그 호텔에는 피아노가 없었고, 다만 벽 쪽으로 붙여놓은, 아마포 천이 덮여져 있는 작은 탁자가 하나 있을 뿐이었다. 그는 그녀에게 탁자로 올라가도록 명령했다. 그녀가 애원하는 제스처를 보냈지만,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난 너한테 돈을 지불했어."
그의 눈빛에 깃들인 무자비한 광기를 확인하는 순간 그녀는 그 놀이를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 비록 그녀가 그 놀이를 더 이상 할 수도 없고 또 어떻게 해야할지도 몰랐지만 말이다. 그녀는 눈물을 글썽이며 탁자 위로 올라갔다. 탁자의 넓이는 일 평방미터도 채 되지 않았으며, 게다가 다리 하나가 다른 다리들보다 약간 짧았다. 아가씨는 그 위에 서서, 언제라도 아래로 굴러 떨어질까 두려워하였다.
이에 반해서 청년은 자기 앞에 우뚝 서 있는 벌거벗은 여체에 만족해하고 있었다. 그리고 부끄러워하는 그녀의 불안감은 그의 명령욕구를 더욱 세차게 부채질할 따름이었다. 그는 다른 남자들이 그녀의 육체를 보았을 그리고 보게 될 장면을 떠올리면서 그녀의 육체를 온갖 포즈로 그리고 좌우전후에서 보고 싶었다. 그는 상스럽고 음란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는 그녀를 향해 그녀가 그의 입에서 한번도 들어본 적 없는 말들을 해댔다. 그녀는 저항하며 그 놀이에서 도망가고 싶었다. 그래서 그의 이름을 불렀지만, 그 소리를 듣자마자 그는 자기를 그렇게 친근하게 부를 자격이 그녀에게는 없다며 호통을 쳤다. 결국 그녀는 쏟아지려는 눈물을 참으며 당황한 채 그의 말대로 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그가 시키는대로 몸을 앞으로 구부리기도 하고 쪼그리고 앉기도 하였으며 절을 하기도 했다. 또 그녀는 트위스트 춤을 보여주기 위해 엉덩이를 흔들었다. 그때 급격한 움직임으로 그녀의 발아래 있던 천이 미끄러져 빠져나갔다. 그녀는 하마터면 탁자 아래로 굴러 떨어질 뻔하였다. 그 순간 청년이 그녀를 붙잡아, 침대에다 내동댕이쳤다.
그는 그녀와 함께 침대에 누웠다. 그녀는 이제 적어도 이 불행한 놀이가 끝나고 그들이 다시 서로 사랑하는 예전의 두 사람으로 돌아가게 될 것을 기대하며 기뻐했다. 그녀는 그의 입술을 빨려고 했지만, 그는 그녀의 머리를 밀치며, 자기는 사랑하는 여자들하고만 키스를 한다는 말을 반복하였다. 그녀는 울기 시작했다. 그러나 울음마저도 그녀에게는 허용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타오르는 그의 욕정이 서서히 그녀의 육체를 자기 것으로 만들어, 마침내 그녀의 영혼의 비탄소리를 멎게 했기 때문이다. 이윽고 침대 위에서는 두 육체가, 육욕에 빠진 서로 간에 낯선 두 육체가 더없이 큰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그녀가 전에 가장 두려워하고, 불안스레 피해왔던 것, 즉 감정과 사랑이 없는 성행위였다. 자신이 금지된 선을 이미 넘어섰음을 알고 있었지만, 그녀는 그 선 밖에서 아무런 반항도 없이 그 일에 완전히 동참하여 움직이고 있었다. 다만 어딘가 멀리 떨어진 곳, 즉 그녀의 의식의 한 구석에서 그녀는 예전에는 바로 지금과 같은 쾌락을, 그토록 커다란 쾌락을 맛보지 못했다는 데 대한 놀라움을 느낄 뿐이었다 - 경계선 바깥에서.
12.
이윽고 모든 것은 끝났다. 청년은 아가씨로부터 몸을 풀고, 침대 위에 늘어진 긴 끈을 잡아당겨 불을 껐다. 그는 그녀의 얼굴이 보고 싶지 않았다. 놀이가 끝났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는 예전의 그 익숙한 관계로 돌아갈 마음이 없었다. 그는 옛날의 관계로 돌아가는 것이 두려웠다. 그는 어둠 속에서 그녀 옆에 누워있었다. 그들의 몸뚱아리가 서로 닿지 않을 만큼 떨어진 채.
잠시 후에 그는 그녀가 나직이 흐느끼는 소리를 들었다. 그녀의 손이 어린애처럼 살짝 그의 손을 건드렸다가 뒤로 물러났다 다시 건드렸다. 그러더니 애원하며 흐느끼는 목소리가 그의 이름을 부르며 말했다: "나는 나야, 나는 나야......"
청년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움직이지도 않았다. 다만 그는 미지의 크기가 또 함께 들어있을 그녀의 맹세의 슬픈 무의미만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녀의 흐느낌은 곧 커다란 울음으로 옮아갔다. 그리고 그녀는 듣는 사람으로 하여 눈물나게 하는 그 똑같은 말을 수도 없이 반복했다: "나는 나야, 나는 나야......"
아가씨를 진정시키기 위해 청년은 동정심의 도움을 빌기 시작했다(가까운 곳에서는 찾을 길이 없었기 때문에 동정심을 그는 먼데서 불러와야 했다). 그들 앞에는 아직도 열사흘의 휴가가 더 남아 있었다. *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