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번에 말의 실험을 통해서 말이라는 것, 언어라는 것이 어떻게 알게 모르게 우리 의식에 영향을 끼치는지를 좀 살펴봤는데, 오늘 이것도 재미있는 영상이 하나 있어서 이걸 한번 먼저 보고 이야기 좀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영상...)
어~ 이제~ 그~ 아~ 여기서 본 것처럼 사실은 우유는 전혀 문제 있는 우유가 아니고 그냥 평범하고도 똑같은 그냥 일반우유였던 거죠. 일반우유였는데 이렇게 옆에 사람들이 좀 “신물질이 들어가는 우유다.” 이렇게 하니까 “조금 더 맛있고 조금 더 고소하다.” 이랬다가 또 옆에 사람들이 좀 먹고 좀 토하고 이상한 반응을 보이니까 “나도 좀 그렇게 되지 않을까?” 이런 심리적인 영향 때문에 그런 반응만 볼 줄 알았는데 나중에 알고 봤더니 몸에 실제 두드러기까지 나고 온몸에 발진이 나고 이럴 정도였다는 거죠.
그러니까 단지 우리는 하나의 생각의 차이인데, 생각의 차이가 이렇게 몸에 실질적인 어떤 두드러기를 만들어 내는 것처럼 사실은 이와 같은 일들이 이런 어떤 작은 실험이지만, 우리 삶에서는 너무 다반사로 많이 일어나는 부분이라는 겁니다.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서 그것에 대해서 어떻게 의식하고 있냐에 따라서 그것이 현실을 완전히 뒤바꿔놓고 물질적인 현실까지 뒤바꿔 놓는다는 거죠. 그러니까 “내 몸이 안 좋다. 난 언젠가 몸이 재발할거다. 몸이 점점점 안 좋아지는 거 같다.” 이렇게 생각만 하고 있어도 그게 실제로 몸이 건강하지 못해지고, 그러기가 아주 쉽다는 거죠. 실제로 제가 전에 한번 말씀드렸는데, 연세가 드시는 분들이 점점 몸이 건강하지 못하잖아요. 그런데 그게 허구라는 것이 요즘에는 밝혀지고 있습니다.
나이가 들면 몸은 망가진다는 것조차 사실은 허구였다는 거죠. 과학에서 그걸 과거에는 미처 밝혀내지 못했었다 그럽니다. 그런데 지금은 늙으면 무조건 몸이 망가진다? 이거는 우리가 만들어낸 의식의 장난일 뿐이라는 겁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래 왔으니까 ‘나도 그렇겠지.’ 라고 생각했고, 그러다보니까 실제 점점 몸이 망가져가는 것일 뿐이었다는 거죠. 정말 망가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겁니다. 뇌도 늙으면 치매가 오고 점점 더 나빠진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우리의 생각일 뿐이지 사실은 뇌가 뇌기능이 떨어지는 일은 없다는 겁니다. 심지어 한쪽 뇌가 완전히 닫혀가지고 한쪽 뇌를 완전히 기능을 잃어버리면 그대로 완전히 못쓰잖아요. 그런데 이쪽뇌가 하는 역할이 있고, 반대편 뇌가 하는 역할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쪽편 뇌를 망치게 되면 이쪽편 되가 어떻게 교통사고가 나던가 해서 손상이 되면 그 부분을 못 써야 되는 게 정상이거든요. 그런데 요즘 최근의 과학에서는 이 뇌가 완전히 망가졌는데도 불구하고 다른 뇌에서 이 뇌가 할 역할을 대신해 주는 것들을 발견했어요. 그래서 뇌가 한쪽이 심지어 손상이 있다손 치더라도 다른 뇌에서 그것을 대신해준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우리는 결정론 쪽으로 이 부분은 이 역할밖에 못하고 저 부분은 저 역할밖에 못한다고 알고 있었지만, 그런 것들이 요즘 현대 과학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이 많이 발견이 되고 있죠. 그래서 우리의 뇌가 점점 늙고 있느냐? 내가 나이가 들어가면서 자꾸 이렇게 생각이 깜박깜박하느냐? 이렇게 생각하기 전에 이렇게 말하기 전에 먼저 자신의 생각을 한번 살펴봐야 됩니다. 자신의 사고방식을.
‘내가 나이가 드니까 이제 못 견디는구나.’라고 믿고 있는지. 우리가 보통 축구 같은 거 하고 이러실 때보면 많은 상사람들이 그러잖아. “야~ 옛날 같지 않네, 축구한게임 뛰었더니 야. 이거 힘들다.” 이런 얘기를 하시잖아요. 그럼 그 얘기를 옆에 듣다가 나도 인정하게 되는 거예요. 내 머릿속에서 “아~ 맞아. 나도 축구를 하고 나면 이제는 내 나이가 안 좋아질 나이겠지.”라고 스스로 인정을 어느 순간 하게 되면 그때부터 나도 동시다발적으로 비슷한 시기에 몸이 안 좋아지거나 실제 더 많이 사고가 나거나 그러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는 거죠. 그래서 이 모든 것이 의식이 만들어낸, 생각이 만들어낸 것이지 실제 몸이 그런 것은 아닐 수도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자신의 생각이 어떤 방식으로 삶을 믿어가고 있는지를 가만히 지켜보면 삶이 놀랍게 변화시킬 수도 있게 되겠죠.
우리가 플라시보 효과를 그 마음의 힘을 얘기할 때 많이 하는데요. 재미난 플라시보에 관한연구들이 많죠. 그래서 의학계에서 이렇게까지도 얘기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병원에 와서 약을 먹고 낫는 환자들의 70%정도 70~80%정도가 플라시보의 효과다. 이렇게 얘기하는 경우도 있거든요. 그러니까 ‘병원 갔다 왔으니까 낫겠지.’라는 믿음이 내안의 믿음이 실제 그것을 낫게 해준다는 거죠. 심지어 림프절 위암 말기환자가 있는데 곧 죽는 거예요. 얼마 안 있다가. 그런데 신문에 어느 날 ‘암을 말기 암도 회복될 수 있을 만큼 암을 이겨낼 수 있는 신물질이 개발됐다.’는 게 대서특필된 겁니다. 그런데 신문 기사만 났는데도 불구하고 상당히 많은 암환자들이 전 세계적으로 호전되는 것들이 밝혀졌어요.
옛날에 어렸을 때 그거 뭐라고 그러죠? 수두인가? 그때는 다 죽는다고 알았다는. 지금 언뜻 기억이 안 나는데, 그 병이 정말 많은 사람들이 그 병에 있었다가 신문에 그걸 이겨낼 수 있는 약이 발견됐다는 것이 신문에 나자마자 전국적으로 전 세계적으로 실제이건 밝혀지지도 않았는데 완전히 만들어진 것도 아니고, ‘이거는 안되는 게 아니라는 것이 밝혀졌다.’ 실제 약이 만들어진 것도 아닌데도 불구하고 그 뉴스거리만 가지고도 전 세계에서 그 병의 환자들이 상당히 호전을 보였다 그럽니다. 그런데 말기암환자가 암을 이겨내는 신물질이 개발됐다는 이걸 듣고 호전되고 있다가 어떤 의사가 그때 그 신문에 났던 그 약이다. 그리고 약을 준거에요. 그런데 가짜 약을 준겁니다. 플라시보로.
가짜 약을 주면서 이것이 바로 신물질로 만든 약이다. 이거 먹으면 확실하게 낫는다. 그리고 줬는데 이게 의학적으로 검증이 된 거에요. 두 달 만에 몸이 그냥 의식적으로 나은 거 같다가 아니고, 병원에서 종합검진을 해보니까 두 달 만에 말기 암이 완쾌가 되어버렸습니다. 완전히 완쾌가 되어 버렸어요. 그래서 병원에서 완전히 퇴원해도 된다. 이건 의학적으로 완쾌다. 이렇게 진단을 내버렸어요. 그리고 잘 살았습니다. 집에 가서 건강하게 잘 살았는데. 한 1년쯤 자났나? 신문에 다시 난거에요. 작년에 발표됐던 그 논문이 오류가 있었다. 그런데 신문 기사만 보고 이 사람이 쓰러졌습니다. 그래서 병원으로 실려 왔는데 그 병원에 그러고 있다가 실제 2~3달 만에 원상 복귀가 되어 버렸어요. 한 2~3달 만에 다시 말기 암으로 그대로 가버렸다는 거예요.
그래가지고 의사가 야~ 이 사람 참 신기하다. 물론 플라시보라는 걸 어느 정도 알고 있었겠지만, 그래도 이 사람은 좀 독특하구나 싶어서 그 사람을 다시 불렀습니다. 그래서 또 다른 가짜 약을 주면서 그 오류가 다시 보완이 되었단다. 다시 보완이 돼서 만들어진 약이 이거다. 그리고 줬다는 거죠. 그런데 실제로 또 낫답니다. 얼마 안 있다 또 낫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것이 우리가 생각했을 때는 그런 특수한 몇몇 사람에게는 좀 강력하게 영향은 미친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사실은 이러한 플라시보효과가 거의 모든 사람에게 적용이 됩니다. 저의 은사스님께서 20대 때 30대 때 그 젊으셨을 때 정신 세계원 무슨 원장을 하셨던 분이 신가? 하여간 그분이 은사스님을 만나러 오셨었어요.
연세 드신 지긋하신 분이셨는데 오셔서 그때 젊었을 때 은사스님 젊었을 때 얘기를 하시면서 “야, 그때 큰 스님 대단하셨습니다.” 이러면서 얘기를 하는 거예요. 그래서 뭔 얘기한가 하고 가만히 들었더니. 그때 대각사 계셨었는데, 대각사 옆에 파고다 공원을 큰스님께서 한 바퀴 이렇게 돌면, 그때 어르신들이 파고다공원에 많이 나와 계시잖아요. 많이 나와 계시다가 큰스님 지나간다고 와서 손 한번 잡아달라고 하고 그랬데요. 그런데 큰 스님께서 손도 잡아주고 이야기도 나눠주고 그러고 나면 아팠던 분들이 다 낫는 거예요. 이게 소문이 나가지고 전국에서 큰스님 친견만 해도 낫는다는 소문을 듣고 사람이 몰려들었다는 겁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그렇게 몰려들었던 사람들 상당수가 큰스님 뵙기만 했고, 손만 한번 만졌는데 낫다는 거예요. 실제로.
그러면서 야, 큰 스님의 법력은 참 대단하시다고 그러신데, 큰 스님께서 웃으면서 그게 뭐 법력이냐고. 자기들이 다 ‘내가 큰스님 만났으니까 낫겠지.’ 하니까 다 나은 게 아니겠냐? 그러고 넘어가셨는데. 물론 그것이 큰스님의 어떤 법력일 수도 있겠죠. 그런데 그렇게 한번 믿기 시작하면 그것이 현실이 될 수가 실제 있습니다. 이런 일이 있었다. 그래요. 어부가 고기를 잡으러 멀리 갔다가 그날따라 고기가 안 잡혀서 좀 멀리 갔다는 거예요. 그래서 멀리 가서 고기를 다 잡았습니다. 고기를 너무 많아 잡아가지고 집까지 가야 되는데 집은 너무 멀고 고기가 너무 무거워서 집까지 갈 수가 없더래요. 그래서 그 무거운 걸 짊어지고 그래도 가다가 가다가 도저히 집에 못갈 거 같아서 ‘안 되겠다.’ 해가지고 ‘너무 무거우니까 다음에 가지고 가자,’해서 큰 나무가 있었는데, 큰 나무 안에 뻥 뚫린 나무에 빗물이 들어 가가지고 나무 안에 물이 고여 있는 거죠.
그래서 물에다가 고기를 한 반절을 넣어놓은 겁니다. 그리고 나밖에 모르니까 여기다 넣어놓고 ‘하루나 이틀 있다가 다시 와서 가지고 가야지.’ 하고 물고기를 넣어놓고 집에 간 거예요. 나머지 물고기만 들고. 그러고 나서 이 사람이 바쁜 일이 있고 어디 딴 데 갈일이 있고 해서 잊어버리고 있었던 겁니다. 그런데 그 다음날 그 마을에 사는 어떤 사람 누군가가 그 산에 가다가 보니까 그 전날 비가 온 것도 아니고 아무 일이 없었는데 그날 보니까 갑자기 나무에 고기가 몇 마리가 있는 거예요. 이 고기는 여기 있어야 될 고기가 아닌데. 여기 잘 살고 있는 겁니다. 너무 신기해서 사람들한테 얘기를 했더니 “아, 이게 신이 조화를 내리신거다. 우리 마을에 조화를 주시느라고 이거는 물고기가 아니라 신이다.” 성황당처럼 이렇게 숭상을 하기 시작한거에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물고기 앞에다 상도 차려놓고, 고기도 갖다 놓고, 과일도 갖다 놓고, 떡도 갖다 놓고, 기도 하고 빌기 시작 하는 겁니다. 그런데 거기서 빌기 시작했던 마을 사람 몇몇 사람 실제 좋은 일이 생기는 거예요. 몸 아픈 사람도 낫고 좋은 일이 영험이 오기 시작하는 겁니다. 그 소문이 이웃마을에 퍼졌어요. 이웃마을 이 마을 저 마을에서 사람들이 몰려들어서 그 물고기 신께서 모든 것을 다 들어주신다. 그래가지고 많은 사람들이 몰려서 거기서 기도를 하는 거예요. 그랬더니 실제 많은 사람들이 병든 사람들마나 다 낫는 겁니다. 좋은 일이 생기는 거예요. 그래가지고 “야, 대단한 우리 마을에 경사가 있을 수 있느냐? 이런 신께서 물고기를 내려와서 우리 마을을 지켜준다.”고 하면서 난리가 났죠.
그런데 그러던 어느 날, 옛날 어부가 밤늦게 지나다가 아차 생각이 나서 가가지고 봤더니 물고기가 아직 살아있는 거예요. 사람들이 먹을 거 갖다 놓으면서 물고기 밥도 주고 그러지 않았겠어요? “아이고 이게 아직 있었구나.” 싶어서 떠다가 집에 가가지족 맛있게 해 먹었죠. 그런데 그다음 날 딱 와보니까 물고기가 없어진 겁니다. 그러니까 마을에서 난리가 났어요. 우리가 우리 신님을 노여워하게 만들었다. 우리가 뭔가 잘못한 일이 있어가지고 서로 우리가 서로 미워하고 하면서 누가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마을 사람들이 일단 옳지 못한 일을 많이 했기 때문에 물고기 신께서 우리 마을을 떠나셨다. 그렇게 믿고 나서는 아무리 가서 기도를 해도 그때부턴 이젠 기도발이 먹히지가 않는 겁니다. 그땐 아무리 기도를 해도 기도가 되지가 않는 거예요.
이와 마찬가지라는 거죠. 사실 우리가 생각하는 신이라는 개념, 성황당이라는 개념, 이 모든 것이 이와 같습니다. 어떤 신을 믿어도 그 신이 내 말을 들어주기도 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올바른 신을 믿어도 안 들어주기도 하거든요. 우리가 믿고 있는 어떻게 믿느냐에 따라서 사실은 성황당에다 기도해도 그 기도를 들어줍니다. 하나님께 기도해도 죽은 사람이 깨어나고, 죽을병에서 살아나기도 합니다. 천주교에서 그렇고, 이슬람교에서도 그렇고, 불교에서도 그렇고. 모든 종교에 그럼 영험서라는 건 다 있어요. 그럼 사람들이 의심합니다. “불교에 와서 기도해야지만 나야지. 교회성당 가서 낫는데 이게 좀 이상합니다.” 이렇게 얘기한단 말이죠. 그렇지가 않다. 교회가도 낫고, 성당가도 낫고, 절에 가도 낫고, 성황당 가도 낫고, 정한 수 물 한 그릇 떠다해도 낫고, 물고기 앞에서 기도해도 낫는다. 왜 나을까요?
실제 신이 부처가 누군가가 나를 낫게 해 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 대상을 굳게 믿으면 낫게 해줄 거라고 확실하게 믿으면, 그 믿음이 내 안에 있는 믿음이 그것을 낫게 만드는 것이지. 실제 내 바깥에는 내 존재가 나를 낫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거죠. 그래서 우리 안에 있는 무한한 가능성, 무한한 힘, 무한한 지혜, 이것을 불성이라고 하고, 또 다른 종교에서는 신성이라고도 하고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결국에는 내 바깥에 있는 존재를 믿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무한한 가능성, 그 무한한 힘을 굳게 믿었을 때 그것이 내 삶을 내가 마음 내는 대로 바꾸어준다는 거죠. 반대로 노시보효과라고 해서 이거는 먹어도 죽지 않는 액체인데, 이거를 먹으면 죽는지 알고 그 사람이 먹었단 말이에요.
그런데 실제 그 사람이 죽었습니다. 실제는 전혀 죽지 않는 약인데 그 사람은 이거 먹으면 죽는다고 독약이라고 굳게 믿고 먹어서 실제 죽는 일도 벌어졌다. 이것을 반대로 노시보효과라고 이렇게 부릅니다. (영상...)
또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피그말리온 효과도 이 마음의 힘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이런 연구를 한번 한 적이 있었다 그래요. 샌프란시스코 초등학교 대상으로 지능검사를 했는데 지능검사 결과대로 선생님들한테 알려준 게 아니라. 선생님들한테 명단을 한 몇 사람 명단을 주면서 이 학생들은 아주 학업성취가 높은 아이들이다. 지적수준이 높은 아이들이다. 지능검사가 결과가 잘 나온 아이들이다. 그래서 명단을 줬는데 사실은 진짜 똑똑한 아이들 명단을 준게 아니라 무작위로 줬다는 거죠.
무작위로 줬는데 그 선생님이 이 아이들한테 기대효과를 아이들에게 편견을 해서 보셨겠죠. “너는 성적이 안 좋지만 너는 정말 잘할 수 있는데, 성적이 안 나왔구나.” 이렇게 하면서 뭔가 하지 않았겠어요? 6개월 지나고 나서 결과를 봤더니 그 선생님에게 명단을 줬던 그 명단에 있는 학생들이 공히 성적이 아주 좋아지게 나왔다는 겁니다. 그렇지 않은 학생들에 비해서.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누군가에게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아이한테 아들딸에게 또는 누군가에게 내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야, 얘는 해도 안 된다. 해도 안 된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었을 때 그 사람이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그 내면에서 완전히 달라진다는 거죠. 어떻게 우리가 보느냐에 따라서. 내가 이 사람을 어떤 사람으로 볼 것이냐? 이거 정말 중요한 얘깁니다.
제가요, 여러분도 어찌 보면 거기에 영향을 미치고 있을 거 같은데, 제가 출가하기 전에 출가하기 전에 그냥 불교학과 학생이었을 때, 그랬을 때 제가 후배들이나 옆에 사람들이나 누구 힘들단 사람들이 있으면 제 마음 같아서는 정말 온 마음을 다해서 다 얘기를 들려주거든요. “이렇게 이렇게 하면 정말 좋아질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아무리 얘기를 해줘도 별 영험이 없어요. 아무리 얘기를 해줘도 이 사람들이 제대로 듣지를 않는 겁니다. 특히 우리 가족들은 더욱더 제대로 안 들어요. ‘네가 하는 말은 다 그렇겠지 뭐. 그럴 수도 있겠지.’ 그러나 잘 안 듣는 겁니다. 그때는 제가 아무리 얘기를 해줘도 별 효과가 없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야, 나는 별로 효과가 없나보다. 내가. 말을 잘 못하는 건지 불법을 잘 몰라 그런 거지.” 그랬거든요. 제가 이제 단지 출가를 했을 뿐이에요. 그냥.
출가하고 나서 햇중이 뭘 알겠습니까? 똑같죠. 이제 막 출가한지 얼마 안됐는데 거기 나오는 보살님들, 노보살님들, 이런 분들이 어디서 젊은 스님이 한분 왔단 말이죠. 그러니까 이제 와가지고 저한테 상담을 요청을 하셔요. 그런데 제가 출가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을 때 서울 강남에 서초동에 거사님 법회가 아주 유명한 거사님 법회였어요. 하여간 거기 나오는 거사님 법회가요, 그냥 대부분이 사장, 회장, 의사, 원장, 대게 대게 높으신 분이고 사회에서도 저명하신 불들이었어요. 저는 제 마음속으로 이제 막 출가한지 얼마 안 된 스님인데, 그분들이 와가지고 상담을 해달라고 하는데, 저는 또 이게 촌놈이라 서울사람은 다 대단해 보였었거든요. 그래서 서울 사는 사람은 참 이게 대단한거 같고. 그런데 그 대단한 분들 중에 저렇게 높으신 분들이 나한테 와서 상담을 하신단 말이에요. 처음에 참 당황스러웠죠.
그런데 제가 소신을 가지고 제가 아는 거에 대해서만 이렇게 말씀을 드렸을 뿐이거든요. 그런데 제가 깜짝 놀랐습니다. 그 정말 그 많은 분들이 제가 옛날엔 아무리 열과 성을 다해서 얘기해도 아무런 별로 반응이 없던 사람들이 많았는데, 지금은 그분들 보다 훨씬 더 많이 알고 불교에 대해서도 많이 공부하고 이랬던 분들인데, 제가 이렇게 단순하게 “설마 내 말을 듣겠어? 그러나 할 수 있는 만큼 말씀드리자,” 해서 한 두 마디 드린 말씀들이 놀라운 변화를 가져오는 거예요. 특히나 저를 굳게 믿는 분들은 굳게 믿는 분들일수록 더욱 큰 결과가 가져오는 겁니다. 그때에 정말 “야~ 이게 정말 내 힘이 아니라. 정말, 이 사람들의 의식이 스님이 하는 말이니까 맞겠지. 스님이 하는 말이니까 더 훌륭하겠지.” 이렇게 믿는단 말이죠.
그런 게 확실하게 있습니다. 그래서 사실은요, 일반인들이 조금 이 상한 얘기 한 두 마디 하면, “아, 저 저저 이상한 짓한다.”고 이렇게 하는데. 스님이 약간 이상한 얘기 한 마디하면 “야, 역시 스님이라 뭔가 다르구나.” 이런 생각을 하드라니까요. 그것도 사실 우리가 분명하고 냉철하게 바라보아야 될 부분입니다. 그래서 이와 같이 우리는 정말 그 모습에 많이 휘청거리고 휘둘리고 그런 부분들이 사실은 우리 삶에는 너무나도 많이 있습니다. 믿는 것이 곧 보는 것이라 그랬죠. 우리가 경험한데로 믿게 된다고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사실은 내가 어떻게 믿느냐에 따라서 믿는 것이 현실로 와서 경험이 됩니다. 경험했으니까 그게 믿음으로 바뀐다고 생각하지만, 반대란 말이죠. 내가 굳게 믿기 시작하면 그것이 현실로 물질적인 현실로 나타나집니다.
내가 믿음과 동시에. 믿지 않았을 때는 그런 일이 내 인생에 안 벌어지다가 믿음과 동시에 그런 일이 내 인생에 벌어지기 시작해요. “나는 운이 없는 사람이야.”라고 믿었던 사람은 계속 운이 없었다가 어느 순간 “아, 나도 운이 있는 사람인가 봐.” 라고 믿기 시작하면서부터 다양한 운들이 그 사람에게 나타나기 시작하기도 합니다. 기네스북에 불 위를 걷는다는 사람이 있는데 아만다데이슨이라는 사람은 섭씨 900도의 석탄 위를 67미터나 걸었는데 전혀 화상이 없었어요. 이게 그냥 우리가 생각했을 때 가능한 일인가요? 전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런데 자기의식에서 의식의 차원이 달라지 게 되면, 현실이 물질의 현실이 전혀 다르게 결과를 가져온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똑같은 사람에게 900도의 석탄 위를 걸으면 똑같이 발이 타들어가야 되는데 어떤 사람은 타들어가고 어떤 사람은 타들어가지 않습니다.
그리고 실제 사람에게 어떤 최면을 걸거나 그러더라도 같은 일이 벌어집니다. 심지어 최면을 걸 때 여러분 이중인격이라고도 하고 귀신이 들어갔다고 얘기하는데, 두 명의 귀신이 동시에 들어갔다고 보는 일들이 있잖아요? 이 사람이 갑자기 남자귀신이 들어왔다고 그러는 거죠. 남자의 행동을 막하면서 이렇게 합니다. 어떤 여자 분인데. 그러다가 잠시 후에 20~ 30분 있다가 여자 아기 짓을 막 해요. 응애응애 하면서 엄마엄마 하면서 아기 짓을 막 해요. 그런데 두 개의 인격이 동시에 왔다 갔다 하는 거죠. 그런데 과학적으로 봤더니 이 남자의 인격이 딱 들어왔을 때 남자의 인격이 들어왔을 때 우유를 먹으면 두드러기가 나는 인격이 들어온 거예요. 그래서 남자의 인격이 들어왔을 때 우유를 먹었더니 우유를 먹고 온몸에 두드러기가 나오고 온몸이 너무 심각하게 두드러기가 심해진 거예요.
그래가지고 병원에 의사를 불렀습니다. 의사를 불렀는데 의사가 오는데 한 30분 걸렸다 그래요. 그런데 30분이 걸렸는데 한 20분 지났다가 여자 아기 인격으로 다시 바뀐 거예요. 그래서 이 사람이 응애응애 하면서 아기 짓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의사가 도착을 했는데 두드러기가 싹없어진 거예요. 여자 아기 인격으로 딱 바뀌었을 때 두드러기가 싹 사라져버렸습니다. 우유를 아무리 먹여도 전혀 두드러기가 나지 않는 겁니다. 잠깐의 의식이 왔다 갔다 하는 그 사이에 따라서 어떤 의식이 들어오느냐에 따라서 완전히 몸의 반응이 달라지는 겁니다. 또 이런 일이 있었어요. 페르시아에 바크티알이라는 부족은요, 4500미터 산악에 눈과 얼음 위를 맨발로 며칠씩 걸어서 대 이동을 하는 것이 수천 년 내려오는 전통이라고 그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4천 미터에서 맨발로 눈길 위를 걸으면서 이동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그 부족들은 수천 년 그게 전통이에요. 그런데 누구하나 동상 걸리는 사람이 없습니다. 지금까지도 아무도 동상 걸린 사람이 없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 현대과학에서 현대인들이 들어가서 이 사람들을 데려다 놓고 교육을 시킨 겁니다. “야, 너희들이 이러면 큰일 난다. 조금만 추운 곳에서도 자칫 잘못하면 오래 있으면 동상이 걸리는데, 너희들 이렇게 있으면 큰일 난다. 동상 걸린다. 동상이 뭔 줄 아느냐? 다리가 얼어붙어서 썩어 들어가서 절단할 수도 있다. 당신들 지금까지 운 좋아서 동상 안 걸렸지만 이러다가 동상 걸린다.” 그러고 엄포를 놓고 갔단 말이에요. 그 다음 민족 대이동을 할 때 엄청난 동상환자들이 만들어진다는 거죠. 그런 일들이 벌어진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전혀 동상 걸린다는 가능성자체를 전혀 의식하지도 못하고 살은 거예요. 왜? 단 한 번도 눈길을 맨발로 걸어도 동상 걸려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런 의식에서 사는 사람들에게는 동상이라는 것이 실제가 없는 것입니다. 인도 같은 나라에서는요, 영상 10도에 얼어 죽습니다. 영상 10도 15도에 얼어 죽거든요. 우리는 이해가되지 않지만 그 사람은 실제로 죽기도 한다. 이와 같이 내가 어떤 의식 속에 어떤 전통에서 살았냐에 따라서 그것이 나의 삶을 규정짓기도 합니다. 티베트는 라다크에서 배운다는 책에 보면 티베트 라다크에서는 사람들이 완전한 불교적인 사고방식으로 삶을 살고 있는데 그 나라 사람들은 가난한 걸 모르고 살았다는 거죠. 그 땅이 너무 척박하고 가지고 있는 거라고는 야크라는 소밖에 없는데, 거기서 나오는 젖 이런 거 밖에 없는데, 땔감이라고 해봐야 야크가 싼 똥을 말려가지고 땔감으로 떼고 이런 정도밖에 없는 거예요. 너무나도 척박한 땅입니다.
그러니까 현대 우리들의 의식에서 봤을 땐 너무 가난한 사람들이죠. 그런데 이 사람들은 가난이라는 단어자체가 없는 거예요. 너무나도 풍요롭게 살고 너무나도 행복하게 살고 너무나도 감사한 마음으로 살고. 또 그 나라에는 화라는 단어가 없답니다. 싸운다는 단어. 이런 게 잘 없답니다. 화내고 싸운다는 게 이해가 안 되는 나라였다는 거죠. 그런데 라다크로 부터 배운다는 그 책을 쓴 책을 읽어보셔요. 그 책을 보면 그 사람이 유럽 사람인데, 그 라다크에 가서 10년 이상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처음에 왔을 때 1년 2년 3년차에 라다크 사람들을 보면서 깜짝 놀란 거예요. 이 티베트 사람들은 도대체 화를 내는 걸 못 봤고, 너무나도 풍요롭게 살고, 이렇게 척박한 땅에서 이렇게 가난하게 살면서 이렇게 스스로가 부자고 행복하다고 생각하며 사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경이롭게 느껴지더라는 거죠.
그런데 이 사람이 10년을 살면서 그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라다크 티베트에 서양의 문물이 들어오기 시작하는 겁니다. 뭐가 들어오기 시작했냐하면 라다크 시내에 서양영화관이 생기기 시작하므로 부터 본격적으로 문물이 들어오는데, 서양영화관이 생기면서 서양영화가 나와 가지고 차를 타고 다니고, 기차를 타고 다니고, 맛있는 뭐를 먹고 다니고, 풍요로운 가든파티를 하고, 이런 모습을 보고, 집이 으리으리하고 이런 것들이 보이는 거예요. 그러면서 한 두 사람 젊은 사람들이 “서양으로 유학가야 되겠다.” 유학 갔다 온 사람들이 “서양에는 이런 옷도 있고 저런 옷도 있다.” 서양의 문물이 들어오면서 온갖 풍요로운 어떤 맛있는 것들이 들어오면서 이러면서 10년이 지나고 나서 이 사람이 동일한 인터뷰를 라다크 사람들에게 했어요. 라다크 젊은이들에게 동일한 인터뷰를 했는데 깜짝 놀랐습니다.
10년 만에 인터뷰를 했는데 인터뷰내용이 어떻게 바뀌었냐하면 우리는 조상대대로 너무나도 가난해서 잘 사나는 나라에서 우리를 도와주지 않으면 선진국들이 우리를 도와주지 않으면 우리는 언제 굶어죽을지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여러분이 봐서 아시잖아요. 저희는 너무 가난하고 먹을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너무 부족하고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너무 가난하니까 젊은 사람들은 서로 잘사는데 나가야 된다고 생각하고, 돈 벌러 가야 된다고 생각하고, 유학가야 된다고 생각하고 갔다 온 사람들과의 빈부격차 때문에 서로가 싸우고, 헐뜯고, 미워하고, 질투하고, 생전 있지도 않았던 단어들이 생기기시작하는 겁니다. 화라는 단어. 질투한다는 단어. 미워한다는 단어. 그러니까 그 10년 사이에 너무나도 이런 변화가 있었다는 거죠.
이와 같이 그렇게 본래 그런 나라에서라면 무한하게 내 쪽으로 무한한 풍요로움을 느끼고 살 수 있었을 것이거든요. 그런데 우리가 어떤 불행이다 행복이다 하는 것은 남들과의 이와 같이 비교해서 오고, 의식의 전환에서 오는 겁니다. 생각의 전환에서 오는 거예요. 그러면 거꾸로 반대로 생각을 탁 전환시키면 아무리 추하게 사는 사회라 할지라도 그곳에서 우리는 충분히 행복한 삶을 살 수가 있게 되는 겁니다. 그 안길라카발로라는 어머니가요, 아들을 구하기 위해서 자동차를 번쩍 들어 올렸어요. 그래서 아이를 구할 때까지 5분 동안 버티고 있었다는 거예요. 그 자동차를. 나중에 어머니한테 너무 신기해서 다시 한 번 자동차를 들어봐라. 그랬더니 꼼짝도 못하는 거예요. 꼼짝도 안하는 거예요.
이 어머니가 자동차를 들 수 있었던 것은, 또 이것도 마찬가지에요. 한 건설인부가 추락해 있는데 헬기가 물에 깔렸어요. 그런데 헬기 아래에 친구가 깔렸습니다. 그런데 1360키로나 되는 헬기를 헬기 한쪽을 번쩍 들어 올려서 그 친구가 구할 때까지 들어 올리고 있었다는 거예요. 유투브에 이게 나와 있더라고요. 그런데 이런 것들을 보면 이게 어떻게 가능하겠습니까? 우리가 평소에는 차를 들어 올려라. 이러면 절대 못 들어 올리거든요. 왜그러냐하면 ‘나는 들어 올릴 수 없다.’는 생각이 믿음이 우리 안에 굳게 있습니다. ‘이건 나는 못하는 거야.’ 믿음이 굳게 있는 거요. 그러니까 내 안에서 그런 믿음이 있으면 절대 그건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자식이 차 밑에 깔리는 순간 부모님이 이걸 들 수 있을까? 없을까? 생각하고 계산하고 판단할까요? 판단하지 않습니다.
오직 일념으로 일심으로 한 생각 한마음으로 그냥 돌진해서 들어 올릴 뿐이지 아무 생각이 없습니다. 내가 할 수 있을지 없을지 가능성에 대해서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그냥 몰록 일념이 되어서 한 생각으로 들어 올려야 되겠다. 그냥 한 생각만으로 달려가서 들어 올릴 뿐입니다. 그러면 그것이 어떤 힘을 발휘하느냐하면 보통 우리는 평소에 내 인식으로 의식으로 나를 제한시키고 있습니다. “난 안 돼. 나는 이만큼은 되지만 이만큼 이상은 나는 안 되는 사람이야.” 라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실제로 우리 인생에서 안 되는 일이 너무 많이 벌어집니다. 그런데 이렇게 이런 순간이 되면, 극한 순간이 되면 그 생각이 완전히 내려놔 지는 거예요. 내가 놓이는 겁니다. 아상이 놓이고 판단과 분별이 완전히 내려놔 지는 겁니다. 그러면서 온 의식이 일념이 되어버려요.
그거 한 가지를 해야 되겠다는 그 생각으로만 일념이 되어버립니다. 그러면 실제 그 일이 가능해진다. 그런데 이게 실제로 아무리 가능하다고 해도 이 말은 뭔 얘기냐 하면 우리가 차를 들어 올릴 수 없는데 내 근육량을 가지고는 내 근육의 힘을 가지고는 도저히 차를 들어 올릴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의식이 바뀌면 의식이 전환되는 순간 내 근육량 요것만을 가지고도 못 들어 올리는 것들을 들어 올리는 힘이 생긴다는 겁니다. 과학적으론 도저히 불가능한일이 현실로 벌어진다는 거예요. 더 놀라운 것은 이렇게 내 의식이 몸만을 일순간 바꾸는 것이 아니고 내가 그렇게 일심이 되었을 때 우주법계가 나를 도와주는 역할을 갑자기 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내가 그 아들을 구해야 되겠다는 일념으로 뛰어들어서 들고 있는데, 어디에서 갑자기 생각지도 못한 사람이 나타나서 지나가서 쫓아와서 같이 도와줄 수도 있을 것이고, 다양한 방법으로 내가 일념으로 한 생각을 일으켰을 때 그 생각은요, 내 모든 세포 하나만을 변화시켜서 내 몸이 넘치는 일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줄뿐만 아니라, 우리 주변에 있는 주변사람들 주변의 우주법계를 감동시킵니다. 우주법계가 나를 도와주는 일을 하기위해서 갑자기 작동을 시작하게 되요. 이게 바로 인간의식의 위대한 놀라온 점입니다. 나와 내 몸만이 그렇게 변하는 것이 아니라, 우주법계가 나를 위해 도와주기 시작한다는 거죠. 그래서 옛날에는 전통의학에서 유전자 결정론이라고 해서 우리는 유전형질의 노예라고 생각했어요. 유전자가 정해졌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인간게놈 프로젝트라는 것을 통해서 유전자가 생명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는 게 과학적으로 밝혀졌습니다. 나 자신이 지배한다. 진화해가는 이 첨단과학에서는 우리 생명을 지배하는 힘은 마음에서 오는 것이다. 결코 유전자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여기서부터는 다음 주에 하도록 그렇게 하겠습니다. 여기까지 하고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합장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첫댓글 법우님 녹취해서 글 올려주시는것 쉽지 않고 많은 시간과 노고가 있어야 하는 일임을 잘알고 있습니다.
정말 감사 합니다.^^ _()_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합니다
녹취해 올려 주신 글 고맙게 잘 읽었습니다.매사에 감사하며 정진할 뿐입니다.행복한 순간입니다.()()()...
감사합니다. 행복합니다.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