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티브 잡스는 프라이버시를 지키려는 노력이 각별했던 인물이다. 애플 공동 창업자로 2007년 아이폰과 2010년 아이패드를 세상에 선보이며 오늘날의 스마트폰 세상을 실질적으로 열어젖힌 주인공, 스티브 잡스는 디지털 산업의 혁신 아이콘으로 뚜렷한 족적을 남겼지만 프라이버시에 대한 남다른 태도에서도 실리콘밸리의 다른 저명한 기업가들과는 확연히 구별된다. 2010년 6월 <월스트리트 저널>이 주최한 컨퍼런스(D8)의 좌담에 나선 스티브 잡스는 디지털 시대의 프라이버시를 묻는 월트 모스버그(Walt Mossberg) 기자에게 “우리(애플)는 프라이버시를 극도로 신중하게 다룬다”고 답변했다. 잡스는 “우리는 프라이버시에 대해 실리콘밸리의 다른 기업들과는 전혀 다른 관점을 지니고 있으며, 실리콘밸리 기업들 다수는 애플을 이 점에서 구식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잡스가 꼬집어 지칭하지 않았지만 페이스북과 구글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페이스북의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는 프라이버시의 종언을 선언한 바 있다. 에릭 슈미트 구글 회장도 인터넷 세상에서는 일단 기록되면 구글에 의해 결국 검색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잡스는 페이스북처럼 약관을 복잡하게 만들고 그 내용을 알기 어렵게 기술하는 것에 대해서도 일침을 놓았다. 잡스는 “프라이버시 약관은 당사자가 자신들의 데이터로 사업자가 무엇을 하려는 것인지에 대해 쉬운 말로 알기 쉽게 표현해야 한다”고 말했다. 구글의 안드로이드폰과 달리 애플 아이폰은 ‘통화 중 녹음’ 기능을 지원하지 않는 것은 물론, 애플 앱스토어에서 이를 가능하게 하는 앱도 허용하지 않고 있다. 통화 중 녹음이 불법이 아닌 우리나라에서는 아이폰 이용자들의 주된 불만 요인 가운데 하나다. 이처럼 애플이 모든 나라에서 아이폰의 ‘통화 중 녹음’ 기능을 지원하지 않는 배경에는 이를 프라이버시 관점에서 바라보는 잡스의 영향이 배어 있다.  잡스 사후 애플의 CEO가 된 팀 쿡은 지난 9월 17일 애플 홈페이지를 통해 ‘고객 프라이버시를 지키는 것이 모든 애플 서비스의 근본을 이룬다’고 강조하며 고객 신뢰 확보와 프라이버시 보호를 지상과제로 삼겠다는 뜻을 밝혔다. 잡스가 지켜내려 했던 것프라이버시에 관한 잡스의 태도는 그의 개인적 생활에서도 드러난다. 2011년 10월 5일 숨진 잡스의 장례식이 이틀 뒤인 7일 소수의 지인과 가족에 의해 비공개로 치러진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디지털 시대의 산업구조와 생활 방식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비범한 혁신가에 대해 세계 곳곳에서 광범한 추모 열기가 일었지만 당사자가 선택한 세상과의 작별 방식은 ‘비공개’로 진행된 지극히 소박하고 개인적인 마무리였다. 잡스는 프라이버시를 보호받기 위해 담장이나 은둔을 선택하지 않았다. 많은 유명인들은 프라이버시를 지켜내기 위해 높은 담장을 쌓아올리고 많은 경비원을 고용해 자신에게 몰려드는 카메라와 대중의 눈길을 차단한다. 엄청난 비용이 드는 일이다. 또한 어떤 이들은 유명해진 후 스스로를 고립시킴으로써 외부 세계로의 노출을 최소화하는 방식을 쓰기도 한다. 사실상 대외 활동을 포기하는 방식이다. 두 가지 방법 모두 친구나 이웃들과 어울리는 즐거움과 사회적 존재로서의 평범한 즐거움을 상당 부분 잃어버리는 선택이다. 잡스는 20대 초반부터 애플컴퓨터로 세상에 이름을 알렸지만 세상의 관심으로부터 숨지 않으면서 프라이버시를 지켜내려고 했다. 유명인의 사생활을 추적해 퍼뜨리는 이른바 ‘파파라치’도, 타블로이드 신문도 그다지 잡스를 대상으로 삼지 않았다. 그는 어떤 경영자보다 드라마적 요소를 갖춘, 세계인의 관심이 쏠린 인물이었지만 그에 대한 사생활 추적 뉴스는 매우 적었다. 왜일까?  프라이버시를 지키려면 적극적 의사 표시가 필요하다. <출처: @thenerysaid (flickr)> 무엇보다 잡스는 기업 경영자로 외부에 공개되는 자신의 모습 이외에는 사적인 영역의 노출을 삼갔다. 수시로 수천 명 앞의 무대에 서고 방송 인터뷰 등에 노출되는 유명 인사였지만 자신과 가족의 프라이버시를 지키려는 노력이 각별했다. 2011년 1월 잡스가 건강 악화로 세 번째 병가를 떠나게 되자 투자자들과 언론은 잡스의 건강 상태에 높은 관심을 기울이며 갖은 추측성 보도와 루머를 쏟아냈다. 투자자들과 애널리스트들은 잡스의 건강 상태를 충분히 공개하지 않는다며 애플을 비난하기도 했다. 스티브 잡스의 건강 상태를 분명하게 밝히라는 애플 투자자들의 요구는 프라이버시에 대한 터무니없는 요구라기보다 개인의 감정과 존엄을 고려하지 않는 자본의 무자비한 본질을 드러낸 측면이 강하다. 스티브 잡스는 그 자체로 애플의 기업 가치와 투자 가치를 상징하기 때문에 그의 건강 상태는 무엇보다 중요한 투자 고려 요소라는 것이 투자자들의 요구에 깔린 논리였다. 사실 당시 잡스의 건강은 불안해 보였다. 잡스는 2004년 처음 췌장암 진단을 받은 뒤에 1개월간 병가를 떠나 수술을 받았고, 2009년에는 다시 6개월간 병가를 떠났다가 업무에 복귀한 뒤에 간 이식 수술을 받았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세 번째 병가는 그의 병세에 대한 갖은 억측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잡스는 2011년 당시 병가를 떠나면서 애플 직원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정면 대응을 시도했다. “이사회 동의 아래 병가를 얻어 건강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 나와 내 가족의 프라이버시가 존중받기를 간곡히 희망한다”는 것이 이메일의 내용이었다. 그의 당부와 함께 춤추던 루머성 보도도 사그라졌다. 마미시닷컴(Mommyish.com)처럼 가족의 가치를 중시하는 사이트는 잡스의 사후에 그가 자신의 가족을 프라이버시 노출로부터 지켜낸 것을 높이 평가했다. 임신, 출산, 양육 문제에 관한 포털 사이트인 마미시닷컴은 “타블로이드 폭로 문화가 넘치는 시대에 잡스와 같은 유명인이 가족의 프라이버시를 지켜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라며 “잡스가 단호하게 가족을 지켜낸 것이 무엇보다 훌륭한 점”이라고 밝혔다. 이 사이트는 또 공적인 인물들은 어렵더라도 자신의 가족, 특히 어린아이들을 대중의 관심과 추적으로부터 지켜낼 의무가 있다고 지적했다. 잡스는 자신의 프라이버시권을 적극적으로 요구함으로써 여느 평범한 사람들과 비슷한 수준의 일상적 생활을 누릴 수 있었다. 마을 주민들은 그를 산책길이나 자녀의 학교 행사에서 만나 평범한 이웃으로 대했고 누구든 팔로알토의 카페나 식당에서 종종 그를 만날 수 있었다. 그가 동네 주민으로 생활하는 모습은 이웃들의 협조 덕분에 거의 사진으로 포착되지 않았지만 안드로이드 진영을 상대로 한 특허 전쟁이 한창이던 2010년 3월, 동네 카페에서 ‘적장’인 구글의 에릭 슈미트를 만나 차를 마시는 모습이 촬영됨으로써 그의 일상을 짐작하게 했다.  팔로알토의 카페에서 만난 잡스와 슈미트 <사진: 기즈모도> 2011년 잡스가 숨진 뒤 몰려든 추모객과 일부 언론에 의해 공개된 팔로알토의 스티브 잡스 집은 그의 프라이버시가 외부인을 통제하는 높은 담장과 경비를 통해 얻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의 집은 동네 여느 집들처럼 집과 길의 경계를 표시하는 무릎 아래의 낮은 울타리가 있을 뿐, 따로 높은 담장이 없었다. 하지만 잡스가 지켜오던 프라이버시의 영역도 이제는 훼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잡스가 “나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해달라”는 요구를 할 수 없게 된 직후 그의 보호 아래 있던 그의 아내와 자녀들에 관한 보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또한 팔로알토 마을에서 두드러지지 않던 그의 집도 모두에게 공개돼 이제는 숱한 방문객들의 관심을 받게 됐다. 이미 주소마저 인터넷에 알려져 구글 지도에서 위성사진이나 스트리트뷰(Street View)를 통해 전 세계 누구나 그의 집을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게 됐다. 프라이버시를 보호하는 시민 의식2013년 5월 미국 캘리포니아의 실리콘밸리를 취재하러 갔다가 인근 팔로알토의 스티브 잡스 집을 찾아가 보았다. 잡스가 숨진 지 1년 반이 지나서인지 사과나무가 심겨 있는 그의 집 뜰에 더 이상 추모의 흔적은 없었다. 이웃 주민에게 물어보니 이따금 찾아오는 관광객들이 집 주변을 서성이다가 사진을 찍고 가는 정도라고 했다. 흥미로운 것은 잡스의 집 구조였다. 나지막한 울타리 너머로 벽돌 단층 집의 외관은 물론 내부도 창문을 통해 상당 부분 행인에게 노출되는 구조였다. 높은 담장도, 빽빽한 나무 울타리도 없었다. 뒤뜰에서 보이는 투명한 창문은 블라인드가 올려진 채 개방돼 있어 거실 내부 너머 반대편 앞뜰까지 보일 정도였다.  팔로알토에 있는 잡스의 집. 슈미트나 저커버그와 다르게 잡스는 프라이버시를 보호받기 위해 담장이나 은둔을 선택하지 않았다. 일거수일투족이 전 세계 매체의 집중 보도 대상이었던 세계적 유명인 스티브 잡스가 디지털 세상에서 자신과 가족의 프라이버시를 어떻게 지켜냈는지는 몇 가지 시사하는 바가 있다. 프라이버시를 지키기 위해서는 똑똑해지고 강해져야 한다. 우선 디지털 세상에서 프라이버시가 존엄하고 행복한 삶에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지를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그러고 나서는 프라이버시를 지켜내기 위한 본인의 단호한 요청이 필수적이다. 루돌프 폰 예링(Rudolf von Jhering)이 《권리를 위한 투쟁》에서 강조한 것처럼 “법은 권리 위에서 잠자는 자를 보호하지 않는다”. 사적 영역에 대한 자신의 권리를 알고 이를 적극적으로 요청할 수 있어야 한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프라이버시가 자신만의 노력으로 보호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주변의 이해와 도움이 필수적이다. 잡스가 집의 담을 낮추고 팔로알토의 식당과 카페를 스스럼없이 드나들 수 있었던 것은 지역 주민들의 높은 시민 의식과 프라이버시 보호 의식 덕분이었다.  - 글
- 구본권 | 한겨레신문 부설 사람과디지털연구소 소장
-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한양대 언론학 박사과정을 수료했으며, 한양대 신방과 겸임교수를 지냈다. 1990년부터 한겨레신문 기자로 일하고 있으며, 2014년 설립된 사람과디지털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당신을 공유하시겠습니까?](2014), [인터넷에서는 무엇이 뉴스가 되나](2005), [별별차별](2012, 공저)을 저술했으며, [잊혀질 권리](2011)를 번역했다. 사람과디지털연구소를 통해 디지털 시대, 기술의 새로움과 편리함 너머 더 행복하고 지혜로운 사용법을 성찰하고 널리 알리면서 ‘디지털 리터러시’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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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철학과 구체적인 지침을 ‘디지털 리터러시’ 개념으로 제안한다. 디지털의 속성과 구조를 파악하고 디지털 문법을 제대로 이해하고 사용하는 능력이 우리의 삶을 좌우하는 필수 교양이 된 것이다. SNS가 주는 박탈감이나 행복감 모두를 성찰하면서 도구로서 현명하게 사용할 방법을 권한다. 사람과 디지털의 건강한 관계 맺기를 위한 지침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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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2014.11.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