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울림 고전극장 현진건 단편선 박지혜 연출의 <새빨간 얼굴>을 보고.
공연명 새빨간 얼굴
공연단체 극단 양손프로젝트
작 현진건
연출 박지혜
공연기간 2013년2월28일~3월10일
산울림 소극장에서 극단 양손프로젝트의 현진건 작, 박지혜 연출의 <새빨간 얼굴>을 관람했다.
<새빨간 얼굴>은 산울림 고전극장 2013 현진건의 단편 중 <운수좋은 날> <연애의 청산> <그리운 흘긴 눈> <정조와 약값> 등의 소설을 1인극과 3인극으로 만든 연극이다.
현진건(玄鎭健 1900~1943)은 소설가이자 언론인이다. 경북 대구 출생으로 본관은 연주(延州)이고 호는 빙허(憑虛)다. 가계는 한말에 득세한 개화파 집안으로, 대구우체국장이었던 경운(慶運)의 4남으로 태어났다. 1915년 이순득(李順得)과 혼인한 뒤 일본으로 건너가 동경 세이조중학(成城中學) 4학년을 중퇴하고 상해로 건너가 후장대학(扈江大學)에서 수학한 뒤, 1919년 귀국하여 한말 주일공사관 참서관(參書官)을 지낸 당숙 보운(普運)에게 입양되었다. 1920년 《개벽(開闢)》에 〈희생화(犧牲化)〉를 발표하여 문단에 등장하기 시작하고, 1921년〈빈처(貧妻)〉를 발표하여 작가로서의 위치를 굳혔다. 같은 해 조선일보사에 입사함으로써 언론계에 첫발을 내디뎠다. 홍사용(洪思容) 〮 이상화(李相和) 〮 나도향(羅稻香) 〮 박종화(朴鍾和) 등과 함께 《백조(白潮)》창간동인으로 참여하여 1920년대 신문학운동에 본격적으로 가담하였다. 1922년에는 동명사(東明社)에 입사, 1925년 그 후신인 《시대일보》가 폐간되자 동아일보사로 옮겼다. 1932년 상해에서 활약하던 공산주의자인 셋째 형인 정건(鼎建)의 체포와 죽음으로 깊은 충격을 받았는데, 그 자신도 1936년 동아일보사 사회부장 당시 베를린 마라톤 챔피언 손기정 선수 가슴의 일장기말살사건으로 구속되었다. 1937년 동아일보사를 사직하고 소설 창작에 전념하였으며, 빈궁 속에서도 친일문학에 가담하지 않은 채 지내다가 1943년 장결핵으로 죽었다.
장편과 단편 20 여 편과 7편의 번역소설, 그리고 여러 편의 수필과 비평문 등을 남겼는데, 그의 작품경향은 민족주의적 색채가 짙은 사실주의 계열로 지식인을 주인공으로 하는 자전적 신변소설, 하층민과 민족적 현실에 눈을 돌린 소설, 1930년대의 장편소설과 역사소설 등 세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자전적 소설인 〈빈처〉 〮〈술 권하는 사회〉(1921) 〮〈타락자〉(1922) 등에서는 순수한 젊은이가 구체적인 생활 안에 자리잡기 시작하면서 부닥치는 여러 가지 좌절의 경험을 기록함으로써 한 양심적 지식청년의 고민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둘째, 창작집 《조선의 얼굴》(1926)을 간행한 시기는 제목이 나타내주듯이, 그의 의식이 자전적 세계를 벗어나 식민지의 민족적 현실 및 고통 받는 식민지 민중의 문제로 옮겨간다. 도시하층민의 운명을 추적한 〈운수좋은 날〉(1924), 미숙한 성의식(性意識)과 노역으로 고통 받는 농촌여성을 그린 〈불〉(1925), 땅을 잃고 뜨내기 노동자로 전전하는 한 이농민을 탁월하게 형상화한 〈고향〉(1926) 등은 1920년대 단편문학의 한 정점으로 기록된다. 셋째, 장편소설 〈적도(赤道)〉(1933~1934)에서는 삼각관계의 연애소설 구조 속에서, 그리고 〈무영탑〉(1938-1939) 〮〈흑치상지(黑齒常之)〉(1939~1940, 미완) 〮〈선화공주(善花公主)〉(1941, 미완) 등에서는 과거의 역사를 통하여, 민족해방에 대한 강렬한 동경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1930년대의 암울한 시대적 압박으로 말미암아 외면적인 통속성이 강화되고, 민족정신은 내재화 · 추상화의 경향에 빠졌다. 이밖에 〈조선 혼과 현대정신의 파악〉(개벽 65호, 1926) 등의 비평문을 통하여 식민지시대의 조선 문학이 나가야 발 방향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그는 김동인(金東仁) 〮 염상섭(廉想涉)과 더불어 근대문학 초기에 단편소설 양식을 개척하고 사실주의 문학의 기틀을 마련한 작가로서, 특히 식민지시대의 현실대응문제를 단편기교와 더불어 탁월하게 양식화한 작가로서 문학사적 위치를 크게 차지하고 있다.
<운수좋은 날>은 1920년대 하층 노동자의 삶을 날카로운 관찰로 생생하게 그려 놓은 작가의 대표작이다. 일제 치하 서울 동소문 안에 사는 인력거꾼 김 첨지의 '운수 좋은'어느 하루를 담아 보이면서, 당시 도시 하층민의 비참한 생활상을 암시하고 있다. 대화에서 뿐만이 아니라 지문에서도 속되고 거친 말투를 여과 없이 드러냄으로써 밑바닥 인생의 단면을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다. 또한, 신문화에 수용되는 과정을 학생이나 양복쟁이와 같은 인물들을 등장시켜 표현함으로써 당시 급변하는 사회상의 일면을 제시하고 있다. 이 소설의 표제가 된 '운수 좋은 날'은 사실 인력거꾼으로 큰 벌이를 한 운수 좋은 날이 아니라 병든 아내가 죽은 비운의 날의 '반어적(Irony) 표현'이다.
인력거꾼 김 첨지가 나가려 하자, 아내는 "오늘은 나가지 말아요. 제발 덕분에 집에 붙어 있어요. 내가 이렇게 아픈데…"라고 모기 소리같이 중얼거리고 숨을 걸그렁 걸그렁 하였다. 그 때에 김 첨지는 대수롭지 않은 듯이 "압다, 젠장맞을 년, 별 빌어먹을 소리를 다 하네. 맞붙들고 앉았으면 누가 멱여 살릴 줄 알아."
주인공인 인력거꾼 김 첨지는 돈벌이를 위해서는 빈사 직전의 아내의 애원도 이렇게 뿌리치고 만다. 가난이 이 같은 비정과 냉혹함을 강요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주인공은 그 같은 외면적인 표현과는 달리 내면적으로는 아내에 대한 동정이 깔려 있다. 그리고 허기진 배로 온종일 빗속을 철버덕거리면서도 아내에 대한 근심으로 가득 차 있다. 그래서 인력거를 끌고 달리다가 얼빠진 사람처럼 멍청히 서 있기도 한다. 그리고 그 날 마침내 아내를 위해서 설렁탕 한 그릇을 사 가지고 들어가지만 아내는 이미 죽어 있는 것이다.
손상규가 <운수좋은 날>을 모노드라마 형식으로 연기해 연극의 도입을 장식한다. 직업을 인력거꾼으로 바꿔도 될 성 싶은 호연이었다.
<연애의 청산>도 모노드라마로 만들어 양종욱이 사랑하는 여인이 면회 오기를 기다리는 죄수로 출연한다. 여인이 처음에는 열애의 심정으로 면회를 오더니, 차츰 면회회수나 기일이 전 같지 않고 뜸 하다가, 드디어 마지막 면회에 나타나 고무신을 거꾸로 신게 된 사연을 털어놓고, 작별을 고하는 내용이다. 양종욱의 호연이 눈에 선하다.
<그리운 흘긴 눈>은 여성 모노드라마다. 19세에 기생첩으로 들어간 여인의 기구한 삶과 지아비 노릇을 하는 남편에게 늘 순종하듯 살다보니, 지아비의 동반자살권유까지 거부하지 못하고 함께 따라 죽는 듯 순종하는 기생첩 채선과, 그녀 자신의 심정과는 전혀 반대의 양상으로 음독상황이 펼쳐지지만, 결국 실패로 끝나는 1인극이다. 양조아의 끼가 찰찰 넘치는 연기도 볼거리지만 시종일관 평상 위에서 펼치는 모노드라마도 인상적이다.
<정조와 약값>은 의사와 빈한한 환자내외의 이야기다. 여인의 정조로 약값을 대신할 수밖에 없는 빈민가의 극빈생활과 환자인 남편이 아내가 의사와 동침하는 것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상황이 충격으로 다가온다.
손상규가 의사로, 양조아가 환자의 아내로, 양종욱이 환자로 출연해 시종일관 희극적으로 연극을 이끌어 간다. 일제치하의 작품이다 보니, 우리 민족의 곤궁과 빈곤이 여인의 정절보다 시급했던 당시의 상황을 묘사한 작품이라, 극을 보며 웃음을 터뜨리지만, 가슴 한구석에는 슬픔이 자리 잡은 공연이기도 하다.
손상규, 양조아, 양종욱의 호연은 객석의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았고, 박슬기의 무대/조명디자인, 천녕슬의 그래픽디자인 등 스텝 진의 기량도 돋보여, 산울림 고전극장 2013 극단 양손프로젝트의 현진건의 단편선, 박지혜 연출의 <새빨간 얼굴>을 관객의 기억에 길이 남을 공연으로 창출시켰다.
3월2일 박정기(朴精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