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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종죽순 체험길 ◎ 거제도 선도마을 사환마을 하청면은 고인돌이 산재해 있는 곳으로 삼한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오늘 답사하는 사환마을은 하청면 북쪽에 있는 마을로 본래 뱀 곶이라 하였는데 임란 시 선무원종 이등공신인 김옥춘이 을미년(1605)에 돌아왔으니 巳還이라 하였다. 그래서 김해김씨 집성촌이다. 거제도 교육의 아버지 김기호 씨가 태어난 곳이기에 교육자가 많다. 그리고 우리나라 난의 아버지 김기용 씨가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마을회관에 주차하고 길을 나선다. 맨 처음 접하는 곳이 임진왜란 시 전공으로 선무 이등공신이 등록된 김옥춘 장군 묘소이다. 사환이란 을사년(1605년)에 임진왜란이 끝나고 고향에 돌아왔다고 하여 붙여진 마을 이름이다. 김 장군의 묘소와 사당이 잘 정돈되어 있다. 때는 1592년 5월 7일 12시 옥포에서 해전이 일어나고 조선군에 패한 왜군은 송정 고개로 넘어오고 있었다. 그런데 그날 저녁 씨족 족장인 제인 국 씨가 장정 200여 명을 모아 일본군과 대적하였다고 하는 데 전화가 있지도 않았으며 방송도 없는 시절에 몇 시간 만에 이런 장정을 모아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리하여 거제도 장정들은 이순신 장군 휘하와 김시민 장군 휘하에서 임진왜란 내내 국가와 민족을 위해 싸워왔다. 임진왜란이 끝나고 1604년 임진왜란 시 큰 공을 세운 18인의 장군에게는 선무공신을 그 외 전공을 세운 군이이나 의병에게는 선무 원종공신(2,475명)을 선정하여 22인에게 선무 원종공신을 수여했다. 그 중 한 사람이 김옥춘 장군이다. 1970년 새마을 운동이 일어나자 사환마을은 시범 마을로 선정이 되어 꽃나무도 심고 마을 길도 넓히고 지붕개량 사업도 이루어졌다. 백 미터뜸 걸어가니 다육식물이 재배하는 큰 온실이 나온다. 좀처럼 보기 힘든 대형 토기 화분이 보인다. 보통화분이 아닌 것 같아서 물어보니 주인은 어디 가고 어머님만 보인다. 우리 딸이 사는 집인데 이곳에 아는 지인이 있어 10여 년 전 오게 되었다고 하네요. 아주머니, 저 화분을 판매하나요? 뭘 팔기도 하고 주로 보관하고 있답니다. 이탈리아에서 수입했다고 하는 데 가격은 잘 모른다고 하는데 아마 몇십만 원은 호가할 것으로 보인다. 담장 너머로 새집을 짓고 있다. 물어보니 무원 김기호 기념관이라고 한다. 김기호 선생님의 자녀 김한수 교장 선생님에게 물어보니 기념관을 짓는데 거제시에서는 협조하지 않는다고 한다. 아쉽지만 가문에서 십시일반 돈을 모아 기념관을 짓는다니 경악을 금치 못하겠다. 10여 분 걸어 올라가니 마령치(馬嶺峙)라고 하는 모리고개이다. 하청사람들이 장목으로 가는 길목이며 장목이나 실전 사람들이 하청, 고현으로 가는 길목으로 문경새재와 같은 길이다. ◎ 사환, 실전 갈림길 모리고개 오거리길이다. 제2구간인 죽순 테마기를 따라나선다. 숲이 무성하여 사화마을과 하청면 소재지가 어렴풋이 보인다. 한동안 가노라니 전망대가 있다. 칠천도가 한눈에 들어온다. 섬 안에 섬이 육지로 변한 연륙교, 연륙교는 섬에서 섬으로 연결하는 다리이고, 연도교는 섬에서 섬으로 다시 섬으로 연결하는 도로이다. 예를 들면 칠천도 연륙교, 황덕도 연도교이다. 육지와 섬을 연결하는 다리는 대교라 한다. 거제대교, 거가대교, 남해대교 등이다. 저 머리 칠천량 해전공원이 보인다. 이순신이 백의종군할 때 원균 장군이 백여 척의 배로 부산전투를 하고 돌아와 칠천도에 머물다가 왜군에게 전몰 당한 장소가 눈앞에 보이는 칠천 수로이다. 경상 우수사인 원균과 전라 좌수사인 이순신이 있다. 한 분은 영웅이 되고 한 분은 패장이 되어 역사의 한 모퉁이에서 쪼그리고 앉아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길을 재촉한다. 얼마 안가네 죽순 테마공원 가는 길과 정상 전망대 가는 길과 접한다. 젊은 여성 몇 분과 부부간 등산하는 모습도 보인다. 조금 가노라니 대나무 새순이 보인다. 문득 雨後竹筍이라는 사자성어가 생각난다. 사람은 음식을 먹고 자라고 식물은 물을 먹고 자란다. 대나무는 성장 속도가 빨라 어린 대나무는 하루에 10cm도 자란다. 그래서 우후죽순이란 사자성어가 나왔다. 곳곳에 이곳은 사유지이므로 무단으로 죽순을 캐면 법적으로 처벌받습니다. 라는 문구가 자주 보인다. 見物生心이라 생물을 보면 갖고 싶어 하는 마음은 누구에게나 생겨나는 것일까? ◎ 여씨 집성촌 실전마을 다시 실전 고개 오거리길이다. 여기에서 먼저 실전마을을 걸어간다. 5분 정도 걸어가니 실전마을이다. 실전마을은 북으로는 장목면 매동(씰개)과 접하고 동으로는 연초면 도청 골과 접하고 동남쪽으로는 사환부락이 남서쪽에는 칠천도가 자리하고 있다. 1590년 의령여씨 20세손 여정이 공이 동생 여막동과 식솔을 그느리고 실전리 322번지에 정착했다. 실전리에는 의령여씨 35가구 김해김씨가 15가구로 집성촌이다. 실전마을은 본래 실밭개라 하며 絲外浦라 하였는데 실밭이 絲田-實田으로 바뀌었으며 밭들이 많아 면화와 대마를 재배하였다. 실전마을 앞쪽에 있는 서너 채 집에 친구 김종기가 태어난 곳이다. 형님 김종재는 육군사관학교에 합격하여 경사가 났다. 지금 서울대학 합격과 거의 맞먹는 수준이다. 안쪽 마을에는 고모가 살던 집이 있는데 어릴 적 가보고 그 뒤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 실전 고모는 연초, 하청, 장목지역에서 유명한 사람으로 이름이 나 있다. 옛날 드레스 미싱판다고 돌아다녀 모르는 사람이 없기에 부업으로 중매쟁이도 하였다. 춤도 잘 추고, 노래도 잘하고, 말도 잘하여 지금으로 치면 시골 연예인이다. 거제도 여 씨라고 하면 그 본거지가 실전이다. 그리고 이곳 산34번지의 암석이 부싯돌이어서 옛날 담배 피울 때 성냥 대용으로 사용하였다. 우리가 어린 시절에는 삼, 모시, 목화, 담배 등의 식물을 많이 재배하였다. 지명을 보면 삼을 많이 재배하여 장승포 삼밭(장승포 5구), 깨를 많이 심는다고 깨밭골, 면화를 많이 심는다고 실밭개(실전), 밤을 많이 재배한다고 하여 밤깨( 율천)라는 지명이 있다. ◎ 용등산 둘레길 다시 돌아 올라온다. 다시 오거리길이다. 이제는 맹종죽테마공원의 3구간인 용등산 둘레길로 나선다. 용등산(龍登山)은 사환 동북쪽에 작은 연못이 있었으며 이 연못에서 용이 등천(登天)하였다고 하여 붙여진 산이다. 양 길옆으로 맹종죽과 편백나무가 즐비하며 간간이 오동나무가 보인다. 우리에게 가끔 보이는 오동나무는 대부분 참오동나무이며 우리나라 특산종이다. ( 참오동나무는 꽃 안쪽에 자주색 무늬가 있다) 옛날에 딸을 낳으면 밭에 오동나무를 심어 딸이 결혼할 때 그 오동나무로 가구를 만들어 보냈다. 옛날에는 옷장과 이불장을 함께 사용하는 장롱을 사용하였으며 이를 단스라 하였다. 큰방에 자개를 수 놓은 장롱이 있으면 그 집은 잘사는 집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어찌하든 1960년대까지 성행했던 오동나무 재배는 뒤안길로 사라졌으나 사골 전답 근처에 가면 아직도 한 두 주씩 오동나무가 보인다. 용등산 입구 휴게소 앞의 길옆에는 오동나무 두어 그루가 보인다. 1960년대 선술집에 가서 막걸리 한잔 한잔 하다 보면 취기가 오르고 젓가락 장단에 유행가 가사가 나온다. 그 대표적인 노래가 오동동 타령이다. 오동추야 달이 밝아 오동동이냐 동동주 술타령이 오동동이냐 아니요 아니요 궂은 비 오는 밤 낙수물소리 오동동 오동동 그침이 없어 독수공방 타는 간장 오동동이요 콧노래를 흥열거리면서 용등산에 오른다. 0.3km라고 적혀 있으나 20여분 걸린다. 나무들이 울창하여 앞을 볼 수가 없다. 우리들이 어릴 때는 소 먹이러 가기, 나무하러 가기, 풀 베러 가기 등이 중요한 일의 한 부분이었다. 우리나라 방은 대부분 온돌방이었으며 방이 따뜻하게 하기 위해서는 나눔을 때어야 하기 때문에 나무하러 가는 일이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그래서 산에는 소나무는 거의 없고 억새밖에 없었다. 길을 걸으며 주변에 울창한 산야를 보니 옛 생각이 새록새록 피어난다. 장작도 가져오고, 모장가리도 가져오고, 걸튀기도 해오고, 갈비도 하러 다닌 기억이 난다. 용등산부터는 소나무와 잡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산이 울창하여 건강한 숲을 이룬다. 소나무를 목재로 이용하고, 땔감으로 이용할 때는 소나무를 안방 신주 모시듯이 귀한 대접을 받았으나 지금은 수원함양림 이외에 별다른 기능이 없어 천한 대접을 받는다. 거기에 지구온난화로 삶의 터전이 맞지 않아 잡목이나 잡초들에게 큰 위협을 받고 있다. 1시간 정도 걸려 선동소류지에 도착했다. 댐, 저수지, 소류지는 어떻게 다른가? 댐은 저수용량이 큰 것, 저수지는 주로 농업용수로 사용 목적으로, 소류지는 저수지, 늪, 듬벙을 아우르는 용어로 사용하고 있다. 성동 소류지 옆에는 거산종합식품이라는 공장이 보인다. 이곳이 죽염생산하는 곳이다. 이 공장 공장장은 지리산 죽염공장에서 공장장으로 20여 년간 근무하다 대나무가 많은 이곳 성동마을로 오게 되었다고 한다. 한 줌의 죽염을 만들기 위해 대나무에 8번 구워낸다고 한다. 거제에는 대나무가 많으니 죽염산업도 발전시켜야 한다고 생각해본다. 조금 내려오니 죽순의 아버지 신용우씨가 살던 마을 성동마을이다. ◎맹종죽 시배지와 신용우 씨 성동마을은 본래 잿골, 짝골이라 하였는데 용등산과 녹각산에 둘러싸여 성안 같다고 하여 城 洞이라 하였다. 신 씨 집성촌으로 신용균(거제1.2대교육장), 신용우(6.10대 하청면장 농업의 아버지), 신용돈(경남도의원, 관포어업조합장)씨가 살던 곳이다. 특히 거제도 우장춘이라고 하는 신용우(1895.10.17.)씨가 1926년 일본 산업시찰 후 귀국 시 맹종죽 3그루 가져와서 집 뒤 밭에 심어 거제도 전역으로 전파하게 되었다. 1994년 304ha에서 2006년에는 115ha로 축소되었다. 신용우 씨를 기념하기 위해 와항의 조그마한 산을 용우산이라 한다. 2011년 거제맹종죽테마공원을 완공하고 맹종죽을 이용한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신용우옹은 맹종죽뿐만 아니라 고구마 시험 재배, 포도, 땅두릅시배지를 만들었으며 1950~1960년대 무, 배추, 양파의 종자를 채종하여 원예종묘회사에 공급하였다고 하니 정말 거제의 우장춘 박사 칭호를 받을 만하다. 지금도 거제 산야에 가면 삼나무와 편백나무가 숲을 이루는 곳이 여러 곳 있는데 이 모두 신용우 작품이라고 한다. 농업의 대세를 이루던 시기에 농업의 선두주자인 신용우옹을 존경하옵는 바입니다. 제1구간:: 사환마을-실전마을 1.6km 1시간 30분 제2구간: 맹종죽테마파크 둘레길 2.0km 1시간10분 제3구간: 용등산 둘레길 4.4km 2시간 사환마을에 있는 다육이 농장 ( 이태리 토기화분이 보이네요 ) 한개 100,000원 김기호 기념관...가족기념관으로 시에서 보조가 없다고 하네요 죽순테마길 ....숲이 울창하여 사환마을이 안보이네요. 둘레길 가는 도중에 테마파크로 가는 길이 있어유 칠천도 연육교가 보이네요 저 멀리 칠천량해전공원이 보이네요. 임진왜란 시 우리수군 수만명과 전선120여척이 몰살당한 곳 안내판이 너무 낡아 잘 보이질 안네요 우리는 친구예요... 대나무 향기가 좋아요 우후죽순... 대나무는 하루에도 10cm나 큰다우 실전에서 사환으로 넘나들던 고개...모리고개(마금치) 맹종죽 아버지 신용우씨 자택 여행팀 : 1,2,3 전 구간 차량운행이 가능하나 거의 차량이 다니지 않는 곳이다. 죽순테마공원과 접하는 구간이라 같이 둘러보아도 된다. 여행메모: 1. 대중교통: 하청에서 장목으로 운행하는 시내버스가 30분마다 있기에 교통이 편리하다. 마을 길과 임도 죽순 길이 혼재되어 있다. 2. 승용차 주차: ◎실전에서 출발 : 실전마을 입구 ◎ 사환에서 출발 : 마을회관 앞 ◎ 성동에서 출발 : 마을회관 앞 3. 시외버스: 부산 사상가는 시외버스 2시간마다 운행 (하청 삼거리 정차) 4. 맛집: ◎ 하청면소부근: 황가네잔치국수, 하청숯불갈비 ◎ 와항: 핫촌, 하청굴구이 맛집 ◎ 실전 나루목: 나루목횟집, 꽃보다소 ,어촌횟집 ◎ 칠천도 : 소향다원, 슈만과 클라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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